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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 인상,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영국 정부는 작년 국가적인 긴축을 위해 대학 지원금을 줄였고, 대학교가 수업료를 기존의 3배 수준인 연간 최대 9천 파운드로 인상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BP의 최고경영자였던 존 브라운이 2010년 내놓은 보고서, 이른바 ‘브라운 어젠다’를 영국 정부가 수용한 결과다.

그런데 당시 보수-자민 연립정부에서 보수당과 자민당의 의견이 달라 논란이 있었다. 즉, 총선에서 보수당은 수업료 인상에 동의한 반면, 자민당은 인상에 반대해서 대학생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제 결과적으로 수업료는 인상되었으니 자민당은 공약을 어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연립정부의 부총리인 자민당 소속의 닉 클레그(Nick Clegg)가 공약을 어긴데 대해 사과하는 비디오를 내놓았다. 당의 핵심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수장으로서 “나약한 지도자”란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이 비디오는 자민당의 당내 모임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냉소유머로 유명한 웹사이트 The Poke가 이 비디오를 노래로 리믹스한 것이다. The Poke는 클레그 측에 이 노래를 자선 싱글로 만들어도 되겠냐고 물었고 클레그 측은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수익금은 셰필드 어린이 병원에 기부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국답다.

원래의 사과 비디오
리믹스 버전

“David Cameron씨 내 노래 좋아하지 마~!”

현재 영국 수상 직을 맡고 있는 David Cameron은 여러모로 전통적인 영국 보수당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젊고 잘 생긴 외모에 대다수 보수들과는 달리 NHS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노회한 보수의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리버럴한 이미지가 더 풍긴다.(물론 그래봤자 토리~지만) 한편 그의 리버럴한 이미지를 보다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가 80년대의 전설적인 브리티시 뉴웨이브 밴드 Ths Smiths팬이라는 사실을 공언하고 다닌다는 점이다.

“보수당 당수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리시는 ‘누가 내 비참함을 알까’라구 생각하겠죠. 유감스럽게도 저는 짱팬이에요. 미안해요. (I’m sure that when Morrissey finds that he’s getting endorsement from the leader of Conservative Party, he will think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I’m a big fan, I’m afraid. Sorry about that.)”[Morrissey와의 토크쇼 중에서]

왜 이 사실이 리버럴한 이미지인가 하는 것은, 비록 The Smiths가 드러내놓고 정치적 슬로건을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반골기질이 강한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그들의 대표적인 앨범의 제목은 The Queen is Dead다. 이외에도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 Panic, There’s No Light That Never Goes Out과 같은 곡의 가사를 보면 그들이 보수정치와 신자유주의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영국의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룹의 프론트맨은 각각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Morrissey와 Johnny Marr다. 이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Johnny Marr의 경우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David Cameron의 애정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Johnny Marr는 작년 12월 2일 트윗을 통해 “우리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Morrissey는 지지의 뜻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David Cameron은 의회에서 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추궁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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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의회에서의 추궁 장면

우리로서는 이 정도의 일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구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윤도현을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트위터에서 “내 노래 좋아하지 마”라고 트윗을 했다면 영국보다 훨씬 살벌한 전개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영국이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펼칠 수 있는 풍토가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직설적인 대중문화 풍토덕분이다. 대중문화의 이렇듯 솔직한 정치참여는 순수를 가장한 현실외면보다 훨씬 더 건강한 풍토인 것이다.

한편, 우리 너그러우신 Johnny Marr 님께서는 자신이 너무 몰인정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지난 2월 17일 트윗을 통해 David Cameron이 그들의 노래를 좋아해도 된다고 윤허하셨다. 문제는 단서조건이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라는 단 한곡을 2주일동안만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Johnny Marr가 노래제목을 통해 또 한번 David Cameron을 조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당이 진행하고 있는 개혁은 결국 끝낼 수 없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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