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치의 맛 (秋刀魚の味, 1962)

그 유명한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를 본 건 이 작품이 유일하다. 죽기 전에 꼭 봐야 되는 영화란 없는 법이니 “누구누구의 영화를 여태 못 봤네” 라고 새삼 떠들어댈 필요는 없으나 이른바 그의 최고 걸작이라는 ‘동경이야기’를 건너뛰고 ‘꽁치의 맛’을 본 것이니 만큼, 그 감상은 그 감독에 대해 종합적이기보다는 ‘꽁치’ 한 마리만의 맛에 대한 감상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해둔다.

이 영화의 작품은 마치 영어 제목처럼 가을 오후 어느 평범한 일본인 가정에 몰래 들어가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것은 극적갈등 없이 – 그 갈등이랬자 시집가기 싫다는 딸의 푸념인데 보통 영화들의 갈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 잔잔한 일상을 편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 유명한 ‘다다미샷’ 이 시종일관 사람머리보다 낮은 위치에서 미동도 않은 채 풍경을 잡아내고 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남의 집 복도 한편에서 몰래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듯하면서도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혼기가 찬 딸과 딸을 시집보내려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벌어질법한 소재들이기는 하나 그 사건들안에서 실제 일어날법한 갈등이 극중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는 너무 인자하고 딸은 너무 야무지다. 심지어 딸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미우라가 다른 애인이 있음을 알자 미련 없이 포기해버리고 만다. 마치 예전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보통사람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 많은 대가족이 아무런 갈등도 없이 사이좋게 사는 그런 상황설정이었는데 절대 보통사람들의 가족이 아니었다.

영화 말미에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외로움을 되뇐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옛 전우를 만난 ‘Torys 빠’에서 들은 군가. 자칫하면 아슬아슬하게 전범으로까지 몰릴 수 있는 함장의 위치까지 올라갔었던 ‘인자한’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전성기였던 그 시절이 덧없이 흘러갔음에 눈물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폭력의 역사마저 한 개인의 추억으로 남게 되는 나약하고도 모순된 감정. 영화는 물론 그러한 편리한 감정치환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하는지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옛 전우의 입을 통해 미국이 이기는 통에 요즘 젊은 애들이 미국 흉내를 낸다고 불평할 뿐이다. 패전의 역사적 교훈은 아들딸에게 대물림되지 않고 늙은이들의 푸념이나 추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한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혼인을 맺는 전후 과도기를 잔잔히 그린 이 작품이 단순히 한 가족의 아름다운 일상을 그린 드라마가 아니라 일본역사의 세대간 단절감과 새로운 도약에 관한 은유라고 간주한다면 – 완전히 그런 느낌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군가와 옛 전우의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기 때문이다 –  적어도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옛 세대들은 너무 무책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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