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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홈페이지를 갔다가 모욕감을 느끼다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일을 얼마 안 남겨두고 출마를 선언하시어 ‘마라톤 중간부터 달리기’라는 새로운 스포츠 종목을 개척하신 이회창 후보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였다. 현재 스코어 20%를 상회하는 지지율로 후보군 2위를 달리고 있는 막강 후보시기에 유권자 된 도리로 방문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저것 젖혀두고 정책을 중요시 여긴다. 정책이 아니면 도대체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겠다는 이야기냐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장한 출마선언문은 무시하고 ‘정책창’ 폴더로 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올라온 글은 3일 전에 올린 ‘대한민국을 살리겠습니다.’ 란 제목의 포스팅 달랑 하나. 굴하지 않고 열어보았다.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OTL

최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캐치프레이즈, 심지어 폰트까지 표절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바로 그 ‘대한민국을 살리겠습니다’ 구호의 이미지뿐이다. 그리고는 “준비 중입니다.”

정말 심하게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정 50년이 넘는 이 공화국에서 유력 대권후보가 아무리 서둘러 출마를 결심했다고 쳐도,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홈페이지라고 쳐도 이건 너무하다. 도대체 유권자를 뭐로 보기에 정책이 “준비 중입니다” 달랑 하나란 말인가. 말장난이 아니라 이건 유권자 모독이다. 정책선거를 말살하려는 음모다.

한때 4수 하던 김대중 할아버지가 “준비된 대통령 후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유행시킨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회창 씨가 “준비 안 된 대통령 후보”로 역발상을 한 모양이다. 아무리 칩거를 하면서 장고를 쳤는지 장고를 하였는지 하느라 시간을 다 까먹었다 쳐도 측근을 통해 그동안 2번이나 후보로 나섰을 때 뿌렸던 공약집이라도 스캔해서 올려놓을 시간도 없었던 말인가.

당선되면 핏자를 의무적으로 돌려야 한다고 해서 빈축을 사고 있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것보다는 정책이 많을 것이다. 반드시 남녀 함께 짝꿍이 되도록 하겠다든지 월마다 한 번씩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시간을 갖게 하겠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도대체 유권자의 20%는 지금 어디를 보고 이회창 씨를 지지하는지 한번 통렬한 심정으로 묻고 싶다.

그가 ‘대쪽’이라서?

홈페이지에 보니 참 염치도 없이 “살아있는 원칙 이회창”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의 대국민 출마선언에 보면 “그런 제가, 오늘은 스스로 국민 여러분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번 다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으면 그는 더 이상 “살아있는 원칙”이 아니다. 좋게 봐줘도 “반쯤 정신 나간 원칙”이다.

아니면 그가 “원칙”이 아니더라도 “좌파정권이 앗아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줄 것 같아서?

이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착시현상’이다. 이미 손석춘 씨의 정곡을 찌르는 글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이 나라에는 “좌파정권”도 없고 보수우익에게 “잃어버린 10”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10년 동안 조성된 남북화해무드와 갈팡질팡하는 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자산가에게는 더욱 뿌듯한 10년이었다.

그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면장감도 못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앉아 있는 꼴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동안 얼치기 우파정권이었으니 이제 제대로 된 우파정권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있는 자들의 잔치에 기득권도 없으신 일부 열혈애국자 분들께서 정치공학의 거미줄에 걸려 부화뇌동하고 계신 것이다.

선택은 자유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으로 극좌를 뽑을 수도 있고 극우를 뽑을 수도 있다. 다만 바라건 데 진정 자신을 대변할 정치인을 뽑자. 정말 이기적인 마음으로 말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 경제적 지위, 사회적 비전 등을 고려하여 이기적으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자면 정치인이 무슨 정책을 지니고 있는지 봐야 한다. 반드시 봐야 한다. 그런데 그 정책이 “대한민국 살리겠다는” 그 말뿐인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하는 가 말이다.

왜 이회창을 찍으려 하십니까? 핏자 라도 한판 돌린답니까?

