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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과 자유무역

애플(Apple)사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아이폰(iPhone)이 국내에 들어오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말이 많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성격이 강한 한국인들을 – 적어도 아이폰에 있어서만큼은 – 레이트어답터(late adopter)로 만들어버린 아이폰의 출시지연에 대해 많은 이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고, 초조해하고 있다.

왜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중 한 기종에 불과한 아이폰의 국내출시에 애달파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적 분석은 이미 많은 테크블로거들이 해주셨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주1) 다만 이 글에서는 아이폰이 가지는 경제적 의미, 그 중에서도 이른바 자유무역이라는 관점에서의 아이폰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말해두자면 나는 ‘자유무역’ 반대론자가 아니다. 이 블로그에서의 나의 주장은 다만 현실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자유스럽지 못한 자유무역’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즉, 주류 측에서 경제적 효용이 계급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  현실 세계의 자유무역이 실제로는 특정 계급, 특정 국가에게만 이로울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일 뿐이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그렇다면 아이폰이 자유무역 경로를 통한 국내시장 접근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일까?(주2) 기술 문외한이지만 그동안 주워들은 정보를 근거로 바라보건데 아이폰은 국내 이동통신 기기 시장에 전자의 효과를 가져다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즉, 아이폰의 도입은 무선인터넷 등 데이터이용 등에 있어 독점을 행사하려는 국내 이동통신사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바 그동안 국내 이통사는 사실상 과점의 상태에서 기기 공급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전 세계적인 통신의 대세와는 역행하는 시장 환경을 강요하여 왔다는 심증도 있다. 즉 통신망이라는 소프트 성격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이통사는 하드웨어 공급자들인 기기 제조업체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서 그 스펙을 조정해오고 있다는 의심이 짙다는 이야기다.

국내 출시 모델은 무선인터넷 `와이파이(WiFi)`가 빠지고 멀티태스킹을 지원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성능도 제트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특히 와이파이가 빠진 것을 두고 이통사들이 무선 인터넷 사용이 줄어들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통사 관계자는 “고성능 CPU에 3.5인치 대화면, 와이파이 기능 등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간다”며 “이통사가 원해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살 수 있는 폰을 내놓기 위해 제조업체 스스로 기능을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삼성 `제트` 한국선 못사…인터넷ㆍCPU 기능 조정]

이통사 관계자는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서 소비자가 살 수 없는 폰이 된다는” 논리인데 그럼 서구에서는 왜 그런 몹쓸 폰을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소니 에릭슨은 왜 국내출시된 엑스페리아에 와이파이 기능을 추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실상은 “와이파이 칩셋을 집어넣으려면 몇백원 수준이면 가능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관련글 보기)이라는 데 왜 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지도 궁금하다. 결국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곳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기능과 이통사가 가격을 부과하고 있는 데이터통신과의 마찰이 더 설득력 있는 와이파이 기능 삭제의 논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로서는 전 세계 같은 스펙으로 통일하여 출시된다는 아이폰이 – 다만 오늘 중국에서는 아이폰도 와이파이를 빼기로 했다는 슬픈 소식이 – 그 협상력을 기반으로 국내 이통사들의 (삼성전자도 못 깨는) 통신독점을 깨버린다면 피동적이기는 하나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범위가 더 넓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그 과정에서 애플에 의한 새로운 독점이 아이폰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효과는 제켜두고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19세기 초중반 영국경제의 핫이슈였던 ‘곡물법’ 논쟁을 연상시킨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신흥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고용인인 노동자들이 비싼 식료품비로 인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항하여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등 명망가를 동원하여 이 법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이 법은 1846년 폐지된다. 어쨌든 자본가들은 그들이 원했던 산업경쟁력 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고, 소비자들인 노동자 계급 역시 소비부담을 덜게 되어 지주를 제외한 모두에게 이득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시도는 수구계급인 지주에 대항한 혁신 주도계급 부르주아에 의한 진보였다.

