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

상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이 내재한다.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서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모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동시에 추상적 일반적 노동으로서만 인정된다는 모순, 물건의 인격화와 인격의 물건화 사이의 대립, 상품변태 상의 대립들은 상품에 내재하는 이러한 대립과 모순이 전개된 운동형태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들은 공황의 可能性을, 그러나 단지 가능성만을 암시하고 있다. 이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품유통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온갖 조건들이 필요하다.[資本論 I(上), 칼 마르크스,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94년, p143]

기본적으로 칼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은 이렇게 하나의 사물에 존재하는 양면성, 그리고 그 사이의 대립과 모순이 가지는 역동성에 주목한다. 그 역동성을 사적 유물론에 적용하면 역사 발전법칙 일반이 된다. 크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특수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거나 붕괴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위 인용문은 상품이라는, 경제학에 있어서의 기초단위에 존재하는 이러한 모순들의 종류를 나열하고 있다. 특히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 사적 노동이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으로서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모순”이라는 표현은 결국 생산물이 시장에 나와서 판매가 되어야만 상품으로 인정받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가치가 商品體에서 金體로 건너뛰는 것은 상품의 결사적인 도약(salto mortale)”이다. 생산물이 화폐로 전환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반적 가치형태를 취하지 못하는데 그 인정을 받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어려운 과정이 공황을 예고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잘 알다시피 수많은 마케팅, 브랜딩 등을 통해 생산물을 알린다. 심지어 사기를 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류경제학에서는 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화하는 과정, 즉 시장에서 판매되고 구매하는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간주한다. 그 매개체는 ‘가격’이다. 판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보다 강하면 가격은 하락하고 반대의 경우 가격은 상승한다. 수요-공급 곡선은 아름다운 자정능력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다른 종류의 주장도 있다.

초보적인 평범한 것을 가지고 그처럼 굉장히 떠들어 대는 것은 경제학 이외의 다른 과학에서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면, J.B. 세이는, 상품이 생산물이라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해서 공황에 관하여 판단을 내리려고 덤벼든다.(그는 생산물과 생산물 사이의 교환을 전제로 과잉 생산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資本論 I(上), 칼 마르크스,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94년, pp143~144]

마르크스가 언급하고 있는 “세이”는 우리가 “세이의 법칙”으로 잘 알고 있는 그 세이다. 세이는 여러 상황을 관찰한 결과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법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소유한 뒤에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는 요지다.

그럴듯하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우리는 아이폰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폰이 나오자 우리는 눈을 뜨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왠지 성경말씀과 같은 분위기가…) 원시경제에서 양치기가 시장에서 사슴 털로 만든 코트를 보자 그 유용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양과 코트를 바꾸는 것도 같은 이치다. 시장은 새로이 창조된 사용가치를 확인하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단순히 새로이 창출되는 사용가치에 대한 수요자의 발견이나 가격의 등락만으로 수요-공급이 자연스럽게 조절된다고 당연시하는 것은 잘 알다시피 마르크스의 생각, 그리고 많은 시장비판론자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직선을 지구표면에 계속 그려 가면 그것은 곡선이 된다. 제한된 실험실의 표본도 거대한 실제 시장에서는 다르게 움직인다.

아이폰과 같은 킬러앱도 “결사적인 도약(salto mortale)”이 있었고 그 동안 수많은 동급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탈락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 석유와 같은 단일규모로 가장 큰 거래량을 차지하는 상품의 가격은 거의 수요-공급 곡선에 의해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전략적인 가격목표, 근래에는 선물시장에서의 거품수요에 따른 투기적 거래에 따라 등락한다.

어쩌면 생산물이 상품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의 그 여러 모순의 존재를 더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이들은 기업 그 자신이며, 특히 마케팅 담당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무지한 수요자들이 상품의 사용가치를 깨닫게 하기위해 생산물을 예쁘게 디자인하고, 수많은 광고를 만든다. “세이의 법칙”만 믿고 편하게 앉아 있는 이들은 없다.

한편 “결사적인 도약(salto mortale)”의 가장 극적인 경우는 바로 이번 신용위기를 초래한 주범 중 하나인 금융상품의 생산 및 유통과정이다. 처음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MBS가 그 사용가치를 수요자들로부터 인정받았다면, 그 뒤 MBS를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CDO, CDS와 같은 파생상품은 스스로가 ‘거대한 시장’ 그 자체를 창조하였다.

CDO, CDS 상품 판매자들은 시장참여자들의 리스크헤지에 대한 욕구를 긁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풀을 만든 후 그 헤지를 사들이는 대가로 상품을 팔았다. 나중에는 모기지라는 기초자산의 크기는 고려하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를 창조하여 과잉생산을 부추겼다.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공황의 可能性에 대한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세이의 “사람들은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주장을 변용해 말해보자면 금융파생상품 구매자들은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상품변태 상의 대립” 과정에서 추상적 일반적 노동 안에 실제로 특수한 구체적 노동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매우 미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공황의 가능성은 일시적인 시장안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각국 주요은행들은 금융파생상품의 거대한 재고를 재무제표에 먼지 쌓인 채로 덮어놓고 합당한 가격으로 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쌈짓돈으로 산 자석담요가 실제로 신경통을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고집 센 할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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