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관료의 죽음

문화 카테고리의 ‘영화’ 섹션 이름을 ‘진보와 영화’로 바꿨습니다. 이런 저런 영화를 닥치는대로 소개하는 것보다는 테마가 있는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테마를 ‘진보’로 택했습니다. 앞으로 나름대로의 역사의식과 진보적인 주제를 가진 영화를 위주로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필자 주)

영화를 즐겨보는 이들에게는 쿠바 혁명 직후 그곳에 남은 부르주아의 정신세계를 그린 “저개발의 기억”이라는 영화로 알려져 있는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 감독은 쿠바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혁명의 비판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면 모순 되는 그의 행태, 그리고 필르모그래피는 역설적으로 혁명이란 단순히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체제 내부의 적과의 투쟁이라는 사실을 그가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 개발의 기억”이 자신의 물적 토대와 다른 외부 상황에 혼란을 느끼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통해 한 개인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면 “어느 관료의 죽음”(1966년)은 반대로 한 노동자의 의식을 배반하고 있는 ‘노동자 국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어느 관료의 죽음”이 보여준 이런 과감한 관찰 시점 때문에 노동자 국가 쿠바에서는 상영 금지되었다 한다.

영화는 한 위대한 노동자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술가로서 프롤레타리아로서 위대한 삶을 살다간 한 노동자가 죽고 난 뒤 유족들은 국가에 연금을 신청한다. 하지만 공무원은 연금신청의 구비서류로 노동증을 요구하고 유족들은 뒤늦게 노동증을 시신과 함께 묻었음을 말하지만 공무원은 요지부동 노동증을 요구한다. 이후 죽은 노동자의 조카 후안신은 노동증을 찾기 위해 경직된 관료주의와 한판 싸움을 벌이게 된다.

사실 나는 주인공이 이렇듯 곤란에 빠지는 코미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자꾸 곤란에 빠지는 모습이 웃음보다는 연민을 자극 – 심지어는 짜증을 유발 –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체비 체이스 주연의 “휴가대소동(National Lampoon’s Vacation)”이 그런 류의 코미디이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재밌지 않았다.(예외가 있다면 “밥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About Bob?)” 정도?) 이 영화도 역시 그리 맘 편하게 보지는 못했다. 게다가 나름의 노동자 국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가 아닌가 말이다.

결국 내 마음의 갈등과 불편함을 견디고 끝까지 본 소감으로는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고 취향이 아닐지 몰라도 감독의 세계관이나 비판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독점재벌을 비판하면서도 부르주아적 삶을 만끽하는 예술창작집단의 매니저, 서류 한 장 발급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뺑뺑 돌아야하는 관료주의, 그 한편으로 관료주의를 박살내자며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복지부동 공무원들, 이 모두가 존재했던 사실이고 존재할지도 모르는 개연성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실에 안주해서 편한 창작활동을 펼쳐도 무방할 친체제적이지만 스스로 반골을 택한 알레아 감독의 캐릭터도 마음에 든다.

과거를 반추하여 미래를 되짚어 보는데 있어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누구를 위한 노동자 국가인가?”라는 것이다. 굳이 국가의 관료시스템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부닥치는 ‘목적과 수단의 전도’, ‘조직을 위한 조직’ 등의 풍경을 보면서 시스템과 함께 인간 스스로도 변하고 노력해야만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반(反) 자본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내에서는 아무리 인간이 변하여도, 또는 인간이 선하여도 모든 노동이 이윤의 획득으로 수렴되는 비인간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타파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또는 우리가 내놓아야 할 대안은 이윤이 아닌 다른 무엇이든 본래의 목적과 이상을 왜곡시키는 변질된 요소가 개입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관료주의일수도 있고, 개인 또는 국가의 이기심일수도 있고, 차별의식일수도 있다. 그 어느 것이건 간에 그 독소는 일회성(?) 혁명으로는 타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 강력히 시사하는 바이다.

5 thoughts on “어느 관료의 죽음

  1. 댕글댕글파파

    오랜만에 foog님 블로그에 왔는데 뭔가 바뀐듯 하네요^^
    영화에 대한 글도 올리셨군요. 처음 알았네요 -_-;;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시선으로 해석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관련 지식의 부제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런 영화평들을 보고서야 아~~ 이 장면이 그래서 이렇구나라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비온뒤라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한데도 기분은 상쾌하네요.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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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성격이 진득하질 못해서 늘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영화리뷰는 가끔씩 올릴려고요. 저라고 뭐 아는 게 있겠습니까만은 시간내서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두지 않으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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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ingback: 정이군의 시선 Blog Ver. 2

  3. foog

    ‘정이군의 시선’님 본문과 상관없는 트랙백입니다만 정치적 소수자 예우 차원에서 지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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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Aider

    안녕하세요?
    리뷰하신 어느 관료의 죽음을 다시 보고싶은데 영화를 구할 방법이 없네요..
    저는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생입니다.

    혹시 영화를 구할 방법을 알고 계시면
    염치 불구하고 좀 알려주실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불쌍한 영혼을 위하여 saider21@khu.ac.kr로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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