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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수주의자가 비판하는 보수주의의 실패

데이빗 스톡맨(David Stockman)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예산관리부서에서 일했던 책임자였고 현재 금융관련 책을 쓰고 있는 작가다. 당연히 그는 보수주의자로서 재정균형과 세금감면을 옹호한다. 스톡맨은 이 글에서 그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지난 기간 동안 조지 W 부시를 포함한 ‘얼치기’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원조 보수주의를 망치고 나라를 — 나아가 전 세계를 — 개판으로 만들었는지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보수주의적 입장이라 여전히 개인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이 정도의 입장만으로도 얼마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주의의 보수주의가 썩고 병들어 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글이기에 번역하여 소개한다. 원문은 여기에서.

Four Deformations of the Apocalypse

만약 정치인에게도 챕터11(주1)이란 것이 있다면, 부시의 부적절한 세금감면을 연장하기 위한 공화당원들의 압력은 파산했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공적부채는 — 만약 솔직하게 지방채와 2015년에 걸쳐 케이크 속에 버무려진 7조 달러의 새로운 재정적자까지 계산한다면 — 18조 달러에 달할 것이다. 이는 그리스에 맞먹는 GDP 대비 120%의 규모이며, 긴축재정과 희생을 요구하는 시끄러운 비명이다. 그러므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이 이 나라의 최상위 부자들에 대한 3%포인트의 증세조차 면제케 하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보다 근본적으로 맥코넬 씨의 입장은 새로운 통화주의자와 공급위주 독트린들이 전통적인 재정철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공화당의 주장에 대해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다. 공화당은 번영은 장부의 일정한 균형에 달려 있다고 믿었었다. — 정부, 국제무역, 중앙은행의 원장들과 개별가구와 비즈니스의 상태들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교리문답서에는, 이제 십여 년간 공화당 의사결정권자들이 실천해왔던 것처럼, 화폐 인쇄와 적자재정 이상 가는 것은 거의 없다. — 번영하는 계급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제의(祭衣)를 입은 얼치기 케인즈주의.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전통적인 정당의 이상에 대한 엉터리 흉내만은 아니었다. 이는 또한 우리 경제를 심각하게 손상시킨 연속적인 금융 거품과 월스트리트의 약탈행위를 낳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정책 독트린들은 국가경제에 네 번의 커다란 변형을 야기했고 현대의 공화당원들은 눈이 먼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변화의 처음은 닉슨 행정부가 우리들의 장부를 전 세계와 균형 맞추겠다는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아래서의 미국의 의무를 파기했을 때이다. 이제 우리는 거의 40년을 한 국가로서 분수에 넘치게 살와 왔기에, 현재 경상수지 적자는 — 상품무역, 서비스, 수입 적자들을 포함하여 — 8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그것은 방대한 규모의 차입한 번영이다.

이는 또한 밀턴 프리드먼이 말하길 결코 일어날 수 없을뻔 했던 결과물인데, 그가 1971년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더 이상 그 세계 화폐가 금이나 다른 고정된 준비통화와 교환될 수 없게끔 촉발하라고 설득할 때의 결과물이다. 그저 자유시장이 환율을 정하게 하면 무역적자는 자연히 조정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부는 그들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히 그들의 통화가 자유롭게 떠다니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프리드만의 8조 달러짜리 실수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일단 어떤 고정된 통화가치의 방어규율이 완화되면 정치가 세상은 자유롭게 통화를 절하시키고 그들의 이웃을 무시하곤 한다.

사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는 국가가 버는 것보다 많이 쓰기 때문에 발생한다. 엄중한 허리띠 조이기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달러가 고정 환율에 묶여 있었을 때에는 정치가들은 기꺼이 필요한 피마자유를 나누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대안은 비축분에서 지불함으로써 무역적자를 메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즉각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된다. — 예를 들면 높은 이자율. 그러나 이제 그 규율이 없고 외국 중앙은행들이 연방준비제도로부터의 달러 물결을 막아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인쇄기를 가동시킴에 따라 오직 글로벌 통화 혼돈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국경제에 있어 두 번째 불행한 변화는 공적부채의 비정상적인 증가다. 1970년 부채는 GDP의 40% 또는 4250억 달러였다. 18조 달러라는 것은 1970년의 40배라는 것이다. 이 부채폭발은 민주당의 과다지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30여 년 전에 만약 세금만 감면하면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은밀한 독트린을 수용한 공화당의 과다지출 때문이다.

