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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지대를 배회하는 투자은행

The Luxembourg-based European statistics agency Eurostat reiterated today that it was unaware of the Greek Treasury’s attempts to reduce the apparent size of its debt by using off-market swaps. But the controversial Greek deal with Goldman Sachs was similar to a blueprint in Eurostat’s 2002 accounting guide. [중략] Before 2002, deals of this kind occupied a grey area in European accounting rules. [중략] In May 2002, the publication of ESA95 accounting rules answered Piga’s concern by explicitly permitting the transactions and providing a worked example of how to calculate the apparent reduction in national debt — not, perhaps, the reaction Piga had expected.
룩셈부르크에 위치한 유럽 통계청 유로스타트(Eurostat)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을 통해 부채의 표면상의 크기를 줄이려 했던 그리스 재정부의 시도를 알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그러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리스의 골드만과의 거래는 유로스타트의 2002 회계 기준의 청사진과 유사하다. [중략] 2002년 전에는 이러한 거래는 유럽의 회계원칙에서 회색지대에 속했다. [중략] 2002년 5월 ESA95 회계원칙의 발표는 피가의 우려에 대한 명백한 답변이었는데, 그러한 거래를 허용하는 한편 국가채무의 표면상으로 어떻게 줄여서 산정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용례를 제공하였다. — 아마도 피가가 원하던 그런 대응은 아니었다.[Eurostat rules described ‘Greek-type’ swap]

지난번 ‘골드만삭스가 돈 버는 법, 최신버전’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골드만삭스와 그리스 정부와의 통화스왑에 관한 이야기의 최근소식이다. Risk에 따르면 유로스타트는 해당 스왑이 국가채무를 속이려는 일종의 ‘분식회계(window dressing)’ 시도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Risk는 그들이 오히려 2002년에 회계원칙을 개정해 이러한 개구멍을 터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유로스타트가 2001년과 2008년 사이 이루어진 다양한 스왑계약을 조사 중이라고 전하고 있다.

통화스왑은 일정기간 동안 한 나라의 통화로 표시된 현금흐름을 다른 나라의 통화로 표시된 현금흐름과 서로 교환하기로 한 계약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거래에 쓰였다는 오프마켓스왑(off-market swaps)에 대해서는 알파헌터님의 글이나 관련 용어해설을 참고하라. 여러 복잡한 설명이 헷갈릴 수도 있으나 무식하게 말해 결국 스왑을 하는 과정에서 골드만이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간주하면 무리가 없다. 그리고 그 돈은 그리스의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고, 유로스타트는 자기들 말로는 그런 줄 몰랐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상황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다시 한 번 드는 생각은 ‘은행 본연의 임무, 존재의의, 그 수행역할, 그리고 윤리적 문제’ 등에 관한 의문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면서 어느 정도 정립된 은행(또는 금융회사)의 기능 및 역할에 대해 크게 분류하자면 세 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감독 하에 수신과 대출만을 영위하는 유틸리티 은행(Utility bank), 그리고 일부 영리성 사업을 병행하는 상업은행, 자본시장 조성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투자은행이 그것이다.

앞서의 두 은행을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큰 문제없이 정상적인 대(對)은행 업무만으로도 충분히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정상기업 내지 정상국가다. 하지만 투자은행을 찾는 이들은 경영의 위기를 겪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M&A, IPO, PF등 자금의 대규모 조달을 통한 전환기를 모색하는 이들이다. 그러다보니 투자은행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교묘한 방안을 도출하여 제시하여야 할 위치에 놓이게 된다. 즉 투자은행의 고객은 사실상 위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회색지대(grey area)’에 위치한 이들이 앞서 두 은행보다 통상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업무의 어디까지가 도덕적이고 어디서부터 비도덕적이냐 하는 윤리의 문제는 금융업이 생긴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아직 그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이자를 받는 행위 자체가 비도덕적으로 간주되고 금지되기도 했다. 대공황 이전에는 자본조성을 둘러싼 월스트리트의 이전투구가 비난의 대상이었다. 국가는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이들을 단죄했다. 그리고 유사 공황기를 거치면서 이제 다시 이번 거래와 같은 투자은행의 현대적(?) 역할이 비난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놓고 보자. 알파헌터님도 그런 뉘앙스고 로이터의 한 논객의 글도 골드만의 스왑 주선은 정상적인 투자은행의 업무 일뿐 비난받을 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이 A기업에의 B기업에 대한 M&A를 주선하였는데, A기업이 LBO 차입금을 갚기 위해 B기업 자산을 매각하는 몰인정한 짓을 했다고 해서 투자은행을 비난할 수는 없다는 상황과 유사할 것이다. 일상업무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을 유추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방의 어느 개발공사가 대규모 콘도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콘도가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부채비율에 걸려 공사채권도 더 이상 발행할 수 없었다. 투자은행은 이 공사에게 이런 제의를 할 수 있다. 신설법인을 하나 설립하여 그 법인이 자금을 차입하고, 그 돈으로 콘도를 일시에 분양받으면 채권도 다시 발행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돈을 조달해 개발 사업을 마무리 짓는 안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산유동화 기법이다. 불법도 아니고 남은 것은 윤리의 영역일 뿐이다.

