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B7T210

싸구려 행성 B7T210 [2]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와 하늘에 구름 좀 봐. 꼭 진짜 같지 않아?”

세탁소 김씨가 정육점 이씨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정말 감쪽같은걸?”

이들은 B7T210로 닷새 전에 이주해온 주민들이다. 지구에서 행성까지 분주히 오고가던 이주선들, 수많은 혼선을 빚었던 입국검사, 급조된 시설들의 부실시공에 대한 하자처리 등등 이 곳으로 온 20만 명의 주민들은 닷새 동안 거의 날밤을 새다시피 했다. 이삿짐을 옮기고, 여기저기를 닦고 조이고, 이웃주민들과 통성명을 하고, 때로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언성을 높이고, 라면을 끓여먹고, 설거지를 하고 … 그러면서 며칠을 보냈다. 다들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하늘을 – 실제로는 도넛 모양의 행성 튜브의 안쪽인 셈이지만 – 쳐다 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밋밋한 회색의 천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막 행정국이 홀로그래픽 기능을 가동하여 인공하늘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천장에 파란 색의 하늘이 펼쳐지고 조각구름들이 둥둥 떠다니는 풍경이 나타난 것이다. 김씨와 이씨는 그런 하늘을 보며 마치 지구의 그것을 바라보는 양 – 사실은 그 광활함은 느낄 수 없지만 –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들처럼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 “튜브 안쪽이라니까” – 바라보고 있었다.

행정국 하늘통제실 정상호 주사가 하늘의 전반적인 상태를 설정한다. 2109년 4월 10일 오전 11시 현재 하늘의 색깔은 색상코드표 #B4E5FF 다. 색깔은 설정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랜덤으로 조정된다. 물론 정주사의 기분여하에 따라 수동설정도 가능하다. 김주사는 자신이 하늘을 관장하니까 하느님이라고 우기다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박계장에게 꾸지람을 당한 적도 있다.

“허허 저건 왠지 당나귀 모양을 닮았네?”

“저건 어떻고 저건 꼭 자전거 같지 않아?”

김씨와 이씨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하늘을 여태 바라보고 있다. 갑자기 김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건 뭐야? 영락없이 구름 모양이 ‘always galaxy cola’라고 쓰인 것 같잖아??”

이씨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정확히 그렇게 써있는데?”

구름이 갑자기 네모난 화면 모양으로 바뀌더니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들이 갤럭시콜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동영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김씨와 이씨, 주변에서 아직도 넋 놓고 하늘을 쳐다보던 이들은 어이없어 하며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늘은 ‘TU그룹’의 광고판이었다. TU그룹은 이 싸구려 행성 B7T210의 투자자 그룹 중 하나이다. G속도를 내는 최초의 힘, 즉 first power를 내기 위해 들어간 연료도 이 그룹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B7T210 행성의 동명의 투자회사에서 이들의 지분은 14%다. 주주협약에 따르면 이들은 해당지분만큼 하늘의 광고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시범삼아 TU그룹 계열사의 히트상품인 갤럭시콜라의 광고를 쏘아본 것이다. 향후 그들의 여러 상품, 예를 들어 청바지, 그래픽칩, 맥주 등의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그런 면에서 하느님은 정주사라기보다는 TU그룹을 포함한 투자자 그룹이다.

잠시 광고 : 갤럭시콜라의 개운한 맛은 느끼한 식사의 입가심용으로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B7T210 행성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이들 행성 주민 대부분이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왔는지는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우선 총독실 인테리어부터 끝내야 하니까 말이다. 인부들이 너무 작업속도가 느려서 가서 한 소리 하고 와야겠다.”

