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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룰렛 讀後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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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mond Shum – , Fair use, Link

나는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났다. 공산당은 중국의 농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부모님을 시골로 보냈다. [중략] 상하이 주민 수십만 명이 중국판 시베리아로 추방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것과 달리, 우리 가족은 상하이에 그대로 살 수 있는 허가를 받았는데 이는 행운이었다. 부모님 학교에서 우리 가족을 중국 농민들의 집에 돌아가며 살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외톨이 신세를 면했다. [레드룰렛, 데즈먼드 슘 지음, 홍석윤 옮김, 알파미디어, 2022년, p23]

작가 데즈먼드 슘은 1968년 11월생으로 문화혁명은 대략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진행되었던 역사적 사건이므로 그의 말대로 그가 태어난 해는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1960년대 말은 세계 어느 나라나 평화로운 곳이 별로 없긴 했지만, 중국도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격변을 거치고 있던 시기였을 것이고, 이 책은 그 이후 그 문화혁명만큼 또 하나의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던 중국사회에 인사이더로 활약했던 작가가 몸소 겪었던 체험담을 담은 책이다.

현대 중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문화혁명 이후 작가가 걸어온 삶은 보통의 중국인과는 좀 다르다.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작가의 부모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홍콩으로의 이주를 허락받아 그를 데리고 홍콩에서의 삶을 시작했고, 머리가 명석했던 작가는 미국으로의 유학에 성공하여 결과적으로 작가는 중국인, 홍콩인, 미국인이라는 메트로폴리탄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후 중국 본토 등에 투자하는 투자사 등에 근무하며 다시 본토에서 머물게 된 작가에게 운명 같은 만남이 있었으니 바로 후에 배우자가 되는 휘트니 단과의 만남이다. 보통의 순종적인 중국여성과 달리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그는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고 둘은 결혼을 통해 경제공동체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는데 이후 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될 여성으로 바로 훗날 중국의 총리가 되는 원자바오의 배우자였던 장페이리다.

나는 휘트니와 하얏트 호텔 현관에서 나란히 차렷 자세로 서서 손을 흔들었다. [중략] 그녀가 떠나고 휘트니에게 다가가자, 휘트니는 그제야 장 이모가 중국 부총리 중 한 명인 원자바오(溫家寶)의 부인 장페이리(張培莉)라고 말해 주었다. 원 부총리가 이듬해인 2003년에 주룽지의 뒤를 이어 중국의 차기 총리가 되리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원 부총리는 곧 중국 정부의 수장이자 중국공산당의 이인자가 될 것이다. 휘트니가 그런 사람의 부인과 친구라니,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같은 책, p113]

작가는 이렇게 아내인 휘트니 단과 함께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층과 인연을 맺으며 소위 ‘꽌시’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이후 그러한 친분을 이용하여 그들이 어떻게 여러 수익성 있는 프로젝트에 접근하여 엄청난 부를 쌓으며 중국 권력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몸에 익히게 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거기에서 드러나는 중국 사회주의의 맨살은 사회주의 본래의 이상과는 달리 혁명세력 스스로가 또 다른 귀족이 되어 국가의 권력과 이권을 독차지하는 금권주의 사회였다는 것이 작가의 관찰이다.

