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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노동시장 유연성에 관한 발언 톺아보기

정부와 새누리당이 모처럼 경제 현안에 대해 입을 맞춘 듯 한목소리로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안에 대해 시비를 걸며 경제전문가를 자처하고 나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번에는 최경환 부총리가 “정규직이 과보호”받고 있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발언에 적극 호응하고 나선 것이다. 이제야 정부와 여당이 손발을 맞춰 이른바 “골든타임” 내에 경제를 살리기로 한 모양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 대표가 역시 경제전문가답게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개탄했다는 점이다. 이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서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2000년 58위에서 138위로 급락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는 그가 어떠한 자료를 근거해서 그러한 수치를 제시한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구글링 하면 다 나오긴 하지.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발표하는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economic freedom related to labor market regulation)를 보자.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로 평가할 때 한국 노동시장은 지속적으로 경직되어 왔다(<표 3> 참조). 한국 노동시장은 규제가 약하기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123개국 중 58위였는데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127개국 중 81위로 악화되었다가 노무현 정부 말에는 141개국 중 132위를 기록했다. 이어 2011년 이명박 정부 말에는 152개국 중 133위로 더욱 악화되었다.(노동시장 유연성의 국제비교, 2014. 9. 12,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구글링 결과 이 수치가 김 대표가 써먹은 수치에 제일 근접해있다. 경제전문가가 “133위”를 “138위”로 틀리게 말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건 마이너한 실수니까 넘어가기로 하자. “자유 시장” 경제를 적극 옹호하기로 유명한 한국경제연구원이 박 명예교수1의 이름을 빌어 낸 이 보고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정규직 과보호 철폐, 비정규직법 폐지, “불법파업” 엄단 등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그럼 보고서의 주장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고 있는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에 대한 각국별 순위에 대해 알아보자. 보고서가 언급한 프레이저 인스티튜트는 한국경제연구원과 마찬가지로 리버타리안적인 경제적 관점을 가진 연구소다.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엄밀한 객관적 수치를 가지고 노동유연성의 정도를 측정하였다면 충분히 고려할 여지는 있을 것이므로 프레이저 보고서가 연구한 내용의 세부사항을 보기로 하자.

해당 순위는 프레이저 보고서에 ‘정부의 크기(Size of Government)’, ‘법적 시스템 및 재산권(Legal System and Property Rights)’ 등 총 일곱가지 항목 중에 ‘노동시장 제도(Labor Market regulations)’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박 교수는 이 순위를 근거로 한국의 노동유연성이 떨어진다고 봤기에 프레이저 보고서에서의 ‘노동시장 제도’를 평가하기 위한 구체적인 항목을 들여다보았다. 평가항목과 이에 대한 평가기준은 다음과 같다.

(i) Hiring regulations and minimum wage(고용제도와 최저임금)
(ii) Hiring and firing regulations(고용 및 해고제도)
(iii) Centralized collective bargaining(집중화된 단체교섭)
(iv) Hours regulations(노동시간 제도)
(v) Mandated cost of worker dismissal(노동자 해고에 대한 법정비용)
(vi) Conscription(강제이행)

많은 노동시장 제도가 고용인과 고용주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그것들 중 두드러진 것은 최저임금, 해고제도, 집중화된 임금교섭, 불참한 당사자에 대한 노동계약의 확장, 그리고 강제집행 등이 있다. 노동시장의 구성요소(5B)는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는 이러한 제약조건의 정도를 측정하고자 함이다. 노동시장의 제도를 평가하는 요소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한 국가는 임금을 정하고 고용과 해고의 조건을 수립하기 위한 시장의 힘을 허용하고 강제이행의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Economic Freedom of the World, 2013, James Gwartney, Robert Lawson, & Joshua Hall, Fraser Institute)2

이상의 취지에 따라 프레이저 보고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평가했는데 그 구체적인 기준은 해당 보고서의 244페이지부터 상술되어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예를 들어 기간이 고정된 근로계약을 체결할수록, 고용과 해고를 법으로 강제할수록, 임금교섭이 집중화될수록, 유급휴가가 길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다. 요컨대 프레이저 보고서의 “유연한” 노동시장은 고용주와 고용인(?)의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는 어떠한 것에도 반대하고 있다.

