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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은 임금소득의 양극화가 소득양극화의 주범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혹시 그의 머릿속에는 부동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장 실장이 부동산에 관해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쉬울 뿐이다.[노무현의 김수현과 문재인의 김수현]

윗글은 보유세 개혁에 관해 김수현 사회수석 등 경제관료들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비판하는 글이 나도 대체로 동의하는 바이다. 참여정부에 이어 문재인정부에도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김 수석이 참여정부 당시의 종부세에 대한 강력한 저항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 인용문에서 장하성 실장이 부동산에 대해 언급이 없다고 하셨는데 때마침 한마디 하셨다. 문제는 아주 속이 뒤집어질 멘트라는 점이다.

장하성 실장은 5일 <티비에스>(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동산 정책을 설명하던 중 “모든 국민들이 강남 가서 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라고 했다. 이 대목에 이미 논란의 씨가 담겨 있는 터에 덧붙인 말이 분노 지수를 높였다. “나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거다.”[부적절한 장하성 실장의 ‘강남 발언’]

장하성 실장은 경제에 대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채롭게도 작년에 공직자 재산 공개 당시 청와대 참모진 중 재산이 1위일 만큼 엄청난 자산가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부의 축적과정이 정당하다면 경제적 철학이 좌파라고 해서 욕먹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반인의 정서와 동떨어진 발언을 하고, 나아가 자산 불평등이 아닌 소득 불평등에만 올인하는 “좌파”라면 그런 강남좌파는 침묵을 지키는 강남우파만도 못하다.

첫 번째 인용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집값이 오르는 데에는 정책, 금융, 시장 등에 수많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일방에게서만 원인을 찾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평등주의적인 경제관을 표방하였고, 전반적인 경기가 하락세인 상황에서 서울의 아파트 가격만 상승하는 상황이라면, 경제관료들은 언행을 보다 조심하고 신중하게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상황일 텐데 부동산 시장에 대한 망언이 이어지고 있으니 속 터질 노릇이다.

싸움에서 선빵이 중요하듯이, 정책실행에선 용어가 중요하다

어느 정부나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은 일단 멋진 용어로 포장해야 한다. 여론이 정책실행 동력의 주요한 변수가 되어버린 현대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히 – 의외로(!) – 경제정책의 용어 선점에 익숙했다. 멀리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의 “경제민주화” 용어 선점이 있었다. 이후 그 용어는 집권 성공과 김종인의 퇴장과 함께 짧은 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경제용어(?)는 “창조경제”다. 이 표현이 쓰일 즈음 당시 유행하던 농담이 ‘도대체 정체를 모를 것이 ㅇㅊㅅ의 “새정치”와 ㅂㄱㅎ의 “창조경제”’라고 할 정도로 오리무중인 이 용어는 그래도 “경제민주화”보다는 오랜 생명력을 가지며 버텼다. 주로 서구의 각종 성공사례가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고 주장하는 식이 아전인수적인 해석을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한 것이다.

그 다음에 등장한 주요한 표현이 “노동개혁”으로 대표되는 “4대개혁”이다. 행정부는 자신의 개혁의지가 담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국회심판론”을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국회가 심판당한 것’이라며 – 우리는 평행우주를 살고 있는가? – 노동개혁을 중단 없이 밀고 가겠다고 할 만큼 집권 후반기인 현재까지 행정부가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국정과제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콘텐츠 없는 레토릭에 가까웠다면 “노동개혁”은 개혁과 거리가 먼 노동개악의 모습을 지닌 존재이자 노동자의 삶에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 또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는 – 존재다. 여론이 이 “개혁” 레토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지만, 적어도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보자면 유권자를 박근혜 식 “개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현 정부가 꺼내든 또 하나의 신박한 용어가 있는데, 바로 “한국형 양적완화”다. 총선 국면에서 여당의 강봉균 선대위원장(뭐 그런 비스무리한 직함)은 난데없이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았다. 각국이 제로금리를 넘어 더 이상의 금리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장기 금리를 낮추기 위해 내놓은 이 정책을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겠다고 해서 어이가 없던 와중에 다행히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카드를 청와대가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묻지마 양적완화”인 반면에 우리의 양적완화는 “특수 목적을 갖는 양적완화”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기는 자화자찬까지 곁들였다. 정책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선거에서 패한 정책을 다시 꺼내든 것부터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양적완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이 용어를 선점한 의도는 무엇일까? 전에 담뱃값 인상 등 사실상의 증세를 실행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강변했고 이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슷한 논리로 특정산업의 구조조정을 수행할 국책은행에 중앙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는 행위는 “양적완화”가 아닌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명명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들 다하던 바로 그 한국형 “양적완화”.

