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영업자가 처해 있는 현실

필자는 홍대 정문 인근에 있는 건물 2층의 35평짜리 매장을 임대하는 데 보증금 7,000만 원에 월 374만 원(부가가치세와 관리비 포함)을 내야 했다. 보증금에 대한 이자까지 환산한다면 월 400만 원 정도를 임대료로 내고 있었던 것이다. 매출이 아무리 늘어도 550만 원 이상 나오지를 않았으니 돈이 모일 리 만무했다.[골목사장 분투기, 강도현, 2012년, 인카운터, pp34~35]

파생상품 트레이더라는 일자리를 박차고 나와 카페를 차렸던 저자의 체험기 중 일부다. 자영업자들을 “알래스카의 레밍떼”같다고 표현한 저자가 스스로 레밍이 되고나서 벌어진 결과다. 매출에서 임대료를 차감하면 150만 원이 남는데 그 돈으로 음식재료비에 직원 월급 주고 했다는 이야기인데 얼마나 궁핍한 비즈니스였을지 눈에 선하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자영업자들 대부분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한 가지 의문은 그런데도 왜 임대료가 내려가지 않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호황기에 오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있고, 정부가 이를 부추기고 있고, 자영업자는 계속 늘고 있으며, 지주 역시 은행에 대해 채무자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한 건물주는 20억 원대 상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월 1,000만 원이 넘는 임대료를 받아 거의 대부분을 은행 이자로 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은행과 협의해 건물을 은행에 넘기는 조건으로 모든 채무를 면제받았다. 허탈하기도 할 텐데 그는 “이제 빚 걱정 안 해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같은 책, p35]

결국 호황기에 지주가 되었든, 자영업자가 되었든 신용창출을 통해 인플레이션의 고속도로에 올라탔는데, 이제 그 도로가 정체 혹은 디플레이션의 구간으로 접어들었음에도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 패턴은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모든 지주에게 해당되지 않더라도 우리 부동산 시장에서 어느 정도 일반적 패턴이었음은 분명하다.

자영업자의 운영비를 살펴보면 임대료와 부채 원리금이 우선적으로 내야할 돈일 것이다. 카페를 하고 있다면 식재료비가 그 다음, 직원을 고용한다면 임금이 다음을 차지할 것이다. 임금수준은 “최저임금”이 기준이다. 자영업자가 한계상황에 몰린다면 최저임금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임금을 체불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7.2% 인상하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경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고 비판했다. [중략] 중기중앙회는 논평에서 “이번 최저임금 대폭인상은 임금의 지불 주체인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지적했다.[경총.중기중앙회 “최저임금 인상, 기업 현실 외면”, 연합뉴스, 2013.7.15]

즉, “자본가”라는 계급적 본질을 가진 자영업자는 “어려운 경영 현실”에 대해 금융자본이나 지주를 압박하지 않는다(또는 할 수 없다). 대신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정부의 정책을 압박함으로써 경영 효율을 꾀하려 할 때도 있다. 업주의 선의로만 해결할 수 없는 계급갈등의 최전선에 영세한 자영업자가 놓인 셈이다. 여러모로 불편한 자리다.

5 thoughts on “한국의 자영업자가 처해 있는 현실

  1. 흐음

    최저임금은 인권 일뿐 아니라 구조조정 성격도 갖는 거니까 낮추는 것은 반동이겠죠. 앞으로도 상승하는 건 어쩔 수 없고, 임대료가 자영업의 주적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전부터 유심히 해결책을 찾아봤는데, 딱히 형성되는 담론이 없더라고요. 그냥 요식, 단순서비스업, 좀더크게보면 고용 없는 성장을 탈피해서 사회서비스업이나 6T같은 신산업 내 일자리가 확대되고, 자영업으로의 지나친 유입이란 한국적 특수성을 해소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이지 싶어요. 시설의 수요과잉과 자영업의 공급과잉이 높은 임대료와 낮은 이윤의 본질적인 원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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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좋은 아이디어가 많군요. 사회서비스업의 활성화는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다만 그런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현재도 저임금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고 하니 그러한 현황도 개선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산 넘어 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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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공

    리카도가 생각나네요. 선의의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지주 개객기 이러는데 금융자본을 지주대신 쓰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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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icky

      당시 리카도가 “지주 개객끼”라고 했던 것은 조금 다른 맥락이 있었죠. 자본가 입장에선 대륙의 값싼 농산물을 들여와 노동임금, 즉 재생산비용을 낮춰야 하는데 지주가 장악한 의회는 곡물법을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자국의 비싼 농산물 소비를 강요해서 리카도가 열받은거랄 수 있겠네요. 현재의 자영업자에게 있어 지주와 금융자본은 대립해야할 주체라기보다는 일종의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수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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