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음악

올해의 즐거움 : 公演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콘서트(2015.4.23.)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 전부를 나흘간에 걸쳐 소화해낸 콘서트 중 마지막 날의 콘서트였다. 9번 교향곡을 꼭 라이브로 듣고 싶었기에 찾아갔지만 8번 교향곡 역시 깊은 감동을 줬던 공연이었다. 지휘는 헝가리 출신의 이반 피셔가 맡았다.

Paul McCartney 슈퍼콘서트(2015.5.2.)
당시 아내가 몸이 많이 아팠는데 이 공연을 문득 보고 싶다고 하여 어려운 발걸음을 했던 공연이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폴의 완벽한 노익장에, 아내와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모두 환각 상태에 빠졌던 멋진 공연이었다.

신도시 기획공연 : 위댄스/김윤기와 깐돌/아나킨프로젝트/000000000(2015.8.2.)
신도시라는 작은 빠에서 열린 인디뮤지션들의 공연이었다. 아나킨 멤버의 초대로 들른 이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밴드는 훵키한 댄쓰넘버가 일품이었던 위댄스였다. 덕분에 이들의 CD도 현장에서 구입하고 멤버들에게 싸인도 받았다.

정명훈의 서울시향(2015.8.27.)
베토벤 교향곡에 삘받아서 관람한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공연이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6번과 7번이었다. 막귀인지라 로열 콘세트르허바우와의 우열은 가릴 수 없었고 현장에서 베토벤을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 공연이었다.

오페라 카르멘(2015.12.26.)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된다는 카르멘의 국내 공연이다. 기획은 국내기업인데 주요 출연진은 카르멘 역에 뒤셀도르프 극장 소속인 레모나 자하리자 등 외국 가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연중 출연한 말이 사고가 날뻔 해서 식겁했던 생각만 난다.

올해의 즐거움 : 音盤편

올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음반 위주로 들으려 일부러 노력했다. 사실 젠체하려는 문화적 허세남의 냄새가 다분히 풍기는 의도였지만, 어쨌든 그러한 노력 덕에 음악 감상의 폭은 상당히 넓어진 한해였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음반들을 골라봤다.

Elgar: Cello Concerto / Sea Pictures[1965]
한 클래식 작곡가의 작품을 재평가하는데 연주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는데 바로 엘가의 이 작품이 그렇다. Jacqueline du Pré라는 천재 첼리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자 사람들은 그 곡을 재평가했고 연주자에게도 가장 뛰어난 연주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Love Supreme – John Coltrane[1965]
째즈의 마지막 황금기에 가장 걸출한 째즈 뮤지션이 내놓았기에 그 어떤 째즈 음반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음반. 콜트레인의 종교적 명상이 고스란히 음악적으로 표현되어서 더욱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음반이 다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할 듯.

ささやかな欲望 – 山口百惠[1975]
일본 최초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야마구치모모에의 1975년 작. 초기의 어린 소녀의 로리타적 분위기에서 보다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로 넘어가던 시절의 – 그래봤자 당시 16세 – 곡들이 담겨져 있다. 모모에의 음반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함.

The Köln Concert – Keith Jarrett[1975]
지친 몸을 이끌고 퀼른에 왔는데 준비되어 있는 피아노는 당초 요구에 훨씬 못 미치는 조악한 상태의 미니그랜드피아노. 이 상태에서 키쓰자렛은 관객들에게 생애 최고의 즉흥연주를 선사했다. 음악이란 자유로움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명반.

The River – Bruce Springsteen[1980]
미국 노동계급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뮤지션 브루스스프링스틴의 중기걸작. 미니멀리즘의 미학이 제대로 드러난 Hungry Heart나 아버지의 죽음에서 삶의 철학을 깨닫는 Independence Day 등 노동자의 희로애락이 절절하게 담겨져 있다.

Rain Dogs – Tom Waits[1985]
사실 톰웨이츠의 음악은 무의식적으로 피해왔다.(그 걸죽한 목소리가 싫었던 것인지?) 결국 이 음반을 듣고 나서 그의 음악을 피해온 세월이 아쉬워졌다. 한적한 미국 시골에 차려진 철지난 서커스 공연장에서 듣고 있으면 딱 좋을 풍각쟁이의 노래들.

Steve McQueen – Prefab Sprout[1988]
‘이 밴드의 음악은 언제 한번 제대로 들어야겠다’고 벼르다 고른 앨범인데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는구나!’라고 감탄했다. 앨범명에서부터 커버, 그리고 수록곡이 환상적 궁합을 이루지만 미국에선 저작권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출시된 불운한 앨범이기도.