이들 부부는 핑안보험의 주식 인수, 공항 프로젝트 등을 위해 원자바오 집안뿐만 아니라 왕치산, 쑨정차이 등 중국 정계의 주요 인물이나 중국 최고의 부동산 재벌인 헝다의 쉬자인 회장 등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권력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치와 부패에 절어있는 꽌시 비즈니스를 영위한다. 또 한편으로 쩡판즈 등 잘 나가는 화가의 작품을 엄청난 작품료를 지급하며 사거나 노란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려 전 세계를 찾아 헤매는 등의 광적인 소비에도 몰두하는, 전형적인 자본가의 삶을 만끽한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모든 것이 부부의 뜻대로 됐다면 이 책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고 순탄했던 그들의 삶에 먹구름이 끼게 된 이유가 결국 체제의 작동방식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 이었다는 사실 또한 이 책의 교훈이다. 그들의 꽌시는 결국 실정법과 도덕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중국의 권력자는 – 다른 모든 권력이 그렇듯 – 정적의 제거를 위해 그러한 부패 혐의를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이들 부부의 비리가 외국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이들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2012년 2월, 휘트니와 나는 보시라이가 중국 기자와 학계의 인맥을 동원해 장 이모와 그 자녀들에 대한 악성 소문을 파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뉴욕타임스》의 바르보자 기자는 어떻게 해서 그 기사를 쓰게 되었냐는 질문에 답하면서 원자바오에게 복수하려는 보시라이파 인사들로부터 정부를 얻었다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장 이모는 보시라이에게 충성하는 보안요원들이 홍콩의 바르보자에게 여러 개의 문서 상자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책, p113]

즉,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현재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과 경쟁 관계에 있던 보시라이에 대한 수사를 지지하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중국 보안부 내의 보시라이파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것이 작가의 추측이다. 이 과정에서 보시라이파는 작가 부부와 원자바오 가족 간의 석연찮은 거래 등을 포함한 자료를 서방 언론에 제공하였고 이 기사가 터지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중국공산당 권력과의 밀월 관계는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더 비극적인 것은 부부의 사이도 결정적으로 틀어지고 만다.

이 책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부부의 이혼이 아니다. 작가는 2015년 휘트니 단과 이혼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런데 그 이후 휘트니는 그들 부부가 지은 중국의 복합건물의 사무실에서 누군가에게 붙잡혀 끌려갔고 그 이후 그의 행적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절망한 작가는 舊소련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다 비슷한 방식으로 탈출한 빌 브라우더(Bill Browder)의 회고록 「적색 수배서(Red Notice)」에서 힌트를 얻어 제목을 정해 바로 중국공산당의 비리를 고발하는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사회주의 중국에서 태어나, 혼합경제 도시 홍콩에서 자라고,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금권주의 화된 중국에서 부를 축적한, 그러면서 중국에서 서구식 자유주의의 도래를 꿈꿨던 어느 자본가의 회고록이다.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중국의 미래로 상상하였지만, 책에서 드러난 그의 행적은 아직 봉건적 시스템을 유지하는 중국공산당의 퇴행성을 악용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중국의 퇴행적인 현재 권력 시스템에 저항하려 했는지 또는 기여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워싱턴포스트 컬럼]트럼프는 북한을 위협하는 대신 이것을 시도해야 한다

[원문보기]

John Delury는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부교수다.