이회창 후보 홈페이지 http://www.leehc.org/

한나라당 기관지로 전락한 보수언론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씨의 지지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게 나타나자 보수언론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러다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꿈이 또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제 메이저 언론이라는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아예 한나라당 기관지를 자처한 듯한 보도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11월 3일자 동아일보는 보수언론의 이러한 초조감이 역력히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로 삼을만 하다. 먼저 동아일보는 1면에 “‘2002 불법 대선자금’ 불씨 되살아나나”라는 제목의 기사와 “親朴 김무성 최고위원 “이회창 출마 반대””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앞의 기사는 정치권이 이회창 씨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2002년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을 아예 “2002 불법 대선자금”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실은 ‘2002 대선 자금 불법성 여부’가 맞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지난 번 국가경쟁력 순위 관련 기사에 “12계단 껑충… 한미FTA 효과?”라고 사실을 왜곡하여 ‘한미FTA’를 아예 제목에 박았던 그 대범함 그대로 2002년 한나라당 대선자금이 불법이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까지 이회창 씨의 출마를 저지하고픈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두 번째 기사는 박근혜 씨의 대선 캠프였던 측근 김무성 최고위원의 말을 인용하며 이회창 씨의 출마가 경선불복과 유사한 ‘배신행위’임을 을러대고 있다.

2면의 4컷 만화 ‘나대로 선생’도 역시 이회창 씨의 출마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내용은 이회창 씨의 출마고려가 외부세력(?)의 부추김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4수를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내용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실 여부를 제멋대로 왜곡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3면부터는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작정하고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면을 통째로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위해 사용했는데 앞서 1면의 기사의 연장선상으로 “2002 불법 대선자금 논란 재연”이라고 타이틀까지 달아놓고

“이회창 캠프 847억 모금… 용처 검증 없이 “수사 끝””
“盧 대통령 공소 시효 정지 상태 ‘퇴임 이후 수사’ 법적 문제 없어”

라는 두 꼭지의 기사를 싣고 있다.

4,5면 역시 “이회창 출마설 파장”이라는 타이틀로 전면을 이회창 씨 출마 관련 기사로 도배를 했다. 기사의 제목을 들여다보자.

“최병령 올5월 “대선잔금 154억 이회창측으로 갔다””
“지지율 20% 昌, 출마반대 60% ‘방패’ 뚫을까”
“昌, 지인들과 전화로 출마 논의 지지자 방문에 “충정 이해한다””
““경선 승복한 박前대표, 昌출마 찬성 안할 것””
“이명박 “이前총재, 아직도 힘모아야 할 상대””
“정동영 “부패 핵심 昌, 출마땐 역사 코미디””

이상의 기사를 통해 동아일보는 이회창 씨에 대한 강한 비토층, 최병렬 씨가 알고 있는 대선잔금에 대한 사실관계, 박근혜 씨의 의견(사실은 박의 의견이 아닌 측근의 의견), 양당의 입장 등을 정리하였다. 한마디로 전 방위적인 출마저지 강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에 대선주자의 활동소식은 6면으로 밀려났다. 출연도 하지 않은 배우가 연극 팸플릿의 지면을 차지하고 출연배우 들은 한쪽 구석에 밀린 참 희한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기관지 노릇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진우 칼럼에서 전진우씨는 “이회창 씨의 11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좌파 정권의 종식을 바라는 우파보수 세력에 다시 11월의 악몽”을 재현시켜주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사설 역시 “이회창 씨가 되살린 5년 전 ‘차떼기’의 추억”이라는 자조적인 제목을 통해 이 씨의 출마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사설은 “정동영 후보는 세월도 한참 경과한 사적(私的)인 영역에 대해 과도할 정도의 네거티브 공세를 받고”있다고 적의 안위까지 걱정해가며 그의 대선자금이 가벼운 사안이 아님을 을러대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역사의 후퇴를 국민이 용납할 것 같은가”라는 비장한 문장으로 사설을 끝맺고 있다.

요컨대 이와 같이 일개 정당 내 사안에 신문지면을 올인하는 것이 언론의 “민주주의”라면 나는 그런 민주주의는 원하지 않는다. 이명박 후보의 그 많은 비리의혹과 삼성의 초대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하지 않던 동아일보가 아직 출마결심도 굳히지 않은 한 노쇠한 정치인의 행보에 호들갑을 떠는 폼이 가관이다. 정말 똥줄이 타긴 타나보다.

각 보수언론의 웹사이트에서 바라본 모습도 동아일보의 종이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수언론들의 웹사이트를 보면 중앙일보는 “昌 출마하면 이.이 둘 다 떨어질 수도”, 조선일보는 “이명박,이회창 틀어진 건 청계천 때문?”을 헤드라인으로 올려놓고 여러 꼭지의 관련기사를 통해 이회창 씨의 출마저지를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언론지면을 통한 사익(私益)추구라 할 수 있다.

결국 11월은 ‘김경준’과 ‘이회창’이라는 키워드가 정치권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자면 삼성의 비자금도 사안에 따라서는 앞서의 키워드만큼의, 혹은 더 강하게 정치권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추미애 씨가 삼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음을 털어놓았다. 만약 현재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특정 사안 또는 여하한의 이유로 삼성이나 기업체들로부터 떳떳치 않은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그것은 또 하나의 강력한 이슈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이 과거 울며 겨자 먹기로 갖다 바치던 정치자금이 아닌 기업전략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 정치자금이기에 그것이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하겠다.

