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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경제시스템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회?

신용평가업계도 위기감이 감돈다. 알파고, 아니 ‘알파크레딧’이라는 이름의 AI가 신용평가 영역을 침범하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AI의 재무 분석 결과 00사 부도율 7.25%, 고로 신용등급은 BB+”와 같은 계량적 판단은 당장이라도 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고 빠르게. 사실 신용평가가 1200대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할 정도의 계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신용평가사들은 분명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한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AI가 신용평가업계에 도입될 경우 애널리스트 상당수가 보따리를 쌀 수도 있다”고 했다.[알파고가 신용등급을 매긴다면]

알파고가 인간들에게 – 그 인간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한국인이겠지만 – 충격을 안겨준 지 꽤 지났지만 아직도 알파고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경제지에서는 이미 주기적으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바둑이 꼭 경제와 관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바둑이라는 작은 세계에서의 알파고의 가치판단과 정책결정이 경제 시스템이라는 더 큰 바둑판에 펼쳐질 것이라는 예감에 따른 보도내용이 많다.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켄쇼라는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소프트웨어 이야기도 있고 인용한 기사와 같은 호사가적 가십성 기사도 있다.

인용기사처럼 인공지능이 신용평가에 도입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신용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했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등급평가에 관한 부조리는 크게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이나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하는 엄격한 관리자에 의해 관리되는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은 고객유치를 위한 등급장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다 선제적으로 등급조정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투자자는 발 빠른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그램 매매처럼 냉정한 신용평가로 등급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SF영화나 스릴러가 인공지능을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마이클 케인 주연의 Billion Dollar Brain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한 미국 자본가가 소련을 침공한다는, 비틀린 냉소적 정치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소련 침공 계획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냉정한 판단으로 명령을 내리기에 때로 브레인은 아군인줄 알았던 이까지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극중 한 배신자가 컴퓨터에 잘못된 명령을 몰래 입력하여 의사결정을 바꾸는데, 결국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를 잘 말해주는 장면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순환론이기는 하다. 인간의 결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계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그 기계는 인간이 만들고 관리해야 한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계가 기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제도”나 “국가”라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인공물로 때로 매몰차 보일 정도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판단을 내리는 소프트웨어랄 수 있다. 신용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기계적이고 냉정해야 할 신용평가 분석가가 실적에 시달리고 친분에 판단이 좌우된다면, 기계가 의사결정과정의 상당부분을 대체한다고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신용 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면 우리 경제 시스템의 큰 부분 하나가 인공지능에 맡겨지는 셈이다. 이런 고급 의사결정에서 인공지능의 효율성이 검증된다면 장래에 보다 고차원적으로 전반적인 사회의 경제기획에 인공지능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개인의 한계효용을 빅데이터 형태로 수집하여 이를 분석하고 파레토 효율이 도달하는 시점에서의 상품생산량을 결정해주는 과정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SF적 미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미래는 바로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이 적용된 계획경제 시스템이란 점이다.

시장경제 이론과 계획경제 이론의 조화로운 만남일지도?

완벽한 시장에 대한 斷想

유고슬라비아의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자율성을 지지했으며, 여기에서 노동자 평의회가 기업가로 행동할 것을 지지했다. 1964년이 되면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국가 투자기금을 폐지하고 자금배분에 있어서 은행의 역할을 증대시킨다. 지방 정부들도 자체적인 은행을 만들 수 있게 허용되며, 이 은행들이 기업의 중요한 자본 원천이 된다. 이와 관련된 방식으로 중앙계획 자체도 철폐되어 더 나아간 신고전파 모델의 한 버전을 실현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국가가 결정하는 고정가격의 숫자도 줄어들어, 순수 경쟁 모델에서는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며 따라서 균형가격은 최적의 생산 수준을 반영한다는 신고전파의 신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조하나 보크만 지음, 홍기빈 옮김, 글항아리, 2015년, p184]

언뜻 생각해보면 참 소름끼치는 모델이지 않은가? 국가는 경제행위 프로세스에서 배제되고 모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어쩌면 적어도 이 문장만 놓고 보면 이 모델은 완벽한 “신자유주의”가 아닐까? 물론 현실사회에서 그런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매정한 국가여도 복지와 같은 공공재에서는 결국 가격왜곡을 감수하고 공공이 개입하게 되고 당시 유고도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듯 균형가격은 국가의 개입이 배제된 채 철저히 시장에서 결정되게 하고자 했던 것이 유고슬라비아의 시장 사회주의자의 생각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한편 이 문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또 하나의 경제주체는 이를테면 국가처럼 균형가격을 찾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 바로 독점자본가다. 기업의 경영이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느 자본가가 기업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기업을 이끌고 가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럴 경우 가격은 왜곡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그룹의 기업합병 시도다. 소수지분의 개인의 “기업승계”를 위해 계산된 시나리오는 시장이 차익거래의 가능성이 있다고 여길 만큼 가격이 왜곡되게 되었고 행동주의자 펀드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양 사 합병안 발표 당시에도 삼성물산 저평가는 핵심 이슈로 부각됐다. 합병 가액 산정을 위해 책정된 삼성물산 지분가치는 8조 3893억 원이었다. 이는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상장 계열사 주식 가치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중략] 하지만 삼성물산이 상장사인 까닭에 보유 자산과 관계없이 최근 1개월 간 평균 주가로 기업가치가 매겨졌다. 더욱이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던 시기에 합병을 결의했다.[총대 멘 ‘엘리엇’, 합병 반대 구심점 되나]

이렇듯 시장주의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정치적인 의미가 가미된 경제 시스템과 별도로 놓고 보자면 어쩌면 완벽한 시장주의자는 가장 완벽한 자유주의자일 것이다. 그들은 시장의 민주성을 저해하는 그 어떠한 개입도 반대하는 경향을 갖는데, 좌로부터의 접근은 그룹총수의 전횡에 반대하는 주주 행동주의, 우부터의 접근은 시장을 왜곡하는 공공재 등에 대한 국가 개입의 반대를 들 수 있겠다. 문제는 시장은 결국 발전해나감에 따라 독점기업과 같이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존재가 그 안에서 성장하는 모순의 변증법을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시장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참여자인 소비자 및 생산자의 행태가 한계효용뿐만 아니라 기대인플레이션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장의 상대적인 단기적인 합리적 의사결정 시에는 한계효용 곡선이 유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경기에서의 시장참여자의 의사결정은 경기호황에 따른 기대 인플레이션이랄지 자산보유에 따른 심리적 안정감과 같은 요소로부터도 영향 받는다. 결국 이 기대감을 지속시켜주는 주체는 국가라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 국가가 아니라면 누가 이자를 결정하고 주택금융을 공급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