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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혹은 ‘공간의 압축’이 만들어 놓은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은 대공업에 의해 만들어지는, 서로 다른 지방의 노동자들 상호간에 연계를 맺어주는 교통수단의 증대에 의해 촉진된다. 그런데, 이러한 연계만 맺어지면 어디서나 동일한 성격을 띠고 있는 허다한 지방적 투쟁들은 하나의 전국적 투쟁, 하나의 계급투쟁으로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 투쟁이다. 지방도로를 갖고 있던 중세의 시민들이 수세기를 필요로 했던 단결을, 철도를 갖고 있는 현대 프롤레타리아들은 몇 년도 안되어 달성한다.[공산주의당 선언, 칼맑스 프리드리히엥겔스 저작선집 1, 김세균 감수, 박종철출판사, p409]

맑스-엥겔스주의의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 공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예를 들어 매뉴팩처에서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대는 부르주아지가 개별 소규모 공장 혹은 가정에서 행해지던 생산기능을 대규모 공장에 모아서 분업화함으로써 가능했다. 대규모 공장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또한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곳곳에 산재해있던 노동자들이 단일 장소에 모이고 소통하면서 이른바 “노동계급”이라는 의식이 고양된 것이라고 보았다.

교통수단의 발달도 마찬가지 이치다. 자본가에게 있어 교통수단의 발달은 시장의 확대라는 장점을 극대화시켜준다. 교통수단이 지방도로에서 철도로 바뀌게 되면 원료를 보다 안정적으로 빠르게 조달이 가능하며, 상품 역시 보다 더 많이 신속하게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기에 자본의 거대화와 독점화는 더욱 촉진된다. 이것은 또한 인용문에서 분석한 것처럼 노동자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전국화된 투쟁을 보다 많은 규모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엥겔수주의의 뛰어난 점은 이렇게 서로 적대하는 계급이 흥미롭게도 같은 수단을 통해 갈등이 전국화되고 극대화될 수 있다는 통찰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은 노동력 수탈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철도는 시장의 확대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계급투쟁을 전국화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그 폭발적인 생산성 증가만큼이나 같은 속도로 계급모순이 폭발적으로 증대되는 것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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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uthor – Централь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кинофотофоноархив Украины им. Г.С.Пшеничного, Public Domain, Link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일당독재 또는 일인독재로 형해화되어 있는 21세기에 맑스-엥겔스의 통찰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공간은 인터넷에 의해 그 한계가 더욱더 좁혀졌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세계의 자본가와 노동자는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돈을 벌고, 소통하고, 동시에 가짜뉴스에 현혹된다. 자본순환, 계급의식, 또 반대로 혐오의식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극단화된다. 맑스-엥겔스가 바라던 바람직한 투쟁의 집중도 없잖아 있지만, 세계적 우민화도 동시진행형이다.

더불어 교통수단의 발달과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된 세계화로 – 즉, 공간의 압축 – 인해 지구인은 값싼 상품이라는 호재(好材)를 공유하게 되었지만, 더불어 악재(惡材), 이를테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도 함께 겪게 되었다. 어찌 보면 공간의 압축은 계급모순의 심화뿐 아니라 정치극단화, 유행병과 같은 부작용까지도 함께 공유하게 되는 상황을 불러온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의 압축은 자본주의의 축복이자 재앙인 셈이다.

그리고 공간의 압축은 맑스-엥겔스의 생각만큼 계급의식을 평준화하진 못했다. 세계화는 제조업의 저임금 국가로의 이전을 초래했고 선진국의 노동자계급은 일자리를 뺏기며 우경화되었다. 이는 해당 국가의 정치극단화를 불러왔고 세계는 다시 나홀로 금리인상, 전쟁, 에너지 쟁탈전 등의 양상으로 블록화되고 있다. 더불어 기후변화 등 자본주의 모순을 깨닫는 여론도 공간의 압축으로 실시간 공유되는 측면도 있으나 그 추동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

“朴, 대처, 레이건 롤모델로 ‘집단행동’ 고리 끊는다.”

