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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실험

은행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가난하고 미천한 방글라데시의 여인네들에게? NO WAY!

미시신용

바로 그러한 선입견을 깬 이가 무함마드 유누스 Muhammad Yunus 다. 그는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지만 유복한 보석세공사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잘한 덕택에 영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돌아와 고국에서 교수로 편안한 삶을 살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이른바 미시신용 microcredit 의 개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금융제도를 착안한다.

그의 돈 빌려주는 방식은 가난한 이들에게 – 특히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 무담보 소액대출을 통해 일종의 가족 사업을 벌일 밑천을 대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선의 성격이 짙었겠으나 의외로 회수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상식을 깨는 수준이었기에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의 성공의 보답으로 2006년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주1)

소셜비즈니스

그는 최근 Common Dreams 웹사이트에 “어떻게 소셜비즈니스가 가난 없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가(How Social Business Can Create a World Without Poverty)”라는 글을 기고했고, 이글을 통해 그가 실천해낸 미시신용이 어떻게 제1세계, 나아가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를 설명하였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행위를 함에 있어 이윤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그만으로는 반쪽짜리이며 배려, 관심, 나눔, 동정 등의 요소들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갖추고 있는 개념이 바로 소셜비즈니스(주2) 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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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hammad Yunus at Chittagong Collegiate School” by Hossain Toufique Iftekher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자본주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소셜비즈니스의 핵심은 다음 문장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자선은 아니되 사회효용적인 차원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에서 ‘돈빌려주는 사람(owner)’은 이익을 취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A social business is not a charity. It is a nonloss, nondividend company with a social objective. It aims to maximize the positive impact on society while earning enough to cover its costs, and, if possible, generate a surplus to help the business grow. The owner never intends to take any profit for himself.

그렇다면 그가 소셜비즈니스를 통해 꿈꾸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까? 분명 가난이 추방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된 사회는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였지만 번영을 가져다주었고 산업을 자극시켰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라고 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미국의 유럽 사회에만 집중적으로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제 그가 발전시킨 미시신용을 통해 제3세계 국가의 빈민들도 이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Capitalism has the capacity to do good in the world, provided we recognize that the motivation for the entrepreneur need not be exclusively economic and personal.

의미 있는 실험, 그러나

그의 실험은 분명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이들이 그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어엿한 자산가(주3)가 되기도 하는 광경을 직접 보았고 실제로 그의 프로젝트를 통해 약 600만 명이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엔 미시신용이라는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를 원용한 사업도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웹사이트에서도 이러한 사이트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Prosper.com 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그의 프로젝트 성과가 실제보다 부풀려 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Common Dreams 에 유누스가 쓴 글에 댓글을 단 alexnosal 이라는 누리꾼은 방글라데시에는 미시신용이 있겠지만 미국 주식회사에는 이미 거시신용 macrocredit 이 버티고 있는데다 모든 것은 프랜차이즈化 되어 있어 미국에 유누스의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비판

방글라데시와 같이 금융의 인프라가 절대부족한 곳에서는 그의 프로젝트가 마치 먹물이 백지에 스며들듯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상인들도 금방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lexnosal 라는 이의 글처럼 제1세계 –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에서 과연 품앗이로 빌린 소액의 돈으로 할 만한 마땅한 사업이 있을까? 동네빵집? 파리바께뜨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데 그게 한두 푼으로 되는가?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kropotkins이라는 이가 제기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임이 분명한 이 누리꾼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체제라면 왜 여전히 ‘주인(owner)’와 ‘금전의 문지기(monetary gatekeeper)’가 존재하여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또한 그는 결국 국가와 자본주의의 절멸만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의 전제조건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If the point is to have a socialy benificial system then why would we still need owners and monetary gatekeepers.

그럼에도 의미 있는 실험

무정부주의자는 그를 쓰레기로 폄하하였지만 분명 그의 실험은 의미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도 이른바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개념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유(free)로운 경제’도 중요하지만 ‘공정(fair)한 경제’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유누스가 말한 배려와 나눔이 없이 오직 돈벌 자유만 판치는 경제가 아닌 서로 골고루 분배하는 경제가 이 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간적인 자본주의자’ 유누스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GATT 가 출범할 적에 그 본래 목적은 사실 ‘자유무역’의 촉진이 아닌 ‘공정무역’의 촉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유무역’이 대체하고 있다. 경제학자는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복잡한 수식을 써가며 설명하여 왔다. 하지만 그 무한자유가 제1세계, 제3세계 공히 피착취 계급에게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음이 이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설명할만한 수식을 경제학자들이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아니면 유누스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이라도 빌려줘 보던가.

