고양이

비누머리님의 요청도 있고 오랜만에 단편 하나 올립니다. 글 속의 날짜를 보니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끼적거린 글이로군요. 다시 읽어보니 민망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하지만 블로그 개장 1주년이라는 타이틀도 있고 하니 저를 웃음거리로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맘껏 비웃어 주시길… ^^; 

(1)

재훈은 동그마니 큰 눈에 호기심을 가득 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조그마한 동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갈색 얼룩무늬의 새끼고양이다. 앞발을 배 밑으로 집어넣고 잔뜩 웅크려 앉은 모양새가 영락없이 고양이의 모양이다. 혼자 사는 처지에다 직장까지 다니고 있어 동물따위를 키울 여력이 없는 재훈이지만 퀭한 자취방이 영 뜨악치 않아 지인(知人)으로부터 고양이를 한 마리 얻어왔다.

잔뜩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싱긋싱긋 웃으면서 바라보던 재훈은 살짝 고양이의 수염을 건드려봤다. 신경질적으로 근육을 찔끔거리며 왼쪽 눈을 가볍게 윙크한다. 재훈의 입장에서 보면 윙크한 것이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선 찡그린 것이다. 재훈은 고양이를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여전히 마음이 안 놓인 새끼고양이는 다시 따스한 침대 맡을 찾았다. 마음이 따스했던 어느 저녁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난 재훈이는 일어나자마자 불을 켜고 의자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던 고양이는 퍼뜩 눈을 뜨고 재훈을 바라보았다. 재훈은 그런 고양이를 위해 사발에 우유를 따라 주었다. 그리곤 하는 듯 마는 듯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고양이를 데려온 지 이틀이 지났건만 재훈은 아직 고양이의 이름을 짓지 못한 채 그저 ‘고양아 고양아’하며 불렀다. 고양이는 이제 방 모습에 익숙해져서 제법 재롱을 부린다. 의례 그렇듯 고양이는 아무거나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 책을 보고 있던 재훈이가 연필을 휙 던져주자 고양이는 흠 놀라다가 이내 연필을 이리저리 툭툭 치며 시비를 건다. 연필을 자기 영역에 침범한 적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재훈이가 양말을 동그랗게 말아 고양이의 눈앞에서 희롱을 하자 뒷발로 껑충 서서는 앞발로 양말을 잡아채려 했다.

[하하하]

재훈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틱틱거리는 모양새가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아…]

고양이의 이름이 지어졌다. 재훈은 이름을 ‘틱’이라고 정했다. 재훈은 기분이 좋아져 ‘틱아 틱아’하며 고양이를 불러봤다. 고양이는 그게 제 이름인지 아닌지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기 영역을 침범한 양말과 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틱은 이제 재훈이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요상한 것이 꼭 재훈의 목에 올라앉아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언뜻 잠들었던 재훈이 갑자기 목이 답답해 눈을 떠보면 어느새 엉큼하게 틱이 목에 올라와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사흘째가 되자 이제 틱은 재훈이에게 온갖 응석을 다부렸다. 책상 앞에 앉아 채팅을 하고 있으면 틱이 어느새 자기랑 놀아달라고 ‘응예 응예’하며 응석을 부렸다.

[미안해요. 고양이가 절 불러서]

[어머 고양이를 키우세요?]

상대방 여자가 반색을 했다.

[네 새끼고양이예요.]

[이름이 뭐예요?]

[틱요.]

[와… 너무 예쁘겠다~~ 키키.]

재훈은 그 이후 그 여자와 고양이 얘기며 개 얘기 등 애완동물 이야기로 얘기꽃을 피웠다. 비교적 한적한 개인병원의 간호사라는 그 여자는 당직이면 채팅을 하며 지루한 당직을 달래곤 했다. 가끔 발생하는 이머전씨때문에 급히 톡을 끊어야 하는 점을 제외하면 좋은 말상대였다.