본질을 외면한 채, 감자나 쩌 먹은 청와대 끝장토론

  • ‘휴가 반드시 가기’ 문화 정착 및 휴가비 보상 억제
  • 골프장 개별소비세 인하
  • 민간기업 회식 적극 권장
  • 미분양아파트, 호텔로 전용 허용
  • 보금자리주택 지역에 호텔 신축 유도
  • 대학병원내 숙박시설 확충
  • DTI 불합리한 부분 보완
  • 중소기업 대상 금융수수료 시정 유도
  • 해외 R&D보다 국내 R&D 우대

청와대에서 국무총리와 관련부처 장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4단체장과 민간 경제전문가 등을 불러 연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 집중토론회’에서 나온 대책이라고 한다. 이 대책들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보수/진보 양측에서 시큰둥하며, 무려 9시간 동안 “끝장 토론”을 했다는 사실과 찐 감자와 옥수수가 간식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대책 중에서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청와대가 애써 “DTI 완화”라는 표현을 피하고 있는 “DTI 불합리한 부분 보완”이다. 그 외에는 반응이 없다. 경제를 위해 권력층들이 모여 가진 토론회의 내용이 경제적으로 논평할 거리가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논평할 거리가 없는 이유는 토론회가 내수부진의 근본원인을 애써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한 점은 어제 모인 이들이 내수활성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수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나 했나 하는 점이다. 올 초 심각한 내수부진의 원인을 진단한 삼성경제연구소나 산업연구원 등 주류 연구소조차 “근로자 가계의 소득 개선 부진”과 “가계와 기업간 양극화”를 원인으로 진단한 바 있다. 토론회는 이런 사실관계를 확인이나 했을까?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우리나라의 ‘기업소득/가계소득’ 비율의 장기 추이(1975~2010)
소득
한국경제의 장기 내수부진 현상의 원인과 시사점(2012.4, 산업연구원)에서 재인용
 

그런 사실관계를 공유했더라면 복지 및 고용안정 확보와 같은 근본대책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현실화 등의 미봉책이라도 언급됐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나온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노동자들이 휴가를 “반드시 가게” 하기 위해 연차 보상비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이나 하고 있다. 의료시장 확대를 위해 멀쩡한 사람 팔을 부러뜨리겠다는 발상을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 외 미분양아파트와 보금자리주택 지역에 호텔 신축을 유도하겠다는 발상 역시 한심한 탁상공론이다. 한류에 편승해 증가하고 있는 호텔공급은 이미 공급과잉 기미를 보이고 있다. DTI “보완”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소득이 적은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데 그들에게 돈을 더 빌려줘 가만있어도 떨어지고 있는 자산 부실화를 촉진시키겠다는 이야기인가?

이번 DTI 완화가 당장의 수요창출에 도움이 될 것 – 또는 비판자의 입장에서 거품을 더욱 키우는 것 – 같지는 않다. 시장불황의 원인은 부동산 트렌드의 변화와 가처분소득 부진 등 기초체력의 문제여서 호황기에나 써먹을 부양책이 먹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규제완화가 향후 도래할지도 모를 호황기에 쓸 카드를 고갈시키는 조치란 점이 염려스럽다

이 토론회가 경제에 기여한 점은 “감자와 옥수수”의 소비를 증대시킨 정도다.

“불법 사찰” 정국에 대한 단상

KBS의 새 노조가 보도한 현 정부의 “불법 사찰”건이 선거정국의 뇌관이 되었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구여권의 주장처럼 그들의 사찰은 “통상적인” 정보보고 수준인 반면에, 현 정부의 사찰은 더 깊숙한 밀착사찰로 보인다. 전자는 체제유지를 위한 공권력 행사 차원이고, 후자는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한 공권력의 사유화(私有化)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공권력을 사유화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행위가 더 악랄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 정부의 행위를 이른바 “착한 사찰”이기나 한 것처럼 옹호하는 모습도 희한하다. 착한 사찰은 구조화된 폭력을 의미한다. 구여권의 “착한 사찰” 옹호하려면 각종 시위 현장에서 사복경찰이 카메라 들고 채증 하는 것도 칭찬받아야 할 짓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권력층은 반체제 세력이 체제를 전복하리라는 강박증에 – 때로는 타당하고 때로는 피해망상적인 – 시달렸고, 시민에 대한 일상적 감시를 구조화해왔는데 이런 구조적 폭력은 오히려 체제저항의 하나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MB정부가 과거정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건 결국 국가 운영원리가 유사한 패턴을 그린다는 이런 체제연속성에 물타기하는 행위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와 사익추구를 위한 공권력 사유화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짓일까? 도덕적인 판단이 아닌 시민권 보호의 입장에서 보면 유사한 폭력일 수 있다. 대놓고 시민을 일상적으로 감시하라고 허용하는 실정법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진정 MB를 뛰어넘기 위해선 그런 구조화된 폭력기제에 대한 반성도 병행되어야 한다. “도로 노무현”이 답이 아니고.

문(재인) 고문은 “이명박 청와대가 ‘참여정부에서도 사찰이 이뤄졌다’며 물귀신 작전으로 기껏 든 예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노조 2교대 근무전환 관련 동향보고’ 등 세 건”이라며 “이는 일선 경찰에서 올라온 정보보고”라고 설명했다. 문 고문은 “산업경제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대형사업장 노사협상과 노조 파업예측 보고로, 민간인 사찰이 아니다”고 덧붙였다.[문재인 “참여정부 사찰증거? 경찰 정보보고!”]

이게 구여권 인사의 사찰에 대한 인식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