1981년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은 인플레이션이 많은 납세자들을 더 높은 계층으로 편입시키고 투자를 촉진시키는 과정을 상쇄할 수 있는 지출삭감과 결합된 세금감면을 지지했다. 그러나 급하게 마련된 레이건 정부의 재정 청사진은 연방 지출기계를 가동시키는 원초적인 힘들에 — 복지국가와 전쟁국가 — 부합하지 않았다.

곧, 네오콘이 국방예산을 하늘 높이 추켜올렸다. 그리고 지출을 삭감해야할 캐피톨힐의 공화당원들은 대부분의 국내 예산에서 칼날을 거두었다. — 재정지원, 농업보조금, 교육, 물 사업. 그러나 마지막에 공화당원의 재정 종교를 말살시킨 이들은 이론적인 세금감면주의자들이라는 새로운 간부집단이었다.

1984년 선거 동안 예전 이들은 원래의 레이건 세금감면인 40% 수준으로 후퇴하며 진지하게 적자를 통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해에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가 마침내 인플레이션을 격퇴하고 견고한 경기 반등을 가능케 했을 때, 새로운 세금감면주의자(tax-cutters)들은 그들의 공급위주 전략이 승리했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공화당원들에게 만약 충분한 세금감면이 있을 경우 경제는 적자를 더 상회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2009년 회계연도에 세금감면주의자들은 연방수입을 GDP의 15%까지 줄여버렸는데, 194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그리고 예산안을 거의 거부하지도 않고 자금조달도 안 된 두 개의 모험적인 해외전쟁에 개입하고 난 후, 조지 W 부시는 국내 지출 삭감에도 굴복해버린다. — 그는 8년 전에 물려받은 2600억 달러로부터 65%의 금액을 포함한 4200억 달러짜리 비국방 전용법에 서명한다. 그렇게 공화당원들은 공짜점심 재정정책을 부끄러움도 없이 수용하면서 민주당원과 함께 뭉쳤다.

미국경제에 있어 세 번째 불길한 변화는 금융부문의 엄청나면서도 비생산적인 확장이다. 여기에서 공화당원들은 공짜로 찍은 돈들이 넘쳐흐르는 금융시장의 심각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동시에 레버리지와 투기에 대한 전통적인 제한들을 제거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은행들과 소위 그림자 뱅킹 시스템의 통합 자산은 (투자은행과 금융기업들을 포함하여) 1970년의 단지 5천억 달러에서 2008년 9월 30조 달러까지 자라났다.

그러나 새로운 금융세계에 거주하는 수십조 달러 거대기업들은 자유기업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식, 채권, 원자재, 파생상품에 대해 수많은 초점 없는 투기를 통해 경제로부터 수십억을 뜯어낸 국가의 피보호자들이다. 그들은 만약 그들 자산이 정부 보증을 받지 못하고 부실한 내기를 보충하기 위해 Fed의 할인창구를 통해 실질적인 공짜 돈을 얻지 못했더라면 번창하기는커녕 살아나지도 못 했을 것이다.

네 번째 궤멸적인 변화는 더 큰 미국경제를 비워버린 것이다. 외국으로부터의 과도한 차입으로 몇 십 년을 분수에 넘치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자리와 생산을 바다 너머로 보내버렸다. 지난 십년간 무역, 수송, 정보통신과 같은 상품생산과 서비스에서의 고부가가치의 수많은 일자리와 전문직들이 77백만 개에서 68백만 개로 12%줄었다. 2000년 이후 우리가 비농업 일자리에서 심각한 축소를 경험하지 않은 이유는 바, 호텔, 요양소와 같은 곳에서의 저임금, 임시직의 증가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버블(2002년에서 2006년까지) 기간 동안 미국인의 상위 1%가 — 주로 월스트리트 카지노에서 돈을 번 — 국가소득의 2/3을 받아간 반면 하위 90%는 — 주로 메인스트리트의 사양산업에 의존하는 — 단지 12%만 받아간 사실이 놀랍지 않다. 이러한 점증하는 부의 격차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경제정책의 썩은 과일이다.

이 나라에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 우리는 이제 정상적인 비즈니스로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보다 상당기간의 부채청산과 다운사이징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 2분기 나라 경제가 빈약하게도 연간 2.4% 성장한다는 지난 주 뉴스에서 상기할 수 있듯이.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의 공화당은 미국인들에게 이전의 접근이 — 균형잡힌 예산, 건전한 통화, 재정적 규율 —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서 재활용되고 있는 케인즈주의의 개념 없는 연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애처로운 일이다.