그런데 한 실험에 의하면 경제학과 학생들이 가장 이타적인 행위에 인색하다고 한다. 수업을 너무 충실하게 들은 탓(덕택)인지….(주4)

(주1)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이 아니라 노벨 평화상이다. 세계는 아직도 가난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어도 떼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2) 우리 말로 하면 ‘사회사업’이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회사업과 너무 혼동되어서 그냥 원어 식으로 표현한다

(주3) 그들 동네에서 자산가였는데 사실 여전히 궁핍하긴 했다

(주4) 혹시 경제학도시라면 화내지 마시길… 실험은 실험일뿐…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Economists Rethink Free Trade)

Business Week의 최근 기사로 자유무역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맹신이 최근 회의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현상을 다루고 있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

많은 평범한 미국인들은 자유무역을 고임금 직업의 파괴자로 간주하며 내켜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들에게 자유무역은 어떠한 나라가 비생산적인 산업들과 결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손실된 직업들보다 더욱 더 나은 임금이 제공되는 새롭고 기술집약적인 직업들을 생산해내는 전적으로 대단히 좋은 것이다. 이러한 학문연구기관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는 왜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수십 년 동안 자유무역 의제를 추구하여 왔는지에 대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들이 상담하는 전문가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자유무역이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최상의 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유무역의 성전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회의감이 슬슬 기어들어 오고 있다. 우리는 그 이론에 대한 총체적이고 극적인 부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많은 중산층이 경험하고 있는 소득에서의 혼란스러운 스태그내이션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현재 손해를 보고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더 많은 일들이 행해지지 않을 경우 있을 보호무역주의자들의 반격을 두려워하고 있다. “전에 당신은 극단주의자들을 무역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로 만들었었다.” ‘페터슨 국제경제 연구소(the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의 Gary C. Hufbauer의 말이다. “이제는 10년이나 15년 전에는 논의되지 않았을 법한 광범위한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은 불과 몇 년 전에 그들이 확고하게 믿었던 확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전문가들과 상담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전임 부의장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의 멤버였던 Alan S. Blinder에서부터 부시의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국제경제학자인 다트머스의 Matthew J. Slaughter에 이르기까지 해당 직종의 많은 이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효과에 대해서 재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외국에서의 저임금 노동의 성장에 대해서 연구하였고 어떻게 고속 텔리커뮤니케이션이 더 많은 일거리들을 해외에서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는지를 목격하였다.(예를 들면 신용카드사의 상담을 맡는 백오피스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도인들로 채워진 인도에 세워지고 있다.:역자 주) 그들은 이제 그러한 요소들이 그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다.

단지 얇은 조각의 이득
아무도 무역이 미국에게 총체적으로 해롭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페터슨 연구소와 다른 기관들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 몇 십 년 동안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가 미국의 연간 소득에 5천억 달러 내지 1조 달러의 가치를 부가하여 왔다.

그러나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이익이 점차적으로 상층부의 소수 그룹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다트머스의 Slaughter는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최근 몇 년간 임금증가가 사라져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내팽개쳐진 낮은 기술직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가효과를 조정한 실질소득은 박사학위나 전문자격증을 소지한 4%를 제외한 전 고등교육 직종 군에서도 감소하였다. Slaughter는 그러한 수치가 무역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에 참여하지 못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매우 클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이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Blinder는 고통이 이제 막 시작하였는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미국에서의 4천만 개의 서비스 관련 일거리가 인도나 다른 저임금 국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미국에서의 1억4천만 개의 일자리의 4분의 1보다도 큰 수치다. 새로이 위협받게 될 직종은 회계나 리서치같은 숙련직들이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숫자의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옮길 수 있다. “이는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수반하는 조정기가 될 것이다.” Blinder 의 말이다.

