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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의 통화주의 비판

케인즈가 1933년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하여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공개편지 중 일부다.

또 다른 오류들은 – 그것이 영향력 있을까봐 두려운 – 보통 통화(량)이론이라 알려진 조악한 경제학 이론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생산물 증대와 소득 증대는 만약 통화량이 완고하게 고정되어 있다면 다소간은 퇴보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통해 통화량을 늘리면 생산물과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고 추론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는 더 긴 허리띠를 사서 살이 찌려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미국에서 오늘날 귀하의 나라의 허리띠는 그 배에 비해 충분히 큽니다. 효험이 있는 요소인 지출의 규모보다도 오직 제한된 요소에 불과한 통화량을 강조하는 것은 그릇된 일입니다.
The other set of fallacies, of which I fear the influence, arises out of a crude economic doctrine commonly known as the quantity theory of money. Rising output and rising incomes will suffer a set-back sooner or later if the quantity of money is rigidly fixed. Some people seem to infer from this that output and income can be raised by increasing the quantity of money. But this is like trying to get fat by buying a larger belt. In the United States to-day your belt is plenty big enough for your belly. It is a most misleading thing to stress the quantity of money, which is only a limiting factor, rather than the volume of expenditure, which is the operative factor.

…요즘 같았으면 블로그에 글을 올렸겠지.

어느 학설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학설이 교육받지 못한 보통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이, 그 학설의 지적인 명성에 보탬이 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교리가 현실에 적용될 때에 냉엄하고 가끔은 입맛에 쓰다는 사실이 그 학설에 덕성(德性)을 부여하였다. 그것이 광대하고 일관성 있는 논리적 상부구조(上部構造)를 지탱하는 데 적합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에 아름다움을 주었다. 그 학설이 많은 사회적 불의(不義)와 적나라한 잔인성을 발전의 구조 속에 놓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그러한 것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반적으로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권력자의 비위에 맞게 하였다. 그것이 개개의 자본가들의 자유 활동에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권력자의 배후를 이루는 지배적인 사회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하였다.[John Maynard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조순譯, 비봉출판사(2007), p39]

이 문구는 케인즈가 리카도 경제학, 즉 그로 대표되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주류경제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에 대한 원인을 냉철하게 – 그리고 아주 냉소적으로 – 분석한 글이다. ‘맞아 정말 그래’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읽게 되는 부분인데, 사실 고전학파 경제학뿐만 아니라 유사 이래 사회의 주류를 차지했던 사상이나 이론은 – 심지어는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마르크스주의조차도 – 대개 저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케인즈의 책을 읽다가 드는 상념 – 두번째

“용기가 있는 사람은 만일 자기보다 상류에 있는 사람이 운좋게 도박으로 재화를 획득했다고 믿는다면, 자신이 가난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가가 모리배로 변신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불평등한 보수의 연속성을 허용하는 심리적인 균형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막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정상이윤에 관한 경제이론은 자본주의의 정당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기업가는, 그의 이득이 대체로 또 일정한 의미에서 그의 활동이 사회에 기여한 것과 일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한, 관용될 수 있는 것이다.”[貨幣改革論 26p, J.M.케인즈, 이석륜譯, 1993년, 비봉출판사]

소위 이 ‘정상이윤’은 경제학에서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화두라 할 것이다. 자본가들이나 주류경제학자들은 이윤이란 각고의 기업경영, 고도의 기술개발 등을 실천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원가(原價)를 뛰어넘는 대가라고 주장한다. 한편 Karl Marx는 원가+이윤 이라는 모습은 사실 허상 일뿐이며 노동가치에 대한 착취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화해할 수 없는 입장은 단순한 학술적인 논쟁을 넘어 정부의 가격규제 혹은 조세, 소비자 운동, 계급투쟁 등의 양상으로 사회에 투영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케인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상식선을 – 즉 정상이윤 – 뛰어넘는 상품의 가격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서서히 자본주의의 유용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아파트 시공원가, 의료서비스의 민영화, 유가폭등에 따른 차량유지비 증가, 곡물가격의 상승 등등.

어릴 적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콩트 한편이 생각난다. 어느 제조업 회사의 사장이 왜 원재료값이 자꾸 오르는지 궁금하여 그 원인을 찾고자 거슬러 올라가보니 결국 자기 회사의 제품가격의 인상 때문이었다는 내용이다. 뱀이 자기꼬리를 먹고 들어가는 꼴이다. 진실에 접근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인플레이션, 또는 정상이윤에 관한 진실의 한 토막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들의 실체는 며느리도 모른다는 것.