이제 당신이 담당자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어차피 콘도 회원권의 분양이라는 것도 유동화의 다른 말일 뿐이므로 신설법인이 분양을 받는 것이 하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콘도 미분양분이 공사의 목을 죄고 있으므로 이를 풀어주어 사업을 마무리 짓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여태 콘도가 분양되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결정적으로 회원권 유동화를 통해 추가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편법이므로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쉽지 않은 대답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거의 모든 경제 주체가 경기변동, 자금흐름의 경색, 제도 및 정책상의 변경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예측하지 못한 리스크에 노출된다. 그러한 리스크는 대부분 돈과 결부된 문제다. 그리고 내부유보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은행, 증권사, 투자은행 등 금융시장을 찾는다. 투자은행은 그 중 가장 해결방안이 오묘한 곳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행 제도 안에서 가장 교묘한 방안을 도출해내어 고객들을 만족시켜야 할 위치에 놓여있다. 그래서 리스크가 존재하는 한 투자 은행업은 존속할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골드만삭스는 그런 문제가 발생한 주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일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은 안 되면 되게 했으니까.

‘국유화(nationalization)’와 ‘경영권 취득(take over)’의 차이?

최근 USA투데이-갤럽의 투표에 따르면 미국인의 57%가 “미국 은행들의 일시적 국유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덜 정치적인 버전인 “일시적인 [은행의] 경영권 취득”에 대해서는 오직 44%만 반대했다.
A recent USA Today-Gallup poll found that 57% of Americans are against “temporarily nationalizing U.S. banks.” Yet only 44% oppose a less politically threatening version, “temporarily taking [a bank] over.”[Nationalized Banks: Why They Might Work, Time, 2009. 3. 6]

현실을 외면한 채 쓸데없는 단어놀음에 치중하는 꼴은 조선시대의 사대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그 시절의 사대부들은 물질적 명분이라도 있었을 법한데 이 무지한 미국인들은 이 단어놀음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저 13%의 차이에서 그들은 각 단어의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1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면

만약 1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면, 그리고 무언가를 다시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바꾸겠는가? 또는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겠는가, 무엇을 다르게 했을 것이며 다른 나라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권하겠는가?

나는 많은 것들을 다르게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들을 이전에 했던 방식으로 민영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개의 대형은행들이 동시에 통째로 민영화되었고 과반수 지분을 분산된 소유가 아닌 단독 오너가 가져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아이슬란드 경제 환경의 비율에 맞지 않게 자라나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자 상황이 참으로 빠르게 아무도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은 채 우려스럽게 바뀌어갔다.

아이슬란드의 재무장관 Steingrimur Sigfusson과의 인터뷰 중에서

은행은 기업이기에 앞서 공기(公器)이다

2004년에 적은 글을 이정환님의 블로그에 트랙백 걸기 위해 다시 가져온다. 이 당시 내 인식은 금융기능은 국적성을 가져야 하는 바, 이는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지나친 금융자유화로 인해 1) 금융위기 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순발력을 저해하는 것과 2) 사적이익의 추구 극대화 요구에 따른 선순환적 금융기능의 퇴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더불어 결론으로는 미약하게나마 공적소유의 유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염려가 어느 정도 현재진행형인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 예로 단기외채의 상당부분이 외국계은행의 국내지점이라고 한다.

■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은행은 순수하게 우리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 1832년 미합중국은행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30%에 달하자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국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면서 남긴 말이다.”