Enter The Wu-Tang(36 Chambers) – Wu-Tang Clan[1993]
힙합과 중국의 B급 무술영화가 만나서 90년대 힙합의 트렌드를 결정해버렸다. 개성이 너무나 확연한 멤버들이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창출해낸 하나의 팝문화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Ol’ Dirty Bastard의 랩이 마음에 들었다.

Back To Black – Amy Winehouse[2006]
뮤지션은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임진모 씨의 꼰대질에 근거하여 보자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에이미 그 자신의 절절한 사연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음반. Rehab만 들어도 이미 위기의 전조가 느껴지는데 청중은 그저 환호했을 뿐이다. R.I.P.

vega Intl. Night School – Neon Indian[2015]
인디 신쓰팝 뮤지션 니온인디언의 2015년 신보다. 디스코, 뉴웨이브, 훵크 등 장르가 맛깔스럽게 섞여서 귀가 즐거웠던 앨범이다. 올해 내한공연을 시도했으나 기획사의 역량부족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다음에 내한한다면 꼭 가보고 싶은 아티스트.

Music Complete – New Order[2015]
결성된 지 35년 만에 내놓은 2015년 신보. 단순히 노익장을 과시할 목적으로 내놓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명확해진다. 마지막 트랙 Superheated까지 –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이 좋다 –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수작.

Bruce Springsteen의 The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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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Springsteen의 The River는 ‘미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풍부한 시각적/청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급작스런 결혼, 경제침체 속에서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 미국적 삶의 상징 중 하나인 캐딜락으로 꾸며진 농장, 고된 일을 끝낸 후의 소녀와의 데이트,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 대한 사랑, 오랫동안 반목했던 아버지의 죽음, 한때 사랑했던 아내와의 지쳐가는 관계, 고속도로 주행 중에 마주친 사고에서 홀로 목격한 낯선 이의 죽음 등등. 고달프지만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평범한 1970~80년대의 미국 노동자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자동차, 노동, 섹스, 가족, 고속도로, 사막, 락앤롤, 결혼 등등. 스프링스틴은 실제로 그가 그의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곡의 영감을 얻어서 썼기 때문에 평범한 표현으로 여겨질지라도 가슴에 와 닿는 가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스무 곡의 수록곡에 총 83분의 연주시간에 이르는, 정규 앨범 치고도 매우 긴 트랙리스트는 직선적이고 템포 빠른 락앤롤 곡에서부터 발라드풍의 어쿠스틱 곡이 고르게 섞여 우리 인생의 굴곡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있다. 앨범의 제목이자 이 앨범의 대표곡의 제목이기도 한 “강(The River)”은 또한 이런 우리 인생을 의미한다. 잔잔하게 흐르며 존재감조차 비치지 않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거칠게 흐르고, 심지어 마을을 덮치는 홍수가 되기도 하는 강. 개인적으로 위의 모든 풍경을 집약한다고 여겨지는 노래는 앨범의 마지막 곡인 Wreck On The Highway다. 고속도로 주행 중 낯선 이의 죽음을 목격한 화자는 때때로 어둠 속에서 잠을 깨어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랑하는 여인을 꼭 껴안는다. 고속도로에서의 그 사고를 생각하며.

The River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가 초래한 불공정한 게임

레이블들은 그들의 수입의 일정비율(간혹 15% 정도)을 지불한다. 이 비율은 스트리밍 음악이 제조, 파손에 의한 피해, 그리고 손상을 보상하기 위한 레이블의 별도의 물리적 비용 등이 포함된 것이라면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LP나 CD 생산과 비교할 때에 스트리밍은 레이블에게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마진을 안겨준다. [중략] 나는 애플 뮤직에 맛보기 기간 동안의 저작권료 계산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 계산법은 저작권 보유자(즉 레이블)에게만 공개된다고 말했다. 나는 내 레이블을 가지고 있고 내 앨범 중 몇 개의 저작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내 배급사에게 얼굴을 돌리자 그의 답은 “당신은 계약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당신 변호사가 우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게 하면 몇몇 질문에 답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였다. 상황은 더 나빴다. 한 업계 정보통은 내게 메이저 레이블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을 그들의 카탈로그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언뜻 보기에도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배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레이블들은 세 곳의 또 다른 수입원이 있는데, 이는 모두 아티스트들에게는 감춰진 것들이다. 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선금을 받고, 오래된 노래들에 대한 카탈로그 서비스에 대해 지불받고, 스트리밍 서비스 자체의 주식을 받는다.[Open the Music Industry’s Black Box]