시장의 자유방임이 우리를 그 실체의 진실로 인도하리라는 환상은 UFO와 함께 일종의 현대인의 미신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케인즈의 책을 읽다가 드는 상념

“화폐는 그것이 구매하는 물건에 대해서만 중요할 뿐이다. 따라서 그 작용이 한결같고 또 모든 거래에 동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화폐단위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다. 만일 이미 확립되어 있는 가치표준의 변화에 의해서 어떤 사람이 모든 권리와 모든 노력에 대하여 종래의 2배의 화폐지불을 받고 소유하는 한편, 또 모든 구입과 모든 만족에 대하여 종래의 2배의 화폐를 지불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폐가치의 변화, 즉 물가수준의 변화는 그의 영향이 불평등할 경우에 한해서만 사회에 대하여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지극히 광범한 사회적 결과를 야기시켰고 또 현재에도 야기시키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화폐가치의 변화가 모든 사람 또는 모든 목적에 대하여 똑같이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폐로 측정되는 물가와 보수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상이한 계급들에 대하여 불평등한 영향을 미치는데,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부를 이전시키고, 한편에는 풍요를 가져다 주고 다른 한편에는 빈곤을 가져다주며, 계획을 좌절시키고, 기대를 실망시키는 방법으로 운영의 여신의 은총을 재분배한다.”[貨幣改革論 3~4pp, J.M.케인즈, 이석륜譯, 1993년, 비봉출판사]

케인즈가 적절히 지적하였듯이 인플레이션이 – 또는 디플레이션 –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이 富의 재분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의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소유자의 부를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며, 유가의 인플레이션은 산유국과 원유 투자자들의 부를 상대적으로 증가시키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의 자산이 가치절하되는, 즉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서 분배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좌절감과 열패감을 맛보게 되거니와 특히 그로 인해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증가할 경우 이중으로 고통 받게 된다. 즉 예로 든 집값 상승과 유가상승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재생산 비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현재 임금 또는 소득이 그 화폐가치가 변함없다고 가정할 경우 실질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임금상승의 압박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총자본, 특히 산업자본의 경우 부동산이나 유가와 같이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들의 인플레이션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실질임금의 상승, 국가의 공공서비스 제공,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강압적인 독재를 통해 해소(또는 억압)된다.

그런데 개별자본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즉 사실 이전에도 많은 국내기업이 소위 비업무용 부동산을 확보하여 부동산 인플레이션에 부채질을 했거니와, 지금과 같이 다양한 자본이 증권화(securitization)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이 시스템에서 개별자본 – 심지어 노동자들 스스로조차 직간접적으로 – 은 기회만 있으면 차별화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발생할 부의 증대에 베팅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교묘해진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다. 단순한 노자(勞資)계급 구도로는 설명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전 세계의 금융 위기,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

오랜만에 중앙일보에서 좋은 칼럼을 읽었다.(한 가지 흠이라면 기고자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전 프랑스 총리 미쉘 로카르(주1)가 기고한 ‘세계 금융위기,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가 직면하고 있는 모순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체제모순이 현재 무기력한 각국 정부나 경제학자들에 의해 방치되고 있으며, 하루빨리 이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담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 날의 자본주의는 30년 전의 그것과 상이하다. 선진국들이 연평균 5%에 달하는 성장을 구가하던 1945~75년 동안의 기간은 오늘 날과 같은 금융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 완전 고용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처럼 성장과 행복이 공존했던 것은 강력한 사회복지 시스템과 케인즈의 학설을 따른 경제정책 덕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그의 발언 중 주목하여야 할 부분은 “모든 선진국은 고임금을 지급해 소비를 촉진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취했다. 주주들은 오늘날에 비해 형편없는 배당금에 만족해야 했다.”라는 설명이다. 이는 오늘 날 소위 주주 자본주의라 불리는 사회 체제가 자본주의의 고유속성이 아니며 고임금을 포함한 복지정책이 경제 선순환의 필요조건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발언이다.

좀 더 살펴보자면 20세기 중반의 고성장은 적어도 제1세계의 노동자들에게 만큼은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였고(물론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비추어 보면 착취는 여전하지만) 이것이 소비의 진작을 불러 일으켜 제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날의 ‘고용 없는 성장’과 대비되는 ‘분배 있는 성장’이었던 셈이다.