(주1) (연방) 파산법 제11장, 미국 회사 갱생법, 연방 파산법(Bankruptcy Code) 중의 한 절차를 규정한 부분 : 역자주

‘기계의 발명’에 대한 두 이론가의 사유

1848년에 존 스튜아트 밀(J.S. Mill)은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기계의 발명이 인간의 일을 경감시켜 주는지도 아직 의문스럽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단조롭고 감옥에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제조업자나 돈을 번 사람들의 숫자는 증가했다. 그것이 중산계층의 생활을 안락하게 했을지는 모르나 인간의 운명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것이 가진 속성으로 미루어 보아 장차 그러한 변화가 틀림없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여행할 수 있으며, 매우 힘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대부분이 운동삼아 하는 사람일 것이다. 기계의 발명으로 자기의 일이 쉬워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소련이나 인도, 방글라데시와 같은 비자본주의 국가나 아프리카, 중동, 남아프리카 같은 자본주의 후진국가로 가야할 것이다.[선택의 자유, 밀턴 프리드먼, 박우희譯, 1980년, 주식회사 중앙일보, p134]

존 스튜어트 밀이 지적했던 내용은 미루어 짐작컨대, 칼 마르크스 등 수많은 경제학자가 지적한 ‘기계의 발달에 따른 공장 내 분업, 그리고 그로 인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현상에 대한 고찰이 아닌가 싶다. 즉, 밀의 발언은 매뉴팩처나 공장의 노동자들이 기계를 통해 실질적인 생산성은 증가하였으되, 이전의 수공업노동자들과 달리 생산 공정의 극히 일부분만의 노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되고, 이윤의 증대를 위해 오히려 그 노동량은 증가하게 되었던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확언과 달리 오늘날에도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가 싶다. 즉, 아무리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제조업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초기 자본주의적 공장 형태가 도입된 이래 정형화된 군대식 규율로 다져진 분업화된 공장 형태는 존재할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리 노력한다손 치더라도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일부 노동자는 “감옥 같은” 분위기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밀턴 프리드먼의 발언으로 돌아가면, 그는 설사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운동 삼아” 하는 것이고, “비자본주의국가나 자본주의 후진국가”에서나 그런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서구 자본주의 중심적인 편견을 가진 입장이거나, 둘째, 자본주의 제조업 수직계열화에 대한 당연시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또는 두 입장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거나.

전자의 입장은 어릴 적 접했던 자본주의 프로파간다에서 흔히 접했던 내용이다. 대충 “이윤을 보장해주는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은 즐겁고 공산당을 위한 사회주의에서의 노동은 괴롭다”는 그런 논리말이다. 이 문장에서 전제하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 활동의 창발적인 부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밀이 언급한 “중산계층의 생활을 안락하게 했을지는 모르나” 라는 반성은 남는다. 인민 대다수는 여전히 노동의 소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은 ‘주변부 자본주의론’이나 ‘종속이론’ 등에서 주장했던 내용과 겹친다. 밀턴이 주장한 바가 선진 자본주의는 비제조업 화되고 – 즉, 그 나름대로의 선진화 – 자본주의 후진국가가 제조업을 – 더불어 제조업에서의 노동의 소외를 – 떠안게 된다는 것이라면 말이다. 딴에는 일리 있는 소리이지만 이번 금융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 그것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자명하다. 선진 자본주의에서의 산업고도화(?)는 제조업 위주 도시의 황폐화, 고용 없는 성장, 금융업의 고도화에 따른 금융위기 가속화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본주의 초입단계에서 목격한 자본주의의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을 테고, 밀턴 프리드먼은 케인스 주의적 복지모델이 삐걱거리며 자신이 주장하던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채택되는 승리의 과정에서 승리감을 느꼈을 터이니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재단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선현들의 비교되는 사유로부터 배워야 할 점을 굳이 들자면, 그것은 극단의 절대적 사고가 가지는 시대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 한번은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독점, 자유무역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세나 기타 조치로 나타나는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 없이는 한 나라 안에 독점이 성립하기 힘들다. 규모가 세계적이면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드비어즈 다이아몬드 독점이 우리가 아는 바로는 성공한 유일한 실례이다. 정부의 직접 지원 없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밖에는 없는 것으로 안다. – OPEC 카르텔과 초기의 고무 및 커피 카르텔이 아마도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그리고 정부지원을 받는 카르텔의 대다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국제경쟁의 압력 아래 부서져 버렸다. – 우리는 이 운명이 또한 OPEC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자유무역의 세계에서는 국제 카르텔은 더 빨리 사라져버린다. [選擇의 自由, 밀턴 프리드먼 저, 朴宇熙 역, 중앙신서, 1980년 pp84~85]