다시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로 돌아가면 보고서는 한국보다 “노동시장 규제가 더 심한 나라들을 보면, 앙골라,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그리스, 이란 등”이어서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에 관한 한 아프리카 미개국과 다를 바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아프리카 미개국”이라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보고서에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들지만 한편으로 해당항목의 상위 랭크 10개국을 살펴볼 의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Hong Kong
  • United States
  • Fiji
  • Brunei Darussalam
  • Uganda
  • Bahrain
  • Bahamas
  • Papua New Guinea
  • New Zealand
  • Canada

미개국과 선진국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탑10 국가 중에서 노동유연성이 경제적 성과에 어떤 유의미한 의미를 가진다고 여겨지는 나라는 솔직히 홍콩,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정도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이 “노동개혁” 모범사례로 꼽은 독일은 84위, 실패사례로 꼽고 있는 일본은 14위다. 따라서 평가항목도 자본 친화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 순위(변화)가 과연 우리 노동시장 “개혁”의 근거가 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요컨대 프레이저 보고서의 노동시장 제도에 대한 평가기준은 그 시장이 얼마나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인가를 대전제로 하고 있다. 피지나 파푸아뉴기니의 제도가 아예 미비하면 그냥 그대로 좋은, 거의 무정부적인 시장 자유주의를 맹신하는 평가방식일 뿐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줄을 세운 순위 결과를 가지고 정치인이 “이런 순위에서 꼴찌니까 순위를 높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의 조정자인 정부 스스로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정규직 과보호”를 이야기할 때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별로 없다.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나가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유연성이 왜 하필 노동자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는 노동유연성의 주창론자들 대부분이 자본이 노동자에게 줄 임금은 고정되어 있다는 임금기금설이 뇌리에 절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꼴통 아베 신타로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

기술발전과 업태혁신에 따른 노동유연성 강화

예를 들어 Uber, Lyft, TaskRabbit 은 그들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고용인이라 여기지 않는다. 회사는 그들이 연주회들을 파는 eBay처럼 단순한 무대들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의 서비스 공급자들이 독립적인 계약자로 일하기를 바라고, 그러한 만큼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소셜시큐리티나 실업수당을 위한 급여공제와 같은 고용인으로서의 혜택의 자격이 안 된다.[In the Sharing Economy, Workers Find Both Freedom and Uncertainty]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은 행정기관이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과 택시업자의 모델이 상충한다고 이야기할 때면 늘 자신들은 “택시업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들 생각에 그들은 이베이와 같은 플랫폼일 뿐이다. 특정 업무에 대해 다수의 일꾼들이 입찰하는 형식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태스크래빗 역시 스스로를 인력업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역시 플랫폼일 뿐이다. 이러한 비즈니스 형태는 매우 자연스러운 노동유연성 강화를 초래한다.

물론 이런 업체들이 마냥 그들의 자유를 즐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인용한 기사를 보면 이들은 서비스 공급자의 임금 가이드라인이랄지 보험 등을 제공하여 노동의 질을 높이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결국 비용증가로 이어져 틈새상품 특유의 경쟁력을 상실케 만들 것이다. 또한 그런 회사의 조치는 회사 일방의 수혜 차원의 조치이지 노사협약과 같은 구속성 있는 가이드라인이라 보기 어렵다. 서비스 공급자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어쨌든 이러한 특정 서비스 내에서의 관리 기능과 운영 기능의 분리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하게 발전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슬로우뉴스의 강정수 씨의 말마따나 우버나 태스크래빗이 주장하는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은 “마케팅 용어”일뿐, 본질은 기존의 서비스 업체에 대한 플랫폼 제공을 대규모로 함으로써 얻어지는 규모의 경제를 향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 예로 태스크래빗은 기존의 인력파견업체와 이베이를 결합한 “공유경제” 모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 형태의 종사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부당함은 이 글의 요지가 아니니까 차후에 논하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재능교육이 현재와 같은 특수고용 태스크래빗과 같은 플랫폼을 구축하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과 같은 골치 아픈 송사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고용인들은 재능교육이 깔아놓은 무대에서 입찰에 참여하는 래빗일 뿐이니까.

한 지방 레스토랑 사장은 [중략] 노동 비용이 매일의 매출의 21%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합계의 반절 정도는 고객응대업무 담당에게 쓰이고 있고, 반절은 후방에 쓰이고 있다. 매 30분마다 사장과 매니저들은 최신 합계를 담은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검토한다. “오후 3시에 임금 비율이 21%를 넘을 수는 없어요. 또는 (하루가 끝날 무렵) 21% 밑으로 떨어질 것 같지도 않고요.” 사장은 할리록에게 말했다. “그 시점에서 매니저들은 몇몇 친구들에게 집에 가라고 요청할 것을 알아요.”[The Flextime Blues]

프리랜서에게만 노동유연성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는 기사다. 기사는 지방 레스토랑 사장 뿐 아니라 스타벅스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정밀한 노동통제가 시행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마치 방송국 시청률이 미시 단위로 측정되어 성과가 드러나듯이 더 많은 서비스 업체의 성과가 정밀하게 측정되어 노동자의 처우가 연동될 수 있다. 또는 이들 서비스 래빗이 스타벅스가 구축한 플랫폼에서 당일의 서비스 제공계약에 입찰 버튼을 누를지도 모른다.

