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단상

“하우스푸어”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대중 다수가 가지는 – 특히 무주택자 – 당연한 정서지만 급진주의자라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도 부채를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의 희생자라는 견지다. 그들의 문제는 상투를 잡았다는 것일 뿐.

정책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게 무주택 빈곤자의 방치는 장기적인 사회비용 이외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하우스푸어를 내버려두면 부채의 질을 악화해 금융 시스템을 교란시킬 우려가 크다. 자의든 타의든 금융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투입규모나 로드맵을 볼 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규모도 작을뿐더러 결국 집주인이 집을 포기하는 셈이어서 한계에 몰린 이들만이 정책에 호응할 뿐이다. 결국, 정책효과가 크지 않은, 가진 자에 대한 구휼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 세기 전엔 정부도 절약을 강조했지만, 전후 케인스의 영향 등으로 개인도 빚을 얻고 신용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부채사회의 최대 비극은 2008년. 현 체제의 대안은 부채사회의 청산인데 그 경우 경제가 죽는 모순에 처해 있다는 점이 비극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정치권은 이념 성향을 가리지 않고 소유권 사회라는 기치로 매진해왔고 그 수단은 높은 레버리지 대출이었다. 그것은 ‘정부의 실패’가 아닌 ‘부채 사회의 실패’다.[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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