왁자지껄한 학문적 논쟁은 벌써부터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Hillary Clinton 은 비교우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Paul A. Samuelson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이야기했다. “점증하는 세계화와 정보기술이 우리의 중산층을 강화시키는지 아니면 공동화시키는지에 대한 물음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이다” 그녀의 최고위 경제자문 Gene Sperling가 최근 쓴 글이다. Barack Obama의 자문인 시카고 대학의 Austan D. Goolsbee는 자유무역이 소득압박의 배후주범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열린 시장에서의 이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무언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있을까 두려워 하고 있다.

행동을 위한 요청
무엇을 해야 하나? Blinder는 실업보험의 광범위한 확대와 직업을 잃어버린 제조업 노동자들을 유지하고 있는 ‘무역조정지원제도(Trade Adjustment Assistance program)’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더 낮은 임금으로 새로운 직장을 가지게 된 실직노동자들에 일부 지원을 하는 직업훈련과 급여보험도 그의 제안에 포함되어 있다. Clinton과 Obama, 그리고 공화당 의원 John McCain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Slaughter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자유무역으로부터의 이득이 보다 많은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재분배의 몇몇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여름 Foreign Affairs에 Slaughter가 같이 쓴 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글에서 그는 국내 중간소득 이하를 버는 모든 노동자의 근로소득세를 걷지 않는 “세계화의 새로운 협약(A New Deal for Globalization)”을 제안하였다. Slaughter는 양 당의 캠페인 자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까지 그는 지지자가 없다. 그러나 무역에 관한 논쟁이 얼마나 멀리 이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알바

ALBA가 무슨 뜻일까? 아르바이트의 한국식 표현? 그렇기도 하지만 ALBA는 스페인어로 “새벽”을 뜻한다. 동시에 ALBA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의 대안(the Bolivarian Alternative for the Americas)”의 첫 글자를 딴 남아메리카의 대안적인 무역 동맹이다. ALBA는 지난 2004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에 대항한 공정한 무역의 대안으로 우고 차베스 Hugo Chavez 와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니카라구아에서 다니엘 오르테가 Daniel Ortega가 당선되자 이들도 합류하였다. 자금조달은 베네주엘라의 오일머니덕분에 가능했다.

여하튼 ALBA는 지난 25일과 26일 양일에 걸쳐 카르카스에서 여섯 번째 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에서 도미니카도 합류하였다. 그리고 에콰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아이티 등에서 각각 대표사절을 파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인민의 필요를 대변하는 무역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독재적인 세계자본주의”를 맹비난하는 한편으로 미국의 경제공황을 경고하면서 각 나라가 보유자산을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인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다니엘 오르테가는 환경위기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그는 “개발을 위한 자본주의 모델은 명백히 지속가능하지 않다. 만약 당신 나라의 경제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투기적 자본에 의해 통제된다면 그 나라는 인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단 우리가 자유무역 모델을 포기하면 우리는 실업, 가난,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천연가스와 석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토지, 물, 에너지와 같은 핵심적인 공공자원은 사적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헤게모니를 증대시키기 위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는 미국의 지원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ALBA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는 베네주엘라의 이웃나라인 콜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라이스는 미국과 콜롬비아간 자유무역협정의 조속한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대통령 알바로 우리베 베레즈 Alvaro Uribe Velez 를 만나고 있었는데 차베스는 그를 “제국의 날품팔이”라고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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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Bolivarian Alliance for the Americas” by EnigmaticlandOwn wor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LBA의 로고

구체적인 협상내용으로 들어가서 살펴보자. 협상 내용은 상호이윤추구라기보다는 원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를 들면 니카라구아는 베네수엘라가 우유, 옥수수, 콩, 소고기 등을 공급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베네주엘라는 니카라구아에 우대조건으로 석유를 판매하기로 했다. 쿠바는 베네주엘라에게 석유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의사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이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각국 정상들이 동맹을 강화하고 세계은행과 같은 미국 주도의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른바 ALBA 은행은 10억 달러내지 15억 달러의 자본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역시 베네주엘라가 주요 자금조달원이 될 것이다. 이 펀드는 예를 들면 도미니카의 풍부한 강물과 니카라구아의 기술이 결합된 수력발전 에네지 벤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차베스와 여섯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미 지난달 70억불을 자본으로 계획하고 있는 남미은행(the Bank of the South)을 설립하였고 이 은행은 세계은행이나 IMF보다 더 완화된 조건으로 대출을 제공할 것이다.