시리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미사일 공격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환호를 불러일으켰고, 몇몇 열광자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군사적 해결”에 관한 논쟁을 촉발하게끔 했다. 한국에 대한 행정부의 대다수 레토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비교는 매우 위험한 오해다. 타격을 하면 북한이 반드시 더 강하게 보복할 것이다. “외과적” 공습으로 그들의 능력을 – 핵 또는 다른 것들 – “선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적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 프로그램을 저지하려는 그 어떠한 무력의 사용도 전쟁을 촉발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우선의 시대이니 우리는 북한의 포나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권에 놓인 서울에 사는 1천만 명에게 닥칠 죽음과 파괴를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곳의 기지들에 있는 군인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하여 남한에 거주하는 약 14만 명의 미국 시민과 이웃 일본에 있는 추가적인 시민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또는 남한의 미국과의 1,450억 달러의 상호무역을 포함한 다른 세계와 얽힌 1조 4천억 달러의 경제는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공항인 인천 국제공항이나 세계 6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구인 부산에 쏟아지는 것은 신경 쓰고 있는 것인가? 중국의 관문에 대화재가 발생하거나 일본이 휩쓸려 들었을 때 세계 경제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분명히 미국의 대중과 정당을 초월한 의회는 이러한 비용들이 감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행정부에 존재하는 많은 분별력 있는 전략가와 정책결정자를 고려할 때 군사적 악담은 허세라 결론내리는 것이 이성적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현실적으로 임박한 질문, ‘직접 대화나 개입으로 나아갈 외교적 옵션을 선택하기보다 중국의 경제제재를 통한 경제적 압력에 직면해 그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동을 함에 따라 경제제재와 압력에 돈을 투자했다. 불행하게도 북한은 이란과 같은 정상적인 무역국처럼 호주머니 사정이 막바지에 몰리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이미 국제 경제로부터 진작 고립되었고 국제사회와 절연되어 왔기 때문에 고립이 심화되어도 그들의 셈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정은에게 있어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그가 북한의 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내부 정책들은 이미 완만한 성장세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관심사항은 정권의 생존과 국가 안보이며, 그는 이를 위해 핵 억지력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슬프게도 합리적인 추론이다). 8년간의 경제제재와 압력은 – 김정일의 죽음 직전의 짧은 외교적 시기를 빼고는 – 평양이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게 깨닫게 하거나 북한이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무기고를 확장하는 것을 방지케 하는데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식의 접근 방법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정말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싶다면, 그것은 대중을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김을 무릎 꿇리는 것을 헛되이 기다리며, 무모한 전쟁의 위협으로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보다 신중한 조치는 핵분열 물질 생산 사이클의 동결, 국제핵에너지기구 감독으로의 복귀, 그리고 핵 실험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위성 발사를 포함한)에 관한 유예에 관해 협의하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대신에 미국은 최소한 남한과의 연합 군사 훈련의 연기와 같은 당면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김은 어쩌면 그 훈련 규모의 축소와 같은 더 덜한 요구에도 응할지 모른다. 또는 그는 어쩌면 다른 종류의 거래에 – 예를 들어 1953년의 정전협상을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한 여하한의 종류의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대화의 시작 – 응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옵션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이블에 다가서는 것이다. 2개월간의 대규모 훈련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 그러한 일을 벌일 좋은 타임이다.

동결은 근원적인 역학을 바꾸고 각 당사자가 문제의 근본이라 여기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첫 걸음일 뿐이다. 우리는 김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얻기를 포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잡은 이후 그의 야망이 핵 억지력 이상으로 나아가 진정 경제개발로 가고자 한다는 강한 신호가 존재한다. 전쟁 위협이나 경제제재의 심화보다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경로로 – 권력에서 번영으로 – 김을 살짝 찔러 넣어주는 것이 보다 생산적인 방법일 것이다. 만약 김이 북한의 개발 독재자가 되고 싶다면 미국의 최선의 장기 전략은 그가 그렇게 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러한 과정의 첫 단계에서 핵 억지력을 포기할 것이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궁극적으로 그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다.

이제는 채널을 다시 열고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능력이 현재 있는 곳에 머무르게 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뛰어오르기 위한 시점이다. 그래서 미국은 서울의 새 정부 및 다른 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북한을 지역적 안정과 번영에 녹아들게 만들 장기 전략을 지원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김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고, 경제제재는 북한 대중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압박은 그곳에서의 인권침해를 개선하는데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대중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게 하여 나라를 차츰 차츰 개방하게 돕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군사적 공격을 위협하고 긴장을 높이게 되면, 미국은 북한 체제의 최악의 추세로 가도록 도울 뿐인 것이다. 김의 핵에 대한 야망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북한의 능력은 높아질 뿐이다. 코스를 반대로 바꿀 때다.

중국 사회주의의 증표(證票) 소비

계획경제 체제에서 소비는 ‘증표를 지참한 물건 구매’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비자는 화폐가 아니라 직장에서 분배받은 증표를 주고 해당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증표 소비’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증표는 120여 종에 달했다. 당시 쓰촨성에서 소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를 보면, 국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민이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것’ 전부를 관리한다. “계획은 천하를 통일했고, 이 정도 수준은 중국 역사상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일이다.”[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조영남 씀, 민음사, 2016년, p211]