2013년 12월 17일자 국민일보 1면 헤드라인이다.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의 소유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7천 명이 넘는 코레일 직원의 직위를 해제했지만, 그 배후(?)에는 朴心이 있음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기사다. 때마침 오늘 경찰은 철도노조 사무실의 압수수색을 벌였다. 기사는 이러한 일련의 모습을 두고 “이익집단에 밀리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 구축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도 새롭지 않거니와 자칫 대선 때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던 공약의 파기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수서발KTX의 운영을 담당할 신설법인(이하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가 코레일과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될 예정이므로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건호 씨는 이에 대해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사견으로 둘 다 반절은 맞고 반절은 틀렸다. 민영화의 본래 표현인 privatization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이 표현을 정치시장에 꺼내든 이는 국민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롤모델로 삼으라는 마가렛 대처다. 그는 국유기업이 주를 이루던 영국의 상황을 격파하기로 맘을 먹었고 꺼내든 카드는 국유기업의 탈국유화(denationalization)이었다. 그 상황을 표현할 때 선택한 단어가 바로 민영화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단계의 민영화는 소유권 이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점에서는 좌파 일부진영에서 주장하는 사유화(私有化)가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후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되 운영을 자본이 수행하는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즉 민간투자사업이 성행하면서 민영화의 범위는 광범위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privatization은 공공재에 대한 다양한 역할 이전을 의미하므로 사화(私化)가 적절한 표현이다.1

한편 민영화의 전 단계로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시장화(市場化, marketization)다. 굳이 소유나 운영을 민간에게 이전하지 않더라도 정부기능에 시장논리를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한데 대표적으로 코레일과 같은 정부조직의 공사화(公社化)다. 때문에 코레일은 이미 시장화된 상태고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는 노선을 분할한 새로운 시장화다. 따라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맞고 오건호 씨의 주장은 틀렸다.

한편 정부는 수서고속철도의 주주구성을 정관에 못 박을 것이기에 민영화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관은 바꾸면 그만이다. 코레일이 대주주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하지만 현재의 행태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근본적으로 철도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법인 철도산업기본법은 철도의 민간운영 원칙 조항이 있다. 진정 민영화 의지가 없다면 그 법을 바꾸거나 수서고속철도의 공공출자를 규정하는 법을 제정하면 된다.

정리하자면 현 단계는 오건호 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민영화의 싹을 자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할하여 설립한 수서고속철도는 흑자가 예상되는 법인이고 자산이 크지 않아 코레일에 귀속되는 것보다 더 민간매각의 가능성이 높은 법인이다. 결국 이 극한대립의 싹은 철도청을 시장화하여 민영화의 로드맵을 제시한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정부는 수서고속철도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를 구축하여 코레일의 “경영개선”을 이루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노선의 80%가 겹치는 유사상품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과연 “경쟁체제”인지는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 있고, 이 글에선 “경영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인 코레일의 만성적인 적자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나는 공공성의 확보 명분이나 부채 떠넘기기 등의 “정부의 실패”가 주원인이라 생각한다.

2012년 11월 29일 한국기업평가가 내놓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에 대한 신용평가 레포트를 살펴보기로 하자. 레포트는 코레일의 취약한 재무구조의 첫 번째 원인으로 “영위사업의 높은 공익성으로 인해 원가에 상응하는 운임 책정이 어려운 특성(2p)”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PSO(Public Service Obligation)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으나 그 금액은 적자를 보전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으로 보인다.

국회의원 오병윤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가 계산한 PSO 사업의 비용은 약 5천억 원에 달한다. 국토부가 다시 정산한 액수는 약 4천억 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3천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국토부 정산액을 기준으로 해도 철도공사는 받아야 할 PSO 보조금 가운데 25%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PSO를 통한 공공성 실현의 방해물은 민영화보다는 오히려 국토부라고 할 수 있겠다.[코레일 파업 완전분석 – 파업과 민영화와 한국철도]

한편 이러한 영업적자의 기저에는 부채라는 더 큰 빙산이 존재한다. 현재 코레일의 부채는 17조 원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최연혜 사장은 차량 구입, 인천공항철도 인수자금, 용산사업 해제로 인한 토지 대금 반납 등이 원인이라 답했다. 하지만 출발점에 더 큰 혹이 있었으니 바로 고속철도 건설부채다. 단병호 前 민주노동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4년을 기준으로 4.3조 원의 차량 부채를 들고 시작한다.

