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다소 딱딱한 글만 연속으로 올린 것 같아서 분위기 전환으로 어릴 적 끼적거린 유치뽕짝의 단편 하나 올립니다.

김반장는 탁자위에 놓여진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맞은편에 앉은 가족들은 어수선한 표정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게 애초에 다 큰것이 혼자 나가 산다고 했을때부터 말렸어야지.]

가장인듯한 초로의 사나이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여인에게 벌컥 성을 냈다.

[지금 그런거 따질때가 아니잖아요.]

탁자옆에 서있던 25세쯤 되어보이는 삐쩍 마른 젊은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김반장옆에서 이들 가족을 쳐다보던 박형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자 상황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죠. 전화는 언제쯤 왔죠?]

[아까 오후 6시예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젊은이가 대답했다.

[전화해선 곧장 여동생을 데리고 있으니 천만원을 준비하라고 했단 말이죠?]

[네. 혜정이의 이름을 거침없이 불렀어요. 혜정이라고.]

[면식범일 가능성이 있군.]

박형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화통화하면서 이상한 점은 없었나요?]

잠자코 앉아 있던 김반장이 끼어들었다. 박형사보다 늦게 도착한 관계로 김반장은 다소 어수선했다.

[다 이상하죠. 새벽 3시에 공원으로 나오라는거 하며 노란 파커를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라는거 하며….]

[그거 참.]

김반장은 소파뒤로 고개를 한껏 젖힌채 천장을 응시하며 탄식을 질렀다. 흘릴 눈물도 말라버린듯한 건조한 눈의 어머니는 애원하는 듯한 눈초리로 김반장을 응시했다.

[전화는 공중전화같던가요?]

[아뇨. 핸드폰같았어요.]

[여동생은 전화를 안받던가요?]

[네 계속 안 받아요. 어쩌면 그녀석이 혜정이의 핸드폰을 이용하고 있겠죠.]

[그럴 가능성이 높군요. 다시 전화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니 발신자 추적도 어렵고…]

김반장은 힐끗 박형사를 쳐다보았다. 나이는 그보다 위지만 실력 탓인지 그의 하급자인 초라한 박형사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짜증이 났다.

[어떻게 할까요 박형사님?]

[일단 범인의 요구대로 이 젊은이가 공원에 나가고 우리가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뻔한 답이다. 그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김반장은 얼른 이 지루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최종정리를 했다.

[박형사의 말대로 그 도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은 마음 놓으시고 좀 쉬시지요. 그리고 젊은이는 오늘 수고좀 해줌세.]

[네.]

수심에 가득찬 부모와 달리 의외로 담담한 젊은이는 선뜻 대답했다.

[자식이 왜 하필 새벽 3시야. 귀찮게스리]

새벽의 잠복근무가 귀찮은지 집을 나서던 박형사가 불쑥 내뱉었다. 김반장은 그런 박형사를 쳐다보며 ‘그러니 승진이 안되지’하고 속으로 빈정거렸다.

김반장은 강력반원 다섯명을 12시부터 일찌감치 공원 곳곳에 배치시켰다. 크지 않은 동네공원인탓에 인적은 거의 없었다. 애써 몸을 감추느라 외진 나무숲속에 숨어있자니 숨통이 막혀오는듯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유괴범때문에 담배도 피우지 못해 답답할 지경이었다. 하릴없이 기다리자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다들었다.

‘천만원이라니 너무 적은 액수아닌가?’

‘노란 파커에 모자를 쓰라?’

김반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핸드폰으로 유괴당한 혜정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한참이나 신호가 갔는데도 받지 않았다. ‘역시 안받는군’하며 전화를 끊은 김반장은 다시 ‘이놈의 핸드폰때문에 세상이 더 골치 아파졌어’라고 뇌까렸다.

새벽 2시 30분이었다. 때때로 상황을 체크하던 김반장은 혜정의 오빠와 함께 있는 이형사를 무전기로 불렀다.

[이형사 오빠를 보내라 오버.]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보내겠습니다 오버.]

칙칙거리는 무전기소음사이로 이형사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원 입구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노란파커에 빨간 캡을 쓴 모양이 혜정의 오빠였다. 혜정의 오빠는 다소 뻣뻣하게 걸어오더니 약속장소인 벤취앞에 서있었다.