중국에서의 계획경제는 마오쩌둥 시대에 체계가 잡혔다. 계획경제에 대해서는 楊江의 ‘건국이래신대경제열점(建國以來十代經濟熱點, 1995)’에서는 “공유제 경제를 기초로 강제성 계획과 행정명령을 주요 수단으로, 위에서 아래로 고도로 집중된 계획 관리를 실행한 경제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책에 따르면 1976년 전체 공업 생산량 중에서 국가 소유(전민소유제)가 80%, 집체 소유가 20%를 차지했으며, 유통 부문에서는 국영 상점이 90.3%, 집체 상점이 9.5%를 차지했다. 이렇듯 견고한 공유제와 계획경제가 결합하면 소비 역시 어느 정도 계획화되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그 결과가 바로 ‘증표 소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폐의 기능을 대체한 증표는 “필요한 욕망의 이중적인 동시 발생(double coincidence of wants)1의 필요를 줄일 효율적 수단”이라는 화폐의 기능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 소비에 특정 증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의 계획경제가 이러한 증표 발행을 통해 소비를 가능케 한 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선 자본으로도 쓰일 수 있는 화폐의 발행이나 유통 없이 소비를 가능케 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나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표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열악할 지라도 증표 발행량으로 소비를 생산량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증표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 초기에 소비재 생산 대신 중공업으로의 자원 투입을 집중시키기 위해 고안된 유사 화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계획경제의 보조 수단이기는 하지만, 조악한 계획경제의 조악한 보조 수단이었다. 이러한 증표 소비는 – 그러할 생산물의 잉여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 “한계효용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필수품 수요에 대한 단순한 양적 매칭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얼핏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기능 없이도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매칭될 것 같지만, 다시 증표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하는 자원배분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관료와의 유착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도 이러한 증표 소비의 영역은 존재한다. 정부가 특정 소비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바우처(voucher), 기업이 자사의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상품권, 특정 지자체에서 지역사회의 경제를 독려하기 위해 발행하는 지역 화폐 등 다양한 증표가 존재한다. 소비 행태가 고도화되는 사회일지라도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이렇게 증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증표의 기능을 하는 소비에 대한 자격증 발급은 특히 주택과 같은 생애소비재적 성격을 가진 소비재에서는 특히 적용 가능한2, 또는 사안에 따라서 정책적으로 적극 고려해야 할 보조수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경제성장은 어느 나라에서 주도하고 있을까?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2014년에서 2016년간의 기간 동안 전 세계의 경제성장의 약 52%는 중국과 미국에 의해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이 전체 경제성장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BSG는 투자자들이 이머징마켓에 가지고 있는 의욕적인 전략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Courtesy of: Visual Capitalist

 

한편 지난 한해 어느 자산의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을까? 맥쿼리에 따르면 달러와 나스닥 등이다. 그래프를 보면 애써 원자재와 같은 대체투자에 몰두했던 투자자들에게는 고난의 한해였음을 알 수 있다. 달러화의 강세는 곧 국제유가의 추가하락 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유가가 바닥이 어디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듯.

Courtesy of: Visual Capitalist

신용평가 후진국 중국을 보며 생각나는 또 다른 후진국

S&P나 무디스와 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주택 거품 당시 위험한 모기지 담보부 채권의 등급을 높게 매기고 금융위기의 와중에서야 사후적으로 정크로 강등해서 비난을 초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의 거의 12.7조 달러에 달하는 채무 중 겨우 1.4%만이 AA 등급 이상의 등급을 받았을 뿐이고 가장 높은 등급의 채권은 주로 정부가 보증하는 패니매나 프레디맥 같은 회사, 그리고 최상위 채무자가 발행하는 것들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최상위나 많은 보증을 받는 국유은행들에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지방정부나 민간 부동산 회사에 이르는 기관들이 똑 같이 높은 등급을 얻어내고 있다. [중략] 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이나 다른 이들에 따르면 현지 신평사들은 특정 회사의 정부와의 관계가 그 비즈니스나 부채 상환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고려한다. 그들은 중국에서의 대부분의 차주가 국유기업과 지방정부들이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높은 등급의 회사가 많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신평사들은 또한 해외에서 자금을 일으키는 국유기업들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방정부와 연계된 회사들은 중앙정부와 연계된 회사들보다 낮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Can All Chinese Debt Be Rated Top Quality?]

