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또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현대사회에서 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보통 대의민주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라면 당연히 우리가 의회에 보낸 의원들이 만든다. 다만, 형식적 의미의 입법, 즉 법률제정은 의회만이 할 수 있지만, 실질적 의미의 입법은 의회만이 아니라 행정부나 법원과 같은 그 밖의 국가기관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어쨌든 입법행위는 국가라는 공적주체가 수행하는 행위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과연 현실이 그럴까?

ALEC은 무엇일까? 스스로 초당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그 조직은 익숙한 혐의자들인 코크스, 엑슨 모빌 등이 후원한 보수적인 활동 조직이다. 그러나 그런 유의 다른 그룹과 달리 이들은 단순히 입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입법자에게 완벽한 법률초안을 제공하는 등 문자 그대로 법을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에서는 ALEC이 쓴 50개 이상의 법안이 소개되었고 문구 하나 하나가 거의 적용되었다. 그리고 이런 법안들은 종종 법이 된다.[Lobbyists, Guns and Money]

미국이 “로비스트의 천국”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수많은 로비스트들은 그들이 대변하는 이해집단의 이익이 각종 제도, 특히 법률에 적용되도록 워싱턴 정가를 배회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런데 폴크루그먼이 소개하고 있는 ALEC은 이러한 수동적 역할을 뛰어넘어 법안 자체를 작성한다고 한다. 물론 FTA와 같은 무역협정에 기업이 직접 작성한 안이 쓰이기도 한다니 그리 놀랍지는 않다.

어쨌든 폴크루그먼의 고발에 따르면 ALEC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노조파괴, 환경기준 약화, 기업을 위한 세금면제”등이라고 한다. 이 단체가 스스로 주장하는 바의 그들의 목적은 “자유 시장, 제한적 정부, 연방주의, 그리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퍼슨주의자적인 원칙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이 문구를 읽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지만 반색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기 또 다른 입법과정을 보자.

베네수엘라의 외무장관 니콜라스 마두로는 이 나라의 노동법의 밑그림이 이제 거의 최종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확인했다. 대통령령으로 5월 1일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 노동법은 베네수엘라의 현존하는 고용법률을 철저히 점검한 것이며 출산휴가에서부터 직장 내의 조직화까지 모든 것을 포괄할 것이다.

“우린 권리, 안정성, 그리고 일할 권리를 보호할 법적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논쟁하고 있다… 노동법은 최고 단계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다.”

[중략]

현재까지 19,000 건이 넘는 제안이 위원회에 제출되었는데,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논쟁의 주요 논점은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적 복지뿐만 아니라 노동일, 생산의 사회적 관계의 재규정에 관련된 것들이다.[Drafting of New Venezuelan Labour Law Moves into Final Phase, Instrument for “Highest Stage of Socialism”]

베네수엘라에서의 소식이다. 새로운 노동법을 만들고 있는 중인데 입법과정에서 참여하고 있는 주체는 “노동자, 사회 집산체, 정치정당, 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미국도 (또는 우리나라도) 노동법 제정 및 개정에 노조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통로는 ALEC처럼 금권에 의한 입법 로비에 한정되어 있거나 (노사정위와 같은) 들러리적인 성격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쥔 이들이 공공연히 입법과 같은 권리의 공고화 과정을 주도한다. 노동자 계급이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어 노조가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입법 로비 집단의 소수에 머물고, 그 과정도 기득권자의 과정을 흉내 낼 뿐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처럼 거대조직 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도 합당한 경로를 통해 제안을 하고 입법과정에 반영된다면 그 또한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4 thoughts on “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또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1. daremighty

    미국이라는 곳의 입법 시스템 자체가 의회는 건전한 상식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의원)이 이해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내어놓는 다양한 의견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정리하는 방식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비스트는 합법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이 의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제공하는 경로라고 생각하고요. 로비스트가 제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들 입장이기는 하지만 의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fact’를 내어놓아야 합니다. 의원들이 직접 입법에 충분한 전문성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고, 의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책임하에 ‘판단’을 하고, 부족한 정보를 로비스트에게 요청합니다. 돈이 많은 자가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거짓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없는 구조고요.

    상식과 사회적 책임감에 기초하여 돌아가는 미국 시스템의 장점이 저는 꽤 놀랍고 부럽습니다.

    Reply
    1. sticky Post author

      물론 daremighty 님 말씀처럼 미국은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서도 입법과정이랄지 이를 감시하고 다듬는 과정이 가장 선진적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예전에 대법원의 판례 중 흥미로운 사례를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과정과 사회가 받아들이는 순발력과 역동성은 정말 놀랄 정도였지요) 문제는 정실 자본주의가 함께 발전하며 민주주의의 열매가 소수에 의해 과점되고 있는 현상이겠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하는지에 대해선 개개인별로 느끼는 정도는 틀릴 수 있겠지만요. 인용한 크루그먼의 칼럼 나머지에 보면 감옥의 민영화의 사례가 나오니 시간되시면 한번 읽어보시길. 마이클 무어의 <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를 글로 읽는 느낌이네요. 🙂

      Reply
  2. Pingback: foog.com » 어떤 법안의 입법 좌절에 대하여

  3. netj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를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한 Lawrence Lessig 하버드 법대 교수가 최근에 낸 The Republic: Lost를 보시면, 미국의 훌륭한 제도 하에 합리적이고 건전한 동기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역설적이게도 자본에 의해 체계적으로 부패하게 되는 과정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겉에서 보기엔 모든 면이 훌륭해보일지 모르나, 미국 내 일부 지식인들은 현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문제들이 많음을 지적하고 있더군요.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