나는 이글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진정성을 믿는다. 억압(프리드먼이 생각하기에 주로 정부의 통제) 없고 독점 없는 경제가 진정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고 “공공연한, 혹은 은밀한 정부지원”이 없다면 한 나라 안에서, 더군다나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독점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정부의 지원(또 다른 의미의 통제이므로)은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고, 이는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와 같은 프리드먼의 사상을 이어받아 오늘날 많은 자유주의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나 그들은 보호무역이 대공황을 심화시켰으며, 심지어는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결과까지 낳았다고 여기고 있기에, 금융위기에 직면한 지금은 한층 자유무역의 수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프리드먼의 희망과 달리 자유무역의 실천수단인 WTO, FTA 등은 각국 정부의 통제와 지원에 의해 실현되고 있고, 그 조약체결 주체 역시 여전히 국민국가라는, 더불어 그러한 것들은 또 하나의 “정부지원”이라는 ‘역설’이다.

프리드먼의 이상론에 의하면 모든 관세장벽은 부서져 버려야 하고 오로지 자유로운 생산자들이 정부의 간섭이나 지원 없이 경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자유무역 노정은 실은 유력한 국가들의 주도하에 상호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WTO와 FTA가 체결되고 있고, 그 와중에 국가의 의사결정단위에 개입할 수 있는 독점기업들이 배타적으로 조약체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꼴이다.

예를 들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대로 농업부문 등에서는 카길 등 국제 곡물메이저가 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심지어는 협상 테이블에 앉고 있다. 제약분야와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매우 강하다. 그 반면에 조약의 내용을 투명하게 알아야할 국민들은 – 심지어 대다수 중소기업들도 – 협상의 기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명분 하에 정보접근으로부터 차단당하고 있다. 국민을 대변한다는 각 나라의 의회마저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과연 현재의 무역기조를 진정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무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프리드먼이 살아 돌아온다면 한미FTA를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는 타당한 무역협정이라고 간주할 것인가? 나는 그것에 회의적이다. 그의 오류는 현존하고 있는 가장 큰 경제주체인 – 일수밖에 없는 – ‘국민국가’라는 존재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없앨 수 없다면 그것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여야 할 터인데 그는 땅을 머리에 처박고는 ‘국가’가 안보이므로 없어졌다고 믿으라고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의 예언 – 혹은 바람? – 과는 달리 여전히 OPEC은 건재하다.

세계 경제 위기 : 한 마르크스주의자의 분석 (3)

다음은 사회주의평등당(the Socialist Equality Party) 호주지부의 국가서기인  Nick Beams가 2008년 11월과 12월에 걸쳐 호주 여러 도시에서 가졌던 강의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번역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란다.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과 안나 스와르츠 Anna Schwartz 는 그들의 저서에서 미국의 역사는 “대불황(great contraction)”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그릇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자유시장”에 대한 열렬한 주창자인 프리드먼은 1930년대 대공황이 경제의 실패나 수축에 의해서가 아닌 수축적인(contractionary)(주2) 통화정책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프리드먼의 가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금융위기에 대해 멜론(주1)이 주창한 청산(liquidation)의 반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란 그린스펀 Alan Greenspan 그리고 이제 벤 버냉키 Ben Bernanke 는 화폐발행(monetisation)으로 돌아섰다. 첫 시도는  1987년 10월 주식시장의 폭락에 대응하여 Fed의 신용 마개를 땄을 때이다. 이후 모든 이어지는 금융위기에서 – 아시아 금융위기,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사태, 닷컴 버블 등 – 같은 정책이 사용되었다. 금리는 내렸고 신용조건은 완화되었다.(주3)

그의 임기 동안 그린스펀은 Fed의 임무는 자산 거품의 형성을 막거나 그것이 나타날 때 물가를 인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붕괴된 후 깔끔히 치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의 거품은 값싼 신용을 기초로 하여 새로이 형성되는 거품으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냉키 역시 그린스펀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만약 자산가치의 급격한 조정이 발생하면 Fed의 첫 임무는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비슷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버냉키의 발언이다.

