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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게임의 법칙

이 책의 원제는 “Monkey business: swinging through the Wall Street jungle”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한글 제목 아래 “Wall Street the rules of the game”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난 첨에 원제인줄 알고 그 문장으로 검색을 하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 출판사가 왜 표지 디자인을 그렇게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아마 원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장 르느와르의 영화를 좋아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여하튼 제목은 원제가 더 책 내용과 맞닿는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의 게임의 법칙이라기보다는 그 중에서도 일부분인 투자은행의 ‘협잡질(Monkey business)’의 행태와 이에 동참한 신출내기 투자은행원들의 일상을 그린 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게임의 법칙’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바턴 빅스의 ‘투자전쟁’이나 마이클 루이스의 ‘라이어스포커’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책에도 법칙의 편린이 소개되지만…

글쓴 이는 존 랄프와 피터 트룹, 두 명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등 탑클래스MBA를 다니던 이들이 DLJ라는 투자은행으로부터 잡오퍼를 받고 입사하여 어떻게 직장생활을 했는지, 그리고 왜 환멸을 느껴 직장을 떠났는지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문체는 유머러스하지만 내용은 역겹고 구질구질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명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다행히 라이어스포커처럼 직격탄은 없는 셈이다.

그들이 그리고 있는 투자은행의 일상은 제3자의 시각에서 보면 흥미롭다. 엄청난 보너스, 호화스러운 파티,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야근의 연속, 투자은행 특유의 먹이사슬, 식탐 이상으로 흘러넘치는 색욕(色慾),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투자은행의 협잡질 등등이 생동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트룹이 Global Wireless Asset이라는 정체 모호한 기업의 IPO를 위해 9일 동안 8개국을 돌아다니는 에피소드는 읽는 나마저 현기증이 일 정도다.

다소의 과장이 있겠으나 이 책에는 상기의 에피소드를 비롯하여 자본조달의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 고유계정 거래보다는 – 업무 프로세스와 그 작업의 부질없음이 잘 그려져 있다. 사업계획서 초안 잡기, 자산실사, 이해당사자들의 협의과정, 그리고 로드쇼 등 개별과정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IB가 수행하는 업무일반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저자들은 그것이 사기라고 말하고 있다.

성공하면 디벨로퍼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라고 그랬다던가. 저자들의 말처럼 모든 사업계획서 자금조달계획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참여자들에게 희망(때로는 근거 없는)을 안겨줘야 한다.(주1) 투자은행은 현재가치법, 매크로 시장개요 등 감언이설을(합법적인 때로는 근거 없는) 동원하여 투자자들을 꼬드긴다. 투자결정은 참여자들의 몫이다. 투자은행의 문제는 한정된 시장에서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기 위해 스스로 공급을 창출했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저자들이 막판에 회사를 때려치운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그런 협잡질이 신물이 났다기보다는 그 협잡질에 개인의 삶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돈을 많이 벌지만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업무과중이 그 이유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직장으로 각자 헤지펀드를 택한다. 시스템의 모순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안녕히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투자은행의 일상과 관련한 약간의 지식과, 그보다 더 많은 양의 화장실 유머를 즐기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술술 읽혀져서 다 읽는데 불과 이틀이 걸렸다.(그래서 약간 돈이 아깝기도) 개인적으로는 라이어스포커나 투자전쟁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책 소개에는 여러 증권회사 임원의 추천 글과 ‘비즈니스 소설’이라는 명찰이 붙여져 있다. 뭐… 책은 팔려야 하니까.

(주1)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제가 Google이라는 검색엔진을 만들건데 그걸로 돈 벌어서 12년 후에는 인공위성도 날리고, 전화기도 만들고, 동영상 사이트도 운영하고 할거니까 돈 좀 빌려주세요” 하는 식의 말도 안되는 희망 따위

오바마의 금융개혁안에 대한 느낌

“So if these folks want a fight, it’s a fight I’m ready to have.”

볼리바리안 사회주의자 차베스가 자본주의자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에게 한 말이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그 나라의 특정세력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이러한 전투적인 발언이 포함된 연설의 내용을 보자.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거대 금융기업들이 감독을 받지 않으면서 CDS나 다른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위험한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개구멍을 막으려고 합니다. [중략] 우리는 은행이 기면 주주가 이와 같은 행위로 돈을 벌지만 은행이 지면 납세자가 돈을 부담하는 시스템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즉,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대표되는 투자은행 – 엄밀히 말해 금융기업(financial firms) – 과 상업은행의 분리가 의미 없어진 후 – 시티그룹과 같은 금융백화점도 생기고 – 소위 미국의 금융업은 곳곳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가장 큰 문제라면 금융기업의 영업행위와 감독기관의 감독행위의 미스매치, 금융기업의 투자행위의 투자성공 여부에 대한 이익과 손실의 책임/향유주체의 미스매치 등을 들 수 있다.

