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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듯이, 정책실행에선 용어가 중요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은 일단 멋진 용어로 포장해야 한다. 여론이 정책실행 동력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버린 현대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 의외로(!) – 경제정책의 용어 선점에 익숙했다. 멀리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의 “경제민주화” 용어 선점이 있었다. 이후 그 용어는 집권 성공과 김종인의 퇴장과 함께 짧은 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경제용어(?)는 “창조경제”다. 이 표현이 쓰일 즈음 당시 유행하던 농담이 ‘도대체 정체를 모를 것이 ㅇㅊㅅ의 “새정치”와 ㅂㄱㅎ의 “창조경제”’라고 할 정도로 오리무중인 이 용어는 그래도 “경제민주화”보다는 오랜 생명력을 가지며 버텼다. 주로 서구의 각종 성공사례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고 주장하는 식이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표현이 “노동개혁”으로 대표되는 “4대개혁”이다. 행정부는 자신의 개혁의지가 담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국회심판론”을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국회가 심판당한 것’이라며 – 우리는 평행우주를 살고 있는가? – 노동개혁을 중단 없이 밀고 가겠다고 할 만큼 집권 후반기인 현재까지 행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콘텐츠 없는 레토릭에 가까웠다면 “노동개혁”은 개혁과 거리가 먼 노동개악의 모습을 지닌 존재이자 노동자의 삶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 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 존재다. 여론이 이 “개혁” 레토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면 유권자를 박근혜 식 “개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 정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신박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강봉균 선대위원장(뭐 그런 비스무리한 직함)은 난데없이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각국이 제로금리를 넘어 더 이상의 금리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내놓은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던 와중에 다행히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카드를 청와대가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묻지마 양적완화”인 반면에 우리의 양적완화는 “특수 목적을 갖는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였다.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선거에서 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부터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이 용어를 선점한 의도는 무엇일까? 전에 담뱃값 인상 등 사실상의 증세를 실행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강변했고 이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특정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에 중앙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행위는 “양적완화”가 아닌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들 다하던 바로 그 한국형 “양적완화”.

그때 위임장을 써달라던 삼성물산 직원은 어디로 갔을까?

삼성물산 주식 100주를 갖고 있는 김모(63·서울 송파구)씨는 지난 7일 저녁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대행(代行) 위임장을 써 달라는 삼성물산 직원의 방문을 받았다. 김씨는 “위임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며 돌려보내려 했지만, 이 직원은 “얼마 걸리지 않으니 직접 받아가면 안 되겠느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김씨는 “오죽 급하면 찾아왔을까 싶어 합병 찬성 위임장을 작성해 줬다”고 말했다.[삼성물산·엘리엇 ‘위임장 전쟁’, 2015년 7월 10일]

KIC가 엘리엇에 투자한 사실을 알리며 “삼성물산 지인에게는 미안하지만”이라 단서를 단 트윗을 봤는데, 물산 직원에게 합병이 이로울까? 합병하면 시너지 효과 홍보를 위해서라도 건설 부문 인력 구조조정은 필수다. 위임장 받으러 다니던 그 직원일 것이다.[EconomicView on Twitter, 2015년 7월 10일]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9일 구조조정 대상자들을 상대로 관련 통보를 시작했으며 현재 각 부서별로 순차적인 통보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통보 대상은 약 1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 6월 기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직원수는 계약직을 포함해 총 7270명이다. [중략] 사업부문이 겹치는 제일모직 건설도 이미 인원 감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제일모직이어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구조조정 시작, 2015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