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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폭격에 관한 인터뷰 中

네오나찌들이 전혀 실행할 필요가 없는 전쟁범죄였다고 비난하는 드레스덴 공습에 대하여, 드레스덴은 아름다운 관광도시였던 것만큼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으며 따라서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영국 역사학자 Frederick Taylor 의 인터뷰 중 일부다. 다른 것을 떠나서 자국의 주요도시를 파괴한 공습에 대하여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와 인터뷰를 한 슈피겔이 대단해보인다.

슈피겔 온라인 : 과장된 사상자수가 학문적 연구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요. 연합군의 공격의 희생자로서의 드레스덴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데요. 드레스덴이 정말 그렇게 결백했나요?

테일러 : 드레스덴은 의심할 바 없이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예술의 중심이자 나찌 이전의 독일 인본주의에 관한 모든 위대한 것들의 상징이죠. 또한 동시에 상당한 정도로 나찌의 주요한 산업중심이기도 했습니다. 타자기, 담배, 가구, 사탕 등을 생산하던 공장들이 1939년 이후 군사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도시의 7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전쟁 관련 업무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역 철도 이사회는 동부전선의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또한 강제수용소 시스템에 죄수들을 수송하는 데에도 관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드레스덴이 합당한 폭격 목표에 해당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1945년 2월의 시점에서 그 방법과 강도가 정당한 것이었느냐에 있을 것입니다.

슈피겔 온라인 : 당신은 그것이 정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테일러 : 개인적으로 그것(폭격 : 역자 주)의 논리를 추적할 수는 있지만 매우 부정적입니다. 이는 전쟁이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어떻게 도덕적 재고가 고갈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18세의 나이에 그의 고향의 폭격에서 살아남아 그 파괴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 글을 남긴 Goetz Bergander는 그만의 독특한 용서의 방식으로 폭격을 “도를 넘어선 것(outsiz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확실히 그 폭격의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The Logic Behind the Destruction of Dresden, Spiegel, 02/13/2009]

Slaughterhouse-Five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jpg
Original movie poster for the film Slaughterhouse-Five”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City on Fire. Licensed under Wikipedia.

Kurt Vonnegut Jr.가 썼다는 원작에 대한 사전정보도 없이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뮤직박스’유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과거와 이를 반추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스타일의 영화이겠거니 생각했다. 처음 얼마간은 이러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약간 어리바리한 주인공 Billy Pilgrim 의 과거의 공간은 전쟁터 한가운데의 참호 속이었고 현재의 공간은 그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있는 그의 집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편집이 단순히 ‘Lone Star‘에서 볼 수 있었던 솜씨 좋은 연출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 Billy 는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니라 실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시간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밌는 발상을 시작으로 영화는 종반으로 갈수록 트랠파마도어라는 황당한 행성의 등장 등 처음의 전쟁영화 장르에서 블랙코미디, SF 까지 잡탕으로 섞인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이미 솜씨 좋은 원작이 지니고 있었을 멋진 개성이 ‘스팅’이나 ‘내일을 향해 쏘아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오리엔트의 세계’를 감독했던 거장 조지로이힐의 뛰어난 연출력과 만나면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에 전쟁포로로 머물렀던 Billy 의 경험을 통해 전쟁에서의 살육에는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제목 제5도살장(Slaughterhouse Five)은 주인공이 일했던 도살장이기도 하지만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받고난 후의 드레스덴의 처참한 몰골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Five 라는 단어는 마치 우주선의 이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Billy 가 나중에 찾아가게 되는 – 또는 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 트래팔마도어의 달표면과 같은 거친 표면은 또 바로 폭격 직후의 이 드레스덴을 연상시킨다. 그 황량한 별에서의 Billy 의 새로운 사랑은 절망 속에서의 희망이라는 여운을 남겨준다.

