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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Supreme”

이코노미스트에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 발매된 재즈 명반 “Love Supreme”에 관한 칼럼이 게재되어 여기에 번역해서 올려둔다.

A blue-tinted black-and-white photograph of Coltrane's face looking to the left, with the logo "A Love Supreme/John Coltrane" written in white bold Arial across the top.
John Coltrane – A Love Supreme”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A Love Supreme“>Fair use via Wikipedia.

재즈에서 가장 유명한 징과 함께 시작한다. 몇 초 후, 더블베이스가 4노트의 “Love Supreme” 주제를 이어받는다. John Coltrane은 강렬한 색소폰 솔로를 시작한다. 그리고 30분 뒤,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여전히 5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신선하게 들린다.

재즈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던 Coltrane은 1967년 그의 나이 40살에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간혹 한 해에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하기도 하는 다작의 아티스트였다. 1965년 2월에 발매된 “A Love Supreme”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비평가로부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Supreme”에 관해서는 과장이 좀 있다. 이 작품은 그 시기의 Coltrane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압도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예를 들어 “Sun Ship”이나 “Crescent”와 같은 작품들) 그 명성은 아마도 몇몇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이 작품은 1960년대 중반의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다. “Supreme”은 Coltrane의 기술적인 힘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한 그가 조성(調聲)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그의 앨범 다수는 재즈 클럽에서의 “해프닝”의 결과물로써 고도로 추상적이다. 익숙하지 않은 귀로는 몇몇은 거의 감상하기 어렵다.(“Live at the Village Vanguard Again!”을 시도해보라) “Supreme”은 숙달된 기술과 1960년대 Coltrane의 지성주의가 잘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또한 상당히 이지리스닝인 것이다.

“Supreme”은 또한 Coltrane에게 있어 가장 종교적인 앨범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가장 헌신적인 재즈 팬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아는 것을 느낄 수 없는 이들에조차 어떤 영감을 준다. 그는 요절했다. 그는 맹렬하게 연습했는데, 하루 12시간 씩 했다고 하고, 이는 아마도 가장 기술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룬 색소폰 연주자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 Charlie Parker나 Miles Davis와 같은 다른 재즈 거인들과 달리 그에게는 섹스와 관련된 짓궂은 일화가 거의 없다. 그래서 Coltrane의 팬들은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를 조각조각 모아야 한다.

1950년대 후반의 마약중독에서 회복되는 동안 Coltrane은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었고 “Supreme”은 명백하게 종교적인 함축이다. 라이너노트에서 그는 이 작업을 “그에게 바치는 변변치 않은 제물”이라고 칭했다. 첫 악장 “Acknowledgment”에서 Coltrane은 가스펠과도 같은 투로 “A Love Supreme”이란 가사를 되뇐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실은 “Allah Supreme”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여긴다. – 진지한 재즈 학자들조차 전적으로 믿을 만 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주장)

제 4악장 “Psalm”은 Coltrane이 그의 색소폰과 말을 “주고받은” 시에 대한 낭송이다. 당신은 여기에서 그 대화를 들을 수 있다(꽤 감동적이다). 이 작품은 빛나는 색채로 끝을 맺는다. Coltrane은 두 번째 색소폰으로 오버덥 작업을 했다.

마지막으로 “Supreme”은 발매된 그 맥락 때문에 중요하다. Coltrane은 발매 이후 몇 달 후에 사망한다. 이후 어떤 색소폰 주자도 그 정도의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얻지 못했다. “Supreme”이 나올 즈음 재즈의 인기를 폭락하기 시작했다. 락밴드가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디너 재킷과 작은 클럽이 곁들여진 재즈는 앰프가 가미된 기타와 화려한 의상에 비해서 매우 쿨하지 않은 것이 된 것처럼 보였다.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새롭고 어린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극적으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바꿨다. “Supreme”이 나온 3년 후, Davis는 “Miles in the Sky”(명백하게 비틀즈에 대한 고개 끄덕거림이 담긴)이라는 앨범을 내놓는다. 그는 Jimi Hendrix와 함께 연주했다. Herbie Hancock은 전통적인 재즈를 거의 전적으로 생략하였다. 일그러뜨린 기타 사운드, 전자 베이스들, 락 리듬, 그리고 큰 썬그래스가 음악적인 이행기에 함께 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Supreme”에 대한 광범위한 숭배는 부분적으로 지금 의미하는 것에 의해 설명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어필했던 “적정한” 재즈라 여기는 마지막 앨범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그리고 다시는 회복되지 않은 한 예술 형식의 최후의 일제사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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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그룹 멤버의 죽음에 관한 단상

이 뉴스가 전해지면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돌 그룹의 관행에 관해 논란이 일었다. 하루가 다르게 신인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연예인들은 잠을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대중에 대한 노출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음반업계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와 기사도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인피니트와 달샤벳 등 다른 아이돌 그룹도 회사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은비 사망 소식에 아이돌그룹 무리한 일정 도마에 올라.]

