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쟁력 순위’ 보고서에 관해

우리나라 언론들이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해외기관의 보고서가 하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IMD)이라는 학술 기관이1 1980년부터 해마다 발표하는 ‘국제 경쟁력 순위(World Competitiveness Ranking)’ 보고서가 그것이다. IMD는 이번 달에도 2005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했고 언론들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앞 다투어 전달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국가경쟁력 순위가 작년 20위에서 27위로 “추락”했다고 해서 대통령실까지 대책을 언급할 만큼 더욱 호들갑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내용이나 순위에 대해 일부 참고할 바는 있겠으나 이렇게까지 우리가 IMD가 매긴 순위에 대해 민감해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는 이미 이 블로그에서 17년 전에도 지적한바 있다. 당시 인용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IMD의 분석은 “모든 지수가 약 50% 이상을 설문조사에 의존하고 있고, 주된 응답자인 기업 경영자들의 자국의 사업 환경에 대한 인식이 결과에 크게 작용해 경쟁력 순위를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순위를 매기는 기준에 사회 전반의 시각이 아닌 자본 측의 주관성이 상당히 개입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의 시각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우리나라의 위치를 가늠하겠다고 한다면야 말릴 이유는 없다. 대통령실도 “체계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문제는 매체가 이 사안을 보도할 때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보고서에 얹어 아전인수 보도를 하는 경우다. 예로 한국경제는 ‘대만·중국에도 한참 밀렸다…한국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매일경제는 기업경쟁력 하락 이유를 한 경제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중대재해처벌법 등 각종 규제가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MD 국가경쟁력 한국 순위변화 추이 [출처 : 기획재정부]

한국의 순위는 매년 20위권에서 등락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역대 최악의 상황’이라 했는데 순위로 보자면 2023년이 28위로 올해보다 더 낮았다. 대만과 중국에 밀렸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나 일본보다는 앞선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다. 더 악랄한 것은 매일경제인데 IMD 보고서를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경쟁력을 해친다는 주장’의 불쏘시개로 삼았다는 점이다.2 해당 법이 생긴 원인이 되는 기업인 태안화력과 악명 높은 SPC에서 최근 또 노동자가 사망한 시점이다. 야만적인 노동여건 개선을 위한 법이 기업경쟁력 저하의 원인일 수는 없다.

보고서 요약본 마지막장에 전략적 책무들(strategic imperatives)이라는 제목으로 경쟁력 유지를 위해 유년해야 할 사항이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리더십은 공황에 빠진 비용 절감이나 마비에 저항해야 한다.(Leadership must resist panic-driven cost-cutting or paralysis.)”는 대목이 있다. ‘공황에 빠진 비용 절감’은 무엇일까? 단기적인 재무적 성과를 위해 노동자 안전보호를 무시하는 기업의 행태가 그런 예일 것이다. 안전불감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업경쟁력은 아동노동과 노예노동이 합법적이던 시절의 기업경쟁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1. 그 기원을 보면 광산/알미늄 제조 기업인 알칸(Alkan)과 다국적 식품 기업 네슬러(Nestlé)가 각각 세운 기관이 합해져서 만들어졌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친기업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
  2. IMD 보고서를 국내 노동억압의 불쏘시개로 썼던 또 다른 사례는 이 글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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