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 1961)

영화는 한 건물 위에 장식되어 있는 스와스티카가 파괴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대권력 나찌의 종말을 표현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이후 펼쳐질 승자의 역사에 대한 기록일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그에서는 연합국 4개국이 제3제국의 전범을 단죄하는 법정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는 은퇴한 판사인 Dan Haywood(Spencer Tracy) 는 제3제국의 부역한 4명의 판사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재판의 재판장을 맡게 된다. 이 재판에서 열혈검사 Ted Lawson(Richard Widmark)은 피고들의 나찌에 대한 적극적인 충성을 주장하는 한편, 오스트리아 출신의 변호사 Hans Rolfe(Maximilian Schell)는 법관은 정해진 법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수동적인 집행관일 뿐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이후 법정은 공산주의자 집안이라는 이유로 거세수술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Rudolph Peterson(Montgomery Clift)와 유태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목으로 유태인은 사형당하고 상대여인은 감옥살이를 했던 펠렌스타인 사건의 당사자였던 Irene Hoffman(Judy Garland) 등이 주요증인으로 등장하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치게 된다. 위의 두 사례는 검찰이 나찌가 인간을 사상과 인종으로 차별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로 제시되었던 것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재판이 진행되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선진화된 서구에서조차 나찌의 인종차별적인 행위내지는 이론적 주장이 그리 드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영화에서도 변호사에게 지적당하는바 재판장인 Dan Haywood 자신이 버지니아 법원관할에서 지능과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사람들에게 거세수술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케이스인 펠렌스타인 사건은 –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하였는데 독일여인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죄목으로 사형당한 카첸버그 사건에 기초하였다 한다 – 좀 더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여전히 교육, 직업, 공공서비스 등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이 유효했고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처럼 이미 어떤 의미에서는 문명의 별종으로 인식되는 나찌의 정책이 자본주의 문명 일반 – 게다가 스탈린 치하의 사회주의 정권까지 – 의 위선적인 자화상과 닮아있다는 점이 극중 재판관들을 헷갈리게 하고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점이다. 그러한 지루한 국면을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검찰이 제시한 유태인수용소에 대한 필름이다.

실제 아이젠하워 시절 정권의 독려 하에 촬영되었던 단편 다큐멘터리였던 이 필름은 재판정을 위해, 그리고 영화관객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상영되는데 당시 관객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임은 – 이 당시엔 아직 홀로코스트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단어였다 한다 – 불문가지이다. 그 어떤 궤변을 떠나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었던 인종청소는 이 재판을 종결짓게 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고 결국 네 명의 전직 판사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Haywood 의 그 결단력 있는 판결이 약간은 순진한 판결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바 재판 와중에 소련은 독일의 동부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볼쉐비즘의 저지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한 서구는 독일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그들의 전직 지도자들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엔딩크레딧의 자막에서 그들이 바로 얼마 뒤 가석방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중에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라고 어느 성현이 말하셨다는데 법률 전공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법과 법정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결국 영화는 나찌의 부역자로 4명의 판사를 지목하여 단죄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으나 변호사의 주장처럼 나찌의 득세에는 독일 산업을 후원하였던 미국의 자본가, 독일의 정치구조를 찬양했던 영국의 처칠 등도 (외부적인) 부역자에서 면죄될 수는 없을지도 모르기에 이 영화는 다른 법정 영화는 다른 법정 영화와는 다른 좀 더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포스터가 영화 자체보다는 호화배역을 좀 더 강조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6 thoughts on “뉘른베르크의 재판 (Judgment At Nuremberg, 1961)

  1. 엽기민원

    저 가끔씩 foog님의 글을 보는 사람입니다.

    foog님의 글과 같은 글을 아래 링크에서 봤는데 같은 블로그 입니까?

    http://80snet.com/cinema/entry/%EB%89%98%EB%A5%B8%EB%B2%A0%EB%A5%B4%ED%81%AC%EC%9D%98-%EC%9E%AC%ED%8C%90-Judgment-At-Nuremberg-1961

    그냥 카피를 한건지…아니면 블로그를 두개를 운영하시는 건지?

    ps 아마 저쪽 블로그가 무단 전체를 주로 하는 블로그인듯한데…http;//80snet.com 들어가면 foog님과 스킨까지 비슷하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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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_-;; 제 비리를 캐셨군요. 거기도 제 블로그 맞습니다. 제가 거기 있는 제 글을 가끔 무단전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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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omahawk28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있는데 몇 년전 EBS 봤던 게 있어요.. 이라크 전쟁 몇 주를 앞두고 여론의 환기(?)를 위해 나왔다는 저의 생각이지만 – 왜냐하면 같은 시기에 나온 “히틀러”라는 논픽션 드라마의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나오더라구요. “선의 방관은 악을 꽃피운다” 제가 오바해서 생각하는 걸까요? -_-;; –
    개봉된 시대적 배경은 제쳐두고라도 괜찮게 봤던 드라마 였습니다.
    헤르만 괴링등등이 나와서 증언하는데 요하임 파이퍼 가 했다는 그 유명한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입니다. 패자의 역사는 반원형의 좌석(전쟁 범죄 재판의 피고석)에만 있을 뿐이죠.”
    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더라구요.. 나치즘을 아쉽다 생각하는건 절대 아니며.. 앞서 말한 그 시대를 봤을때.. 약간 씁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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