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보관물: 주석 달린 셜록 홈즈

문서 정리 안하는 셜록 홈즈

Cluttered desk with books, jars, sculpted elephants and other objects
By Alberto Ghione from Torino, Italia – lo studio, CC BY-SA 2.0, Link

너무 잘 정리된 런던의 셜록 홈즈 박물관의 서재

그러나 무엇보다 큰 골칫거리는 그의 문서였다. 문서를 버리려고 하면 그는 질겁을 했다. 그가 맡았던 사건과 관련된 문서는 더욱 그랬다. 크게 마음먹고 문서 색인을 만들면서 정리하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다. 두서없는 이런 회고록 어디선가 언급했듯이, 그가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다음에는 그 반작용으로 무기력증에 푹 빠져서, 바이올린과 책을 벗삼아 빈둥거리며 식탁까지 오가는 것만 빼고는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다달이 그의 문서는 쌓여만 가서, 이윽고 방구석마다 원고가 수북했는데, 그것을 태워버릴 수도 없고 주인이 아니면 치울 수도 없었다.[주석 달린 셜록 홈즈/머스그레이브 씨네 의식문, 719쪽]

셜록 홈즈의 문서 정리 스타일에 관한 언급. 지금 시대 같으면 앤트로픽의 클로드로 한방에 정리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그전에 물론 소프트파일로 만들어 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부분을 읽으니까 셜록 홈즈의 기질이 칼 맑스의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맑스 역시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각종 사안을 헤쳐나갔지만, 난삽하고 정리가 안되는 스타일로 온갖 작업을 진행하다가 수습을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의 역작인 ‘자본론’은 생전에 1권만 출간되었고 나머지는 그의 사후 쓰레기더미에 가까운 서류더미에서 초고를 찾아내고,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맑스의 닥터왓슨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작업 덕분이었다.

“위대한 사건의 시대는 갔다”

Chris Weidman knock out Anderson Silva at UFC 162..jpg
By KevlarOwn work, Public Domain, Link

하지만 사소한 사건을 다룬다 해도 사실 난 자네를 탓할 수 없어. 위대한 사건의 시대는 갔으니까. 인간은, 아니 최소한 범죄자 인간만큼은, 모험정신과 독창성을 죄다 잃어버렸어. 그래서 내 탐정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잃어버린 연필이나 찾아주고, 기숙학교를 나온 젊은 아가씨에게 조언이나 해주는 역할로 전락한 것만 같아. [주석 달린 셜록 홈즈/너도밤나무 저택1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 북폴리오, 초판2쇄 발행 2007년 2월 26일, 508쪽]

개인적으로는 셜록 홈즈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그런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정의의 실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는 다만 “위대한 사건”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험정신과 독창성”이 충만한 범죄자 인간과 겨루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탐닉하고 있는 코카인이나 헤로인보다 더 중독성이 강한 범죄 해결을 통한 쾌락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치 자신과 실력이 비등한 파이터와 링에 맞서서 승리를 쟁취하고 싶은 욕망을 두고 있는 UFC 파이터처럼 말이다. 존존스와 싸우고 싶어 하는 톰아스피날의 스멜이다.

  1. 이 작품은 스트랜드 매거진 1892년 6월호에 발표됐다. 참고로, 이해 1월에는 J. R. R. 톨킨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