중국의 후진적인 신용등급 시장의 상황에 대한 WSJ의 글 중 일부다. 시장에서 채권가격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신용등급의 중요성은 정말이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례로 가깝게는 금융위기에서의 모기지 채권에 대한 엉터리 신용등급은 시장참여자들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고 금융위기를 심화시키는데 한 몫 단단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며 지금 그와 유사한 상황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신평사들이 못미더워서 자체적으로 신용등급을 매기겠다고 했던 중국 신평사들이 WSJ 보도에 따르면 정작 중국 본토에서 발행된 위안화 채권의 97%에 AA또는 AAA 등의 최고 등급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들 평가가 사실이라면 지금 중국은 세계 최고의 신용을 가진 국가인 셈이다.

해외 신평사가 국내기업에 대해 박한 이유로 공통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컨트리 리스크다. 남북분단이라는 매크로 환경이 기본적으로 점수를 깎고 들어간다. 하지만 이 변수는 점차 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더 중요한 매크로 환경은 이른바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에서의 소유-경영의 불투명성에 따른 리스크인 것 같다. 흥미롭게도 국내 신평사는 오히려 이런 특수성이 높은 신용등급의 근거가 된다. 즉, 순환출자로 엮인 “재벌”社에 속해있는 계열사는 회사 자체의 능력보다 더 좋은 신용등급을 받는다. 신용 리스크 등이 불거질 경우 모기업에서 자금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믿음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부실한 공사(公社)의 프리미엄도 상당하다.[신평사의 신용은 누가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

하지만 중국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신용평가 체계도 후진적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등급보다 상향 조정되곤 하는 평가등급은 “국내적 상황”이라 치부할 수는 있지만, 중국 신평사들의 고려사항인 정치적 고려요소가 국내 신평사들에게도 중요한 평가요소라는 점은 별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회사 자체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데 “정부의 지원가능성”, “모기업의 지원가능성”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구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1 2013년 동양사태 이후 독자등급의 도입을 서두르던 당국은 최근 “시장충격을 고려한 신중론”으로 급선회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엉터리 대기업 계열사나 부실 공기업은 또 다시 생명을 연장하며 자금시장에서 갑질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위기

서구 경제계나 언론이 요즘 중국경제에 관하여 가장 주목하는 부문은 금융부문이다. 이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금융으로 기능하고 있는 그림자 금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중국 ‘그림자’ 대출기관, 위기 모면했지만”이라는 글을 통해 중국의 그림자 금융의 위험함을 경고하고 나섰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러한 그림자 금융은 신용위기 전의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이 많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중청신탁 사례는 과거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자산처럼 급증하고 있는 신탁의 자산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중청신탁의 경우에는 투자대상이 광산업체인 ‘젠푸에너지그룹’이었다. WSJ에 따르면 해당 회사는 석탄 가격 급락과 지역민원 등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었음에도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투자자의 도움을 얻어 700여명의 투자자가 약간의 이자만 손해보고 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데이빗 쿠이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중국담당 전략가는 “문제는 쓸모없는 프로젝트에 투입된 대출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하는데, 중청신탁의 자산도 그런 자산 중에 하나가 될 뻔 했으나 돌연 익명의 투자자의 도움으로 생명이 연장된 셈이다. 이 신탁의 33%를 국영 중국인민보험공사가 소유하고 있고, 젠푸 투자상품의 대리인이 중국공상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그 구원투수의 정체성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통파가 아닌 꼼수파 구원투수인 점이 한계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2013년 4분기에 전년 대비 7.7% 성장하여 정부의 목표 7.5%를 상회했다. 하지만 도시 거주자의 실질 가처분소득 연성장률이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내수기반은 경제성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중국경제는 이런 수요 공백을 그림자 금융을 통한 필요 이상의 투자로 메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금융이 투자자에게 원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 환매나 신규투자 금지, 대리은행의 건전성 악화 등 신용위기 당시의 풍경이 재연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