FTA가 대선 쟁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 남미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각종 실험이 진행중이다. 이미 베네주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는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제헌의회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시도에 착수하였는가 하면, 국가간 연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 한 시도가 바로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는 FTA(Free Trade Agreement)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일명 ‘자유무역협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FTA는 실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WTO체제와 달리 개별 국가간에 체결하는 FTA는 두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우선하여 상호관세를 철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종의 상호 특혜조치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를 체결하는 국가는 자국의 국민에게 FTA가 WTO체제의 취지나 자유무역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호도를 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이를 사실인양 여기고 있다. 요는 FTA는 철저히 특정 국가간의 계급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작성되고 이행되는 무역협정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 남미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FTA의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Bilaterals.org에 따르면 오는 10월 23일 볼리비아의 외무부 장관 David Choquehuanca가 멕시코를 방문할 예정이라 한다. 그는 이 방문에서 멕시코 당국자들을 만나 상호무역, 교육, 문화 등에 대한 협정서에 조인할 예정이다. 이는 10년 전에 양국이 체결한 FTA를 넘어선 보다 개선된 시장을 조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Choquehuanca 장관은 또한 노조 지도자, 원주민, 그리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여하튼 자세한 경제협력 사항은 알 길이 없으나 기사에 근거하여 판단하였을 때 주목할 만한 점은 양국간의 상호협정이 단순히 경제주체들의 이익극대화에만 주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전에도 베네주엘라와 쿠바 간에 맺어지고 있는 상호조약의 형태가 경제협력과 함께 교육, 문화 등에 있어 사회 불평등의 해소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듯이(관련글 읽기) 이번 양국간의 협정도 문화, 교육, 스포츠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내지는 교류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가 미국과 체결한, 그리고 유럽과 체결할 FTA에 이러한 내용이 담길 가능성은 애석하게도 현재에도 향후에도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몇 해전 중앙부처가 학교급식에는 우리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WTO위반이라며 무력화시킨 적은 있다.

그 결과 여전히 학교급식에 (뼈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FTA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조건없는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의 행정부마저 국민의 보건이나 건강이 FTA 체결에 장벽이 된다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겠다는 자세다.

왜 우리에게는 남미에서와 같이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조항이 함께 포함된 FTA를 맺자고 주장하는 행정관료가 없는 것일까? 미국대선에서는 FTA체결 여부가 자국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여야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판에 우리네 선거판에서는 관심조차 못끄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그나마 민주노동당만이 유력한 정치세력 중 유일하게 FTA를 반대하고 있으나 그것의 대안제시도 부족한 면이 있고 그 목소리마저 철저하게 주류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미FTA와 한-EU FTA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대선쟁점이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FTA가 향후 국내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고, 그런 나라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라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분명한 입장과 대처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은 협약의 주요 조문 하나하나에 대해 대선주자들의 입장을 묻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노무현 정부가 키운 후보다

요즘 이명박 후보를 후려치지 않으면 블로그스피어에서 왕따 당할 정도로 그의 엉뚱함과 어눌함은 상식적인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어제 100분 토론은 보지 못하였으나 평소 그의 행동과 발언으로 비추어보건대 분명히 100분 코미디였을 것이라고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무한도전의 새로운 패널이 되어도 시원찮을 후보가 지지율 50%를 넘고 있다. 범여권이니 뭐니 잔챙이 후보들은 그야말로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빛나는 지지율이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후원세력들은 요즘 표정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서울역에서 좌파정부 물러가라고 태극기 흔들면서 고래고래 소리치셨던 분들은 아주 살맛이 날 것이다. 반대로 대통령 이명박을 상상하기 싫은 이들에게는 요즘만큼 약 오른 때도 없을 것이다. 필리핀이고 인도네시아고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계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50% 지지율을 넘는 상상초월 대통령 후보가 하루아침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차근차근 오랜 기간 대권의 꿈을 향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에서 모난 돌 골라주며 이명박 후보를 보살펴 주고 키워준 이는 사실 애석하게도 한나라당의 수뇌부나 박근혜씨가 아닌 노무현 정부다.