10월 초 미의회는 재무장관 헨리 폴슨 Henry Paulson 에게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 펀드(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 TARP)를 허가했다. TARP의 목적은 은행과 주요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악성자산(toxic assets)”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미재무부의 자원을 활용하여 허구의(fictional) 자산 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1월 12일 폴슨은 이 계획의 포기를 선언했다. “상황이 악화되고 사실이 바뀌었다.” 폴슨은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만약 정부가 가치 없는 자산에 올바른 가격을 지불한다면 은행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이다. 반면 은행이 손실을 입지 않도록 과다 계상된(inflated) 가치를 지급한다면 7천억 달러는 푼돈밖에 안될 것이다.

이는 다른 마로 폴슨의 마음이 바뀐 것은 위기가 하도 대규모여서 지난 20년간 자산 가치를 부풀렸던 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TARP는 구제할 가치가 있거나 행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을 재자본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즉 통화정책을 사용하여 자본주의 경제 법칙을 모면하고자 하는 시도는 끝을 보았다.

두 개의 근본적인 모순

자본주의 사회는 심연의 모순이 놓여있다 : 즉 생산력(the productive forces)의 물적 발전과 그 발전이 이루어지는 안에서의 사회적 관계(the social relations) 사이에 말이다. 이 모순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자본주의 하의 생산력의 국제적 발전과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권력이 기반을 둔 국민국가 시스템 간의 모순이다. 둘째는, 생산력의 성장과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임금노동 시스템을 통한 노동계급의 착취에 기반한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관계간의 모순이다. 이 모순은 이윤율 저하 경향(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주4)과 이에 의한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윤율 저하 경향은 노동이 잉여가치, 즉 이윤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노동력에 대한 지출은 자본가가 지출하는 자본의 일부분만을 구성한다. 이는 총자본이 같은 비율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잉여가치의 증분을 계속 생산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현재의 위기에 비교해보자. 위기의 기원은 전후 호황의 마지막 시기인 1970년대 시작된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전후 호황의 종말로 브레튼우즈가 붕괴하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이윤율이 급속히 떨어졌다.

브레튼우즈 협약은 전후 경제 질서의 이정표 중 하나였다. 이 협약은 미 달러의 가치를 금 온스 당 35달러에 고정시켰다. 그 결과로 무역과 투자가 증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확대는 브레튼우즈의 모순을 노출시켰다. 지구적 경제 확장과 국민국가에 기반을 둔 화폐 시스템 사이의 모순.(주5) 한 동안은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우위로 말미암아 금에 기반 하여 세계 화폐로써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달러의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위기가 고조되어 세계시장에 돌아다니는 달러가 포트녹스 Fort Knox(주6) 에 있는 금의 양을 훨씬 초과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미국 바깥을 벗어나 순환하는 화폐는 새로운 금융 네트워크, 이른바 유로-달러 시장의 기반을 제공한다. 은행들은 국가범위의 규제당국의 손아귀를 벗어난 곳에서의 달러 보급지를 발견하였다. 1960년대에 걸쳐 케네디, 존슨, 닉슨 행정부는 영국 당국과 함께 화폐의 국제적 운동을 규제하고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유로-달러 시장의 작동으로 인해 좌절된다. 결국 닉슨 행정부는 1971년 8월 15일 금태환을 정지함으로써 사태를 해결해버린다.

브레튼우즈는 그것으로 인해 촉진된 세계경제와 투자의 확대가 – 자본의 국제적 확대 – 국가 차원의 규제 시스템 안으로 품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인해 좌초하였다. 세계경제와 국민국가 시스템 사이의 모순이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두 번째 모순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알아보자.

[원문보기]


(주1) 대공황 당시의 재무장관으로 각종 자산을 청산하여 긴축재정을 펼칠 것을 주장함 : 역자 주

(주2) 앞에 “대불황”이라고 해석해놓은 단어와 여기에서 “수축적인”이라고 해석해놓은 단어가 똑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음을 유의하라 : 역자 주

