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퀴즈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 글은 어디에서 등장하는 글일까?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역이나 당신의 사업이 보호관세에 의해 원조 받고 있다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의 부를 감소시키고, 우리의 수입품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You may be cajoled into imagining that your own special trade or your own industry will be encouraged by a protective tariff, but it stands to reason that such legislation must in the long run keep away wealth from the country, diminish the value of our imports, and lower the general conditions of life in this land.”

Adam Smith 의 국부론? 아니다. 정답은  Arthur Conan Doyle 경이 1901년에서 1902년에 걸쳐 Strand 잡지에 기고하였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이다. 조금은 의외의 공간에서 만난 경제에 관한 글이다.

소설에서 이 글은 Times 신문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음울한 전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Henry Baskerville 경에게 배달된 익명의 경고장에 오려붙여진 단어들의 원 기사로 사용되었다. 정체모를 사람이 보내온 경고장은 다음과 같다.

“As you value your life or your reason keep away from the moor.”

이 문장을 보면 moor 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Sherlock Holmes 가 이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는 설정이다.

여하튼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경제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언급만을 한 채 다시 자신들의 관심사인 범죄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 장면은 그 당시 자본주의 최강국인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던 무역에 관한 논쟁들의 단편을 보여주는 풍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오랜 투쟁은 이 소설이 발표된 1900년 초입을 더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을 들 수 있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곡물규제는 마침 위의 소설이 발표되고 있던 시점인 1902년과 1932년에 다시 필요하게 되어, 1902년에는 수입 곡물과 밀가루에 최소한도의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932년에는 해외 수입의존도 증가를 우려하여 제정법으로 영국산 밀을 보호했다.

요컨대 이당시 보호무역주의는 명백히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폭거였다. 즉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치게 된다.(주1)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인 지주들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일종의 진보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곡물법의 폐지는 자본가 계급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p.s.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과 오늘 날의 주창자들의 다른 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사회주류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당시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제3계급으로 분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가 계급은 분명히 지배계급이다. 그리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닌 소농들이거나 기업농, 즉 또 다른 자본가계급이다. 요컨대 계급지형이 싹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 되면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겠다(maybe or maybe not).

 

(주1) 한편 맬서스는 리카도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농업의 보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늘날 농업보호를 위해 많이 주장되는 농업의 비교역적 조건, 즉 농업의 식량자원으로의 이용가능성을 들고 있다. 오늘 날에는 이에 덧붙여 농축산물의 위생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6 thoughts on “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1. 독자

    곡물법의 폐지 이후, 의회를 지배하고 있던 지주계급은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산업 부르주아지에게 복수를 했다지요? 두 계급의 치열한 투쟁 틈바구니에서 사안별로 이쪽저쪽을 오가면서 연대를 한 것이 노동자가 권익을 확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하는 글을 읽었었습니다.

    20세기 초반 까지의 중간계급이 산업 부르주아지 였다면 21세기 중간 계급은 (금융,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 이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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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빨간여우

    어느 문제이든지 계급문제에서 초입에 들어오든 성숙기를 가지던 사회주의보다 더한 헤게모니를 가질 수 밖에는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노동조합도 자본주의를 지키기위한 사회주의의 형태를 도입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자유무역론은 부르조아의 정치 입문을 더해 소위 자본 엘리트를 만드는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인 연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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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ickieferrante

    jackdawson 입니다. 저번에 제가 도메인을 하나 샀다고 했잖아요.
    이름을 바꿨습니다. NickieFerrante로요.

    주소도 http://www.nickieferrante.com입니다.
    아이디를 잠깐 설명하자면,
    영화 an affair to remember(1957)에서 캐리 그랜트의
    이름이지요. 잘생기고 바람둥이지만, 내면은 따뜻하고 멋있는…. ^^;;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질문 자주 던지겠습니다.
    항상 답변해주셔서 감사하고 있고요.

    그럼 번창하시고요.

    p.s 장하준의 나쁜사마리아 여인들이란 책을 샀는데,
    아직 게을러서 못 읽고 있습니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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