상업은행은 예금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이라는 부채(debt) 형태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이다. 따라서 상업은행은 기업의 미래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안정적인 상환능력의 보유여부가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는 “debt culture”의 대표적인 금융회사이다. [중략]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현재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equity culture”가 요구된다. 따라서 debt culture를 기반으로 하고, 또 가질 것이 요구되는 상업은행이 equity culture가 요구되는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이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하게 된다.[출처]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수립한 오바마가  “볼커 규칙(Volcker Rule)”이라 부른 새로운 조치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은행들이 그들의 고객들에게 봉사하는 주된 임무를 방기하도록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은행들은 앞으로 그들의 고객에의 봉사와 관계없는,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한 헤지 펀드, 사모펀드, 또는 고유계정거래(proprietary trading)를 소유, 투자, 또는 주주로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기업들은 미국시민이 뒤를 책임지는 은행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그러한 헤지 펀드와 사모펀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략] 이와 더불어 미래의 위기들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일환으로써 저는 또한 우리가 우리 금융 시스템의 더 이상의 합병을 허용치 않을 것을 제안합니다. [중략] 미국시민들은 극소수의 대형 기업들로 구성된 금융시스템의 서비스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고객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경제에 좋지 않습니다.

요컨대 첫째, 글래스-스티걸 법의 현대화 버전이라 할 만한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의 분리, 둘째, 대형 투자기업의 합병의 제한 등이다. 헤지펀드, 사모펀드야 이번 사태 이전부터 워낙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었기에 금융기업으로부터의 투자제한 조치가 납득이 가는 측면이 있다. 고유계정거래는 현대 투자금융업의 하나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아 오고 있는 부분인데 앞서의 조치와는 또 다른 충격을 줄 것 같다.

사실 투자은행이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 말로는 차이니스월을 쌓았네 하지만 – 고유계정거래를 통한 이점을 누려왔고 이를 통해 자산을 엄청 키운 것이 사실인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끊고 자문 및 주선만 하라고 한다면 이것의 금단현상은 상당할 것 같다. 더불어 사실 고유계정에서의 투자가 자금모집 시에 참여기관에게 믿음을 주고, 파이낸싱을 구조화시키는데 이로운 긍정적 측면도 있었는데 그마저 하지 못하면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합병의 제한은 애초 글래스-스티걸 법이 시티그룹이라는 금융백화점의 합병을 정당화하기위해 무력화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첫 번째 조치가 입법화될 경우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갈 길이 다른데 이제 뭐 합쳐서 시너지 효과가 날만한 회사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별로 고민을 안 해보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오바마의 화려한 투쟁의 레토릭에 비해 그 조치는 자본주의 금융 일반의 원칙을 재정립하는 상식적인 내용으로 판단된다. 또한 엄밀히 보자면 이번 위기의 근본원인이라기보다는 주요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기에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상식적인 조치마저 월가의 거대한 권력이 굳건했던 그간에는 시도조차 못했던 것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차이니스월과 스타게이트

차이니스월(Chinese Wall)이 있다. 만리장성이 있는 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내 말은 일종의 금융용어로 쓰이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투자은행의 고유 업무는 원래 brokerage, 즉 중개업에 가깝다. 주식공개나 기업인수 등에 금융자문을 제공하여 먹고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점차 돈이 많아지면서 그 돈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망한 투자처에 투자하면 더 높은 이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소위 ‘고유계정’으로 자신들 스스로가 시장의 플레이어가 되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자문업무와 투자행위 간의 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투자행위를 하려면 남들보다 더 수준 높은 정보를 독점해야 하는데 자문 업무는 바로 그러한 수준 높은 정보를 남들에게 돈 주고 파는 일이 아니던가.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과 직업윤리의 해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 금융권에서 말하는 차이니스월, 우리식 표현으로 바꾸자면 ‘정보교류 차단장치’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투자은행 안에서 자문부서와 투자부서가 공명정대하게 차이니스월을 쌓아놓고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농담 하냐고? 농담 맞다.

뭐 아무리 엄격한 규제를 하고 본인 스스로가 윤리적으로 업무를 보려고 하더라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은 주식시장을 비롯한 시장 전반에서 숱하게 증명된 사실이 아닌가 싶다. 소위 말하는 내부자거래, 작전세력, 자사주 취득 .. 뭐 이런 표현들은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서 이해가 상충되는 경제행위를 윤리의식이나 관리감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아가 이것은 비단 경제계 안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경제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행정당국과 정치계 간의 차이니스월은 더 허술하다.

미국의 정치, 경제 등에 관해 수준 높은 칼럼을 써주고 있는 김상철 기자가 최근 MBC 홈페이지에 올린 ‘가이트너의 교훈’이라는 글을 보면, 개별기업과 특정업종에 강제하고 있는 차이니스월과 같은 윤리기준과 업무지침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워싱턴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임원을 나라의 곳간지기로 임명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마당에 이해상충의 사안에서 공명정대를 요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참여정부 때 강남집값 잡는다고 난리법석 피우던 시절, 부동산의 주요관료 스물 댓 명중에서 강남에 집 없는 이는 딱 한명이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서도 비단옷을 입고 있다고 – 입고 있을 것이라고, 또는 앞으로 입게 될 것이라고 – 우리에게 최면을 거는 셈이다.