정부는 철도산업의 경쟁력 강화, 발전기반 조성 및 철도산업으 효율성·공익성 향상을 위하여 철도산업 구조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그 일환으로 2003 년 철도산업 구조개혁 관련 2 개 법률(‘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공사법’)을 제정하였다. 동 구조개혁은 철도운영부문과 철도시설부문을 분리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여 철도차량의 운영은 공사가 담당하고, 철도시설의 건설 및 관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책임지며,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철도청 및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의 시설관련 자산·부채는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이전되었고, 운영관련 자산·부채는 공사로 승계되었다.[한국기업평가, 제100회 한국철도공사채 신용평가 레포트, 2012. 11. 09, p8]

철도구조개혁이 집행되는 2004년 기준으로, 한국철도공사는 고속철도 차량부채 4.3조원, 한국시설공단은 건설부채 6.8조원 등 총 11.1조원의 부채를 승계해야 한다. [중략] 처음 경부고속철도 건설이 입안되었을 때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전액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상정되었었다. 그러나 고속철도 건설 예상비용이 계속 불어나자 정부는 국고지원을 35%로 한정하기로 수정하였다. [중략] 현재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1964), 프랑스(1981), 독일(1991), 스페인(1992) 등 4개국이다. 이 나라들의 고속철도 건설비용은 대부분 정부가 부담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사실상 방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투입된 외부자본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위해 운영회사에게 받는 선로사용료가 높아질 것이다.[한국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개혁방안, 2004. 11. 8, pp13~14]

결국 국가가 부담하지 않은 비용은 시장화된 회사들에게 이전됐고 이들은 태생적으로 “경쟁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독점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에 사업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철도산업을 이제 정부에서 노선별로 분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수서고속철도는 코레일보다 더 싼 선로사용료 등의 구매경쟁력이나 운임을 높여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경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코레일의 “부실경영”에는, 정부 측에서 주장하는 “과다인력”과 “고임금”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저에는 공익성을 위한 요금통제, 부실한 PSO, 보다 근본적으로 정부로부터 떠안은 막대한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뭐든지 “놈현 탓”을 하는 여권은 정말 노무현을 탓해야 할 시점에는 그리 하지 않고 있다. 부채가 부실경영의 원인이라고 하면 노조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게 되니까.

“민영화가 되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모든 부패한 나라는 민영화를 한다”는 저항을 조직하는데 좋은 슬로건일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다. 수서고속철도의 민영화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부실화보다는 오히려 기존 코레일의 부실화 촉진으로 인한 공공성 훼손에 있을 것이다. 그 부실화의 근본을 따라가면 우리는 고속철도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기한 “정부의 실패”를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토머스 프랭크의 저서 The Wrecking Crew는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고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조차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사적이익에 충실한 미국 우익의 실체를 다루고 있다. 만약 한국 버전을 쓴다면 철도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정부의 실패”로 부실화된 공기업을 정부 스스로 “시장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철도에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철도다.

시장화에 관한 트윗 모음

# 오건호 “정부는 공적자금만 참여하니 민영화 논란이 불식되었다고 주장한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면 민영화로 보아야 한다.” 민영화라기보다는 시장화라 표현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 (출처)

#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가 맞다”는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Privitization의 다양한 양상을 설명하는데는 직역에 가까운 私化가 적당할 듯 하다. 시장화는 이와 좀 다르게 공공기관의 법인화, 공적기금의 출연 등의 양상이 주가 되는 경우다.

# 시장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국의 공기업이 해외에서는 IPP(Independent Power Producer), 즉 해당국의 민간사업자와 동등하게 조달시장에 참가하는 행태. 한전, 수공 등이 해외발전, 수자원 시장에 참가하는 것이 해당사례다.

