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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적이었던 한미FTA의 정치적 윤색 과정

우리 정부가 한미FTA를 한미동맹의 강화의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증거는 – 참여정부도 그러한 관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사실 미국은 남한을 ‘동맹’의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 있어 남한, 더 큰 개념에서 한반도는 미일 동맹의 군사적 부담을 덜어주는 주체, 중국 영향력의 확대저지선 정도의 역할일 뿐이다.[북한의 핵도발에 대한 단상 中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미FTA는 미국의 부시 정부에서보다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온 사안이다. 즉 우리 측에서 먼저 양국간 FTA에 미온적이던 미국의 무역대표부 등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였고, 이에 미국 측은 자동차 및 의약품 수입장벽, 미국산 소고기 금지, 스크린쿼터 등의 선결되어야 할 장벽철폐를 조건을 내세우면서 협상이 진행되어 온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도 썼다시피 나는 노무현 정부가 과연 당초 우리의 FTA 주요목표가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이었고, ‘동북아균형자론’을 주장하는 등 아시아에서의 자리매김에 열중하다가, 어떻게 난데없이 한미FTA를 꺼내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귀차니즘에 무능력함까지 겹쳐서 그 탄생비화를 아직 소상히 알지 못한다.

짐작컨대 집권 초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리는 과정에서 지배엘리트 내에서 이에 관해 활발한 의견교환이 있었고 결국은 한중간이나 한일간보다는 한미간의 무역장벽 해소가 더 큰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자본가들의 계산이 있었든지, 아니면 여하한의 아시아 블록의 형성이 한미간의 경색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무릇 모든 의사결정이 그렇듯이 이 결정도 복합적인 동기가 작용하였겠지만,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는” 노무현 前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주로 전자의 입장에 방점을 두는 의견이다. 초기 과정에서 안보가 주요 변수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심증은 다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안보 문제 등과 관련되어서는 한미FTA가 추진되지 않았다. 내가 추적해봤는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개입 흔적이 없다. 한미FTA에 관련해서 통상교섭 본부하고 NSC가 단 한번도 회의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간 거다.[“한미 FTA는 참여정부 업적조급증 탓, 대연정 제안에 이어 제2의 패착될 것”]

정태인 前 청와대 비서관이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 중 일부이다. 즉 그에 따르면 한미FTA는 “YS 하면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DJ 하면 6·15 정상회담 등이 떠오르는데, 노 대통령은 이것이 없다”며 “남은 임기 안에 무엇인가 업적을 남겨보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조급증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그랬던 순수한(?) 경제적 동기가 미국의 외보안보전략, 그리고 이명박 정부로의 집권이양과 결합되면서 정치적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보는 한미FTA의 진행과정이다.

노대통령은 이미 대연정 화두를 제시했을 때부터 한국의 미래전략 정립에 매우 강한 집착을 보여 왔고 한미FTA를 미래 선진 국가로 도약하는 중심고리이자 탈정치적 이슈로 인식해왔다. 다시 말해 미국정부의 관심이 외교안보적 차원이라면 노대통령의 주된 관심은 경제적인 것이다. 이런 노대통령의 탈정치적 인식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의 자장 안에 급속히 편입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미 한미FTA 제안과 그의 동북아 균형자론 간의 조화될 수 없는 모순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한미FTA 국민보고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 엮음, 그린비, 2006년, pp72~73]

결국 한미FTA는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민의 경제적 자유를 옭매고 자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큰 모순 없이 상호 공존하던 노무현 정부의 작품으로서 큰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또한 이는 당연히 미국의 안보전략에 순응하며 ‘경제적 자유주의’를 위해서라면 ‘정치적 자유주의’쯤 은 쉽게 무시해버리는 한나라당의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되었다.그리고 이후 한미FTA의 한미동맹 강화론은 빠지지 않는 소재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 미사일 발사 이후 거세진 북한의 위협에 공동대처하는 한미동맹에도 활력을 줄 것이다.[한미 FTA, 이제는 美정부와 의회가 답할 차례, 동아일보, 2009년 4월 23일]

요컨대 우리는 경제에 대한 국정철학이 갈팡질팡했던 한 정치적인 리버럴 정부가 탈정치적으로 추진했던 FTA가 권력이양 및 국제정세의 변화와 결합하면서 가장 정치적인 레토릭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지배 엘리트에게 한미FTA는 포기할 수 없는 떡밥이 된 셈이다. 문제는 그 떡밥을 어떻게 ‘안보공포증’ 및 ‘경제만능론’(주1)과 결합하여 국민적 저항을 최소화하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주1) 예를 들자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의 정서였던 ‘나라를 망쳐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내 집값만 올려다오)’식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