사건은 나흘째 터졌다. 야근 때문에 저녁 늦게야 방문을 열던 재훈에게 옆방에서 나오던 이웃이 말했다.

[고양이 키우시나보죠?]

[네.]

재훈이가 평소 서먹하게 지내던 이웃집 사람에게 계면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양이가 하루 내내 울던데요?]

[아… 네.]

하며 계면쩍은 웃음을 거두며 문을 열었다. 틱이 문 앞에 너부러져 있었다. 재훈이는 깜짝 놀라서 틱을 바라보았다. 거의 바닥에 몸을 붙이고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재훈은 당황하여 급히 114에 전화를 걸어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리고는 번호를 더듬어 위치를 확인하고는 틱을 보듬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

의사는 장염이란 진단을 내렸다.

[새끼 고양이한테 찬 우유먹이시면 안돼요.]

[네.]

재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에 데려온 틱은 영 맥을 못 추고 갤갤거렸다. 재훈은 그런 틱을 바라보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채 몇 시간도 자지 못한 재훈이 불쑥 일어난 때는 어렴풋이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틱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어 있는 듯 보였다. 재훈의 눈에는 문득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낯선 곳에 끌려와 끝내 죽은 것이다. 그때 틱이 몸을 꿈틀거렸다. 재훈의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결국 그날 재훈은 회사를 쉰 채 틱을 돌봤다. 재훈의 간호덕분인지 하루 만에 틱은 기력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러나 결국 재훈은 틱을 고양이 임자에게 다시 돌려보내야 했다. 틱을 고양이 임자의 손에 넘겨주고는

[이름은 틱이야.]

라고 말하면서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재훈은 틱을 돌아다보았다. 틱은 무심한 눈초리로 재훈을 바라봤다. 재훈은 무심한 틱의 눈이 왠지 자기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 돌아오는 길이 편하지 못했다. 차를 몰면서 재훈은 ‘고양이는 사람보다 자기가 살던 집을 기억한다는데’하며 영 마음이 허전했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지만 재훈을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허한 재훈은 냉장고 위에 놓아두었던 위스키를 한잔 따라 마셨다.

틱은 새집으로 – 아니 예전의 자기 집으로 – 와서도 재훈을 잊지 못했다. 틱이 좋아서 데리고 노는 꼬마아이도 다 귀찮았다. 꼬마는 틱에게 ‘야옹이’ 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틱이 자기가 틱이라는 사실도 개의치 않았지만 야옹이란 이름도 개의치 않았다. 이틀 여를 그 집에서 주는 넉넉한 먹이를 먹으며 틱은 기력을 되찾았다.

틱은 사흘째 되는 날 길을 나섰다. 딱히 이유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지만 어렴풋이 재훈을 다시 찾아가고 싶었나보다. 금방 그를 찾으리라는 틱의 본능은 틀린 것이었다. 길은 낯설고 공기는 차가왔다. 결국 그날 저녁 틱은 동네어귀의 쓰레기통 옆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몇 달이 지난 후 이제 틱은 자기가 왜 집을 나섰는지조차 잊은 채 완벽한 – 외모조차 – 들고양이가 되었다. 동네 이곳저곳을 제 마당마냥 휘젓고 다니며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근처에서 틱은 완벽한 자기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 안을 침범한 녀석은 고양이건 연필이건 양말이건 그의 날카로운 앞발톱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어느 어스름한 저녁 재훈은 친구와 얼큰하게 한잔 들이킨 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문득 무언가가 어슬렁거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삐쩍 마른 그러나 덩치는 제법 큰 얼룩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마치 그곳에 재훈은 없다는 양 무시하며 지나쳐갔다.

[뭐야. 도둑고양이 주제에 어슬렁거리다니 뻔뻔하군.]

얼얼한 재훈은 고양이가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소리쳤다. 그 소리에 고양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힐끗 재훈을 쳐다보았다. ‘뭐야.. 저 녀석’하며 자기 영역 안에 있는 큰 동물에게 적대감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흥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왼쪽 눈을 가볍게 찡그렸다.