# 예를 들어 코레일이 해외 철도 시장의 운영회사로 입찰하게 되면 코레일은 이제 정부부문이 아니라 IPP가 된다. 해당국에서 철도 운영자로 코레일을 선정하면 이는 철도산업이 시장화, 나아가 민영화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 MB 시절 UAE 원전 사업에 삼성과 한전이 컨소시엄을 이루어 참가한 형태가 대표적인 발전 산업의 시장화. 수출입은행이 자금조달을 책임지는 수출금융. 자금조달을 위해 이슬람채권을 허용하려 했으나 개신교의 비이성적인 반대로 실패. 수은의 증자로 해결함.

# 요컨대 큰 틀에서의 공공서비스 현황을 볼 때 시장화를 단순히 민영화와 등치 시키면 쟁점이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한전이 해외발전사업에 진출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반대하여야 할까 찬성하여야 할까? 국익이라는 고답스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다소 복잡한 문제다.

“민영화”와 더불어 고민해야 할 이슈

# 대통령 “철도 노조 주장을 보면 민영화가 경영을 악화시킨다면서 영국의 예를 들고 있는데 영국과는 다르다. 철도도 민간이 서비스해야하며” (출처) 대통령이 이런 말을! 앗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로군요.

#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 처럼 이 이슈는 1980년대 이후 소위 “진보/보수” 구도를 넘어서는 정책적 연속성을 지닌 이슈다. 이를 한쪽 진영 시각에서만 보면 그 해법은 진실과 동떨어진다. 소위 나꼼수식 시각의 근본적 오류.

# 1980년대 이후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본격화되면서 가장 빈번하게 쓰인 표현은 “경쟁력 강화”였다. 사람들은 민영화란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면서도 경쟁력이란 표현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현재 철도 민영화 논쟁에서 정부가 쓰는 레토릭도 경쟁력이다.

# 정부 부문이 커지면서 관료적 행태와 비효율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정부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은 이런 부작용과 정부 고유의 공공성을 “경쟁력 강화”라는 쓰레기봉투에 함께 넣어 내다 버리려 한다. “진보”는 이 둘을 세심하게 분리하는데 실패했고.

# 요컨대, “민영화”와 더불어 고민해야 할 분야는 “정부부문 내의 시장 경쟁논리의 무분별한 도입”이다. 경쟁력 강화란 명목으로 공격당하는 정당한 요구들은 정부부문 내에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항공사의 살인적인 외주율. “세계 최고의 공항”의 그늘.

별도의 철도법인 설립을 통한 “경쟁체제 구축” 주장에 대하여

세번째로 ‘모양만 경쟁체제’이며 경쟁체제가 ‘무의미’하게 되었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번에 발표된 수서발 KTX 결정(안)은 ‘영업흑자 달성시 지분을 매년 10%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코레일이 ‘철도 경쟁력 제고’ 및 ‘경영혁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동기부여를 확실히 하고 있으며, 그 효과 또한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되며 향후 코레일은 영업흑자 달성을 위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 노력을 펼칠 것이며, 동시에 서비스 질 제고를 전사적으로 추진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발적 노력은 결국 국가재정 부담 완화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수서발 KTX 결정(안)은 경쟁체제로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확보방안이 마련된 것으로 철도경쟁체제 도입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코레일은 말했다.

네번째로 수서발 KTX 개통시 수요전이로 코레일 영업흑자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따라서 지분 확대는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목표라는 주장에 대하여 코레일은 현재 ‘2015년 부채비율 50% 절감 및 영업흑자 달성’ 목표로 재무구조 획기적 개선을 위한 다양한 자구노력을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2008년 이후 매년 1,000~1,500억원 영업적자를 줄여왔고, 특히 올해는 강력한 경영개선 노력으로 전년 대비 1,800억원의 적자를 줄이는 성과를 달성하여(△3,600억원 ⇒ △1,800억원) 이런 추세라면 당초 목표보다 1년 앞당긴 2014년에는 수지균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코레일은 말했다. 또한 사업타당성 분석 용역이 완료되면 정확한 발표가 있겠지만, 수서발 KTX 개통에 따른 수요전이로 코레일 수익이 감소하더라도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것이므로 공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일각에서 우려하는 수서발 KTX에 대하여]