ALBA의 미래는 얼마나 더 많은 나라들이 참가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에콰도르나 아이티의 경우는 참가를 원하고 있으나 심각한 내부반대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 역시 보수언론의 강한 반발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들은 경쟁이 아닌 상호원조에 입각한 무역이라는 점을 자국에 설명하려 해도 일단 차베스, 카스트로, 오르테가가 거론되면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는 우익들 때문에 상황이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쿠바의 Martin Luther King 센터의 조엘 수아레즈 Joel Suarez 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ALBA의 사회운동 위원회 활성화를 들고 있다. 이 위원회는 농민, 여성, 환경주의자, 노조 등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적 차원의 참여가 곤란한 나라는 사회운동단체가 우선 참여함으로써 점차 외연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제안에는 심지어 미국의 사회운동단체도 포함하고 있다.

또 하나 ALBA의 미래를 흐리게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경제력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오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우고 차베스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참가하고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과 사회운동단체 들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실험은 현재 자본에 의해 주창되는 “자유무역”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자유’, ‘이윤추구의 자유’이고, 이에 비해 남미 좌파세력이 주창하는 “공정무역”에는 ‘인민을 위한’, ‘서로 돕는’, ‘환경을 위한’이라는 개념을 바탕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 실험의 성공이 향후 이 지구의 물질문명의 앞날에 중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고전에서 마주친 자유무역론

퀴즈로 글을 시작하도록 하자. 다음 글은 어디에서 등장하는 글일까?

“당신은 당신만의 특별한 무역이나 당신의 사업이 보호관세에 의해 원조 받고 있다고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률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의 부를 감소시키고, 우리의 수입품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You may be cajoled into imagining that your own special trade or your own industry will be encouraged by a protective tariff, but it stands to reason that such legislation must in the long run keep away wealth from the country, diminish the value of our imports, and lower the general conditions of life in this land.”

Adam Smith 의 국부론? 아니다. 정답은  Arthur Conan Doyle 경이 1901년에서 1902년에 걸쳐 Strand 잡지에 기고하였고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남은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이다. 조금은 의외의 공간에서 만난 경제에 관한 글이다.

소설에서 이 글은 Times 신문의 기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음울한 전설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는 Henry Baskerville 경에게 배달된 익명의 경고장에 오려붙여진 단어들의 원 기사로 사용되었다. 정체모를 사람이 보내온 경고장은 다음과 같다.

“As you value your life or your reason keep away from the moor.”

이 문장을 보면 moor 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모두 위의 기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었고 Sherlock Holmes 가 이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린다는 설정이다.

여하튼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경제에 대해선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한다는 언급만을 한 채 다시 자신들의 관심사인 범죄에 관한 대화로 돌아간다. 그렇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 장면은 그 당시 자본주의 최강국인 영국에서 펼쳐지고 있던 무역에 관한 논쟁들의 단편을 보여주는 풍속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오랜 투쟁은 이 소설이 발표된 1900년 초입을 더 거슬러 올라가 180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1815년에 제정하여 1846년에 폐지한 영국곡물법을 들 수 있다.

‘곡물법(穀物法 , Corn Law)’이란 무엇인가? 이 법은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로 같은 이름의 법이 중세에서부터 있었지만 19세기 초반의 영국 법률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소맥의 가격이 일정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표면상의 목적은 곡물 가격의 등락에 대해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보호무역주의 악법이었다.

그 당시 자유무역의 선봉장 리카도 David Ricardo 를 비롯한 여러 명망가들이 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나 의회의 다수파를 이뤘던 지주계급은 이 법을 강력히 옹호하여 결국 1846년이 되어서야 법이 폐지되었다. 리카도는 생전에 법의 폐지를 볼 수 없었다.

그 이후 곡물규제는 마침 위의 소설이 발표되고 있던 시점인 1902년과 1932년에 다시 필요하게 되어, 1902년에는 수입 곡물과 밀가루에 최소한도의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1932년에는 해외 수입의존도 증가를 우려하여 제정법으로 영국산 밀을 보호했다.