한겨레21 최근호(2003년12월25일 제490호)에서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국내은행의 실태를 다룬 기사의 첫 문단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외국자본 비중이 현재 30%를 넘어섰다. 보다 정확하게는 2003년 9월말 국내 은행업에 진출한 외국자본의 지분율은 직접투자와 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를 포함하여 전체지분의 38.6%에 해당한다. 시중은행만을 놓고 보면 비중은 43.4%로 더욱 높아진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논리를 빌자면 우리는 바야흐로 군대보다 더한 무기를 외국인에게 넘겨주고 있는 기점에 위치해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국내은행의 해외매각, 부작용은 무엇인가?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2003년 12월 19일)’에 따르면 국내에서 실제 외국자본의 경영 지배를 받고 있는 은행인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는 은행은 제일, 외환, 한미 3개 은행이며 최대주주는 아니나 지분율 5% 이상의 외국인 대주주가 존재하고 외국인 등기이사도 활동하고 있는, 이른 바 ‘혼합계 은행’은 하나, 국민 2개 은행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무엇이 문제인가? 해묵은 민족자본 육성론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들조차도 당장 눈앞에서 체감으로 분명히 느끼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은 우선 위기상황에서 공동보조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LG카드 사태가 터진 직후 각각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LG카드 채권을 급히 회수해 발을 뺀 뒤 채권단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국내 시장의 교란은 자사의 동북아시아 한 지점의 위기일 뿐 사활을 걸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일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이 기업이기에 앞서 한 사회의 화폐시장과 신용의 완충장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행동에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지난 몇 년간의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신용위기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듯한 심증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자본은 국내진입 이후 기업대출, 회사채 및 주식 등 고위험자산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 및 국공채 등 안전자산 운용을 적극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외국계은행의 기업대출의 감소비율과 가계대출의 증가비율은 각각 내국계 은행의 그것을 약 10%를 앞서가고 있어 인수 당시의 부실을 줄이기 위한 안정적 운용이 불가피함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자산운용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 2-3년 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은행의 폭발적인 가계대출 증가에 있었다는 분석이 유력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대출행태가 설비투자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곱게 봐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해악은 무엇인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고는 있지 않지만 여하한의 외부변수에 따른 국내 금융위기 심화 개연성이다. 그 사례로 1990년대 일본경제의 악화가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쳐 미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한 사례가 있고,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의 금융위기 발생시 프랑스계 2개 은행과 캐나다계 1개 은행이 철수선언을 하여 금융위기를 가중시킨 적이 있다. 이번 LG카드 사태에서 보여준 국내 외국계 은행의 ‘나몰라라’ 스타일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외국자본은 충분히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도 남을’ 녀석들이라는 거다.

■ 대안은 무엇인가?

국내 금융업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안 하나는 은행 매각시 국내자본이 참여할 수 있게끔 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펀드 규모 2조∼3조원 규모의 이헌재 펀드를 추진 중이다. 내년에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되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직접 인수한다는 게 당면 목표다. 그런데 그 성공여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유력하다. 펀드 규모 상 연기금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우량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사모펀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연기금이 나올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연금수령자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결국 자본여력으로 볼 때 산업자본이 가장 유력한 참여주체이므로 이들의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은행법상 4%를 초과하는 은행주식 취득(의결권 행사 가능한도 기준)을 금지하고 있어 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눈앞에 두고 산업자본의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는 등 이해당사자들 중 상당수는 끊임없이 산업자본의 금융업 참여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종금사 사태에서도 보듯이 ‘기업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저항선을 형성하고 있다.

■ 결론에 대신하여

화폐와 시장이 존재한 이후로 은행은 이윤추구의 주체이기에 앞서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하는 공기(公器)이다. 진보세력이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은행의 주인이 외국자본이냐 국내 산업자본이냐’ 하는 물음은 ‘토끼를 호랑이가 잡아먹는 게 낫냐 여우가 잡아먹는 게 낫냐’ 라는 질문처럼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은행민영화의 추세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세기 관치금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졌던 금융구조에 대해서 아직도 우리는 기존의 국영화 유지가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효한 소유방식이라는 주장을 거둬들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 정권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그 형식의 오류라기보다는 내용의 오류였다는 판단이 일정 정도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은행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한도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못이기는 척 공기를 팔아 해치우는 선험적 관성을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헌재 펀드와 유사한 종류의 국공채 또는 국민주 펀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자산의 건전화를 위해, 정부의 건전화를 위해 부실은행의 매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은행 본래의 기능을 정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참여하는 펀드가 인수케 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그리고 남미의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후 이들 나라의 금융은 외국자본의 수중에 넘어갔다. 외국자본의 자국 은행지분 점유율은 멕시코의 경우 83%, 체코의 경우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를 그러한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은행의 공공성에 관하여

지난번 손석춘 씨와 문국현 후보와의 대담을 읽고 느낀 바를 적은 글을 올렸는데 이와 관련하여 2004년에 작성한 글을 올립니다. 약간 시의성이 떨어지고 그 대안 제시도 취약하지만 그 당시 한창 진행되고 있던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첨언 없이 올립니다.

■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은행은 순수하게 우리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 1832년 미합중국은행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30%에 달하자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국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면서 남긴 말이다. {생략}”


한겨레21 최근호(2003년12월25일 제490호)에서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국내은행의 실태를 다룬 기사의 첫 문단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외국자본 비중이 현재 30%를 넘어섰다. 보다 정확하게는 2003년 9월말 국내 은행업에 진출한 외국자본의 지분율은 직접투자와 주식시장을 통한 간접투자를 포함하여 전체지분의 38.6%에 해당한다. 시중은행만을 놓고 보면 비중은 43.4%로 더욱 높아진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논리를 빌자면 우리는 바야흐로 군대보다 더한 무기를 외국인에게 넘겨주고 있는 기점에 위치해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다.