“레이디스코드”라는 걸그룹 멤버들이 탄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해 멤버 중 은비 씨가 사망하고 다른 둘이 중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는 한류(韓流)의 대표상품 중 하나인 걸그룹이 겉에 보이는 것처럼 발랄한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상황을 말해주는 사고라 할 수 있다. 자세한 조사를 통해 사고의 원인이 밝혀져야겠지만, 레이디스코드 등 한국의 많은 연예인들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차량에 몸을 싣고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고된 노동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현실일 것이다.

대중음악 발전의 흐름으로 볼 때 한국의 음악 산업은 첨단으로 자본주의化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가 발명한 가장 맛깔스러운 산업 중 하나인 대중음악 시장은 비록 자본주의의 발명품이기는 하지만 다소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지녀왔다. 기업은 주요한 상품인 뮤지션을 기획해서 만들기 보다는 마이너 뮤지션의 데모를 듣고 메이저로 끌어올려 성공시키는 요행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사용가치 중에서도 가장 알 수 없는 사용가치이기 때문에 업계는 이런 방식을 선호해왔다.

뮤지션이 일정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곡까지 들고 오는 방식은 상품개발에 비교적 적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요행수에 기대면서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90년대 대중음악 산업은 니르바나 Nirvana 라는 엄청난 히트상품을 얻었지만 업계가 통제되지 않는 리더 커트 코베인의 자살로 말미암아 그 상품은 교환가치를 상실한 것이 한 예다. 이쯤 되자 업계는 이전에 간혹 시도되어 오던 기획 상품으로써의 뮤지션 양성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보이그룹”과 “걸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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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ce Girls in Toronto, Ontario” by Ezekiel.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기획적으로 만들어진 걸그룹의 한 예인 Spice Girls

이들은 음악 활동의 시작부터 철저히 기획사의 통제와 – 심지어는 사생활까지 – 훈련을 거친다. 주로 매력적인 외모와 군무(群舞)를 상품가치로 삼기 때문에 오디션과 고된 훈련이 필수과정이다. 곡을 직접 쓰기보다는 전문적인 팀이 만든 곡을 사용한다. 이렇게 훈육된 뮤지션의 음악은 유행하는 음악의 공통적인 문법을 답습하며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전의 마이너 뮤지션 뽑기보다는 시장 리스크를 줄인 셈이다. 단점으로는 상품의 기획 및 개발에 투입되는 투자비용이 이전보다 더 든다는 점이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뮤지션들은 생산설비 등 고정자본(fixed capital)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 맑스는 자본가가 고정자본의 자본회전율을 높여 최대한 빠른 시간에 투자분을 회수하고, 시장변화에 따른 고정자본의 무용화를 방지하고, 종국에는 노동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잉여가치를 향유하려는 성향 때문에 노동착취가 증가한다고 말했다. 업체는 뮤지션의 상품성이 사라지기 전에 – 상품의 노후화1, 유행의 변화2 등으로 인해 –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돈 되는 곳은 과속을 해서라도 쫓아다녀야 한다.

대중음악 시장은 20세기를 거치며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인기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희로애락의 상황에서 위로를 받았고, 때로 뮤지션들의 영광과 죽음을 칭송하거나 애도해왔다. 하지만 이렇듯 화려한 모습이 전면에 비춰지는 이면에는 무리한 일정 소화로 인한 피로감, 나아가서는 인용 기사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 등과 같은 비극적인 모습도 있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자본주의화된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빤하지만 멋진” 노래 All Out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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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Fair use of copyrighted material in the context of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film)“>Fair use via Wikipedia.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의역 : 존재감 없는 이의 행복)’1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012년 작품이다. 좋아하던 이모와의 말못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Charlie(Logan Lerman)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남자만 사귀는 Sam(Emma Watson), 동성애자로서 학교의 인기 스포츠 선수를 사랑하며 괴로워하는 Sam의 이복 오빠 Patrick(Ezra Miller)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성장영화다.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Charlie와 Sam 둘 다 The Smiths를 좋아하는 팬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라 80년대 인디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The Smiths의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Asleep은 Charlie의 주제곡처럼 쓰여 그의 불안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80년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귀가 호사할 만한 영화인데, 한편 의외의 80년대 곡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인디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팝발라드 그룹 Air Supply의 All Out Of Love. 카셋테잎에 노래를 녹음해줘서 본인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과시하던 80~90년대인지라 Sam은 Charlie에게 이 노래를 추천해준 것이다. Sam은 Charlie에게 “빤하지만 멋진(kitsch and brilliant)” 곡이라고 했고 Charlie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감정을 넣어 따라 부르면서 Sam의 의견에 동의한다. The Smiths, David Bowie, Nick Drake를 즐겨듣는 주인공들에게는 Air Supply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빤한 멜로디에 빤한 가사, 그렇지만 그런 빤한 것이 또 우리 인생이다.