요컨대 이당시 보호무역주의는 명백히 봉건시대의 지배계급인 지주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폭거였다. 즉 지나치게 높은 곡물가격은 임금상승의 요인이 되어 산업경쟁력을 해치게 된다.(주1) 이것이 당시 지주계급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생계비용의 큰 몫을 차지하는 곡물가격의 앙등은 좀 더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하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이해에 합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은 당시의 지배계급인 지주들의 기득권을 깨부수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일종의 진보주의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곡물법의 폐지는 자본가 계급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의 헤게모니를 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p.s. 어쩌면 이것이 그 당시의 자유무역 주창자들과 오늘 날의 주창자들의 다른 점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아직까지 사회주류가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당시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제3계급으로 분류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가 계급은 분명히 지배계급이다. 그리고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닌 소농들이거나 기업농, 즉 또 다른 자본가계급이다. 요컨대 계급지형이 싹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기회 되면 이야기를 풀어 가보도록 하겠다(maybe or maybe not).

 

(주1) 한편 맬서스는 리카도와 배치되는 입장에서 농업의 보호를 주장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오늘날 농업보호를 위해 많이 주장되는 농업의 비교역적 조건, 즉 농업의 식량자원으로의 이용가능성을 들고 있다. 오늘 날에는 이에 덧붙여 농축산물의 위생문제도 많이 거론되고 있다.

American Apparel의 도발적 광고, 장삿속인가 정치적 항거인가

가만 보면 의류광고는 다른 상품광고보다 좀 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일단 패션이라는 테마를 알리니 만큼 어떻게 해서든 튀는 행동으로 주위를 환기시킴으로써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 패션계에 기인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기도 한데 뭐… 패션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보다 하는거다.

여하튼 이런 튀는 광고의 대표 격은 잘 알다시피 베네통이다. 루시아노 베네통이 1969년 한 옷매장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 베네통 브랜드는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후 유럽 최대의 의류업체로 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 브랜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광고의 상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주제와 형식을 담은 광고 때문이었다. 강한 정치적 메시지, 충격적인 비주얼, 대담한 아이디어는 이후 베네통 광고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베네통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베네통 광고 사진 맛보기

최근 베네통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선보이는 의류광고가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인 American Apparel의 광고다. 최근 이 회사의 광고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이는 바로 이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미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은 이는 회사의 설립자이자 CEO Dov Charney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어메리칸어패럴의 광고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에 지난달부터 게시된 이 광고의 의도는 분명하다. 이 사진은 이주정책의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이다. 즉 현재 미국의 이주정책은 일종의 차별정책이며 불법화된 이주노동자들이 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합법적인 경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그늘에서 살고 있다.”라고 Dov Charney는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광고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앞서 말한 베네통이나 나이키 등 일부 업체에서만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시장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한 광고회사의 CEO는 “이 이슈는 선거에서 결정될 문제다.(주1) 그러나 그들은 어쨌든 매우 급진적인 회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광고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American Apparel에 따르면 회사로 그들을 지지하는 편지들이 답지하고 있다고 한다. Charney 씨는 대부분의 대기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비밀스러운 로비를 선호하지만 자신은 공개적인 방법을 선호한다면서 자신의 광고를 옹호하였다.

“우리의 옷을 만드는 이들에 대해 분명히 하자면 그것은 미국 태생의 노동자들과 미국 이외 지역 태생의 노동자들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이민을 지지하는 것이 나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책임 있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게끔 하는 면이 있다.”

어찌 보면 다분히 비즈니스적 마인드에 철저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American Apparel은 오랜 동안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주창자였으며 과거에도 꾸준히 이주정책에 관한 광고를 지역신문에 게재해왔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 일부 이주정책 전문가들은 이 광고에 대해 비판적이다. 코넬 대학의 Vernon M. Briggs Jr 교수는 불법이주에 대한 대응은 차별이 아니라 단순히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이며 해당 광고는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을 영속화시키려는 자족적인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다.