긴장된 침묵이 흘러 어느덧 2시 43분이 되어가던 즈음 일이 터졌다. 벤취 뒤에 있던 수풀사이로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혜정의 오빠를 무언가로 찌르는 것이었다. 혜정의 오빠는 힘없이 쓰러졌다. 김반장은 급박스런 사태에 당황하며 급히 무전기로 잠복요원들을 불렀다.

[사태발생! 사태발생!]

그말을 외치며 김반장이 뛰쳐 나갔다. 그림자는 수풀속에서 뛰쳐나오는 형사들을 보더니 황급히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거기 서!]

김반장이 앞서 뛰어가는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림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성이 들렸다. 김반장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박형사가 하늘에 대고 총을 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박형사 안돼 쏘지마.]

그림자는 하늘의 총성에 더욱 두려움을 느꼈는지 더 속도를 냈다.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리고 그림자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림자가 누워있는 곳에 도착한 김반장은 숨을 헐떡이며 급히 그림자의 몸을 살폈다. 총알은 정통으로 가슴을 관통했다. 비참한 노릇이다. 못난 하급직원때문에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뒤따라 오던 박형사역시 헐떡거리면서 김반장이 앉아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게 뭐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김반장은 울컥하는 마음에 연장자인 박형사를 다그쳤다. 박형사는 난감한 표정과 울먹거리는 표정이 교차하는 기묘한 얼굴을 하며 김반장을 쳐다보았다.

그날 아침 아홉시 김반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팔에 기댄채 그의 책상에 앉아있었다. 혜정의 오빠도 죽고 용의자도 죽었다. 시말서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때 사무실로 이형사가 들어왔다.

[반장님 죽은 녀석의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말해보게.]

[이름은 김지원. 유괴된 이혜정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녀석입니다. 주변사람말로는 소위 캠퍼스커플이라더군요.]

[캠퍼스커플? 애인사이란 말이지?]

[네.]

[그 녀석 주위를 샅샅이 뒤져봐. 그리고 이혜정의 핸드폰은 발견됐나?]

[아니요. 가지고 있지 않던데요? 김지원의 핸드폰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 녀석 아예 이혜정의 오빠를 죽일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목장갑을 끼고 있던걸 보면…]

[흐음…]

알 수 없는 용의자의 행태에 김반장은 다시 머리를 감싸쥐었다. 왜 돈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만 죽였을까?

그날 오후 김반장은 서장실에 불려가 한바탕 혼쭐이 났다. 거기에다 경찰서에 들이닥친 혜정의 부모로부터 모멸찬 멸시까지 받아야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하루였다. 그러나 다음날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듯한 단서가 발견됐다.

죽은 김지원의 주위를 수사하던 이형사가 김지원이 몰던 차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김지원은 혜정의 오빠가 유괴소식 전화를 받던 전날 저녁에 차를 정비센터에 맡겼다. 정비센터를 찾아간 이형사는 정비사로부터 다소 당황한 표정의 김지원이 라이트프라스틱이 깨진 차를 맡겼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 아마도 이혜정을 – 친 김지원이 사고를 숨기기 위해 차를 정비센터에 맡겼을거라는 추리를 한 이형사가 김지원의 부모로부터 김지원이 군에 있는 친구의 면회를 갔다가 전날 저녁 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는 증언을 받아냈다.이형사로부터 이 보고를 받은 김반장은 한숨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군부대에서 집까지 오는 사이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거군.]

[그렇다고 봐야지만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알 수가 없잖습니까?]

[으음…]

김반장은 다시 한번 멍청한 짓을 저질러 버린 박형사가 원망스러웠다. 곰곰히 생각해보던 김반장은 결국 우연히 이혜정을 치어버린 김지원이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혜정의 집에 딸을 유괴했다고 헛소리를 하고는 그의 오빠까지 죽여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후 또하나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이혜정이 발견된 것이다. 국도변 수풀속에서 싸늘히 식은 시체로… 그 국도는 김지원이 면회갔다는 군부대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국도였다. 시체를 검시한 의사는 이혜정의 직접적인 사인이 교통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라 도로 바깥으로 튀겨나가 넘어지면서 돌에 머리를 부딪혀서 생긴 뇌진탕이라고 결론내렸다.

쌀쌀한 오후 김반장은 책상에 앉아 사건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에 다소 느긋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김지원의 행동에 아직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이혜정의 핸드폰은 어디있는걸까? 김지원이 내버렸나?’

