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공 조는 “꼴찌 혐오” 편견의 희생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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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urzelbacher & McCain joint apperance at Elyria” by Rona Proudfoot from Lorain, Ohio – John McCain and Joe the Plumber.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경제학자들은 보통 가난한 이들의 직관에 반대되는 업신여김을 소득 이동의 촉발에 의해 더 나은 벌이를 할지도 모른다는 그 무엇으로 설명하곤 한다. ‘배관공 조(Joe the Plumber)’는 한 해 25만 달러 이상을 버는 이들에 대한 세율의 인상에 영향 받지 않을 만큼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언젠가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중략] 사람들은 경제의 사다리의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재분배에 반대하는 대신에, 이 새로운 보고서의 저자들은 사람들이 바닥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꼴찌 혐오(last-place aversion)”의 역설적인 결과는 몇몇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소득은 실제 약간 상승시키지만 그들보다 가난한 이들이 그들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위치까지 상승할 수도 있는 정책들을 소리 높여 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략] “꼴찌 혐오”의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상위에 위치한 이들에게 돈을 줄 수도 있다. : 어떤 이들이 그들 자신보다 가난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는 대신 “부자”에게 보상하는 것. [중략] 이 아이디어는 여론조사기관인 Pew가 미국에서 모은 설문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최저임금보다 약간 더 버는 이들이 그것을 높이는 것을 가장 반대한다.[Don’t look down]

일전에 어떤 경제학과 교수가 엉뚱한 사실을 근거로 “불편한 진실” 운운하며 엉뚱한 글을 쓴 적이 있었지만, 이 글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는 다른 어떤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왜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당을 지지하는지, 왜 부유세의 개념인 종합부동산세를 반대하는지, 왜 전면무상급식을 반대하는지 등등에 대한 대답 말이다.

물론 예로 든 역설적인 선택의 원인은 수많은 층위의 설명요소가 있을 것이다. 지역주의적 편견, 인종주의적 편견, 매스미디어의 프로파간다, 이념적 저항감 등등. 그렇지만 “꼴찌 혐오” 역시 이런 설명요소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왕에 경쟁에서 도태되었지만 꼴찌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오히려 보편타당한 복지에 반대할 개연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혜택이 통상 최하위 빈곤층에 집중된다는 점도 차상위 빈곤층에게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복지혜택을 위해 차라리 차상위의 지위를 포기하고 최하위로 내려가는 일도 있는데, 이런 사회현상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복지정책을 공격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차상위는 인용문의 주장처럼 복지혜택 일반을 포기하는 대신, 감세에 찬성하는 행태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꼴찌혐오”의 행동패턴이 실제로 얼마나 정책집행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좀 더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인간의 경제행위 동기를 “합리적 경제적 인간관”으로 단순화하여 바라보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설명력을 부여한다고 본다. “서민들이 우익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단초”란 글에서 보았던 비합리적인 인지행위만큼이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경제적 관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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