저임금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하든,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든, 또는 정말 순수하게 Dov Charney의 정치적 목적이든 다 좋다. 어쨌든 일개 기업이 다분히 민감한 주제인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해 도발을 한 것이다.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Dov Charney와 같은 사회적 이벤트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태는 미국에 비해 나쁘면 나빴지 좋을 것 하나 없다.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인권위원회까지 설치한 참여정부는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을 3D 업종을 메워주는 소중한 이웃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범법자라고 여기고 있다. 업주의 저임금 착취노동, 과잉단속, 불법추방으로 이어지는 탄압 속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로 죽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갔다.

이천 냉장창고 사태는 그러한 한반도 이주노동자 현황의 결정판이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단속반이 공장이든, 길가든, 집이든 ‘불법체류자’라고 의심되면 언제라도 이주노동자를 심문하고 단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우리의 형과 아버지가 타국에서 그러한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실제로 몇 십 년 전만해도 선진국에 광부로 일하러 갔던 우리의 선배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인권오름] ‘인간사냥’에 쫓기는 이주노동자

흔히 이 사회의 주류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은 이동성이 뛰어난 자본에게 더욱 유리한 형태인 것이 사실이다. 오늘 날 거대자본은 임금의 많고 적음, 국가의 세금이나 우대정책 등에 따라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생산기지와 오피스를 옮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류들이 바로 WTO의 각종 조약이나 FTA들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자본에 비해 훨씬 이동성이 떨어진다. 살고 있던 곳을 떠나기 쉽지 않고 바로 대부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타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기 때문이다. 무역의 자유를 신봉하는 이들이 바로 노동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도 있고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은 체제적 속성이기도 하다. 사실 자국 노동자마저 생산비용으로 환원하는 이들이니 살갗이 틀린 이들에게야 더 모진 것이 당연한 일일게다.

 

(주1) 현재 미국 내 불법노동자의 수는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로 인한 각종 사회문제 때문에 사실상 이주노동자 문제는 2008년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FTA가 대선 쟁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 현재 남미에서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각종 실험이 진행중이다. 이미 베네주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는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제헌의회를 통해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시도에 착수하였는가 하면, 국가간 연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중 한 시도가 바로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체결되고 있는 FTA(Free Trade Agreement)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일명 ‘자유무역협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FTA는 실은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WTO체제와 달리 개별 국가간에 체결하는 FTA는 두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우선하여 상호관세를 철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종의 상호 특혜조치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를 체결하는 국가는 자국의 국민에게 FTA가 WTO체제의 취지나 자유무역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호도를 하고 있고 많은 국민들이 이를 사실인양 여기고 있다. 요는 FTA는 철저히 특정 국가간의 계급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작성되고 이행되는 무역협정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 남미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FTA의 실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Bilaterals.org에 따르면 오는 10월 23일 볼리비아의 외무부 장관 David Choquehuanca가 멕시코를 방문할 예정이라 한다. 그는 이 방문에서 멕시코 당국자들을 만나 상호무역, 교육, 문화 등에 대한 협정서에 조인할 예정이다. 이는 10년 전에 양국이 체결한 FTA를 넘어선 보다 개선된 시장을 조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Choquehuanca 장관은 또한 노조 지도자, 원주민, 그리고 다양한 부문의 노동자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여하튼 자세한 경제협력 사항은 알 길이 없으나 기사에 근거하여 판단하였을 때 주목할 만한 점은 양국간의 상호협정이 단순히 경제주체들의 이익극대화에만 주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전에도 베네주엘라와 쿠바 간에 맺어지고 있는 상호조약의 형태가 경제협력과 함께 교육, 문화 등에 있어 사회 불평등의 해소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듯이(관련글 읽기) 이번 양국간의 협정도 문화, 교육, 스포츠 등 다양한 형태의 협력 내지는 교류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가 미국과 체결한, 그리고 유럽과 체결할 FTA에 이러한 내용이 담길 가능성은 애석하게도 현재에도 향후에도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몇 해전 중앙부처가 학교급식에는 우리 농산물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WTO위반이라며 무력화시킨 적은 있다.

그 결과 여전히 학교급식에 (뼈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버젓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FTA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조건없는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의 행정부마저 국민의 보건이나 건강이 FTA 체결에 장벽이 된다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겠다는 자세다.