언젠가 회사의 회식자리에서도 동석한 부장이 ‘좌파 정부의 종식’을 위해 건배하자고 하여 나 혼자 실실 웃었지만 정말 노무현 정부가 좌파 정부였으면 이명박 후보는 대권에 접근도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말로는 ‘좌파’라고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눈물 흘리던 이 정부가 실은 이 나라를 신자유주의의 놀이터로 만든 주범이었으며 그러한 토양 위에서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이데올로기를 완성시킬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적임자로 대두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민의 이미지에 서민의 애환을 보듬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 정부가 지난 5년간 저지른 과오는 열거하기도 벅차다. 비정규직 양산의 토대가 된 노동악법을 만들어냈고,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무차별  검거하고 폭행하였으며, 남한 땅을 미국의 거대자본의 손아귀에 넘겨줄 한미FTA를 초치기로 완성하였고, 어눌한 부동산 정책으로 온 나라를 투기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린 정도가 대표적인 업적(?)이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곳에서는 하나마나한 평등주의를 외쳐 보수 세력의 인심은 인심대로 잃고 말았다. 즉 행동은 ‘우익’이면서 레토릭만 ‘좌익’이 되어버린 ‘주댕이 좌파’가 바로 이 정부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좌파 정부’ 종식시키겠다는 보수우익 아저씨는 울분에 찬 마음으로, ‘주댕이 좌파’에 질려버린 꿈을 잃은 젊은이는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함께 두 손 모아 이명박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코미디 양산지가 되어버린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들의 공약을 보라. 이 후보의 공약이 막가파여서 그렇지 같이 함께 묶어 이면지로 써도 어색하지 않을 초록동색의 신자유주의 공약들이다. 다만 일부 범여권 후보들의 공약에 형식적으로나마 어설픈 복지공약이 들어 있을 뿐이다.

요컨대 범여권과 한나라당은 대척점이 없다. 얼마나 대척점이 없으면 한나라당 후보가 어느날 개혁후보랍시고 범여권 경선에 떡 하니 등장하겠는가. 지난 5년간 내내 그랬다. 하나는 ‘가면을 쓴 보수’였고 하나는 ‘수구적인 보수’여서 국회에서 싸우고 2차로 술집 가서 형님 동생하며 어울렸으니 이에 질려버린 국민들이 ‘가면 안 쓴 솔직한 보수’를 밀어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사실은 이명박 후보가 바로 ‘범여권’ 후보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별화된 문국현 후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5만 당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노쇠한 이미지의 권영길 후보가 당지지율마저 갉아먹고 있는 마당에 현대판 로버트오웬 문국현 씨가 지난 대선 노무현 대통령이 써먹었던 ‘진보’의 이미지로 포장되어 나섰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는 ‘보수’ 이명박에 대한 유일한 대항마인 것 같다. 범여권의 지렁이 후보들은 ‘진보’ 이미지를 써먹을 수 없을 만큼 유탄을 많이 맞았기 때문이다.

연말에는 아마도 매우 확률 높게 정권이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암울해 할 것 같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위안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범여권의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어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폭주기관차’는 정상적으로 운행될 것이었으므로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냉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물론 이 후보가 되면 대운하 공약 폐기하고 발뺌하느라 한바탕 쇼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10월 19일 덧붙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블로그에 손석춘 원장께서 올리신 글 중에 위 허접한(!) 제 글을 축약해서 표현해주는 문구를 발견하고 퍼옵니다. 글의 나머지는 이명박 후보를 까는 내용이니 현 정부의 지지자는 제 글보다는 읽기에 편하실 겁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392491

그래서다. 이명박의 정책과 날카롭게 각을 세운 정치세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노골적 신자유주의자임을 아예 과시하듯 드러내는 후보 앞에서 ‘진보적 신자유주의’ 따위의 어설픈 사고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의지 박약을 보일 때가 아니다.


다시 한번 왜 이명박 후보가 노무현 정부가 키운 후보인지 말씀드리자면…..

부시는 껍데기다

미국은 부시를 선택했다. “미국은 전쟁 중에 원수를 바꾸지 않는다” 라는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11월 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40%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이라크 및 테러’로 꼽았으며 전통적으로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경제 및 고용’ 문제는 21%에 불과했다. 이는 부시가 바야흐로 미국인들을 ‘공포의 정치’로 몰아가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이다.

그런데 대항마로 나선 케리는 이러한 부시의 공포 정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그는 오히려 이라크 주둔군 증강을 이야기하는 등 보수적인 색채를 한층 강화하였다. 아무리 선거 국면에서 서로가 서로를 베낀다지만 해도 너무했다. 그러나 역시 지휘봉은 부시가 잡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의 단순함은 전쟁터의 지휘관에게 딱 어울리는 품성이었기에 미국인들은 마치 홀린 듯이 부시를 선택하였다. 부시가 사회보장 시스템을 망가뜨리거나 말거나……. 등 뒤에 도청장치를 달고 있거나 말거나…….

