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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금융개혁안에 대한 느낌

“So if these folks want a fight, it’s a fight I’m ready to have.”

볼리바리안 사회주의자 차베스가 자본주의자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에게 한 말이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그 나라의 특정세력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이러한 전투적인 발언이 포함된 연설의 내용을 보자.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거대 금융기업들이 감독을 받지 않으면서 CDS나 다른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위험한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개구멍을 막으려고 합니다. [중략] 우리는 은행이 기면 주주가 이와 같은 행위로 돈을 벌지만 은행이 지면 납세자가 돈을 부담하는 시스템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즉,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대표되는 투자은행 – 엄밀히 말해 금융기업(financial firms) – 과 상업은행의 분리가 의미 없어진 후 – 시티그룹과 같은 금융백화점도 생기고 – 소위 미국의 금융업은 곳곳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가장 큰 문제라면 금융기업의 영업행위와 감독기관의 감독행위의 미스매치, 금융기업의 투자행위의 투자성공 여부에 대한 이익과 손실의 책임/향유주체의 미스매치 등을 들 수 있다.

상업은행은 예금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이라는 부채(debt) 형태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이다. 따라서 상업은행은 기업의 미래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안정적인 상환능력의 보유여부가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는 “debt culture”의 대표적인 금융회사이다. [중략]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현재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equity culture”가 요구된다. 따라서 debt culture를 기반으로 하고, 또 가질 것이 요구되는 상업은행이 equity culture가 요구되는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이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하게 된다.[출처]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수립한 오바마가  “볼커 규칙(Volcker Rule)”이라 부른 새로운 조치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은행들이 그들의 고객들에게 봉사하는 주된 임무를 방기하도록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은행들은 앞으로 그들의 고객에의 봉사와 관계없는,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한 헤지 펀드, 사모펀드, 또는 고유계정거래(proprietary trading)를 소유, 투자, 또는 주주로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기업들은 미국시민이 뒤를 책임지는 은행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그러한 헤지 펀드와 사모펀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략] 이와 더불어 미래의 위기들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일환으로써 저는 또한 우리가 우리 금융 시스템의 더 이상의 합병을 허용치 않을 것을 제안합니다. [중략] 미국시민들은 극소수의 대형 기업들로 구성된 금융시스템의 서비스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고객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경제에 좋지 않습니다.

요컨대 첫째, 글래스-스티걸 법의 현대화 버전이라 할 만한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의 분리, 둘째, 대형 투자기업의 합병의 제한 등이다. 헤지펀드, 사모펀드야 이번 사태 이전부터 워낙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었기에 금융기업으로부터의 투자제한 조치가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다. 고유계정거래는 현대 투자금융업의 하나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아 오고 있는 부분인데 앞서의 조치와는 또 다른 충격을 줄 것 같다.

사실 투자은행이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 말로는 차이니스월을 쌓았네 하지만 – 고유계정거래를 통한 이점을 누려왔고 이를 통해 자산을 엄청 키운 것이 사실인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끊고 자문 및 주선만 하라고 한다면 이것의 금단현상은 상당할 것 같다. 더불어 사실 고유계정에서의 투자가 자금모집 시에 참여기관에게 믿음을 주고, 파이낸싱을 구조화시키는데 이로운 긍정적 측면도 있었는데 그마저 하지 못하면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합병의 제한은 애초 글래스-스티걸 법이 시티그룹이라는 금융백화점의 합병을 정당화하기위해 무력화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첫 번째 조치가 입법화될 경우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갈 길이 다른데 이제 뭐 합쳐서 시너지 효과가 날만한 회사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별로 고민을 안 해보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오바마의 화려한 투쟁의 레토릭에 비해 그 조치는 자본주의 금융 일반의 원칙을 재정립하는 상식적인 내용으로 판단된다. 또한 엄밀히 보자면 이번 위기의 근본원인이라기보다는 주요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기에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상식적인 조치마저 월가의 거대한 권력이 굳건했던 그간에는 시도조차 못했던 것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소위 금융복합기업 모델에서의 딜레마 한가지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 모델과 상업은행 모델 간의 우월성 논쟁에 관한 재밌는 글이 있어서 옮겨 적는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위기와 관련하여 제기된 하나의 중요한 논의는 과연 이것이 투자은행이라는 형태의 금융회사의 실패, 혹은 투자은행이라는 금융회사 모델에 대비한 상업은행(CB) 모델의 우월성을 시사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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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어려움을 겪은 투자은행들이 예금의 수취(수신)라는 상업은행 기능을 갖지 않은 독립계 투자은행들이라는 점, 그리고 살아남은 Goldman Sachs와 Morgan Stanley가 모두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위기 타개책으로 선택하였다는 점 등을 들어 일각으로부터 독립계 투자은행이라는 사업모형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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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은 예금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이라는 부채(debt) 형태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이다. 따라서 상업은행은 기업의 미래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안정적인 상환능력의 보유여부가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는 “debt culture”의 대표적인 금융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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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현재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equity culture”가 요구된다. 따라서 debt culture를 기반으로 하고, 또 가질 것이 요구되는 상업은행이 equity culture가 요구되는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이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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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이 예금을 자금조달원으로 하여 투자은행업무 부문에서 위험을 부담하는 영업을 하는 경우, 예금자로부터 은행 주주에게로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개별 예금은 소규모로서 무임승차의 문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원금보장이 되기 때문에 예금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예금계좌를 갖고 있는 상업은행의 이와 같은 형태를 감시, 규율할 유인이 약하다.[금융위기가 주는 투자은행 자금조달에의 시사점, 부원장 조성훈, 자본시장 Weekly, 한국증권연구원, 2008-45호, pp1~2]

이 글의 의도는 전체적으로 순수한 투자은행 모델의 옹호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이른바 “은행(bank)”이라는 도구가 원천적으로 어떠한 의의를 갖는 것인가에 대한 원칙적인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즉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의 행태를 따라간다는 것은 ‘자금의 원천’의 리스크와 ‘자금의 운용’ 상의 리스크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B은행에 1천만을 4% 예금금리로 저금하면 B은행은 그 예금을 C기업에 건네줄 때에 자금의 원천 성격에 부합되게 대출의 형태로 빌려줘야 합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대출금리가 6%면 2%의 예대마진을 취한다. 그런데 B은행이 C기업에 대출이 아닌 출자(principal investment)의 형태로 건네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만약 C기업이 사업이 잘 되어 대출과 비슷한 스케줄을 가정하여 10%의 배당을 주었다면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주주에게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반대로 C기업이 망하게 되면 예금자는 여전히 원리금을 보장받을 것이므로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한다. 더불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예금보장을 해줄 경우 상업은행에게 ‘모럴해저드’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좌파는 물론이고 – 오히려 더 강하게 – 시장주의자들이 싫어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들은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라”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망할 사업을 영위한 주주들이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이른바 ‘원인자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이다. 그런데 앞서의 경우 은행의 예금자는 주주들이 아니므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어 예금보장을 해주어야 하고, 결국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혼합은 시장주의자들의 논리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소위 유럽의 유니버설뱅크가 예금보장에 더 적극적인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결론 : 투자은행은 “은행(bank)”이 아니라 투자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