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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도 재수 없는 이명박 정부

뭐랄까 참 지지리도 재수도 없는 정부다. 큰 무리 없다고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재개하기로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적 저항에 부닥쳐 정권의 위기로까지 갈 정도로 휘청했는가 하면, 70년대식 환율정책이 때마침 각종 유가상승 등 각종 악재와 맞물려 경제 수장의 경질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그나마 존재도 없던 대북정책을 뒤늦게나마 수립하여 보란 듯이 국민에게 으스댈 찰나 북한군의 남한 민간인 사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욕만 얻어 처먹게 되었으니 이렇게 재수 옴 붙은 정부가 또 있을까 싶다. 스스로도 잘못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실수를 연발하여 욕을 버는가 신기할 정도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연설 불과 수십분 전에 사건을 보고받는 바람에 미처 연설문을 고치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땜빵하려다 이번에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 알기를 뭐로 아느냐는 것이 표면적인 논리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명박의 대북화해 제스처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감에 있을 것이다. 사대주의적 근성에도 불구하고 철천지원수에 대한 적개심만은 서구화되지 못하는 우리나라 보수의 한계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애꿎게도 희생당한 박왕자 씨는 보수와 진보(주1) 양측으로부터 서로가 원하는 대북정책의 지렛대로 전락할 개연성만 높아진 셈이다.

사건을 숙고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대북대화를 제의했다는 머리가 팍팍 안돌아가는 청와대에서 뒤늦게 이명박 대통령이 아랫것들에게 호통 치는 상황을 연출되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이 사건을 두고 “저항능력도 없는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진노했다고 하는데 이제 와서 이런 감정적인 언사를 할 정도로 화가 났다면, 국회연설을 앞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판단하는데 왜 그리 오랜 시간 고민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나마도 판단을 못 내리고 국회연설을 강행했는지 나로서는 의아할 따름이다.

즉 그는 지금와서 진노할 것 같으면 사건소식을 접한 즉시 국회연설을 미룬달지, 남북대화 제의를 연설문에서 뺀달지 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그러한 제의를 강행하였다면 – 실제로 그렇게 했고 – 이제 와서 통수권자 스스로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는 식의 감정과잉의 언사를 내뱉어서는 곤란하다. 통수권자로서의 일관성과 무게감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무절제한 발언에서도 지적하였다시피 입 싸고 말 함부로 하는 통수권자는 스스로가 나라위기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말투에 있어서 누구 못지않게 직설적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적어도 일관성에 있어서만큼은 인정해줄만 했다.(주2)

남북이 박왕자 씨의 죽음으로 또 다시 냉각기류로 흐를 가능성이 큰 현 시점 9개월여 만에 재개된 6자회담에서는 참가국들이 비핵화 2단계 마무리 시한을 설정하고 검증에 대한 일반적 원칙을 도출하였다.(관련기사 보기) 비록 구체적인 계획은 여전히 미흡하긴 하지만 일정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갈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는 민간인의 죽음으로 상당기간 발목 잡히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재수가 지지리 없는 정부이지만 나라 전체로 놓고 보아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즈음에 차마 챙기지 않으면 안 될 불행한 사건이 터져 우리의 발길을 막고 있으니 말이다.

p.s. 안타까이 세상을 등진 고인의 명복을…

(주1) 이 진보는 북한에 대해 제대로 말발 한번 세우지 못하는 어정쩡한 진보를 가리킨다

(주2) 물론 이 일관성이 결정적으로 배신 때렸던 케이스는 몇 개 있는데 이 부분은 친노동 성향에서 친자본 성향으로의 결정적인 이념적 전환과 관계된 것이기에 이명박 대통령의 무소신 또는 우왕좌왕 행보와는 별개로 다루어야 할 소재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