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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본 Batman Be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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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man Begins Poster”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IMP Awards. Licensed under Wikipedia.

고백하건데 지난번 The Dark Knight 에 대해 제법 거창한(?) 리뷰를 적었는데 사실 그 전편격인 Batman Begins 는 어제서야 봤다.(이게 뭐 고백해야할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니 좀 읽을 만하다 싶은 리뷰들은 거의 Batman Begins 를 보신 분들이나 아예 초기 Batman 의 캐릭터에 대해 꿰뚫고 계신 분들의 리뷰였다는 점에서 뒤늦게 수퍼히어로 문외한으로서의 리뷰가 약간은 낯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어제 감상한 Batman Begins 를 토대로 다시 감독의 의도나 그의 철학(?)을 반추해보자면 The Dark Knight 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겠으나 감독의 전체적인 세계관은 약간은 과대평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Batman Begins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뭐 물론 The Dark Knight 을 너무 재밌게 봐서 겉멋만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또한 팀 버튼 작품 이후로는 Batman 을 안 봐서 그 전의 Batman 시리즈가 얼마나 후져졌는지, 그에 비하면 놀란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안 겪어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다고 가정하고 – 그렇게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 이 작품을 보자면 나에게는 그저 짝퉁 사무라이 영화 내지는, 그 일본무사도의 잔상이 짙게 드리워진 스타워즈의 Batman 외전(外典)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잘 아실 것이다.

극 초반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범인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증오감, 그리고 이로부터 연역되는 범죄에 대한 혐오감을 어떻게 배출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중국 어느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헨리 듀카드라는 인물이 나타나 그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결국 그를 찾아가 고도의 무술수련을 쌓는데 이 부분에서 닌자의 수련기법이랍시고 흉내 내는 것이 영락없이 스타워즈의 일본 모방과 판박이였던 것이다. 게다가 듀카드 배역을 리암 니슨이 맡았으니 결국 브루스 웨인은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와 사형 지간 아닌가 말이다.

결국 듀카드가 또 구루로 모시고 있는 – 국적 불명의 – 라스알굴은 수련을 마친 브루스 웨인에게 살인자를 처단하라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이 겪었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강요한다. 하지만 웨인은 본과 달리 일말의 갈등도 없이 이를 거부하고 여태 그를 가르친, 그리고 그의 수련을 묵묵히(!) 도와준 수많은 고수들을 정말 어이없을 정도 가볍게 물리치고, 수련장까지 홀라당 불태워버리고는 고담으로 날아와 정의의 사도 Batman이 된다. 물론 최후의 악당이 누가 될지는 안 봐도 비디오겠지.

여기까지 특별한 스포일러 없었다고 자위한다. 뭐 도입부까지만 이니까.

이후 스토리는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이번에도 The Dark Knight 에서처럼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닌가, 인간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가 아닌가 하는 약간은 철학적(?)인 문제로 두 큰 세력이 갈등한다. 구원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세력은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총공세를 펼치고 Batman 은 이를 스릴감 있게 막아낸다. 끝나고 난 후의 느낌은 그런대로 무난한 작품이었다. 애초의 실망감은 당초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코믹스를 앞에 두고 철학서를 대하는 마음자세였던 것이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그 안의 메타포나 시대적 맥락을 훑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작업이지만 이것도 어떨 때에는 과유불급이다. 그러다보면 영화 자체에 매몰되어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런 예를 한번 살펴보자. The Dark Knight에서 조커가 유사 ‘죄수들의 딜레마’ 게임 같은 복잡한 짓을 하지 않고도 Batman 을 이길 수 있는, 즉 자신의 인간관을 증명시킬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방법이고 왜 그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극중에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태워버린 돈을 헬기로 공중에서 뿌리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리고 애정이고 간에 돈 줍느라 피터지게 싸웠을 것이고 도시는 과잉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시장이 마비되었을 것이고, 이 와중에 잘 하면(?) 브루스 웨인의 사업체도 망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영화가 액션물이 아닌 경제 드라마인 찰리 쉰이 주연한 월스트리트 같은 작품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조커는 자신의 승리 대신 영화를 살린 것이다. 빛나는 희생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