왜 우리에게는 남미에서와 같이 경제성장과 함께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조항이 함께 포함된 FTA를 맺자고 주장하는 행정관료가 없는 것일까? 미국대선에서는 FTA체결 여부가 자국의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여야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판에 우리네 선거판에서는 관심조차 못끄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지 한심할 따름이다. 그나마 민주노동당만이 유력한 정치세력 중 유일하게 FTA를 반대하고 있으나 그것의 대안제시도 부족한 면이 있고 그 목소리마저 철저하게 주류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미FTA와 한-EU FTA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대선쟁점이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FTA가 향후 국내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미칠 영향은 엄청날 것이고, 그런 나라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라면 당연히 그것에 대해 분명한 입장과 대처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은 협약의 주요 조문 하나하나에 대해 대선주자들의 입장을 묻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다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다”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5천억 원의 대박을 터트린 론스타의 고위간부의 말이다. 낼 세금이 있으면 내겠지만 낼 세금이 없다는 뉘앙스가 진하게 느껴진다. 무릇 나라 안에서의 모든 거래행위의 시세차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한 나라의 세무당국을 하찮게 여기는 오만함이 묻어난다. 실제로 론스타는 이미 지난해 세무조사에 따른 국세청의 추징금 납부를 거부, 불복절차인 `심판청구’를 국세심판원에 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오늘날 모든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국민국가 소멸론자’ 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Made in USA’, ‘Made in Japan’ 등의 제조국 표시는 큰 의미가 없다. 국경을 초월한 생산기지의 다국화(多國化) 현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표시 방법은 어쩌면 ‘Made by Samsung’, ‘Made by Microsoft’ 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미 초국적 기업은 국민국가보다 더 큰 경제단위가 되어있다. 그러니 초국적 금융투기의 귀재인 론스타가 동북아시아의 한 나라의 세무당국에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 불손한 행위는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초국적 자본에게 국민국가 따위는 사라지는 편이 속편한 것일까?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국민국가의 존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 희극적인 요소이다. ‘우리 모두는 케인즈 주의자다’라고 일갈한 닉슨이 1970년대 케인즈 주의적 국가정책을 무력화시켜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키는데 일조하였듯이 ‘국가 따위는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는 초국적 자본은 여전히 국민국가 없이는 그들만의 초과 잉여가치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론스타의 시세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론스타코리아가 외환은행 인수협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세법에 규정된 ‘간주 고정사업장’으로 볼 수 있어 과세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국민국가 존재 자체가 초국적 자본에 적대적이라는 가정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론스타가 그에 대항하는 무기인 벨기에의 조세회피지역 역시 국민국가의 보호 아래 놓여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국민국가는 초국적 자본의 농간질에 놀아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영리하고’ 이동성이 빠른 초국적 자본은 자신들이 배후에서 조종하여 체결한 국가 간 협약이나 국가 간의  각종 경제사회적인 환경의 차이를 활용하여 초과 잉여가치를 향유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초국적 자본의 광속도의 이동경로에 자신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또는 웃는 낯으로 투항하거나 결탁하기 때문이다.

국민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부여는 바로 일극체제의 중심 미국에게서 찾을 수 있다. 행정부 자체를 자본가들로 채워버린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으로 초국적 자본과 군수산업의 편에 서서 세금을 감면하여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라크를 침공하여 시장을 확대해주었다. 만약 한 개별기업이 시장의 확대를 위해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면 현재의 저항보다 더 큰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국가’라는 브랜드는 일반정서상 초국적 자본에게 유리한 것임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자본가는 국적을 거부하지만 국가를 활용한다.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거부하고 시장의 자유를 부르짖지만 그렇다고 ‘멍청한’ 동업자인 국민국가를 폐기할 생각은 아직까지 하고 있지 않다. 고세율의 대표주자 스웨덴마저 획기적인 감세를 통해 자본에 투항하는 판에 굳이 확인사살을 할 필요가 없다. 아직까지는 동업자의 활용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는 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경제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지만 그것은 ‘개방’과 ‘자본의 특별시민권 부여’를 혼동한 무식의 소치이다. 국가 스스로가 론스타에게는 장내에서 싸우다 언제든지 장외로 나가버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고 국세청은 두 손 묶고 링 안에서만 싸우라는 규칙을 정해준 것을 ‘개방’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그런 ‘개방’은 빨리 폐기시켜버리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