(2)

집에 돌아온 재훈은 얼큰해져서 침대에 벌떡 드러누웠다. 문득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한동안 통신에서 만나지 못했다가 근래에 다시 만난 – 물론 통신상에서지만 – 간호사와 이야기나 나눌 요량이었다. 통신에 접속하자 예의 간호사의 아이디가 눈에 띄어 얼른 톡을 신청했다. 금방 그녀가 톡을 응해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 ]

[당직이신가요?]

[네.. 오늘은 한산하네요.]

[그렇군요. 죄송한데 오늘은 제가 한잔 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뇨. 그냥….]

[네…]

다소곳이 그녀가 대답했다.

[인경님 사람 죽는 거 많이 보셨죠?]

[여긴 개인병원이니까 많이 보진 못했고요. 아주 가끔 근처에서 교통사고 같은 거 나면 응급실에 실려 오는 시체가 있죠.]

[그런 사람 보면 어떤 생각 들어요?]

[음… 간호사 처음 할 때는 맘이 편치 못했는데요. 이젠 좀 무감각해졌어요.]

[네….]

[왜 무감각하다니까 실망하셨어요?]

[아뇨. 그냥 죽고 산다는 게 부질없단 생각이 드네요.]

[재훈님 외로우신가보다.]

[하하… ^^; ]

[가끔 드라이브나 하시면서 바람 좀 쐬세요.]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고마워요 인경님.]

10여 분 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업무를 도와달라는 동료 간호사의 부탁 때문에 둘은 채팅을 그만둬야 했다. 컴퓨터를 끈 재훈은 어두운 방안에 멍하니 앉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너 참 불쌍하다 재훈아’

불쑥 일어나 방을 나선 재훈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창문을 내려 맞바람을 맞았다. 시원한 밤바람이었다. 문득 틱이 생각이 났다.

‘틱은 어디서 뭐할까? 그 집에서 뚱뚱이가 돼있겠지.’

20여분 여를 밤거리를 달려 재훈은 어느 낮선 거리를 만났다. 생애 한번도 와보지 않은 거리에 접어들자 재훈은 또다시 이 도시에서 자신은 이방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재훈은 눈을 감고 차가 뜸한 거리에서 액셀레터를 힘껏 밟았다. 2초 후 재훈의 차는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충돌했다.

인경은 응급실의 간호사를 도와 응급실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때 급히 응급실문을 들어서는 침대가 있었다. 침대위에는 참혹하게 얼굴에 피가 맺힌 한사나이가 누워 있었다. 이미 숨진 상태였다. 용무를 보다 한참 후에 돌아온 동료간호사가 빈정거렸다.

[그러게 음주 운전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싸다니까.]

인경은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나 이제 가도 되지?]

[응 그래 가서 자리 지켜야지.]

카운터로 돌아온 인경은 컴퓨터를 켜서 통신에 접속했다. 재훈의 아이디인 blue를 찾아보았지만 그는 로그아웃상태였다. 왠지 마음이 답답한 인경은 재훈에게 편지를 띄었다.

“안녕하세요.
인경이예요.
오늘은 어쩐지 재훈님의 마음이 심란한가봐요.
재훈님의 웃는 얼굴을 보았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재훈은 그이후로도 통신에 접속하지 않았다. 인경은 몇 통인가 재훈에게 편지를 띄우다가 이내 제풀에 지쳐 그만두고 말았다. 90일이 지나자 재훈의 아이디는 삭제되었다. 그 무렵 인경은 어느덧 그를 잊고 새로운 통신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어느 저녁 통신을 하던 인경은 문득 문밖을 내다보았다. 갈색 얼룩무늬의 도둑고양이 한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병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3)

햇살이 흔들거리는 아침이 찾아오면 인경은 나른한 하품을 한다. 그리고는 전에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새아침을 맞을 준비에 부산해진다. 종일근무에서 풀려나 비번인 날이 찾아오면 하루쯤 늦잠을 자두어도 좋으련만 인경은 부지런히 잠의 먼지를 털어내고 얼굴에 물을 끼얹는다.