김반장은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수화기를 들고 이제 머리속에 박혀버린 이혜정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뚜우 뚜우 신호가 갔다. 서너번쯤 울렸을때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김반장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김반장은 급히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이형사를 향해 외쳤다.

[이형사 내 전화가 어디로 신호가는지 발신지 추적해.]

역시 느긋한 자세로 앉아있던 이형사는 갑작스런 김반장의 명령에 급히 몸을 일으켜 추적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 건너방으로 건너갔다. 건너방으로 건너간 이형사를 쳐다보던 김반장이 다시 수화기에 급히 입을 댓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방이 대답했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 목소리였다.

[그거 이혜정씨 핸드폰 아닌가요?]

[맞는데요?]

천연덕스럽게 상대방이 대답했다.

[전화받은 분은 누구시죠?]

[하하… 김반장님이신가요? 저는 이혜정과 친한 사이입니다.]

김반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대방이 마치 그를 바라보며 통화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당신 누구요. 어떻게 나를…]

[으음.. 그건 알 필요없고요. 마침 전화하신김에 김반장님의 의문사항을 풀어드리죠. 왜 김지원이 이혜정의 오빠를 죽였는지 궁금하시죠?]

[….]

넋이 나간 김반장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원래 이혜정은 제 여자였지요. 그년이 인정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혜정이 김지원과 놀아나기 시작한 이후로 저는 지옥의 나날이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죠. 그래서 제가 혜정이한테 선물을 하나 하기로 했죠. 손수건을요. 음… 포르말린액을 약간 묻힌..아무튼 손수건을 선물한 날 저는 잠든 혜정이를 제차 뒤에 태운 채 제 아지트로 가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고 있는데 혜정이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더군요. 너무나 요란하게 울려 귀찮아서 차를 도로위에서 세워야 했죠. 전화한 녀석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줄 요량으로요.]

거기까지 말한 상대방은 숨을 고를 요량인지 잠시 말을 끊었다.

[다시 이야기해드릴까요?]

넋이 나간 채 듣고 있던 김반장은 서둘러 대답했다.

[말해봐.]

[음… 말끝이 짧으시네요. 아무튼 전화를 받으려고 차를 세우고 뒷좌석으로 가고 있는데 이년이 잠든척하고 있다가 갑자기 반대편 문을 열고 뛰쳐나가더라고요. 그러더니 맞은편에서 오던 차를 향해 미친 듯이 손을 흔들더군요. 근데 이차가 그냥 혜정이를 지나치려 했고 피하려던 혜정이는 안타깝게도 그 차에 치이더니 도로 바깥으로 튀어나가더군요. 그 차가 누구차인지 아십니까?]

[김지원의?]

김반장이 대답했다.

[역시 강력계 반장다우시군요. 사실 제가 눈이 좀 밝은데 그 멍청한 녀석의 얼굴이 눈에 금방 띄더군요. 근데 한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는 거예요. 그 멍청한 녀석이 바로 혜정이한테 전화를 걸어 날 귀찮게 하던 녀석이죠. 지 애인한테 전화하다 부주의로 제 차로 지 애인을 죽이다니 멍청한 녀석.]

김반장은 어이없는 상대방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날 오후 아지트로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 녀석 도대체 맘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우선 혜정의 집에 전화를 걸었죠. 메모리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혜정이를 유괴했으니 노란파커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공원에 나와있으라고 이르고는 김지원한테 전화를 걸어 내가 혜정이를 죽였는데 너도 죽여주겠으니 공원으로 나오라고 했죠. 그리고 친절하게 내가 입을 옷차림도 알려줬죠.]

[반장님. 바로 경찰서 앞입니다.]

급히 이형사가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빨리 나가봐.]

김반장은 급히 수화기를 막으며 소리치고는 다시 수화기를 가까이 댔다.

[하하하… 김반장님 절 잡으실 모양인데 무슨 죄로 잡아넣을 작정입니까?

살인죄? 유괴범? 아니면 공갈범? 글쎄요. 어렵네요.]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김반장은 급히 사무실을 나서 경찰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김반장이 발견한건 황당한 표정으로 이혜정의 핸드폰을 들고 서있는 이형사뿐이었다.

3 thoughts on “핸드폰

    1. foog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써놓고도 다시 읽어보니 혐의가 충분한 놈이네요. 이런 걸 글이라고 쓴 제가 한심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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