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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은 상품

샤 왕은 서방세계에 교훈을 하나 더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산유국들이 이구동성으로 국제 유가가 너무 낮다고 아우성치고 있던 때였다. 석유가 과거 24년 동안 석유의 수요와 공급이 자유로운 시장기능에 맡겨졌더라면 충분히 유지됐을 가격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값싼 연료’로 전락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1947년부터 1971년까지 유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24년 동안 산업 재화나 식료품 가격은 3배가 올랐다.[제프리 로빈슨著, 유경찬譯, 석유황제 야마니, 아라크네, 2003년,p321]

1차 석유쇼크가 원자재에 대한 자원민족주의, 아랍권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 심지어 이란을 무장시키고 유럽의 경제성장을 방해하려는 미국의 의도 설 등 다양한 설명들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한 상품이, 그것도 지구상에서 단일품목으로 가장 거래규모가 큰 상품이 24년간 가격이 동결되어 있었다는 것은, 언젠가 그것이 폭발할 것이라는 개연성 또한 높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화석연료, 특히 석유를 기본양식으로 자라왔다. 그리고 그 밥값을 24년 동안 오르지 않은 가격에 먹어오면서 지갑사정과 경제활동을 그에 맞춰 왔다. 어느 날 밥집 주인이 가격을 대폭 올리자 혼란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 이후로 30여년이 훌쩍 지나 조금 더 성장한 이 식욕 왕성한 친구는 여전히 먹거리의 대다수를 석유로 채우고 있다. 반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호혜평등주의 혹은 수요자의 똥배짱, 그리고 그 결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파이잘 왕(제4차 중동전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치하던 왕)은 언론을 통해 자기의 뜻을 공개적으로 다시 밝혔다. 9월 2일 NBC 텔레비전이 파이잘 왕과 인터뷰를 가졌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중동정책을 변경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편을 든다는 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걱정거리를 던져주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아랍세계 속에서 우리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와 미국간의 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NBC가 ‘미국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를 계획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파이잘 왕은 ‘미국의 친 시오니즘과 반 아랍주의 정책 때문에 사우디가 계속해서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닉슨은 3일후 기자회견에서 파이잘 왕의 인터뷰에 대답으로 ‘미국의 외교정책과 석유 수출을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조치’라고 응수했다.

“미국은 친 아랍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 이스라엘도 아니다. 이스라엘은 석유가 없고, 아랍은 석유를 가졌다고 해서 이스라엘보다 아랍에 더 가깝지도 않다.

전쟁(‘10월전쟁’ 혹은 ‘욤 키푸르’(Yom Kippur)전쟁이라 부르는 제 4차 중동전. 자세한 정보 )이 발발했던 10월 6일, 파이잘 왕은 닉슨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이 점령한 아랍 영토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는 전문을 발송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3일 간의 전투에서 잃어버린 장비와 무기를 전량 다시 공급했다.

[제프리 로빈슨著, 유경찬譯, 석유황제 야마니, 아라크네, 2003년, pp162~163]

이것이 제1차 오일쇼크의 서막이었다. 하여튼 여러 모로 닉슨은 사고를 많이 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