전문가들은 향후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는 1기와 달리 보다 유화적인 체제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쨌든 부시 1기의 일방주의는 별로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부시의 독선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전쟁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해야 했고 유럽과의 외교관계는 전에 없이 악화일로의 상태이다. 분명히 1기의 외교노선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이는 미약하게나마 미국의 대북노선 유화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마저도  ‘수정된 일방주의’라고 표현되는 것에 알 수 있듯이 전례 없는 깡패 짓은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부시 2기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전쟁을 치루기 위해, 그리고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해 부시가 치렀던 값비싼 대가는 쌍둥이 적자로 불리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이다. 현재 미국의 경상수지적자폭은 5천 억 달러로 GDP의 5%에 달해 이미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친자본적인(또는 자본 그 자체인) 부시 정부가 적자폭 축소를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전비를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연금개혁 등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의 축소라는 반개혁 조치가 예상된다. 그렇다면 결국 외국을 족치는 수밖에 없다. FTA, 통상압력, 시장개방 압력, 환율절상 압력 등이 그것이다.

당초 이러한 경제압력 수단을 먼저 주창한 이는 오히려 케리였다. 그는 부시가 자유무역 정책을 통해 고용문제 등에 있어 미국경제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하며 백인노동자 계급의 민족주의적, 보호무역 주의적 기질을 부추겼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위와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시가 되었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폐기될 리는 만무하다. 이는 어느 한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달러 빚으로 살아가고 있는 미국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건 보호무역이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어차피 부시, 케리 둘 다 자국의 이익이 되는 경제정책을 혼용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위와 같은 미국의 경제압력의 직접적인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FTA에 목매고 있는 나라이다. 국제투기자본에게 맛있는 먹잇감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있는 나라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되어 있는 나라이다. 또 틈만 나면 덤핑수출을 저지르는 악동으로 소문나있다. 부시, 또는 미국에게 북한은 핵무기를 가진 호전적인 국가로 비난하기 좋은 나라이면 남한은 경제악동으로 골치가 아픈 존재로 비난하기 안성맞춤이다. 부시한테는 한반도 전체가 밥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통상 압력이 국내경제에 미칠 영향은 얼마나 될까? 일단 무역에 있어서는 피해가 예상되지만 적어도 미국의 수출의존도가 해마다 줄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더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환율은 문제가 다르다. 달러대비 원화의 환율보다는 오히려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대비 환율이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의 환율절상 압력은 동북아시아 3개국을 타깃(특히 중국)으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여하한의 요인으로 중국과 일본의 환율이 출렁거릴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이 우리나라의 최대의 무역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은 부시 2기를 전망하기를 미국의 감세정책이 소비증가로 이어지고 FTA 등 자유무역이 국내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즉 부시 행정부가 언제까지 감세정책으로만 일관할 수도 없거니와 감세로 인한 혜택은 소수의 자산가에게 집중되고 있음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그러니 전폭적인 소비의 증가로 이어질리 만무하다. 또한 FTA, DDA 등 강대국 위주의 자유무역 확대는 일부 제조업에게만 이득이 될 뿐 농업 등 기간산업에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혀 내수경제를 붕괴시킬 개연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미 시중은행의 대다수를 자유무역 시장에서 뺏긴 상황에서도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이 얻은 교훈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환율절상 압력으로 인한 동북아시아 경제의 혼란이 야기할 악영향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동북아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미국채권의 존재나 무한대의 달러 약세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방어벽이기는 하다). 또한 부시 집권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는 더욱 더 국내경제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결국 유가라는 외부변수는 차치하고라도 문제는 어찌 되었든 수출 의존형 경제에 있다.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수출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환율방어를 위해 쓰고 있으며 이는 결국 또한 세금부담, 수입품 가격 증가 등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보수층은 내수를 활성화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인 부의 재분배와 사회안전망 확충은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파견법 개악, 신용불량자 방치, 농업기반 붕괴 방치 등을 통해 내수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보수층과 사이비 개혁세력은 그런 와중에도 보다 많은 자유와 성장이 미래의 분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멍청한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전 국민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그 날에도 같은 주장을 할지 궁금하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의 대선이 끝난 와중에 각국의 집권층 혹은 논자들은 부시 미행정부가 미칠 영향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고심하고 있다. 분명히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시’의 미행정부가 아닌 부시의 ‘미’행정부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이 처해 있는 현실과 앞으로의 모습이 이미 부시라는 인물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껍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