(주3) 물론 아시아 금융위기 사태 당시 해당국가에 대해서는 고금리와 긴축정책이 강요되었다. : 역자 주

(주4) 사실 이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을 뒤에 달기도 한다)이 마르크스주의의 매력 포인트이자 약점이다. 즉 마르크스주의는 이윤율이 저하됨에 따라 결국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아름다운 구조를 띠고 있는데 그 이윤율 저하를 역사적으로 반드시 떨어졌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검증하는 것은 이런 저러한 이유로 매우 어렵다. 그런 이유로 한 발 물러서서 ‘경향(tendency)’이라고만 한다. 그래놓고는 또 ‘법칙(law)’이라니 참 우스운 꼴이다. 여하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풀어야 할 큰 숙제 하나가 바로 이 경향과 자본주의 미래와의 상관관계일 것이다. : 역자 주

(주5) 뒤에도 설명이 나오지만 결국 브레튼우즈는 국민국가에 기반을 둔 미 달러가 세계화폐의 역할을 금 대신 떠안는다는 점에서 모순이다. 왜냐하면 미 달러가 세계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달러는 자국의 경제활동보다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내야 하므로 화폐가치가 떨어지게 될 터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통화증발을 억제한다면 세계화폐로써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역자 주

(주6) 미국 정부가 지불준비를 위해 금을 보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곳. 음모론자들은 여기에 금은 한 개도 없다고 주장한다. : 역자 주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그가 받은 오해는 인권말살로 악명 높은 피노체트를 만나 경제자문을 했다는 것이었다. [중략] 그러나 칠레를 방문해 피노체트를 만나기는 했지만, 프리드먼 교수가 피노체트에게 이야기한 요지는 사실 ‘민주주의 없는 자유시장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따끔한 충고였다.[FTA후 한국, 곽수종, 콜로세움, 2007, p68]

이 문단을 읽고 한 2초간 웃었다. 밀턴 프리드먼이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제자문을 해주었다는 비난을 변호해주는 내용이다. 진짜 프리드먼이 그런 말을 했는지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저자까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곤란한 문제다. 오히려 역사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별 상관이 없다는 데이터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심지어 같은 책의 바로 밑의 문단에서도 확인된다.

쿠테타로 집권한 지 17년, 철권통치기간 동안 3천 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만들어내며 [중략] 지금의 칠레 경제는 남미 국가 중 최고의 경제성장률과 대외신인도를 지니고 있다.[같은 책, 같은 페이지]

저자가 말하는 ‘자유시장경제’가 어느 범위까지 아우르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하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한에 있어서는 피노체트의 칠레는 모범국가였다. 프리드먼이 칠레를 간 이유는 피노체트가 선택한 경제팀이 소위 ‘시카고 보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시장지향의 경제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독재와 시장경제는 잘 어울려 지냈던 것이다.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 칠레의 경제는 독재시절에도 잘 굴러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주주의 없는 자유시장경제’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세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경제가 바로 그 예다. 박정희 시절 소위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국가주도의 혼합경제 시스템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자유시장경제였다. 곽수종씨가 책을 쓴 이유 한미FTA가 자유시장경제의 징검다리라면 그 징검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 참여정부 때나 지금이나 –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고 있다.

헨리 브랜즈 Henry Brands 는 그의 저서 머니맨(The Money Men)에서 심지어 미국 금융의 역사는 ‘민주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의 권력투쟁이라고까지 묘사하고 있다.

화폐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자본주의의 원리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모순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평등사상에 입각하여 국민들이 화폐공급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략] 반면 자본가들은 민주적 평등만 주장하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화폐를 다루기 시작하면 경제가 혼란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화폐 문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가 다루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머니맨, 헨리 브랜즈, 쳐현진 譯, 청림출판, pp6~7]

