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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공포영화 몇 편

지난번 ‘볼만한 스릴러 몇 편’이라는 글에 대한 말없는 다수의 침묵속의 호응에 힘입어(집권세력의 전형적인 자뻑 증상과 유사한 증상임) 이번에는 여름에 볼만한 공포영화 몇 편 소개하고자 한다. 고루한 사고방식이지만 역시 여름에는 옆에 수박화채 놓아두고 공포영화 한편 봐주는 것이 고유가 시대의 피서방법이라 생각되기에 감히 몇 편 추천하고자 한다.

The Last House on the Left(1972)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웨스 크레이븐의 1972년 감독 데뷔작. 꽃다운 나이의 두 소녀가 철없이 마약장수로 보이는 꼬마에게 접근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변을 당하게 된다. 그 꼬마는 네 명의 탈옥수의 일행이었던 것이다. 강간과 납치, 그리고 끝내는 잔인한 살육까지 자행하는 탈옥수들의 눈에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살육을 자행했던 그 숲의 건너편에는 피해자 중 한 소녀의 집이 있었고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그 집에서 일박을 청한다. 우연히 악당들의 대화를 들은 소녀의 어머니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끔찍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

Baby Jane 은 춤과 노래의 신동으로 가족의 자랑거리임은 물론 자신을 캐릭터로 한 인형이 나올 정도의 아역스타이다. 그런 그녀를 무대 뒤에서 바라보는 언니 Blanche 는 분노의 눈물을 삼킨다. 세월은 흘러 둘이 성인이 되었을 즈음에 상황은 역전이 되었다. Blanche 는 최고의 흥행배우로 성장했고 Jane 은 천덕꾸러기 싸구려 배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언니 Blanche 는 그런 동생을 감싸준다.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교통사고 Blanche 가 하반신 불수가 되면서 그녀의 연기 인생을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Jane 이 질투심에 일으킨 사건이라고 수군거린다. 세월이 흘러 초로의 여인들이 된 자매는 한집에 살면서 옛 추억을 곱씹으며 세월을 보내지만 어느 날 Jane 의 행동이 이상해지면서 영화는 급반전하게 된다. Kiss Me Deadly 등으로 B급 무비의 거장으로 떠오른 로버트 알드리치의 1962년 작

Phantasm(1979)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전형성을 답습하지 않는다. 즉 웨스크레이븐의 ‘공포의 계단’과 같이 진보적인 시각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억지스러운 인과관계를 꾸미기 위한 상황설정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처럼 폭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데 몰두한다. 그런데 너무 재미만 좆다보니(?) 이런 저런 잡탕소재가 섞여서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악당이 오컬트 쪽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외계인으로 둔갑되는데 특별한 설명도 없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대단히 창조적인 악당(?)이 등장하는데 한순간에 어이없이 당하기도 한다. 그런 허술함이 이 영화를 컬트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Don Coscarelli 가 불과 23살의 나이에 시나리오, 감독, 프로듀서 등을 도맡아 하였다.

Freaks(1932)

실제로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감독 Tod Browning이 잡지에 개제되었던 Todd Robbins 의 Spurs 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서커스 단원들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 세상은 그들을 ‘기형인간(Freaks)’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구경거리로 삼는다.(어쩌면 그렇기에 그들이 그나마 돈을 벌고 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조롱거리로 삼는다.(심지어 직장동료라 할 수 있는 같은 서커스 극단의 사람들까지도) 그래도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서로 다름’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편견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결말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The Cabinet of Dr. Caligari(1920)

무성영화 시대의 작품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 연쇄살인, 몽유병, 정신병원 등 섬뜩한 소재가 기묘하게 엮여 기괴한 장식의 무대장치 위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오늘날 각종 스릴러와 범죄영화들이 답습하고 있는 갖가지 소재들을 선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표현주의는 이후 독일영화의 표현양식에 큰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The Stepfather(1987)

못된 계모이야기는 많아도 못된 계부이야기는 흔치 않은데 바로 이 영화가 못된 계부에 관한 관찰기다. 평소에는 인자하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해온다는 느낌이 들면 살인마로 돌변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이 바로 이 인간이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히 수염을 깎는 장면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는 살인범의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 이후 그가 다음 목표를 고르고 언제쯤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과연 이번 살인도 성공할 수 있을까? 살인마가 착한 척 하고 만들어준 새집이 의외의 막판에 그에게 걸림돌이 된다. 후속작도 발표되었으나 전편만큼의 호평을 받진 못했다.

