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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그가 받은 오해는 인권말살로 악명 높은 피노체트를 만나 경제자문을 했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칠레를 방문해 피노체트를 만나기는 했지만, 프리드먼 교수가 피노체트에게 이야기한 요지는 사실 ‘민주주의 없는 자유시장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따끔한 충고였다.[FTA후 한국, 곽수종, 콜로세움, 2007, p68]

이 문단을 읽고 한 2초간 웃었다. 밀턴 프리드먼이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제자문을 해주었다는 비난을 변호해주는 내용이다. 진짜 프리드먼이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저자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한 문제다. 오히려 역사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별 상관이 없다는 데이터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심지어 같은 책의 바로 밑의 문단에서도 확인된다.

쿠테타로 집권한 지 17년, 철권통치기간 동안 3천 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만들어내며 [중략] 지금의 칠레 경제는 남미 국가 중 최고의 경제성장률과 대외신인도를 지니고 있다.[같은 책, 같은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자유시장경제’가 어느 범위까지 아우르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한에 있어서는 피노체트의 칠레는 모범국가였다. 프리드먼이 칠레를 간 이유는 피노체트가 선택한 경제팀이 소위 ‘시카고 보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시장지향의 경제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독재와 시장경제는 잘 어울려 지냈던 것이다.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 칠레의 경제는 독재시절에도 잘 굴러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주의 없는 자유시장경제’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세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경제가 바로 그 예다. 박정희 시절 소위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국가주도의 혼합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자유시장경제였다. 곽수종씨가 책을 쓴 이유 한미FTA가 자유시장경제의 징검다리라면 그 징검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 참여정부 때나 지금이나 –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헨리 브랜즈 Henry Brands 는 그의 저서 머니맨(The Money Men)에서 심지어 미국 금융의 역사는 ‘민주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의 권력투쟁이라고까지 묘사하고 있다.

화폐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자본주의의 원리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모순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평등사상에 입각하여 국민들이 화폐공급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반면 자본가들은 민주적 평등만 주장하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화폐를 다루기 시작하면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화폐 문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가 다루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머니맨, 헨리 브랜즈, 쳐현진 譯, 청림출판, pp6~7]

물론 이 책의 전반을 읽어보면 역설적으로 자본가들을 ‘자유시장경제’론자들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시장지향의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독점이 사라진 완전한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인 반면 화폐 문제를 손아귀에 쥐고자 하는 이들은 독점자본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헨리 브랜즈의 설명이 주는 함의는 유효하다.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또는 자유시장경제)는 어느 정도는 대립관계였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도덕 또는 국민윤리 시간에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배웠던 이들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악한 이분법을 별개로 하고 생각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옳던 그르던 민주주의 원칙이 도달하지 않는 분야가 – 특히 경제에서 – 너무 많다. 소위 대의제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의 부자 권력 승계와 삼성의 부자 권력 승계와의 공통점이 바로 민주주의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