이제 이런 역사적 경험을 현재의 아이폰 해프닝에 빗대어보자. 굳이 비교해보자면 이통사를 지주계급, 애플을 외국 곡물업자, 이통사의 서비스를 영국산 곡물, 아이폰을 외국산 곡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이점은 국내 소비자들의 통신비 등 생계비용으로 인해 임금상승 압박을 받는 국내 고용주들(빗대자면 영국의 부르주아들)과 국내 이통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곡물법이 없다는 점이다.(주3) 또한 이통사의 서비스와 아이폰이 곡물들처럼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주4)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결국 곡물법의 폐지가 영국의 지주층을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처럼 아이폰의 도입이 국내 이통사를 제외한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가 될 개연성이 높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이통사가 배타적으로 누리던 주파수 독점에 작은 균열을 일으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서로 챙길 것 챙겨가면서 말이다. 물론 그 전제는 과연 애플사가 스스로 또 하나의 독점공급업자가 되어 데이터이용료 등에서 전횡을 부리지 않는 구도를 만든다는 전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은 분명 잘만 작동하면 혁신을 전 세계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파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사례에서는 또한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우수성 뿐 아니라, 그것에 덧붙여 앱스토어라는 멋진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함께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기회를 가지게 되고, 이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향유할 수 있는 시장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교훈도 안겨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MP3의 출현을 물리적으로 막으려 한 기업보다 그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이 오래 살아남았던 사례의 재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소비자의 선택범위 확대, 저렴한 비용 등의 동일한 논리가 얼마 전에 다른 상품에 적용된 사례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 문제였다. 이 사태에서는 분명 소비자 상당수가 저렴한 비용의 쇠고기보다는 불특정다수에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적은 확률의 광우병이라는 사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사례다. 앞서 글 “공공의 정신(public-spiritedness)”에서처럼 불특정다수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다수의 경제적 효용을 압도할 뻔했던 – 그리고 정부에 의해 진압 당했던 – 사례다.

따라서 자유무역을 통해 혁신전파 또는 경제적 혜택이 가지는 효용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것도 무리가 있음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자유무역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상품이나 용역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층의 선택권과 접근경로가 진정으로 자유로울 때만이 올바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해당 업체, 전문가, 그리고 당사자 국가에서 그러한 소비자 선택의 기반이 되는 정보제공을 게을리 하거나, 심지어 왜곡할 때는 그 자유는 일방적인 자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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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아이폰을 기다리는 이유는 기존에 써오던 육중한 아이팟과 휴대전화를 한 기기에 쓸 수 있다는 작음 바람 때문일 따름이다

(주2) 계급무차별적일까 계급차별적일까 하는 의문은 우선 접어두도록 하겠다. 기술에 대한 습득의 계급차별적 효과를 논하는 이들도 있으나 적어도 휴대전화에 있어서 그 차별성은 이용가격에 의한 차별보다는 주로 능동적 선택군과 수동적 선택군의 차이에 의해 나뉘어 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3) 전자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 어떤 면에서는 이 역할을 KT가 하고 있고 – 후자는 진입장벽을 높이는 기능을 하는데 이 규제가 없다는 점이 아이폰에게는 호재라 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곡물법에 상응하는 또는 더 높은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통사의 사업권에 의한 주파수 독점일 것이다.

(주4) 이 또한 곡물법 상황보다 좋은 여건이다

부동산과 곡물법

tomahawk님 왈. “지금 사람들은 원래 땅파는게 취미였다 치더라도… 전에 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미련을 못버렸을까요” 라는 댓글을 보고 또 문득 생각나는 글이 있다. 참여정부 초기 그들의 부동산 철학의 단편을 살펴보고 적은 단상이다. 참고하시길.

부동산과 관련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집이나 땅이 거주나 생산적인 경제활동과 거리가 먼 투기를 통한 자산증식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특히 부동산 투기로 집값이 오르게 되면 당장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비가 오르게 되고, 이는 집 없는 사람들의 내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과 근로의욕 상실, 상대적 위화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또한 전세값이나 집값이 오르게 되면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져 경제의 경쟁력 저하요인이 되는 등 그 부작용이 매우 큽니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코자 하는 것입니다. [머니투데이, 2003.12.08, 盧 “성장잠재력 붕괴 없다” 중에서]

참여정부의 수반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에 대한 인식이다. 일단 그의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부동산 안정화에 대한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그의 부동산 대책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통한 사회안정이나 약자보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집값 안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 내지는 임금상승 욕구 억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의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라보면서 엉뚱하게도 바다 건너 영국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곡물법’이 떠올랐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David Ricardo)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리카도는 이 법을 그토록 반대하였을까? 그의 주장은 무엇보다도 곡물법은 그의 자유무역 신념에 위배되는 악법이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거니와 그와 맞물려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부동산에 관한 언급에서 리카도의 논리가 부활하고 있음을 본다.

‘집값이 오르게 되면 이것이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져 경제의 경쟁력 저하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집값이 안정(또는 하락)되어야 한다.