죠스(Jaws)에 숨어 있는 계급갈등(?)

납량특집 공포영화의 대명사 Jaws는 영화중반까지 상어가 등장하지 않으면서 배경음악과 그 분위기만으로 공포감을 점증시키는 그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으로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대립과 갈등을 축으로 하는 명작이다. 특수효과와 물량공세가 몇 십 배에 달하는 요즘 작품과 견주어도 그 긴장감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몇 되지 않는 등장인물 간의 날선 대립과 갈등관계이다.

우선 정리하자면 이 작품에서의 주요 갈등 주체는 네 명을 들 수 있다. 상어가 출몰한 휴양지 아미티 섬의 시장 Larry(Murray Hamilton), 이 섬의 경찰서장 Martin(Roy Scheider), 상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 Matt(Richard Dreyfuss), 상어 사냥꾼 Quint(Robert Shaw) 등이 그들이다. 우선 시장 Larry 는 상어 출몰로 인한 인명피해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을의 한철 소득을 챙기려는 마을 주민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의 천박한 옷차림과 소신 없는 행동은 짜증나는 정치꾼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장에 대립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경찰서장 Martin. 그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해안을 폐쇄하고자 하여 시장과 대립한다. 한편으로는 Martin 의 편이라 할 수 있는 Matt와 Quint 도 그리 편안한 관계는 아니다. 상어를 잡아야 한다는 기본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들이 접근하는 방식은 판이하기 때문이다. Matt 는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측면을 선호하는 지식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반면 Quint 는 직감과 뚝심이라는 실천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두 축을 이루는 대립과 갈등의 국면은 결국 또 한 번의 해변의 참사로 인하여 Martin, Matt, Quint 가 통통배를 타고 상어사냥에 나서는 국면으로 전환된다. 좁은 배안에서의 셋의 입장 차이는 공동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점점 날카로워지고 카메라는 잦은 클로즈업을 통해 출연진들의 긴장감과 짜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대립은 남자들의 통상의례인 한 차례 술판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이어 등장하는 거대한 상어라는 공동의 목표에 함께 매진하게 된다.

결국 나름대로 세 사람의 각자의 역할 수행과 협동 덕택에 상어는 잡혔으니 각 계급간의 조화가 이 작품의 키포인트가 되었지만 결론에서의 셋의 처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Martin 은 상어를 처지 했고, Quint 는 상어에게 잡아먹혔고, Matt 는 산호 뒤에 숨어 목숨을 건진다. 의도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노동자와 지식인의 지위가 상징적으로 갈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성과라면 물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Martin 이 그 공포증을 극복하였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 영화는 상어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이자 그 위험에 대처하는 각 인간 군상들의 입장과 대처방안에 대한 갈등과 협동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영화 <죠스>는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에서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미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흥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스필버그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우선, 인물 구성에 있어서 해양학자 후퍼의 캐릭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원작의 후퍼는 상당히 고뇌하는 청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밝고 명랑하기만 하다. 또 원작의 후퍼는, 도시에서 살다 남편을 따라온 때문에 욕구 불만인 브로디 서장의 아내 엘렌과 불륜의 관계를 맺지만, 영화에서는 완전히 생략되고 엘렌은 현모양처로만 나온다. 또한 상어를 직접 보기 위해서 들어간 쇠창살 우리 속에서 상어에게 죽고마는 후퍼를, 영화에서는 해저로 피했다가 라스트에 다시 살아나오도록 했다. 상어를 마지막에 처치하는 방법과 퀸트의 죽음도 다르다. 영화에서는 퀸트가 상어에게 물려서 죽고 상어는 산소 탱크 폭발로 죽지만, 원작에서는 헤엄을 계속 치지않으면 질식해버리는 상어의 생리적 특성을 이용해 부력이 강한 통들을 작살에 매달아 상어 몸에 꽂히게 함으로써 상어가 지쳐서 죽도록 되어있고 퀸트는 통을 매단 밧줄에 발이 얽혀서 상어와 같이 바다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mb=c&code=10029#01

* 이 글을 쓰고 찾아낸 저 글에 비추어 보자면 결국 원작은 Matt를 영화보다 부정적으로, Quint를 영화보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도하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스티븐스필버그는 뭔가를 의도하였다는 심증이 점점 굳어지는… ^^

200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