인경은 나태를 혐오한다. 그녀는 이제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오늘 1998년 3월 18일을 사랑하는 여자이다. 그녀는 삶의 한 귀퉁이를 살갑게 애무하는 타입이다. 그녀는 또한 독신자의 적이 나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찮은 일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

3월의 햇살은 아직도 서툰 냉기를 간직한 채 처마 끝에 머물러 있다. 인경은 반가운 햇살이 몸에 와 닿는 것을 즐기면서 부엌으로 가 콩나물을 물에 담가둔다. 오늘은 콩나물국을 끓여둘 참이다. 오늘은 모처럼 서점에 들를 예정이다. 평소에 신문을 뒤적거리며 꼼꼼하게 수첩에 받아 적어놓은 시집을 몇 권 살 계획이다.

인경은 부산을 떨다가 잠시 숨을 돌릴 참으로 마당에 나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엉성한 체조를 했다. 어디선가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막 팔을 휘돌려 허리운동을 할려는 참이었다. 어찌 들으면 애기 울음소리와도 같은 가녀린 울음소리였다. 인경은 체조를 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떠서 귀를 기울였다. 다시 갸냘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인집 헛간 쪽이었다. 인경은 조심스레 헛간 쪽으로 다가가서 슬며시 헛간 문을 열어보았다.

햇살아래 있어서인지 어둑한 안을 들여다보는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에야 인경은 헛간 안쪽 자전거 뒤쪽에서 울음소리의 발원지를 발견했다. 울음소리의 정체는 커다란 얼룩고양이 품안에 엉겨 붙어 있는 새끼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라고 하기에도 애처롭게 털도 채 마르지 않은 핏덩이들이 이리저리 엉켜 꼼짝도 않고 있는 어미젖을 허겁지겁 빨아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어미는 죽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새끼고양이는 모두 다섯 마리였으나 이미 몇 마리는 어미와 저승길을 동행한 모양이었다.

인경은 서둘러 삶의 빛을 좇아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고양이 세 마리를 신문지를 깐 종이박스에 담아 동네어귀에 보아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고목의 나이테 수만큼 얼굴에 주름이 진 늙은 수의사가 그녀를 맞았다. 수의사는 고양이들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어미는 어찌 됐는가?”

“죽은 거 같던데요.”

아직도 어리둥절한 인경이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수의사는 안경너머로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거 같다니?”

“사실은 저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니라 들고양이인 모양인데 저희 집 헛간에서 애를 낳은 모양이에요. 제가 얘들을 데리고 올 동안에도 어미는 꼼짝도 않고 몸도 식어있었어요.”

“쯧쯧, 사산한 모양이군. 어린 것들이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구먼.”

“얘들을 어떻게 하죠?”

“놔두고 가게. 일단 고양이 꼴이 될 때까지는 내가 돌봄세.”

인경은 안심과 걱정이 뒤섞인 한숨을 지으며 병원 문을 나섰다. 동물병원이라 하기에는 영 마땅치 않은 – 주인을 닮은 – 허름한 병원이었지만 그만큼의 경륜도 있을 것이다. 인경은 집에 돌아와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다가 퍼뜩 생각이 들어 헛간에 가서 삽을 챙겨들고 죽은 어미와 새끼고양이들을 자루에 담아 뒷동산에 올랐다.

제법 땀을 흘린 후에야 그들을 묻을 만한 구덩이를 팔 수 있었다. 1시간여를 씨름한 끝에 고양이 무덤을 만들었다. 인경은 파헤쳐져 붉은 흙을 드러낸 무덤을 바라보았다. 삽을 챙겨든 인경이 허리를 한번 쭉 펴고 돌아서려는 순간 왠지 고즈넉한 고양이 무덤이 쓸쓸해 보였다. 인경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제법 곧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무덤 맡에 꽂았다. 십자가 모양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비석흉내를 내었다.