여기서 잠시 곡물법의 경우와 부동산의 경우의 중요한 차이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무엇보다도 이해집단에서 차이가 난다. 곡물법 경우에는 여전히 막강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 안 있어 역사 속으로 퇴장할 지주계급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다른 계급과 열매를 향유할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이해집단이 좀더 복잡하다. 우선 비업무용 부동산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이 그 정점에 있다. 지난 세기 그들의 선배들이 반대했던 토지를 통한 불로소득은 오늘날의 자본가 계급에게는 알짜배기 수익원이다. 또한 병렬선상에 건설자본과 부동산 재벌이 있다. 이들은 부동산 생애주기의 흐름과 법과 제도의 맹점을 활용하여 단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다음으로 먹이사슬의 하층부에 자리한 쁘띠부르조아들이 있다. 이들은 부동산을 재산증식수단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재산을 불림으로써 부도덕한 체제에 기꺼이 포섭되었다.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에서 확인한 바, 대다수의 부동산 관련 관료들이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들은 체제포섭된 쁘띠부르조아의 대표적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배계급의 부동산 안정화 논리는 더할 나위 없이 단순 명쾌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명쾌한 논리로도 풀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가 존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저항은 그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고 다양한 계층의 성향을 띠는 것만큼이나 의회에서뿐만 아니라 행정부, 지방자치제, 언론 등 다방면에서 진행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수도권 개발부담금 제도가 폐지됨으로써 명맥만 유지해오던 토지공개념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서울시가 각 구청의 반발이 심하다는 이유로 정부에게 부동산 보유 재산세율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의 지역범위도 대도시에 국한시키겠다고 한다. 경제신문들은 정부의 부동산 안정의지를 기사화 하는 한편으로 기획기사를 통해 은근히 부동산 경기가 곧 살아날 것이라고 부추긴다. 한겨레21 최근호가 ‘부동산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한 현재의 국면에서 만만찮은 저항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토지의 공유화를 통한 사회정의를 추구했던 헨리조지의 추종자가 청와대 정책실장을 차지하고 있다. 빈민운동을 했던 이는 청와대 비서관이다. 이들은 한겨레21이 부동산 전쟁의 ‘5인의 주역’으로 지목한 이들에 속해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잘한 일은 부동산 정책이라는 설문조사도 발표되었다. 현재까지는 그런 대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항은 만만치 않다.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이 곡물법을 폐지시키는 데에 30여 년이 걸렸다. 우리는 해방이후 지속되어온 이 부동산 투전판이 언제 끝날지 감도 잡을 수 없다. 자유주의 정권의 역사가 짧은 만큼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선배 자유주의자 만큼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동산 폭등은 곡물법이 그러했던 것처럼 경쟁력 저하의 요인이 된다는 꼭 그 논리만큼이라도 관철시키기를 바란다.

그 후에 진보세력은 그 철학과 집행수단에서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잡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사태에 대해

요즘 한미 간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 없는 개방을 합의한 일로 말미암아 민심이반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블로고스피어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특히 이러한 현상이 심한 것 같은데 벌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원에 서명한 사람이 수십만에 달하고 있다 한다. 주요 신문에서 계속하여 중계보도 하듯이 기사로 삼을 정도다.

뭐 이 블로그가 특별할 것도 없지만 평소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지라 한두 마디 끼적거릴까 해도 솔직히 지금은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 문제에 대해 글을 진지하게 적자고 하면 건드려야 할 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무작위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문명의 발달과 육식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그것의 정당성’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단위면적당 곡물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육식이 ‘자본주의적인 평등 확산’(주1) 현상에 따라 더욱 확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생산성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집단사육, 항생제 투여, 동물사료 배식 등의 시도가 오늘날의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

‘식량안전망’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만 막으면 우리는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인가? 한국산 소는 절대 안전한가? 이러한 고민 하에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시 일본산 소를 전수조사 하였다 한다. 그렇다고 광우병 걸리지 않은 소는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 항생제 투여는 면죄부가 발급되는가? 결국 이러한 고민의 해결책이 유기농 작물 등에 대한 ‘근거리 농업 네트웍’(주2)을 통한 소비일 것이다.(주3)

‘근거리 농업 네트웍’이 형성되어야 하는 논거에는 가까워서 믿을 만 하다라는 것보다는 가까우니 그나마 믿을 만 하다는 논리이다. 공산품이야 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환경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데(주4) 농수축산물은 근대에 들어와서 환경문제가 전면에 개입하게 된다. 이점이 이전의 고전경제학파들이 주장하는 자유무역의 우월성을 격파하는 무기가 된다. 소위 비교역적 품목(non-trade concerns)론이 그것이다. 쉬운 예로 리카도가 곡물법 폐지를 주장하던 당시 유럽 내륙의 곡물이 유전자 조작 곡물이었다면 그는 법의 폐지 주장을 재고하였을 것 아니냐 이거다. 요컨대 ‘자유무역에 있어서 농수축산물의 예외성 인정’에 관한 문제다.