물론 이 책의 전반을 읽어보면 역설적으로 자본가들을 ‘자유시장경제’론자들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열정을 지닌 시장지향의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세상은 독점이 사라진 완전한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인 반면 화폐 문제를 손아귀에 쥐고자 하는 이들은 독점자본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헨리 브랜즈의 설명이 주는 함의는 유효하다.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또는 자유시장경제)는 어느 정도는 대립관계였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도덕 또는 국민윤리 시간에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라고 배웠던 이들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조악한 이분법을 별개로 하고 생각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옳던 그르던 민주주의 원칙이 도달하지 않는 분야가 – 특히 경제에서 – 너무 많다. 소위 대의제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의 부자 권력 승계와 삼성의 부자 권력 승계와의 공통점이 바로 민주주의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음모론, 프리드먼, 그리고 자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서의 주요주제 하나는 공황조짐이 있는 상황에서의 통화정책이었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과 안나 슈워츠는 그들의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 에서 Fed는 대공황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중에 이 주장은 프리드먼 그 자신의 것들을 포함한 인기 있는 저작들에서 Fed 가 공황을 초래했다는 주장으로 변신했다.
A central theme of Keynes’s General Theory was the impotence of monetary policy in depression-type conditions. But Milton Friedman and Anna Schwartz, in their magisterial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claimed that the Fed could have prevented the Great Depression ? a claim that in later, popular writings, including those of Friedman himself, was transmuted into the claim that the Fed caused the Depression.[Was the Great Depression a monetary phenomenon?, Paul Krugman, 2008.11.28]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을 세상의 모든 일을 유태자본의 음모로 환원시키는 음모론자들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당시 연준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은 이자율을 낮추어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기보다는 무자비하게 통화량을 수축시켰다. 그리하여 1929년 457억 달러에 달하던 통화량이 4년 후인 1933년에는 3백억 달러에 불과해서 극심한 디플레가 조장되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1929년 대공황의 주범이 연준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겠지만 유수의 경제학자들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탠퍼드 대학의 프리드먼(Milton Friedman) 교수도 1996년 1월 방송국 대담에서 그러한 사실을 인정했다.[세계 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경제편), 이리유카바 최, 2002년, 해냄출판사, p154]

한편 이 책에서는 말미에 지급준비금 보유율을 1백 퍼센트까지 증가시켜야 한다거나 월별 인구 증가 예상에 준해 월별 화폐 공급량을 산출한다는 등의 COMER(통화경제개혁위원회 : committee on monetary economic reform)라는 단체의 주장을 싣고 있는데 그다지 맘에 와 닿는 주장은 없다. 잘은 몰라도 통화주의 이론을 조악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주1). 한편 이들이 이론적 지주로 여기는 프리드먼은 어떠한 세계를 꿈꾸고 있을까? 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터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래 글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페비언 사회주의와 뉴딜 자유주의(주2)로 향한 여론의 흐름은 이제 약화되었지만, 앞으로 나타날 여론의 물결이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로 향할 것인지, 아니면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로 향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선택의 자유, 밀턴 프리드먼, 박우희譯, 1980년, 주식회사 중앙일보, p190]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프리드먼은 “마르크스나 모택동의 정신에 입각한 일당독재정부”는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그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담 스미드나 토마스 제퍼슨의 정신에 입각한 자유의 확대와 정부의 축소”일 것이다. 아담 스미스라면 이미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의 기반을 다진 이고 그 다음으로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내 관심을 끄는 이는 토마스 제퍼슨이다. 왜 프리드먼은 토마스 제퍼슨을 끄집어냈을까? 그것은 그가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에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 해밀턴은 누구인가? 그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다. 그는 미국의 건국 이후 영국의 영란은행을 흉내 낸 중앙은행을 설립하였고, 미국의 경쟁력 약한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자유무역을 반대하였고, 당시 13개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주정부를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기에 많은 이들의 많은 반발을 샀다. 그를 반대한 부류는 월스트리트와 금융을 금권주의의 탐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남부의 부유한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 그리고 신생미국이 영국과 같은 강력한 정부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자치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토마스 제퍼슨이 있었다.

자본주의 캠프 선봉에는 해밀턴이 있었고, 민주주의 캠프 선봉에는 제퍼슨이 있었다. 해밀턴이 이끄는 연방주의자 Federalist 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했으며, 특히 금융과 상업활동에서 정부의 개입을 강조했다. 지역적으로는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을 기반으로 했다. 반면 제퍼슨이 이끄는 공화주의자 Republican(놀랍게도, 오늘날 민주당의 원조인 이들을 당시에는 ‘공화당’이라고 불렀다)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을 지지했고 이들의 지역기반은 남부였다. 농민들과 대지주들이 공화당의 지지 세력이었다. [머니맨, 헨리 브랜즈, 차현진 해설.옮김, 청림출판, 2008년, p92]

자 이제 편이 갈라졌다. 프리드먼이 아담 스미스와 함께 제퍼슨을 언급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것은 그가 절대적인 가치인 자유를 – 특히 경제활동의 자유를 – 마르크스나 모택동이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밀턴과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 주창자들로부터 수호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제나 절대군주제에서 정당성을 획득한 주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절대군주 하에서의 경제에 대한 독재로 인한 폐해는 실제로도 심하였다고 한다.