80년대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로 활동하면서 미술작품 제작 및 저작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David Byrne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유투브, 애플 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산업의 핵심부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신이 음악가이자 레이블 소유자이기도 한 Byrne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계약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음악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얼마 전 Taylor Swift가 애플 뮤직과의 지상 논쟁을 통해 음악가들에게 불공정한 것으로 보이는 처사를 취소하게 했던 해프닝도 있었던 바, 음악가들에게 있어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재와 앞날은 초미의 관심사가 된지 오래다. 그리고 Byrne은 Taylor Swift의 항의에 한발 더 나아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와 레이블 – 특히 메이저 레이블 – 간에만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계약에 대한 – Byrne은 이 계약을 “블랙박스”라 칭하고 있다 –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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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by Ron Baker” by Ron Baker – http://www.flickr.com/photos/kingsnake/2948571996/in/faves-24788065@N0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Commons.

David Byrne이 기타 연주하는 모습

스스로가 레이블 소유자인 Byrne이 애플 뮤직이나 배급사 등으로부터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여하한의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시장은 철저한 과점 시장이다. 그 과점 업체는 상위 3위의 레이블인 Sony, 유니버설, 그리고 Warner다. 이들 3개 업체는 Byrne이 짐작하길 서비스에 대한 선금과 주식 등을 배정받아 이미 서비스 업체와의 특수 관계가 되었고 음악가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레이블들을 계약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요컨대 스트리밍 서비스는 ▲ 음악소비 행태를 바꿔놓았고 ▲ 레이블은 더 이상 CD와 같은 물리적 상품을 이전처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 그럼에도 이들의 저작권에 대한 대가는 이전과 같은 비중 혹은 비밀스러운 계약과정을 통한 더 많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 Byrne의 관찰기다.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바뀐 음악 산업에서, 자본은 저작권이라는 고정자본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도 잉여가치를 계속 착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이 산업화되어온 역사를 거칠게 보자면 초기에는 일종의 서비스업이자 유통업으로써 공연을 하는 생산자가 수입의 대부분을 갖는 형태였을 것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이 소비하는 고전음악의 생산자는 왕족이나 귀족의 후원이나 보수, 악보 판매 등의 수입으로 살아갔다. 현대로 접어들며 LP의 대량생산 시대부터 생산자는 레이블에 속해 이익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음악 산업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회귀하며 생산자는 은밀한 거래에서 소외되고 있다.

Combat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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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 Combat Rock”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어릴 적에 이 앨범을 처음 구입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 어쩌면 당연하게도 – 밴드 멤버가 찍혀 있는 앨범 표지였다. 한적한 시골의 철도변에 앉아 있는 반항적인 펑크족들의 사진은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뮤지션과의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Pennie Smith가 찍은 이 사진은 밴드가 1982년 동남아 여행을 하던 중 방콕 외곽의 한 버려진 철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1982년 5월 14일 밴드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앨범으로 발매된 이 작품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7위까지 오르는 등 The Clash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에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애초 이 작품은 “Rat Patrol from Fort Bragg”이라는 이름의 더블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Mick Jones의 믹싱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멤버들이 이 일을 Glyn Johns에게 넘겼고 작품 길이는 싱글 LP로 줄었다.1

앨범의 첫 싱글로 발표된 작품은 A면 첫 곡이기도 한 “Know Your Rights”다. “이것은 기타로 알리는 공공의 발표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권리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 권리들은 Catch22의 모순처럼 행사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당신은 발언의 자유가 있다. 실제로 그걸 행사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면 말이다.(The right to free speech, as long as you’re not dumb enough to actually try it)”

앨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세 번째 수록곡인 “Should I Stay Should I Go?”다.2 이 곡은 밴드가 영국 싱글 차트에서 유일하게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 이 노래의 제목 때문에 이 앨범으로 불화를 겪고 결국 그룹을 떠난 Mick Jones의 자조적인 내용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기도 했지만 본인은 부인했다고 한다. 롤링스톤은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이라는 차트에서 이 곡을 228위에 올려놓았다.