영화에서 The Smiths의 Asleep이 자신의 새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Charlie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고, David Bowie의 Heroes가 그 새장을 벗어나서 느끼는 자유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All Out Of Love는 Sam을 그리워하면서도 데이트 신청도 못하고 쭈뼛대는 Charlie의 우유부단함을 대변하는 노래일 것이다. 비록 앞서의 두 개의 곡의 비해 비중은 작고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빤하지만 공감이 가는 애정관계의 복선은 – Sam과 Charlie 사이를 부단히 끼어드는 노이즈들 – ‘인생은 원래 삼류’라고 말하고 있고 당연히 그 배경음악은 All Out Of Love가 제격이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는 1980년 발표되어 당시 빌보드 핫100 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 곡은 Air Supply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Lost In Love에 수록되어 타이틀곡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는데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높은 차트 순위에 오르기도 한 곡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H1은 2003년 이 곡을 ‘100곡의 가장 위대한 러브송’ 리스트에서 92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리듬 기타와 백킹 보컬을 맡았던 Graham Russell이 전반부를 부르고 메인 보컬을 맡았던 Russell Hitchcock이 후렴구를 부르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홍콩의 Alan Tom이 리메이크 하는 등 많은 이들이 다시 부르기도 했다.

Air Supply의 노래 듣기
영화의 주요장면 보기
Alan Tom 버전으로 듣기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의 도래에 따른 레이블과 뮤지션들의 명암

축음기와 라디오가 발명되고 보급된 이래 대중음악은 일군의 산업을 형성하며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녹음기술이 발전하고, 비닐 레코드가 표준화되고, 뮤지컬 영화가 극장에 개봉되고, MTV가 개국하고, 십대들이 음악잡지를 사고, 대규모 락콘서트가 열리고, mp3 플레이어가 보급되고, p2p로 mp3를 교환하고, YouTube가 인기를 얻고, 애플이 플랫폼에서 음악파일을 팔고, Spotify가 라디오를 대신하는 등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산업의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Q. Spotify가 레코드 레이블들과 요율을 협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아마도 아직 이익이 나지 않는 사기업입니다.
A. 당신이 이윤을 낼 필요가 없을 경우 당신의 경쟁상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네. 스트리밍 회사는 레이블들과 “협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대형) 레이블들은 투자자인데, 이건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죠. Spotify가 상장되면 이 레이블들은 많은 현금을 거머쥘 것입니다. 아마도 스트리밍을 통해 여태 얻는 극미한 수수료보다 훨씬 많겠죠. 그래서 레이블들은 스트리밍 회사를 거칠게 대할 인센티브가 없습니다. 매우, 매우 영리한 거죠. 이는 단기적인 생각으로 여겨집니다.[David Byrne Talks Artists’ Rights, Spotify & Touring]

빌보드의 이 인터뷰는 Talking Heads의 프론트맨이었고 현재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저작과 미술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David Byrne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관한 생각이다. 현재 주로 모빌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이에 연계된 각종 음악 서비스는 앨범 판매 등의 기존 수익모델이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의 먹거리를 일구어줄 사업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약 4천 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Spotify는 그 중에서도 Pandora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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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of Talking Heads”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젊은 시절의 David Byrne

David Byrne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Spotify의 경쟁력은 경쟁자를 무력하게 만들만큼 싼 이용료일 것이다. Spotify는 이러한 놀라운 원가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 것일까? 바로 메이저 레이블에게 스트리밍에 대한 수수료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레이블이 수수료를 낮추게 만든다는 것이 Byrne의 생각이다. 사실 레이블들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라도 수수료를 더 받아야하는데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 될 지분 획득을 대가로 싼 수수료를 용인한다는 것이 Byrne의 또 다른 짐작이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적은 광고만으로도(어떤 때는 몇 시간을 로긴하고 있음에도 전혀 광고를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티스트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중략] 내가 대화를 나눴던 주요 레코드 레이블들은 – 그리고 상대적으로 큰 인디 레이블들 – Spotify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그들이 두둑한 몫을 지불받든지 그리고/또는 회사의 주식을 받았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확실하게도 나의 의심은 몇 주후 확인됐는데 메이저들이 Spotify 주식의 18%를 받았다고 보도됐을 때였다.[Behind the music : The real reason why the major labels love Spotify]

Byrne의 발언을 확인시켜주는 가디언의 2009년 기사다. 물론 레이블들은 싼 수수료와 넉넉한 지분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 레이블들이 현재도 20% 가량의 Spotify 지분을 -“공짜로” – 얻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의 경이적인 성공에 크게 고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Byrne이 예상하는 상장보다는 대형 통신사 등에 장외에서 지분을 넘기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1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뮤지션들이 끼어들 몫은 없다.