코레일은 일단 ‘수서발 KTX 개통시 수요전이는 있다’는 주장을 인정하고 있다. 첫 번째 문단에서는 KTX가 영업흑자 달성시 지분을 – 아마도 새로 설립될 수서고속철도 주식회사의 지분 – 매년 10% 확대할 수 있는데 동기부여에 대한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적고 있다. 현재 41%로 예정되어 있는 수서고속철도에 대한 코레일의 지분을 10% 올리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 효과가 그토록 크다면 수서고속철도의 기대수익은 매우 높다고 봐도 될 것 같다.

한데 두 번째 문장에서는 ‘수요전이의 효과’에 대한 조금 뉘앙스가 달라진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수서발 KTX 개통에 따른 수요전이로 .. 공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적혀 있다. 물론 공사는 거대조직이어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데, 앞서 수서고속철도의 지분 10%를 더 확보하는 것의 효과가 매우 크다고 호들갑을 떨던 것에 비해서는 톤이 매우 차분해졌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효과가 크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좀 복잡하긴 한데 정리를 해보자. 자타가 공인하듯이 영업 흑자가 예상되는 수서발 KTX 노선이 있다. 정부는 애초 이 노선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하여 KTX와 경쟁체제를 구축할 예정이었으나 여론의 반발 등에 직면하여 코레일과 기타 정부부문이 참여하는 별도법인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코레일이 영업흑자를 달성하면 이 법인의 코레일 지분을 늘려주는, 효과는 매우 크지만 공사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희한한 당근을 제시하여 영업효율을 달성하게 하는, 즉 80% 노선이 겹치는 사업장을 가진 계열사와 경쟁하는 “경쟁체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과문해서 그런지 이런 “경쟁체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경쟁이라 하면 소비자가 경쟁하는 두 공급자의 상품의 우월함을 비교하여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 거의 동일한 서비스를 정부가 통제할 가격에 의해 제공되는 상품을 – 그것도 모회사와 자회사가 제공하는 – 가지고 “경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용산역에서 출발할지 수서역에서 출발할지가 가장 주된 차이일 뿐인 노선을 가지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국토부가 닭 모가지를 자르기 위해 뽑은 칼로 당근이나 자르자는 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철도 민영화”에 관한 트윗 모음

# 사실 “철도 민영화”로 눙쳐지는 이 난국은 노태우 정권의 KTX 부채, 철도시설과 운영 단위의 분리, 이 과정에서의 정부의 부채 떠넘기기, 용산 사업 실패로 인한 코레일 부채 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상황인데, 꼬여도 너무 꼬인 사안이다.

# 수서발 KTX노선은 민간이 제안했었고 – 두산으로 기억 – 국토부가 아마도 코레일 군기 잡기 차원에서 적극 검토하지 않았나 싶은데 이번에 전면 민자사업이 아닌 별도법인으로 가는 것은 공항공사처럼 향후 지분매각 시나리오 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여겨진다.

# ‘왜 굳이 수서발KTX를 별도법인으로 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그러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별도 법인화가 행정부의 공기업 길들이기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시설관리공단과 코레일의 분리, 전력분야에서 발전과 배송의 분리는 특히 노동통제에도 유리하니까.

# 공무원의 관성도 있는 것 같다. 여태 경쟁시켜서 서비스의 질을 재고하겠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갑자기 없던 일로 해버리면 과거 주장이 틀린 꼴이 될 우려도 있으니만큼 민영화에 대한 나쁜 여론과 원점 회귀의 중간, 향후 지분매각까지 고려한 각본 채택?

# 수서발KTX 별도 법인을 만들면 분명 가격이 낮을 것이다. 흑자노선인데다 독립채산제고 코레일의 약점인 부채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말이다. 통합채산제인 코레일의 평균요금에 비해서도 경쟁력 있을 것이고 이것이 국토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무기가 될 것이다.