두서없이 늘어놓았는데 요컨대 쇠고기 개방 문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다. 그것은 자유무역의 부작용, 식량의 생산과 소비 체계의 부조화, 육식 소비로 인한 환경적 재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소비불평등 등 여러 근본적이고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이 미제국주의의 실체를 두드러지게 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두드러지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자칫 일부에서 보이는 이명박 정부를 절대악으로 상정하는 저항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도 있지 않은가 우려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나 스스로도 나의 식습관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나 스스로도 상당히 먹거리를 개념 없이 소비하는 멍청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내 입속으로 들어가고 내 살이 될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것이므로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p.s. 시위 현장에 대한 사진을 봤는데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는 퍼포먼스를 봤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아니 한우를 잡아먹을거면서 ‘한우를 살려주세요’라니??!!

함께 읽어볼 글 : ‘광우병 정국’ 단상, 국민이 몰랐던 네 가지 진실

(주1) 자본주의라고 불평등만 조장하라는 법은 없고 중국과 인도의 하등인종들도 돈만 있으면 제1세계의 백인들이 누리는 식생활과 문화생활을 누릴 자격이 어느 정도 생기는 것이 자본주의적인 평등이라 하겠다. 이건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2) 이것도 그냥 내가 임의로 만든 표현이다.

(주3) 문제는 이런 대안이 집단적인 생활협동조합 등 건전한 소비자 운동으로 승화될 수도 있고 소위 럭셔리한 organic shop에서의 과시적 소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

(주4) 극적인 예외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미국에 수출된 중국산 아동용 장난감이 환경적으로 유해하여 대규모로 리콜된 사례가 그것이다

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퀴즈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 글은 어디에서 등장하는 글일까?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역이나 당신의 사업이 보호관세에 의해 원조 받고 있다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의 부를 감소시키고, 우리의 수입품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You may be cajoled into imagining that your own special trade or your own industry will be encouraged by a protective tariff, but it stands to reason that such legislation must in the long run keep away wealth from the country, diminish the value of our imports, and lower the general conditions of life in this land.”

Adam Smith 의 국부론? 아니다. 정답은  Arthur Conan Doyle 경이 1901년에서 1902년에 걸쳐 Strand 잡지에 기고하였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이다. 조금은 의외의 공간에서 만난 경제에 관한 글이다.

소설에서 이 글은 Times 신문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음울한 전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Henry Baskerville 경에게 배달된 익명의 경고장에 오려붙여진 단어들의 원 기사로 사용되었다. 정체모를 사람이 보내온 경고장은 다음과 같다.

“As you value your life or your reason keep away from the moor.”

이 문장을 보면 moor 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Sherlock Holmes 가 이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는 설정이다.

여하튼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경제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언급만을 한 채 다시 자신들의 관심사인 범죄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 장면은 그 당시 자본주의 최강국인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던 무역에 관한 논쟁들의 단편을 보여주는 풍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오랜 투쟁은 이 소설이 발표된 1900년 초입을 더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을 들 수 있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곡물규제는 마침 위의 소설이 발표되고 있던 시점인 1902년과 1932년에 다시 필요하게 되어, 1902년에는 수입 곡물과 밀가루에 최소한도의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932년에는 해외 수입의존도 증가를 우려하여 제정법으로 영국산 밀을 보호했다.

요컨대 이당시 보호무역주의는 명백히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폭거였다. 즉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치게 된다.(주1)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인 지주들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일종의 진보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곡물법의 폐지는 자본가 계급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p.s.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과 오늘 날의 주창자들의 다른 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사회주류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당시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제3계급으로 분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가 계급은 분명히 지배계급이다. 그리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닌 소농들이거나 기업농, 즉 또 다른 자본가계급이다. 요컨대 계급지형이 싹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 되면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겠다(maybe or maybe not).

 

(주1) 한편 맬서스는 리카도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농업의 보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늘날 농업보호를 위해 많이 주장되는 농업의 비교역적 조건, 즉 농업의 식량자원으로의 이용가능성을 들고 있다. 오늘 날에는 이에 덧붙여 농축산물의 위생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