“Should I Stay Should I Go?”와 함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싱글은 이어지는 곡 “Rock The Casbah”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8위까지 올랐는데 이는 밴드의 유일한 미국 차트 탑10 기록이다. 이 곡은 1979년 혁명 이후 서양음악을 금지한 이란 정권을 비꼰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 이란계 프랑스 만화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작품 “Persepolis”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3

요즘 들어 이 앨범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곡은 제목처럼 펑키한 리듬으로 무장한 “Overpowered by Funk”다. 80년대 The Jam, Spandau Ballet 등을 통해 일반화될 백인 펑크(funk)의 유행을 선도했던 이 노래는 영국에서 작업을 시작해서 앨범 전체를 마무리했던 뉴욕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의 랩 부분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밴드의 “This Is Radio Clash” 등의 싱글 앨범 표지 작업을 맡기도 했던 Futura 2000이 맡았다.

앨범이 발표된 1982년은 영국 내부의 정치도 그러려니와 세계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The Clash는 이런 상황을 “전투 락”이라는 앨범 속에 진보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녹여냈다. 이 앨범의 미학적 가치는 또한 다양한 음악장르를 – 특히 랩이나 펑크(funk)와 같은 흑인음악을 –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밴드의 이러한 문화적 포용성은 펑크락(punk rock)이 단순한 백인 노동계급의 음악에서 머물지 않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Love Supreme”

이코노미스트에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매된 재즈 명반 “Love Supreme”에 관한 칼럼이 게재되어 여기에 번역해서 올려둔다.

A blue-tinted black-and-white photograph of Coltrane's face looking to the left, with the logo "A Love Supreme/John Coltrane" written in white bold Arial across the top.
John Coltrane – A Love Supre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재즈에서 가장 유명한 징과 함께 시작한다. 몇 초 후, 더블베이스가 4노트의 “Love Supreme” 주제를 이어받는다. John Coltrane은 강렬한 색소폰 솔로를 시작한다. 그리고 30분 뒤,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여전히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선하게 들린다.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던 Coltrane은 1967년 그의 나이 40살에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간혹 한 해에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하는 다작의 아티스트였다. 1965년 2월에 발매된 “A Love Supreme”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비평가로부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Supreme”에 관해서는 과장이 좀 있다. 이 작품은 그 시기의 Coltrane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예를 들어 “Sun Ship”이나 “Crescent”와 같은 작품들) 그 명성은 아마도 몇몇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다. “Supreme”은 Coltrane의 기술적인 힘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한 그가 조성(調聲)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그의 앨범 다수는 재즈 클럽에서의 “해프닝”의 결과물로써 고도로 추상적이다. 익숙하지 않은 귀로는 몇몇은 거의 감상하기 어렵다.(“Live at the Village Vanguard Again!”을 시도해보라) “Supreme”은 숙달된 기술과 1960년대 Coltrane의 지성주의가 잘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또한 상당히 이지리스닝인 것이다.

“Supreme”은 또한 Coltrane에게 있어 가장 종교적인 앨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가장 헌신적인 재즈 팬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아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이들에조차 어떤 영감을 준다. 그는 요절했다. 그는 맹렬하게 연습했는데, 하루 12시간 씩 했다고 하고, 이는 아마도 가장 기술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룬 색소폰 연주자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 Charlie Parker나 Miles Davis와 같은 다른 재즈 거인들과 달리 그에게는 섹스와 관련된 짓궂은 일화가 거의 없다. 그래서 Coltrane의 팬들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를 조각조각 모아야 한다.

1950년대 후반의 마약중독에서 회복되는 동안 Coltrane은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고 “Supreme”은 명백하게 종교적인 함축이다. 라이너노트에서 그는 이 작업을 “그에게 바치는 변변치 않은 제물”이라고 칭했다. 첫 악장 “Acknowledgment”에서 Coltrane은 가스펠과도 같은 투로 “A Love Supreme”이란 가사를 되뇐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실은 “Allah Supreme”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여긴다. – 진지한 재즈 학자들조차 전적으로 믿을 만 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주장)

제 4악장 “Psalm”은 Coltrane이 그의 색소폰과 말을 “주고받은” 시에 대한 낭송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그 대화를 들을 수 있다(꽤 감동적이다). 이 작품은 빛나는 색채로 끝을 맺는다. Coltrane은 두 번째 색소폰으로 오버덥 작업을 했다.