공항철도, KTX 민영화, 코레일, 그리고 노동자의 죽음

‘공항철도’는 현대건설, 동부건설 등 컨소시엄이 지난 2007년 3월23일 개통 후 운영하다 수요창출에 실패해 정부의 합리화 정책에 의해 2009년 11월30일 코레일에 인수됐다. [중략] 코레일은 재정부담 증가라는 정부고충을 고려하고 철도운영 전문기관의 노하우를 살려 다각적인 영업활성화 노력으로, 인수 이듬해인 2010년에 1일 평균 이용객을 인수 이전인 2009년보다 37% 증대시켰다.[민간실패 ‘공항철도’ 코레일 인수 후 이용객 급증]

민간투자사업으로 시행되었던 인천공항철도는 운영수입이 당초 예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민영화가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치는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사업이다. 인용한 기사의 제목대로 코레일이 인수한 후 이용객이 크게 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기사제목은 코레일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용객이 증가한 것으로 비춰지는데, 과연 그게 가장 중요한 변수였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사실상 이용객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 여겨지는 ‘인천공항~서울역 구간’ 개통은 코레일 인수 후인 2010년 말 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기사를 살펴보면 코레일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코레일 전국역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 등 코레일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축적된 운영 노하우를 통한 비용절감이랄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코레일 만의 장점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 기사는 이런 비용절감 노력을 비교적 자세히 적고 있다. 즉, 코레일이 인수한 후 인천공항철도는 열차횟수를 2배, 운행거리를 3배 늘린 반면, 운영인력은 21%로 최소화하고 급여를 동결하여 운영을 효율화시켰다고 한다. 이런 노력 등이 모아져서 결국 인천공항철도의 채산성을 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친구의 죽음 소식을 듣고 철도노조 분들을 찾았었다. 그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 분들은 그런 사고는 너무 흔하고, 맨날 장례식 쫓아다니는 게 일이라고 했다. 구조조정으로 인력은 모자라고,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일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천천히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타고 뛰어내려 작업을 한 뒤 다시 뛰어오르는 (‘비승비강’) 작업까지 한다고 했다.[공항철도 노동자 다섯 명의 처참한 죽음 끔찍한 이윤추구 시스템이 죽였다]

공항철도는 사실 수익성을 떠나 국제공항과 수도권을 잇는 철도라는 명분을 가지고 출발한 사업이다. 이런 정책목표는 정부의 부외금융 수단인 민영화를 통해 추진되었지만 –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다양하게 혼합된 원인으로 인한 – 형편없는 운영실적 때문에 정부보조 규모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시설을 코레일에 넘기는 또 다른 부외금융 방식으로 사업을 합리화(!)시킨 것이다. 코레일은 이에 조속한 사업정상화를 위해 인용기사에서 보는 것처럼 가혹하게 허리띠를 조여 왔다. 그 와중에 벌어진 철도노동자들의 죽음에서 정부의 ‘부실자산 떠넘기기’와 코레일의 허리띠 죄기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 코레일의 한 간부는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공항철도를 민영화 실패의 대표사례로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은 ‘KTX일부구간 민간위탁’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두 사업은 단순비교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리가 있는 항변도 있다. 문제는 “공기업”이라는 코레일 또한 공항철도 사업자처럼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공존하며, 채산성이란 목표가 공익성에 앞서는 기업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코레일은 예전에도 노동자를 탄압하는 공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당시 사장은 “민주투사” 이철이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요구에 의해 부실자산을 떠안는 공기업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국가기간산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수익성을 떠나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었던 철도산업은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한 이후, 본격적으로 채산성의 논리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사는 여전히 공익적 목표를 유지하였겠지만 독립채산제가 된 공사의 특성상 인력 외주화 등 민간기업과 다를 바 없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제표를 개선해온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진정 공익성을 이유로 KTX의 민영화를 반대한다면, 노동자의 죽음에 원인제공을 한 코레일 자체의 非공익적 체계에 대한 반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