싸구려 행성 B7T210 [1]

때마침 서문

때마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어제의 취기도 채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 이 소설로부터의 교훈은 바로 ‘무책임함’이다. 말인즉슨 굳이 소설을 쓰는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달지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달 지, 아니면 꼭 끝을 멋있게 장식해야한달지, 심지어는 이 시리즈가 1회로 끝날지 아니면 한 20회까지는 가야한달지 하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책임’이야 말로 창작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그것도 돈벌이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창작자가 누리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도 아니지만)는 이 소설을 새로운 블로그에 올려야 할지 foog.com에 올려야 할지의 문제인데 이 고민을 수습하는 데에는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foog.com에 올려야 한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쳐다봐줄테니까. 뻔한 대차대조표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자비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봐. 아직도 G속도를 몇으로 할 것인가 국회 우주위원회에 계류 중이라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그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울리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차피 지구의 중력과 같은 정도로 튜닝이 될 텐데 뭘 걱정이야?”

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블로그에 올렸던 ‘대운하에 무너져 버린 내 허접한 창작욕’이라는 글을 떠올렸다. 사실 그것은 핑계거리였다. 이를테면 요즘은 누구나 뭔가 일이 잘 안 풀리면 ‘이게 다 MB탓이야’라고 해버리면 사람들이 수긍하는, 그런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마치 이전 정부에서 ‘이게 다 놈현 탓이야’라고 하면 버로우해버리는 그런 상황과 비슷한 것이었다. 문제는 내 ‘허접한 창작욕’이었지 ‘대운하에 무너져 버린’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잠시 광고 : 이 글은 크리에이티브커먼스 2.0에 의거 작성되는 글입니다.(나중에 바뀔지도?)

“이봐 도대체 뭘 그리 생각하고 있는 거야? G속도에 관한 문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잖아! 어떻게 좀 해봐.”

“그래그래 알았어.”

나는 소설을 쓰는 것 말고 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그것이 내게 돈을 벌어다주는 우선적인 직업이다. 자비스와 나는 ‘싸구려 행성 B7T210’의 공동 총독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행성은 두 달 뒤에 완성될 예정으로 국회에서는 이 행성의 회전속도를 얼마로 할 것인가에 대한 법률인 ‘행성 B7T210 G속도 최초설정 및 조정에 관한 특별법’ 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행성의 회전을 정확히 ‘자전’으로 불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행성은 사실 아래와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가운데는 텅 비고 바깥쪽으로 테두리에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일종의 ‘도넛’모양을 띠고 있다. 그 도넛의 통 안의 중심과 먼 쪽에 사람들이 거주할 예정인데 행성이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켜서 원심력을 생성시켜 중력으로 사용할 요량인 것이다. 자비스가 지금 G속도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G속도를 처음에 너무 빠르게 설정하면 에너지가 많이 소요될 것이므로 지구중력의 반절 정도만 중력이 유지되는 한도에서 설정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자비스는 그렇게 되면 행성의 거주민들의 위장들이 낮아진 중력에 적응하지 못하여 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물구나무서기가 내장의 위치를 바꾸어 건강을 악화시킬 것이라 믿고 이의 반대를 법제화하자는 시민단체 ‘전국 물구나무 서기 반대 협의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그의 성화에 못 이겨 국회 우주위원회 소속 의원인 ‘명태’의 텔레파시 번호를 내 머리에 입력했다. 통화중인지 텔레파시 접선이 되지 않았다.

“이봐 명태가 접선이 안 되는데 나중에 연락해보지.”

라고 말했지만 다음 순간 연락할 이유가 없어졌다. 내 오른 쪽 눈에 설치한 그래픽칩을 통해 구독하고 있는 뉴스서비스 화면에 ‘G속도법 지구 중력 속도로 국회통과’라는 기사가 떴기 때문이다.

“이봐 자비스 자네도 보고 있나?”

“그래 나도 읽고 있어. 잘 됐군.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머리는 있는 모양이야.”

“자네의 행성주민 사랑을 피부로 느낀 모양이군.”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남은 일은 행성 총독으로 부임하는 일과 이 소설을 뒷수습하는 일만 남았다.

to be continued.. may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