유연성

경제에 있어 ‘유연성(flexibility)’이란 단어는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매우 극단적인 평가가 갈리는 단어다. 특히 앞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붙게 될 때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나 자본가나 할 것 없이 저마다 볼멘소리를 해대기 시작한다. 노동자는 사회안전망 없는 노동유연성은 사기라고 주장하고 자본가는 노동유연성이 없어서 기업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양쪽 말이 다 일리가 있는 듯하지만 쉽게 합의하지 못한다. 근본문제는 바로 계급갈등이기 때문이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은 ‘노동유연성’은 산업의 유연성 중 한 요소에 불과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유연성이 곧 노동유연성인 것처럼, 최소한 그것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고 노동자계급이 이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연성이라는 표현은 포디즘이나 테일러리즘 등 ‘대량생산 대량소비’에서 다양한 소비자 기호에 부응하는 생산의 유연성이라는 경영개선의 개념에서 도입된 개념이기에, 산업전반의 다양한 유연성 제고를 다루는 개념임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환경을 중시하려는 소비태도를 보여 큰 배기량의 자동차 구입을 꺼린다는 경향이 관측되었을 경우, 기업은 신속하게 환경친화적인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조직을 정비하고 조립라인을 제 때 맞춰 개선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순발력을 발휘하는 것이 유연성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GM이 이걸 못 해서 망했다는 설도 유력하다) 유명한 패션브랜드 자라(Zara)의 경우 소비자의 기호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디자인 및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여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우선 다시 ‘노동유연성’으로 돌아가자.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를 접한 사회주류가 제일 먼저 뽑아든 칼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5월 “노동유연성 문제는 올해 말까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비정규직법 개정,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지급금지, 노조의 인사경영권 침범 금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관련기사보기)

한편 여론은 어떠할까? 위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8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노동유연성’ 발언에 대해 응답자의 63.0%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막기 위해 노동안정성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서 노동유연성 강화와 노동안정성(또는 고용안정성) 강화가 화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있다는 증거이다.

흥미로운 점은 양 측 모두 각각의 주장의 논거를 주로 유럽의 노동시장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노동유연성 강화론자들에 따르면 유럽은 1990년대의 높은 실업률의 원인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지적하였고, 사회대타협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제고하여 실업률이 크게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고용안정성 강화론자들은 그 배경에는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사회안전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을 보면 후자의 주장처럼 유럽의 노동유연성 강화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로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네덜란드형 유연안정성 정책은 1999년 1월에 발효된「유연성 및 안정성에 관한 법률’(Flexibility and Security Act)」로 구체화되었음.
– 유연 근로자는 계약 만료 시 특별한 절차나 조건 없이 고용계약이 종료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급여(동일노동, 동일임금), 보너스, 휴가, 훈련 등에 있어서 측면에서 정규직근로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음.
– 국가재정을 사용하는 실업보조의 경우 최대기간이 7년에서 38개월로 줄어들었으나, 근로자가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자신이 비자발적인 실업상태에 있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졌음.
– 고용법규 면에서 연공서열이 낮은 사람을 우선 해고하는 원칙이 철폐되고 나이와 업무능력 등을 고려하여 해고할 수 있는 유연성이 기업에게 제공됨.[유럽의 유연안정성정책이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에 주는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9년 8월 7일, p6]

상기 내용을 보면 네덜란드의 경우 제도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된 측면도 있고, 불리하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의 노동시장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노동자에게 유리함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시행방안을 적어도 위 기사로 판단하자면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노동유연성 강화와 관계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아서 어떻게 노동유연성이 강화된다는 것인지 내 짧은 지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노동유연성 강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는 결국 재정준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사회복지 지출 비율로는 해고자의 보호는 어려운 실정이고 결국은 더 많은 재정확보를 통한 사회보장장치의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노동유연성 강화와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 그리고 SOC예산 증액(특히 4대강 정비)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수행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총체적인 유연성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개인적으로는 급변하는 사회경제구조에서 경제 시스템의 유연성 확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쌍용차 사태는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및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산업구조조정이 (폭력적으로) 관철된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생산품목, 디자인, 제공할 서비스, 노동시장 등 총체적인 경영요소들이 실시간으로 변해감에 따라 생산주체의 대응 역시 그만큼 유연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구글을 생각해보라 이제 구글을 검색 사이트라 부르는 이는 없다)

문제는 계급갈등이 온존하는 시스템에서는 가진 자들은 허다한 유연성 중에서 손쉽게 노동유연성 제고를 택하려 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그 자신이 다른 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바로 그 “유연성”이 떨어지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경제체제가 현재와 다르다면 이러한 갈등을 민주적인 통제에 따른 산업재배치로 해소할 개연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남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