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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현상

미네르바 현상.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가면놀이다. 부르스 웨인이 가면을 쓰고 배트맨이라는 수퍼히어로가 되는 이유는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목적도 있겠지만(?) 가면 쓰고 정체를 감추면 부르스 웨인이라는 자연인으로는 할 수 없는 사회적 일탈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도 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는 이를테면 다음 아고라의 배트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계인사라는 설도 있고, 심지어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라는 설도 있지만 여하간에 그 자신이 평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는 그렇게 과격한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기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벗 삼아 가면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서 아예 실명을 걸고 실생활과 온라인을 일치시켜 활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이와 같은 이중적 캐릭터로 – 반드시 행동이 이중적이지는 않더라도 – 활동하고 있다. 굳이 인터넷 시대에만 해당되지 않는 것이 많은 유명인 들은 – 특히 반사회적 활동을 하던 –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수단으로 필명을 활용하였다. 레닌이니 트로츠키니 하는 이름들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필명이었고, 우리사회에서도 어두운 시절 사회과학 도서를 필명으로 썼고, 걸리버 여행기로 유명한 조다산 스위프트 역시 당시 권력층의 화폐 장난질을 비판하는 글은 필명으로 써야만 했다.

배트맨이 꼭 영웅으로 대접받은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은 – 특히 권력층 – 이 안티히어로적 행태에 불만을 느꼈고 비겁하다는 비난도 했다. 미네르바도 우리나라의 만화 같은 권력층으로부터 동일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실명 걸고 주식사면 오른다고 유언비어 유포하는 이장로 님은 멀쩡하지만 필명 걸고 주식 폭락한다고 유언비어 유포한 미네르바는 체포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안티히어로의 필연적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또 그런 순교자적 이미지에 매달린다. 어느 주장이 옳은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척점의 캐릭터가 상징하고 있는 현실이 드라마틱하기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 이가 성공하면 디벨로퍼고 실패하면 양아치라는 말이 있다. 안티히어로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다. 그의 예측이 성공하면 혁명가이고 실패하면 역적이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예측이 맞기를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가 역적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없다. 다만 우리나라가 너무 많은 미네르바가 설치는 고담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