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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은 투기 목적이 아니라 주거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집값과 물가, 그리고 고용 안정은 서민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 “주택은 투기 목적이 아니라 주거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누가 했을까? 진보신당의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 둘 다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41차 라디오연설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다시 살펴보자면 그 분은 주택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교환가치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쓰이는 용도인 주거 목적, 즉 사용가치로 간주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적어도 주택에 관한 관점에서만큼은 이명박 대통령도 굉장히 좌익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면 그러한 좌익적 신념의 해법은 무엇일까?

이 때문에 저렴하고 편리한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집 없는 실수요자들에게 직접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꾸준히 공급할 것입니다.

보금자리주택은 잘 알다시피 그린벨트 지역의 싼 값의 토지에 집을 지어 파격적으로 싼 값에 분양하겠다고 내놓은 이 정부의 야심작이다.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인지라 시장에도 어느 정도 집값 진정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관련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이 제안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정부의 인수위 시절 내놓은 ‘지분형 아파트’의 대안으로 그것보다는 더 현실성이 있는 대책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금자리 주택 홈페이지 캡처 화면

문제는 그 대책이 이 대통령의 “신념”에 부응할 정도의 파격적인 형식이 애초에, 그리고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겠다. 즉, 지난번 다른 글에서 지적하였다시피 대부분의 물량을 분양하는 상황에서 애초에 보금자리 주택은 온전히 “주거 목적”으로 사용되기에는 한계를 지닌 주택이라는 문제가 있다. 보금자리 주택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보금자리 로또”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장은 대통령의 신념과 달리 그 주택을 교환가치로 간주한다는 증거다. 또한 불완전한 정책에 대한 시장의 학습효과는 거의 동물적이다.

게다가 최근 입주물량은 강남권 2개 지역만 인기를 끌 뿐 소위 비인기 지역 물량이 대거 미달되어 보금자리 주택의 인기가 벌써 식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고가 논란도 있다.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금자리 주택은 청약 조건만 까다로울 뿐 시장의 다른 경쟁자들과 동일한 조건, 동일한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교환가치로서의 존재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주택들에 비해 ‘좀더 가난한 이들의 주택 소유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매개체일 뿐인 것이다.

사실 라디오연설 들은 적도 없지만 대통령께서 저런 취지의 발언을 하셨다는 소식을 웹사이트에서 읽고 상당히 반가웠다. 다만 그러한 신념에 걸맞은 정책을 구현하셨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직은 그 정책이 보금자리 주택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 아쉽다. 결국 현재의 대량 미분양 사태의 기저에는 주택에 관한 기본적 가치관이 실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갭은 여태 일종의 가수요가 채워왔다. 이제 그 가수요를 다른 무엇인가로 채워야 하고 대통령의 “신념”에 부합하는 공급방식도 한 대안일 것이다.

보금자리 주택 단상

반값아파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로망이다. 정주영의 말 그대로 “반값아파트”가 그랬고, 홍준표의 “대지임대부 분양주택”(주1)이 그랬고, 현 정부의 “지분형 아파트”가 그랬다. 하지만 그러한 구상들은 제각각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실현되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생산될 아파트들이 결국 불완전 상품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즉 소유할 자산이 온전히 구입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적당치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재산권 행사를 온전히 할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주택에 대해 사회 상당수가 사용가치 지향적으로보다는 교환가치 지향적으로 사고하는, 그리고 주류사회가 그것을 당연시하는 현실 속에서 그 재산권의 행사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반값아파트’는 어쩌면 이 사회에서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보금자리 주택”이 나오기 전까지는.

존재 불가능한 ‘반값아파트’를 갑자기 정부에서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까닭은 무식할 정도로 단순하다. 바로 싼 땅에 짓겠다는 것이다. 여태의 정권이 건드리길 꺼려했던 바로 그린벨트를 해체하여 아파트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여태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안한 – 미래세대를 위해?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 것을 현 정부는 거리낌 없이 해내버렸다. 수십 년간 짓눌려온 지주들의 보상심리로 인해 땅값이 정부의 의도만큼 낮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예측이지만 현 정부라면 또 억지로 싸게 사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도시의 허파 기능을 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오히려 도시 연담화의 촉매제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인정되던 그린벨트가 사실상 이번 조치로 인해 해체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녹색시대를 외치는 정부에서 말이다. 결국 자생적으로 팽창하는 서울과 인근도시들의 희미한 경계선 역할을 해오던 그린벨트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실질적으로 수도권은 한국 인구의 1/4 이상을 수용하는 초거대 도시권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어느 칼럼도 주장하였듯이 보금자리 주택의 전량을 임대하지 않고 상당 부분을 분양하는 것은 현 정부가 이것을 기회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세를 이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시세차익이라는 기대감이 바로 보금자리 주택의 흥행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것의 분양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무주거기간과 환매제한 기간의 도입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제도가 판교에서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었는지는 시장(市場)이 더 잘 알고 있다.

진정 현 정부가 반값아파트를 그들이 수요층으로 생각하고 있는 월 300만 원 이하의 서민층에게 공급하고 싶다면 서울시의 시프트처럼 장기임대로 내놓던가, 아니면 최소한 분양분에 대해 투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될 수 있도록 환매제한 따위의 꼼수부리지 말고, 분양분을  정부가 다시 물가상승분만을 반영하여 되사는 방식을 채택함이 옳다. 그러면 지금처럼 청약통장이 갑자기 금값이 되는 등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달아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장의 냉철함은 정부가 바라는 바가 아니긴 하다.

결국 보금자리 주택은 △ 주장하는바 정말 땅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가 △ 반대로 지주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인정해줄 수 있는가 △ 그린벨트의 고유목적을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 △ 실수요 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가 △ 부동산 시장을 과열시키지는 않을 것인가 등 허다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4대강 몰아붙이기가 그러한 것처럼 이 정책도 반대자들이 생각할 틈을 갖지 못할 정도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기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랄 수 있을까?

(주1) 아파트 분양시 건설회사는 건물만 분양하고, 대지는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원가 수준으로 사실상 영구 임대함으로써 아파트 분양가를 낮춘다는 주택공급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