■ 국내은행의 해외매각, 부작용은 무엇인가?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2003년 12월 19일)’에 따르면 국내에서 실제 외국자본의 경영지배를 받고 있는 은행인 ‘외국계 은행’으로 분류되는 은행은 제일, 외환, 한미 3개 은행이며 최대주주는 아니나 지분율 5% 이상의 외국인 대주주가 존재하고 외국인 등기이사도 활동하고 있는, 이른 바 ‘혼합계 은행’은 하나, 국민 2개 은행이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무엇이 문제인가? 해묵은 민족자본 육성론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들조차도 당장 눈앞에서 체감으로 분명히 느끼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은 우선 위기상황에서 공동보조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제일은행과 외환은행은 LG카드 사태가 터진 직후 각각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LG카드 채권을 급히 회수해 발을 뺀 뒤 채권단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국내 시장의 교란은 자사의 동북아시아 한 지점의 위기일 뿐 사활을 걸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일 것이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행이 기업이기에 앞서 한 사회의 화폐시장과 신용의 완충장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행동에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지난 몇 년간의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신용위기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듯한 심증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자본은 국내진입 이후 기업대출, 회사채 및 주식 등 고위험자산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 및 국공채 등 안전자산 운용을 적극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외국계은행의 기업대출의 감소비율과 가계대출의 증가비율은 각각 내국계 은행의 그것을 약 10%를 앞서가고 있어 인수 당시의 부실을 줄이기 위한 안정적 운용이 불가피함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자산운용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 2-3년 간의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은행의 폭발적인 가계대출 증가에 있었다는 분석이 유력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러한 보수적인 대출행태가 설비투자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계 은행의 행태를 곱게 봐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해악은 무엇인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고는 있지 않지만 여하한의 외부변수에 따른 국내 금융위기 심화 개연성이다. 그 사례로 1990년대 일본경제의 악화가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쳐 미국의 금융불안을 야기한 사례가 있고,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의 금융위기 발생시 프랑스계 2개 은행과 캐나다계 1개 은행이 철수선언을 하여 금융위기를 가중시킨 적이 있다. 이번 LG카드 사태에서 보여준 국내 외국계 은행의 ‘나몰라라’ 스타일은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외국자본은 충분히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도 남을’ 녀석들이라는 거다.

■ 대안은 무엇인가?

국내 금융업계의 이러한 우려에 대한 대안 하나는 은행매각시 국내자본이 참여할 수 있게끔 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펀드 규모 2조∼3조원 규모의 이헌재 펀드를 추진중이다. 내년에 정부 지분 매각을 통해 민영화되는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직접 인수한다는 게 당면 목표다. 그런데 그 성공여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유력하다. 펀드 규모상 연기금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우량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사모펀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연기금이 나올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연금수령자의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결국 자본여력으로 볼 때 산업자본이 가장 유력한 참여주체이므로 이들의 참여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은행법상 4%를 초과하는 은행주식 취득(의결권 행사 가능한도 기준)을 금지하고 있어 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눈앞에 두고 산업자본의 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는 등 이해당사자들 중 상당수는 끊임없이 산업자본의 금융업 참여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종금사 사태에서도 보듯이 ‘기업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저항선을 형성하고 있다.

■ 결론에 대신하여

화폐와 시장이 존재한 이후로 은행은 이윤추구의 주체이기에 앞서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하는 공기(公器)이다. 진보세력이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은행의 주인이 외국자본이냐 국내 산업자본이냐’ 하는 물음은 ‘토끼를 호랑이가 잡아먹는 게 낫냐 여우가 잡아먹는 게 낫냐’ 라는 질문처럼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은행민영화의 추세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어느 한쪽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세기 관치금융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졌던 금융구조에 대해서 아직도 우리는 기존의 국영화 유지가 어느 정도는 여전히 유효한 소유방식이라는 주장을 거둬들이기는 쉽지 않다. 지난 정권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그 형식의 오류라기보다는 내용의 오류였다는 판단이 일정 정도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은행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한도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못이기는 척 공기를 팔아 해치우는 선험적 관성을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헌재 펀드와 유사한 종류의 국공채 또는 국민주 펀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자산의 건전화를 위해, 정부의 건전화를 위해 부실은행의 매각이 불가피하다면 이를 은행 본래의 기능을 정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참여하는 펀드가 인수케 함으로써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진 후, 그리고 남미의 금융위기가 도래한 이후 이들 나라의 금융은 외국자본의 수중에 넘어갔다. 외국자본의 자국 은행지분 점유율은 멕시코의 경우 83%, 체코의 경
우 9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를 그러한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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