굴렌굴드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를 배경으로 눈길을 걸어가던 Billy 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오랜 여운을 남기며, Catch 22 나 M.A.S.H 같은 영화와 잘 어울리는 삼총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

2007.4.8

로마, 무방비 도시

로베르토로셀리니의 1945년 작품인 이 영화는 마치 에릭홉스봄의 20세기 역사를 다룬 명저 ‘극단의 시대’를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파시즘과 나찌즘이 극에 달하던 시기 로마에서 저항운동을 펼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그린 이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식의 사회주의 네오리얼리즘의 큰 축을 이룬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음>

극의 줄거리는 크게 반독 항쟁을 벌이고 있는 공산주의자 만프레디, 저항활동을 후원하는 돈피에트로 신부, 그리고 만프레디를 사랑하는 배우 마리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보수적 카톨릭 사이의 갈등은 서구세계에서 보편적인 현상이었지만 둘 모두 천년왕국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집단윤리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친화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사제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감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음의 경구를 보면 혁명가와 사제의 공통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1928년에 그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결코 그녀와 살지 않았다. 여자를 멀리하는 것은 혁명가의 철칙이다.” – 칼파나 두트

마치 사제서품을 눈앞에 둔 성직자의 각오를 연상케 하는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에서 언급되는 혁명가의 연애관은 만프레디와 마리나의 연인관계는 만프레디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한다. 투사도 인간일진데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쓸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혁명과 욕정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화해할 수 없었나보다.

페데리코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이 영화는 이후 “전화의 저편”, “독일 영년”과 함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3대 전쟁 영화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 1961)

영화는 한 건물 위에 장식되어 있는 스와스티카가 파괴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권력 나찌의 종말을 표현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이후 펼쳐질 승자의 역사에 대한 기록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그에서는 연합국 4개국이 제3제국의 전범을 단죄하는 법정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는 은퇴한 판사인 Dan Haywood(Spencer Tracy) 는 제3제국의 부역한 4명의 판사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재판의 재판장을 맡게 된다. 이 재판에서 열혈검사 Ted Lawson(Richard Widmark)은 피고들의 나찌에 대한 적극적인 충성을 주장하는 한편, 오스트리아 출신의 변호사 Hans Rolfe(Maximilian Schell)는 법관은 정해진 법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수동적인 집행관일 뿐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이후 법정은 공산주의자 집안이라는 이유로 거세수술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Rudolph Peterson(Montgomery Clift)와 유태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목으로 유태인은 사형당하고 상대여인은 감옥살이를 했던 펠렌스타인 사건의 당사자였던 Irene Hoffman(Judy Garland) 등이 주요증인으로 등장하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치게 된다. 위의 두 사례는 검찰이 나찌가 인간을 사상과 인종으로 차별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로 제시되었던 것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재판이 진행되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선진화된 서구에서조차 나찌의 인종차별적인 행위내지는 이론적 주장이 그리 드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영화에서도 변호사에게 지적당하는바 재판장인 Dan Haywood 자신이 버지니아 법원관할에서 지능과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사람들에게 거세수술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케이스인 펠렌스타인 사건은 –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였는데 독일여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한 카첸버그 사건에 기초하였다 한다 – 좀 더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여전히 교육, 직업, 공공서비스 등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이 유효했고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처럼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문명의 별종으로 인식되는 나찌의 정책이 자본주의 문명 일반 – 게다가 스탈린 치하의 사회주의 정권까지 – 의 위선적인 자화상과 닮아있다는 점이 극중 재판관들을 헷갈리게 하고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점이다. 그러한 지루한 국면을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검찰이 제시한 유태인수용소에 대한 필름이다.

실제 아이젠하워 시절 정권의 독려 하에 촬영되었던 단편 다큐멘터리였던 이 필름은 재판정을 위해, 그리고 영화관객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상영되는데 당시 관객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임은 – 이 당시엔 아직 홀로코스트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단어였다 한다 – 불문가지이다. 그 어떤 궤변을 떠나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었던 인종청소는 이 재판을 종결짓게 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고 결국 네 명의 전직 판사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Haywood 의 그 결단력 있는 판결이 약간은 순진한 판결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바 재판 와중에 소련은 독일의 동부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볼쉐비즘의 저지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한 서구는 독일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그들의 전직 지도자들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엔딩크레딧의 자막에서 그들이 바로 얼마 뒤 가석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라고 어느 성현이 말하셨다는데 법률 전공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법과 법정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결국 영화는 나찌의 부역자로 4명의 판사를 지목하여 단죄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으나 변호사의 주장처럼 나찌의 득세에는 독일 산업을 후원하였던 미국의 자본가, 독일의 정치구조를 찬양했던 영국의 처칠 등도 (외부적인) 부역자에서 면죄될 수는 없을지도 모르기에 이 영화는 다른 법정 영화는 다른 법정 영화와는 다른 좀 더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포스터가 영화 자체보다는 호화배역을 좀 더 강조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