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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도시의 모습을 바꿀 것인가?

페이비언주의의 영향을 받은 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은 1890년 런던주의회 주택위원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이를 주도했다. 1893년에 이 위원회는 의회가 직접 1890년도 법에 제3장에 근거하여 공지에 대규모 건설사업을 시행하도록 권고했고 많은 설득과 논쟁 끝에 의회 전체는 이 정책을 승인하게 되었다. 런던주의회는 이미 건물이 들어설 틈이 거의 없는 런던의 내부를 벗어난 외곽지역에 대해서 건설 권한이 없음을 알게 된 후 런던 주의 변두리 또는 이를 벗어난 곳의 녹지지역에까지 자신들이 ‘노동자계급 아파트’ 단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1900년의 법개정에 찬성하도록 국회에 압력을 가했으며, 이법에 근거하여 런던주의회는 4개의 단지사업을 착수했다.[내일의 도시, 피터 홀, 도서출판 한울, 2000, pp71~72]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신도시, 그 중에서도 베드타운(Bed Town)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교통의 발달로 원거리 이동성이 향상됨에 따라 20세기 초의 의욕적인 도시계획가들은 노동자계급에게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도심대신 교외지역에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여 체제모순을 해결하고자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아쉽게도 모든 것이 이 헌신적인 이들이 의도한 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즉 교외도시는 도심 근처의 허름한 방보다 더 비싼 교외주택의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부유한 숙련공들의 차지가 되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숙련공들은 여전히 도심의 슬럼에 갇혀 있어야 했다.

어쨌든 에버너저 하워드(Ebenezer Howard)라는 한 독특한 사회사상가이자 도시계획가에 의해 주창된 전원도시의 개념은 바다 건너 역시 도심슬럼화로 고통 받고 있는 미국의 도시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넓은 땅덩어리와 민간회사에 의해 공급되는 철도, 뒤이어 쭉 벋은 도시간 고속도로와 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등으로 교외화는 하나의 미국적인 도시화의 전형이 되었다. 같은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자동차 지향적인 교외가 의식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계획되고 실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어쩌면 이러한 전형적인 미국의 풍경이 약간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미국 도시들의 교외에서의 신규주택에 대한 수요가 지난 3년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반면 유실처분과 투기적으로 (지어진) 건물로 인해 수요자보다 훨씬 많은 공급이 초래되었다. 동시에 치솟는 연료가격은 직장까지의 원거리 통근을 꺼리게 만들고 있다.

Demand for new homes on the outskirts of US towns has fallen spectacularly in the last three years, while foreclosures and speculative building have created a far greater supply of homes than there are buyers. At the same time, soaring fuel costs have made the long commute to work that much less attractive.[US builders forced to sell off holdings, July 18 2008]

즉 고유가와 주택시장 부진이라는 쌍끌이 어선이 도시의 교외주택 시장을 급격하게 냉각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대중교통망이 여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미국에서 도시간, 또는 도시와 교외간 교통은 자가용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고유가는 노동계급의 이동성을 크게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물론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의 비정상적인 작동이 도시와 그 교외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적계획은 단기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처럼 오랜 변태를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료에 대한 새로운 관점, 주택시장의 장기침체, 그리고 이동수단에 대한 새로운 고찰 등 미국의 도시를 포함한 현대도시들은 새로운 철학적 고민을 떠안게 되었다.

예언컨대 광범위한 대중교통 시설의 정비와 직주근접(職住近接)식 도시계획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될 것 같다.

(주1) 이러한 모습들은 개인용 자동차를 통한 미국식 개인주의의 찬양을 상징하는 것들이었고 이러한 자동차 도시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주창자는 미국 태생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였다

(주2) 실제로 미국의 직장 중에서 원거리 통근자들을 위해 주5일 근무 대신에 좀 더 많은 근로시간 동안 일하고 하루를 줄이는 주4일제 근무를 실시하는 기업도 있다고 하는데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 노동계급의 자동차, 그리고 석유 의존성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하나이 실례라 할 수 있겠다

표절 의혹에 실효성마저 의심되는 고유가 종합대책

얼마 전에 미국 정부가 ‘돈 배급(그네들 식의 표현에 따르면 세금환급[tax rebate])’(주1) 를 실시키로 한 결정에 대해 나는 미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어이없는 글을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다.(주2) 그 후 실제로 미국 행정부는 개인에 300~600달러, 결혼 가정에 600~1200달러 등 총 1000억 달러 규모의 세금 환급이 실시하여 1억3700만 명이 세금 환급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월령의 미국산 쇠고기를 부위 가리지 않고 통째로 수입하겠다고 호기롭게 까불다가 최근 정신이 혼비백산해진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는 그 치유책 또한 ‘미빠’답게 미국에서 수입하기로 한 모양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돈 배급’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오늘 당정협의를 통해 돈 배급 등을 골자로 한 ‘근로자·자영업자 등을 위한 고유가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연봉 3600만 원 이하 근로자 980만 명과 종합소득금액 2400만 원 이하 400만 명의 자영업자가 최대 24만원의 소득세를 돌려받게 된다. 1톤 이하 자가 화물차 260만대에 대해서도 유류세 환급이 이뤄진다고 한다. 지원 규모는 총 7조원정도라 한다.

돈 배급이라는 형식은 거의 같으나 목적은 비슷한 듯 틀리다. 미국은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급격한 경기후퇴(recession)에 대비해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부양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벤 버냉키를 비롯한 FED의 멤버들은 경기후퇴(recession)와 물가인상(inflation)이라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있을 적에 그나마 물가인상이 낫다는 판단 하에 헬리콥터 살포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소비자에게 돈을 배급하는 비상처방전을 내놓은 것이다.

FED의 판단과 미 행정부의 결정이 경제정책적인 측면에 경도하여 있다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그것은 그 정도의 진지한 고민조차 결여된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급조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 정부의 경제당국은 아직까지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환율을 조작(?)하여 수출을 진작시키겠다는 1메가적 사고로 경제를 운영하여 왔다. 그러다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민심이 폭발직전에 놓이고 고유가로 화물연대 등이 파업전야에 놓이게 되자 유류환급금 형태로 돈을 되돌려 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주3)

그것이 다분히 정치적임은 그 시행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그나마 그 시행이 즉각적이었다. 우리는 빨라야 올 10월에 환급받는다. 현재진행형의 급격한 물가상승의 대비책치고는 어이없는 느림보 정책이다. 그 효과도 의심스럽다. 미국에서조차 시행 후 그나마 월마트와 같은 저가형 할인점에서 정도가 매출이 신장되었을 뿐 오히려 자동차 판매는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관련 기사 보기)(주4) 세금환급보다 고유가에 의한 소비위축이 더 심각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정부는 10월에 환급받는 푼돈(주5)으로 무슨 경기 진작을 기대하겠다는 것일까.

(주1) 보통 연말정산 후 실시하는 세금환급(tax refund)하고는 다르다. 그 환급은 세금의 과다납부를 돌려준다는 소리다. 예전에 직장동료가 왜 세금환급분에 대해서 이자를 돌려주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는데 옳은 말이다.

(주2) 물론 당초 예상과 달리 아직 사회주의 국가라는 선언은 하지 않고 있다

(주3) 그나마도 이 대책을 내놓자마자 관련업계로부터 벌써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4) 미국의 금융전문가는 소비자들이 환급액의 40% 정도를 소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당히 낙관적인 예측이라 할 수 있다.

(주5) 미국의 경우 우리 돈으로 평균 약 70만원씩 환급받은 반면 우리의 경우 최대상한 30만원 정도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