마지막으로 “Supreme”은 발매된 그 맥락 때문에 중요하다. Coltrane은 발매 이후 몇 달 후에 사망한다. 이후 어떤 색소폰 주자도 그 정도의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얻지 못했다. “Supreme”이 나올 즈음 재즈의 인기를 폭락하기 시작했다. 락밴드가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디너 재킷과 작은 클럽이 곁들여진 재즈는 앰프가 가미된 기타와 화려한 의상에 비해서 매우 쿨하지 않은 것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새롭고 어린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극적으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바꿨다. “Supreme”이 나온 3년 후, Davis는 “Miles in the Sky”(명백하게 비틀즈에 대한 고개 끄덕거림이 담긴)이라는 앨범을 내놓는다. 그는 Jimi Hendrix와 함께 연주했다. Herbie Hancock은 전통적인 재즈를 거의 전적으로 생략하였다. 일그러뜨린 기타 사운드, 전자 베이스들, 락 리듬, 그리고 큰 썬그래스가 음악적인 이행기에 함께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Supreme”에 대한 광범위한 숭배는 부분적으로 지금 의미하는 것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어필했던 “적정한” 재즈라 여기는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그리고 다시는 회복되지 않은 한 예술 형식의 최후의 일제사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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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그룹 멤버의 죽음에 관한 단상

이 뉴스가 전해지면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돌 그룹의 관행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인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연예인들은 잠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대중에 대한 노출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음반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와 기사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인피니트와 달샤벳 등 다른 아이돌 그룹도 회사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은비 사망 소식에 아이돌그룹 무리한 일정 도마에 올라.]

“레이디스코드”라는 걸그룹 멤버들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해 멤버 중 은비 씨가 사망하고 다른 둘이 중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는 한류(韓流)의 대표상품 중 하나인 걸그룹이 겉에 보이는 것처럼 발랄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상황을 말해주는 사고라 할 수 있다. 자세한 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야겠지만, 레이디스코드 등 한국의 많은 연예인들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차량에 몸을 싣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고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현실일 것이다.

대중음악 발전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음악 산업은 첨단으로 자본주의化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가 발명한 가장 맛깔스러운 산업 중 하나인 대중음악 시장은 비록 자본주의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다소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지녀왔다. 기업은 주요한 상품인 뮤지션을 기획해서 만들기 보다는 마이너 뮤지션의 데모를 듣고 메이저로 끌어올려 성공시키는 요행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사용가치 중에서도 가장 알 수 없는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업계는 이런 방식을 선호해왔다.

뮤지션이 일정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곡까지 들고 오는 방식은 상품개발에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행수에 기대면서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90년대 대중음악 산업은 니르바나 Nirvana 라는 엄청난 히트상품을 얻었지만 업계가 통제되지 않는 리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말미암아 그 상품은 교환가치를 상실한 것이 한 예다. 이쯤 되자 업계는 이전에 간혹 시도되어 오던 기획 상품으로써의 뮤지션 양성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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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e Girls in Toronto, Ontario” by Ezekiel.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획적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의 한 예인 Spice Girls

이들은 음악 활동의 시작부터 철저히 기획사의 통제와 –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 훈련을 거친다. 주로 매력적인 외모와 군무(群舞)를 상품가치로 삼기 때문에 오디션과 고된 훈련이 필수과정이다. 곡을 직접 쓰기보다는 전문적인 팀이 만든 곡을 사용한다. 이렇게 훈육된 뮤지션의 음악은 유행하는 음악의 공통적인 문법을 답습하며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전의 마이너 뮤지션 뽑기보다는 시장 리스크를 줄인 셈이다. 단점으로는 상품의 기획 및 개발에 투입되는 투자비용이 이전보다 더 든다는 점이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뮤지션들은 생산설비 등 고정자본(fixed capital)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 맑스는 자본가가 고정자본의 자본회전율을 높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투자분을 회수하고, 시장변화에 따른 고정자본의 무용화를 방지하고, 종국에는 노동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려는 성향 때문에 노동착취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업체는 뮤지션의 상품성이 사라지기 전에 – 상품의 노후화1, 유행의 변화2 등으로 인해 –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돈 되는 곳은 과속을 해서라도 쫓아다녀야 한다.

대중음악 시장은 20세기를 거치며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인기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희로애락의 상황에서 위로를 받았고, 때로 뮤지션들의 영광과 죽음을 칭송하거나 애도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화려한 모습이 전면에 비춰지는 이면에는 무리한 일정 소화로 인한 피로감, 나아가서는 인용 기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 등과 같은 비극적인 모습도 있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자본주의화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