복수의 정보원에 따르면 메이저 레이블들은 현재 20% 가량 되는 Spotify에 대한 공동소유권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중략] 예전 모델에서 레이블은 그들의 가치있는 카탈로그를 사용하는 권리에 대한 대로 비싼 선불 개런티에 보다 집중했다. [중략] 그러나 이런 거래에 익숙한 몇몇 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이런 상황이 상당히 변했다고 한다. “[대형 레코드 레이블들은] 수수료보다는 주식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취득에 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죠.” 한 정보원의 말이다. [중략] 한 정보원은 Spotify가 한 목표가는 과거에 100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매우 매우 달콤한 보상이라고 지적했다.[The Major Labels Are Trying To Sell Spotify for $10 Billion, Sourses Say]

진보적인 뮤지션인 Billy Bragg은 현재 뮤지션들이 대형 레이블들로부터 받고 있는 스트리밍 요율을 더 높이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뮤지션이 받고 있는 수수료의 요율은 극히 일부의 레이블이나 대형 가수를 제외하고는 전체 수입의 8~1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가뜩이나 레이블들이 주식 대박의 꿈 때문에 수수료를 낮게 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뮤지션들의 몫은 더 적다는 것이 Bragg 의 불만인 것이다. 이미 Radiohead의 Thom Yorke나 프로듀서 Nigel Godrich와 같은 이는 행동에 나섰다.

Bragg이 오늘 말했다. “이 스트리밍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계약으로 묶여있다는 것인데, 그때는 레코드 회사들이 실물의 생산과 배급의 모든 부담을 졌을 때죠. 그래서 아티스트들은 평균적으로 8~15%의 로얄티만 받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진 그 비율이 왜 아티스트들이 Spotify로부터 그렇게 형편없는 소득을 얻는지를 설명해줍니다.”[Spotify royalties : ‘Problem lies with labels – not streaming services’, says Billy Bragg]

요약하자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현재 Spotify와 같은 저항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서비스로부터 불공정한 요율을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 Byrne이나 Bragg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다. 이러한 요율은 아날로그 시대에 적용된 요율이 그대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Byrne은 특히 이러한 상황이 대형 레이블들의 지분확보를 대가로 한 싼 수수료에 기인하며 이는 명백히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형 레이블들의 적응력은 너무 뛰어난 것 같다.

Talking Heads의 “거칠고 거친 인생”을 듣도록 하겠다.

“내가 예순네 살이 되었을 때”

1967년 6월 1일 The Beatles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발매되었다고 하니 얼추 50년을 채워가고 있다. 반세기 전에 나온 음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귀에 착 감기는 명곡들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명반이다. 앨범 수록곡 중에 When I’m Sixty-Four를 들어보자. 자신이 64살이 되어도 밥은 먹여 달라는 화자의 넉살이 코믹스럽다. 이 음반이 나올 당시 십대였던 이들중 상당수가 바로 지금 저 나이일 것을 생각하니 세월이 무상하다.

음악듣기

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

재밌지만 씁쓸한 뮤직비디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금융위기 이후 실업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하다. 이러한 실업의 특히 심각한 문제는 청년실업률이 여타 실업률보다 높다는 점, 그리고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는 점 등에 있다. 금융위기 태풍의 핵이었던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2012년 청년실업률은 약 16%로, 국가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수준이다. 학력 인플레이션도 심각해서 학위가 필요 없는 직종에까지 학위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예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중고등학교에서의 극성스러운 사교육이 미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한 경제학자는 개탄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는 재밌는 뮤직비디오를 하나 소개한다. The TradeMark Experience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나, 홈페이지도 있는 것을 보면 직업적인 음악가를 지향하는 이로 보이는데, 여하튼 나이가 들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미국 청년들이 부모 집에 얹혀살아야 할 정도로 상황이 팍팍해지고 있는 현실을 재밌게 꼬집고 있다. 유투브 페이지의 댓글에는 자신도 같은 처지라는 댓글을 간간히 볼 수 있는 것이, 현재의 미국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만 같다. 여하튼 뮤직비디오의 퀄리티도 “쓸데없이 고퀄”이고, 부모의 집도 좋아 보이는 것이, 비디오의 제작자는 아직은 삶의 여유가 있는 청년실업자 – 또는 뮤지션 – 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