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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孤獨のグルメ) 트윗 단상

#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를 즐겨 보는 이유로는 단연 주인공의 먹방이겠지만, 그가 즐겨 찾는 골목길 풍경도 한몫한다. 적어도 카메라에 잡히는 일본 도시의 골목길은 프랜차이즈에 포획되지 않은 순수 자영업자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골목이기 때문이다.

#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를 찍을 때쯤이면 골목길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프랜차이즈에 점령당한 시점이라 이렇게 찍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혜리 도시락’을 먹으며 “오~ 이거 의왼데?? 마구마구 먹게 돼!”하고 ‘빽다방’의 커피로 입가심할지도??

# 시장자유주의의 주창자 아인란드는 소비에트가 유일한 주인인채로 모든 인민을 노예상태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에 절대악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는 대자본이 골목 안까지 들어와 모든 소매점을 서열화하고 근로대중을 노예화하는 현 상황을 뭐라 할 수 있을까?

# 오늘 들른 편의점은 전에 중규모의 동네 슈퍼였다. 이제 그 공간은 대자본 프랜차이즈의 유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에 편입됐다. 난 사실 이런 대자본을 효율성 측면을 본다면 무조건 반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소유가 사유화되는 것이 우려될 뿐.

# 요컨데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가 사회화되고 있는 와중에 다만 그 소유권은 소수의 사적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신성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사실 시장경제와 그다지 관계도 없는 경제적 독점에 대한 신앙적 태도다.

# 그나저나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은 원래 소식하는데 드라마를 위해 하루 전에 단식하고 촬영일 몰아서 마구 먹는다고 한다. 극을 보면 먹방을 위해 흰 쌀밥을 마구 먹는데, 그렇게 몰아서 마구 먹으면 배우의 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0.01%가 다시 앞서가고 있는 미국의 자본주의

런던 경제학 스쿨의 Saez씨와 Gabriel Zucman의 새 보고서는 이전에는 최상위 부자들의 부(wealth)의 지분을 매우 과소평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략] 1920년대에 하위 90%는 미국의 부의 단지 16%를 소유하였을 뿐이다. 이는 1929년의 붕괴 이전까지 전체 부의 4분의 1을 통제한 상위 0.1%의 것보다도 한참 모자라는 것이었다. 대공황의 시작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까지 전체 부에 대한 중산층의 지분은 꾸준히 들었는데, 이는 주요하게는 부유한 가구가 망가진 탓이다. 그 이후로 중산층의 지분은 보다 광범위한 자본 소유, 중산층의 소득증가, 그리고 주택소유 상승률 덕분에 국부와 함께 증가하였다. 퇴직연금에 대한 세금면제 확대도 또한 기여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중산층의 가구의 부에 대한 지분은 36%까지 증가했고 거칠게 볼 때 상위 0.1%의 지분의 네 배에 달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추세는 역전된다. [중략] (차트를 보라) 1986년에서 2012년까지 상위 1% 가구의 실질소득은 연 3.4% 증가한 반면 하위 90% 가구는 0.7% 증가하였다. 그러나 Messrs Saez와 Zucman은 추락하는 중산층의 순수자산 추이의 주된 원인은 치솟는 부채 탓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치솟는 주택가격은 모기지 부채 역시 늘어났기 때문에 중산층의 부의 증가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라한 주택의 가격이 떨어져도 부채는 그대로 남아 중산층의 부를 더욱 쥐어짠다.[It is the 0.01% who are really getting ahead in America]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 미국 산업에서의 금융업의 예외적 성장, 배당과 소득 비중의 역전, 인터넷 산업의 융성, 노조운동의 쇠퇴 등이 떠오른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만 놓고 본다면 소위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을 것이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라는 피하지 못할 원인에서 비롯된 현상도 있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과연 부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의 집중 경향에 있어서의 예외적인 시기였던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출처 : cfr.org)

최근에 빌 게이츠가 토마 피케티의 책을 읽고 이에 반박하면서 최상위 부자들이 상당수 이전 세대의 부자들에서 바뀌었다는 정황을 들어 피케티의 논지를 반박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산 축적의 작동방식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음은 분명하며 이를 이용해 부를 쌓는 이에 대한 부의 집중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음은 추세적인 것 같다. 즉, 자본(equity)의 소유는 소득 없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보편화된 수단이며 금융위기 전까지 정치권은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 평등을 주창하였지만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그 신화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반면 최상위층의 자본 소유와 축적 방식은 세계화와 더불어 더 세련되어 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자본 소유의 민주주의”에 어느 나라보다 앞선 나라였다. 한때는 망국병이라 할 만큼 부동산 투자, 즉 자본소유를 통한 시세차익의 시현은 국민적 붐을 이루었고 이는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를 들어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며칠 전에 발생한 일가족 자살사건에서 알고 보니 가족 명의로 열다섯 채나 집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그들이 그렇게 많은 집을 갖게 된 것이 부채를 통한 주택 구입이었다. 자본의 부의 축적 방식은 진화하고 있는데 아직도 중산층의 부동산 신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잡담

요즘 들어와 현 경제위기에 관한 글을 별로 올리지 않았다. ‘나름 경제관련 블로그’인데 말이다. 사실 쓸 말이 별로 없다. 특별히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주 주식시세를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재주는 없기 때문에 거시적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미국에서 상황이 그리 나아졌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패니매가 190억 달러를 추가지원해달라고 했다는 모양인데(기사보기) 뭐 이제 천문학적인 그런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들 요구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은행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해서 자본을 확충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상적인(?) 시장에서라면 이미 망해야할 기업들이 존속하고 있는 꼴이다.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면도 있다. 우리는 자본금이 잠식된 회사는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자본금은 주주가 납입하는 것이고,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고, 그 회사의 주인의 돈을 다 까먹었으면 회사는 망해야 한다… 대충 이런 논리다. 이것은 결국 기업의 주인을 주주로 보는 관점이다.

사실 기업은 자본금이 줄어들었든 잠식되었든 자산이 남아있으면 존속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종업원도 나갈 생각이 없고 근로의욕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군다나 점점 자본(equity)와 대출(loan)의 차별성은 – 예를 들면 메자닌(mezzanine)성격의 자금투입 등 –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데 여전히 자본이 가지는 의미(혹은 신화)는 크다.

현재 상황은 앞서 말한 스트레스테스트를 통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점검하고 이것이 BIS 비율 – 이건 사실 진작 무시되고 있지만(그리고 소위 기준을 강화했다고 주장하던 바젤II가 오히려 위기를 더 조장했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 또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부합될 정도로 정상화시키겠다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양적완화’라고 용어 세탁이 된 돈장난이 그 실체임에도 자본비율을 채우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차주들은 은행의 자본비율을 안정성의 지표로 인정하는 것인가?

BIS 비율을 8% 지키라는 것은 80년대 멕시코 대부위기 때 그 정도 자본비율 이상의 은행들이 대체로 안전해서 경험적으로 정해진 수치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여하튼 그때의 금융환경과 지금의 금융환경은 상전벽해다. 딱총 쏘던 시절의 군장을 핵무기 날아가는 시절에 갖추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뭐 다들 별 이야기 없이 동의한다. 결국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 막말로 전쟁이 없을 때는 군장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