집에 돌아와 말라붙은 땀을 닦아내고 방에 누워 있던 인경은 문득 서점에 가기로 한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서점 시집코너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렸지만 인경은 자꾸 아침녘의 새끼고양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며칠을 인경은 가축병원으로 출근해 고양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며칠이 지나자 고양이 세 마리는 나름대로 기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경 낀 늙은 어미덕분에…

그러는 동안 고양이들은 젖을 뗄 무렵이 될 만큼 후딱 시간이 흘렀다. 이제 어느새 응석을 부리는 고양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인경은 언젠가 통신에서 만났던 한 사나이가 말했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고양이들은 그 때 그 남자가 말하던 갈색 얼룩고양이들이었다.

‘그 고양이도 얘네 들처럼 귀여웠겠지?’

인경의 입가엔 웃음이 담겨졌다. 그때 잠시 밖에서 담배를 사러나간 늙은 수의사가 들어왔다.

“이제 데리고 가게. 뭐하면 여기서 주인들을 찾아 주던지.”

“네에..”

인경은 말꼬리를 흐리면서 대답했다. 문득 그간의 진료비 – 어찌 보면 양육비 – 가 걱정이 됐다.

“저 진료비는 어떻게….”

“놔두게. 뭐 딱히 수고스러운 일도 없고 몇푼 받자고 한 일도 아니니…”

“그래도…”

“자네 고양이도 아니었다면서… 내가 여기 들르는 사람들한테 수소문해서 고양이들 주인을 찾아봄세.”

인경은 칭얼거리면서 서로 아옹다옹하는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저 제가 한 마리 가져가도 될까요?”

의자에 앉아 녹차를 마시던 수의사가 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인경을 바라보았다.

“좋을 대로 하게.”

인경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세 마리의 고양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맨날 찾아오는 언니의 얼굴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고양이들의 눈은 하나같이 친근했다. 인경은 손을 살짝 들었다 놨다 하며 망설였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예전 그 사나이의 고양이와 가장 닮았을 것 같은 고양이를 집어 들었다. 어디가 닮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느낌일 뿐이다. 인경은 다시 한번 그동안의 노고를 감사드린다고 수의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고양이를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병원을 나섰다.

오는 길에 괜히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혼자 사는데다 밤샘근무까지 하는 처지에 애완동물이라니 하는 생각에 맘이 불편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맘을 다잡아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아양이라도 떨어서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는 주인집 아주머니는 인경의 청을 선선히 들어주었다.

“아 우리 집 헛간에서 난 동물이니 우리가 주인인 게지.”

고양이는 낯이 선지 인경의 방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영역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 고양이를 인경과 주인집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사나이와 그가 며칠간 키웠던 고양이가 떠나간 1998년 3월 어느 따뜻한 저녁이 저물고 있었다.

8 thoughts on “고양이

  1. 비누머리

    어린시절에 키우던 고양이 생각이 나네요.
    던지고, 괴롭히고 해서 지금은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결국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져서, 다음 명절에 들렀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지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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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달빛효과

    와…잘 읽었습니다.
    뭐라 칭찬을 해드리고 싶은데 딱히 좋은 말이 안 떠오르네요..^^;
    저는 과거엔 재훈이었던 적이 있었고…지금은 인경이로 살고 있어요..^^;
    굉장히 현실적으로 제 과거와 현재의 상황과 닮은 두 캐릭터라서
    의미심장하게 읽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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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이 글은 3부작으로 썼던 시점도 각각 다르답니다. 당초 냉소 버전 1편을 쓰고 나중에 우울 버전 2편을 썼습니다. 그냥 거기서 끝낼까 하다가 왜 그리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느냐는 비난에 시달릴까봐 희망 버전은 3편으로 마무리를 했지요.
      아무튼 인경이와 같은 삶을 살고 계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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