특히 프리드먼의 주특기(?)인 통화문제에 있어 군주의 횡포가 심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절제한 화폐 초과공급을 말하는 것이다. 즉 화폐주조권을 가지고 있던 절대군주는 금함량을 속이는 방법 등으로 화폐를 유통시켜 자신의 사금고를 채우곤 했다. 발권기관의 수익을 뜻하는 시뇨리지의 어원도 불어의 ‘군주 seigneur’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이러니 나라의 경제는 피폐해져 인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게 찌들어가게 되었고 결국 절대군주제는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거기에서부터 자유주의는 싹트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프리드먼이 대표하는 시장자유주의는 마르크스, 모택동, 해밀턴이 지향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이토록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자유를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마르크스와 모택동은 좌익을 대표하고 오히려 해밀턴은 금권주의를 대표하는 바, 상반된 이들 같지만 둘 다 시장의 자유를 유린한다는 점에서는 공범인 셈이다. 더 나아가 ‘그림자 정부’의 저자 이리유카바 최는 현대의 자본주의는 사실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시장의 지배자인 자본가가 경제사에 등장한 이래 권력층은 – 심지어 절대군주조차도 – 자본가의 자유는 유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들은 공생관계를 변함없이 맺어왔다. 프리드먼이 싫어하는 해밀턴은 유치산업(幼稚産業) 보호론을 통해 미국에서의 자본가의 육성을 도모했었다. 독재자 박정희는 재벌의 독점권을 옹호하였다. 오늘날 미국정치의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처럼 정부 자체가 자본가로 메워지기도 했었다. 그들에게 있어 주요한 패퇴는 기껏해야 아직 대지주가 힘을 발휘하던 시절의 영국에서 ‘곡물법(corn law)’을 폐지할 힘이 없었던 시기나, 대공황으로 인한 금융억압으로 인해 행동에 제약이 가해지던 정도였다.

해군이 면직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은 1753-63년의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 함대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영국이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국이 패배했다면 인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내놓도록 요구 당했을 것이므로 면직산업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넬슨 제독이 해상권을 장악한 덕분에 랭카셔의 수출은 1793-1815년 사이에도 급속하게 증가했다. 반대 상황이었다면 면직산업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식민제국과 해군력이 원료 공급지와 시장을 하나로 묶는 것을 도와줌으로써만 영국 면직산업은 유지될 수 있었다.[면직산업과 의료,시장, 통상로 보호의 문제, 강철구, 2008.8.11]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의 글이다. 이 당시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정치체제는 말할 것도 없이 군주제였다. 그들은 비록 독재자이긴 하였지만 자신들의 권한을 자국 산업의 성장을 위해 사용했다. 그러한 면에서 어쩌면 시장참여자 중에서 자본가에는 애초에 강력한 국가로부터 찾아올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월街의 사태를 보더라도 그들은 든든한 조력자가 아닌가 말이다.

한편 앞서 살펴본 화폐주조권이 독점되어 있기에, 연준이 – 현대판 군주(?) – 그것을 잘 못 사용하였기에 그들 자체가 대공황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앞서 언급한 “미국에서의 화폐의 역사”에서 연준이 최종대부자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지 못하여 은행 공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책적 실수도 있었지만 금본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다. 더 나아가 이번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원인이 결합되어 폭발한 당시의 대공황을 단순히 통화의 수축만을 원인으로, 그것도 음모론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실패를 바탕으로 최종대부자의 기능을 없애버리자는 – 또는 통화량 조절이외에는 다른 짓은 하지 말라는 – 발상은 허리띠를 안 매고 다니면 살이 빠질 것이라는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쯤에서 프리드먼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유가 도대체 어떠한 자유인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것이 아닐까?


“나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고맙다. 그러나 내가 보너스를 받을 자유는 빼앗지 말라.”

최상위 임원들의 임금과 보너스를 강력히 제한하겠다는 발표 하루 뒤 AIG는 이들 임원 중 몇몇은 내년에 “유지 보너스”로 수백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One day after announcing strict limits on salaries and bonuses for its top tier of executives, AIG revealed that some of those executives will receive millions in “retention bonuses” next year.[AIG to pay retention bonuses to executives, Financial Times, 2008.11.26]

(주1) 원래 통화주의 자체가 조악한 것일지도…

(주2) 여기에서의 자유주의는 우리가 오늘 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사상적 뿌리와는 다르다. 이는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즉 liberalism을 1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진보당의 작가들이 진보주의 progressivism의 대체물로써 선점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