이는 로카르 총리도 지적하였듯이 유럽의 사회주의적 정권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들이 케인즈 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금융자본의 존재감이 뚜렷치 않았던 사회풍토 덕택이기도 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러한 사회체제는 닉슨 정부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 정지 선언 및 이어지는 각종 금융자유화 조치로 서서히 붕괴하게 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금태환 정지 및 이에 따른 변동환율제 실시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키겠다는 명목으로 각종 파생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후 국경을 넘어서는 금융투자, 파생금융시장의 발달, 적대적 M&A시장의 융성 등 제조업과는 별개의 동력을 갖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오늘 날 펀드자본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종류의 금융자본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오늘날 시장은 한층 안정적이 되었을까. 모순되게도 개별 자본에게는 그렇게 되었을지 몰라도 – 예를 들면 통화스왑이랄지 이자스왑을 통해 – 그것이 총자본으로 합계가 되면 경제는 전체적으로 더욱 혼란스럽고 위험이 높아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위험의 분산이라 보이는 것들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듯이 오히려 동일한 위험으로 각 주체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주주 자본주의의 강화로 주주는 엄청난 배당을 누리는 반면 노동자는 고용이 불안해지고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가 된 것이다.

로카르 총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시간이 흘렀고, 주주들은 이런 시스템을 내던졌다. 연금·투자·헤지펀드에 혁명이 일어났다. 지난 25년 간 선진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임금과 사회복지 수준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삭감됐다. 결과적으로 허약한 기반 위에 이루어진 성장이라는 것이다.”라고 축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 규제 완화에 따른 금융 위기의 증폭이 오늘 날의 인터넷 버블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왔음을 실토하고 있다.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의 총리였던 이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 상당히 강성이다.

어쨌든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문제는 현재 서구의 금융위기가 일시적이 아닌 근본적인 모순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이 여태껏 금융시장 내부뿐 아니라 제조업과 복지 등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미쳐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회복지를 통한 경기부양이 아닌 빚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지탱해온 모기지론 시장이나 크레디트카드 시장이다.

그 결과 선진국들의 집값은 크게 올라 국민들의 부가 증대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하였고 이제 그 집값을 떠안아줄 신규 소비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집값은 허물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서브프라임 사태의 피해액은 아무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다. 수백 억 달러에서 수천 억 달러까지 제각각 추측이 난무하다. 거기에다 빚은 개인만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도 빚이 장난이 아니다. 미국은 매일 20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미국의 총부채는 39조 달러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5배를 넘는다.

이전의 유사한 금융위기와 다른 점은 그래도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든든히 쌓아놓아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대의 소비국가 미국의 경제침체는 이들 국가에게도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특히나 20세기에 비해 더욱 더 개방화되어 있는 세계 자본시장은 특정 시장의 혼란이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미국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내 금융계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영향받고 있다. 주식 펀드의 인기, 달러 유동성의 감소, 채권의 투매 등 서브프라임 사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다양하지만 상호 연결되어 있는 복잡한 변수들로 말미암아 금융시장 및 주식시장이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대출금리 인상과 아파트 미분양 사태도 이어지고 있어 미국의 부동산 폭락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혼란상에 대해 로카르 총리는 “44년 열렸던 브레턴우즈 회의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는 금융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긴급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때보다 훨씬 파워가 강해진 금융권력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러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 간 금융거래의 통제(주2) 와 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주3)의 정비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이 대출금리 인상, 미분양 사태 지속, 묻지마 주식펀드, 또한 얼마전 문제가 된 부동산PF의 무분별한 추진 등이 잠재해있는 복병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미치며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때에는 금융교란이 올 수도 있다. 정부는 보다 정밀한 금융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시점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주1) 프랑스의 정치가. 프랑스 총리를 지낸 정치가이다. 1974년 F. 미테랑의 사회당(PS)으로 복귀하고 계획·지역개발 장관, 농림 장관 등을 지냈다. 미테랑의 정책에는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적이었으나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테랑의 재출마를 지지하여 그해 5월 총리에 임명, 취임하였다.

(주2) 이와 관련하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대안이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인 토빈세일 것이다.

(주3) 일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사용된 기법인 SIV(구조화 금융) 등 각종 금융기법은 금융기관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벗어나는 교묘히 고안된 장치들이다. 이것이 개별금융들에게는 틈새시장에서의 기회를 제공할지 몰라도 이번처럼 수많은 금융기관이 답습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