워싱턴과 월스트리트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지금만큼 가까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평등주의적 정치집단은 월스트리트를 사악한 자본가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대립관계가 해소된 것은 20세기 초반 대공황 시절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금융대통령 J.P. 모건에게 무릎을 꿇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립관계의 해소라기보다는 굴복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는 FRB라는 다소 이상한 금융기관을 사이에 두고 밀월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차이니스월’이 아니고 ‘스타게이트’에 가깝다.

짤방으로 한 투자은행업 관련 번역서의 어이없는 번역을 소개.

“여러 해 동안 은행업과 중개업 사이의 ‘중국인 벽(중요한 정보가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지 않게 막는 비밀 보호의 장벽)’은 종이처럼 얇았다. 월가의 모든 은행가들이 수시로 그 벽을 넘나들며 시장상황에 대해서 거래인들과 의논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만 다뤄지지 않으면 그런 교환은 합법적이었다.”[세계를 움직이는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 리사 엔들리크 지음, 형선호 옮김, 세종서적, 1999년, p177]

투자은행과 철도

39년 동안 선임 파트너로 회사를 운영한 시드니 와인버그는 헨리 골드만이 골드만 삭스의 사업을 혁신시킨 창의적인 천재였다고 회상했다. 바로 이 골드만이 새로운 사업 형태, 즉 간사(underwriting)업무에 뛰어들어서 회사를 투자은행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이 시기에, 그러니까 1890년대부터 1차대전 때까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투자 은행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당시 미국은 자본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종류의 투자 은행가들이 그것을 돕기 위해 나타났다. 미국 금융 기관들의 자산은 1900년과 1910년 사이에 90억 불에서 210억 불로 배 이상 늘었다. (중략) 그리고 이들은 가정용품과 철도 산업의 엄청난 사업 확장에 돈을 댔었다. 거의 12억 불에 달하는 새로운 철도 증권들이 1900년과 1902년 사이에 발행되었다. 그러자 헨리 골드만은 철도 주들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도 회사들의 눈에 띄어 당시 가장 유망했던 간사 업무에 뛰어들고 싶었던 것이다.[세계를 움직이는 투자 은행 골드만 삭스, 리사 엔들리크 지음, 형선호 옮김, 세종서적, 1999년, pp65~66]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국가가 나서서 대규모의 자원동원을 하지 않았던 미국식 자본주의의 특징 때문에 – 국가가 실질적인 대규모 자원동원에 나선 것은 대공황 시절 – 우리가 흔히 당연하게 국가가 공급하여야 한다고 알고 있는 ‘공공재’의 상당부분을 민간이 공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국가 이상의 자금조달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자본시장을 가지고 있던 – 아직은 런던 다음이지만 –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민간에 의한 철도공급이 두드러졌는데 철도가 사회간접자본이자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공공재라기보다는 경제재, 즉 상품성이 있는 아이템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공공재는 사실 그것의 공익성에 의해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 즉 그 이용을 배제할 수 없고 같이 이용한다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 공공재로 간주되는 것이다.(주1) 이 기준으로 보면 철도는 경제재에 가깝다. 즉 수지타산 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기업들이 오로지 운영수입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들은 철도주식의 상장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단기차익을 노릴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골드만 삭스는 위에서 보듯이 그러한 주식상장 등을 돕는, 오늘날로 치면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같은 업무를 시작하면서 투자 은행으로서의 기틀을 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읽기에는 이치에 맞는 모습이지만 그 속은 엄청난 야합과 투기가 판을 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다니엘 드루, 제이 굴드, 코넬리우스 반더빌트 등 당대의 철도거물 들이 이리 철도회사를 둘러싸고 벌인 주식전쟁은 거의 국가변란 수준의 개싸움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추악한 전쟁의 경험을 통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세계 최고수준의 자본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치 삼성의 이재용 때문에 한국의 상속법 제도가 발전한 것처럼 말이다.

(주1) 이러한 의미에서 사실 소프트웨어나 mp3는 가장 완벽한 공공재 중 하나다. 소프트웨어의 복사를 배제하기 어렵고 그것을 복사해서 쓴다고 소프트웨어가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잘 알다시피 그러한 재화를 경제재로 만들기 위해 기업은 무수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소위 금융복합기업 모델에서의 딜레마 한가지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 모델과 상업은행 모델 간의 우월성 논쟁에 관한 재밌는 글이 있어서 옮겨 적는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위기와 관련하여 제기된 하나의 중요한 논의는 과연 이것이 투자은행이라는 형태의 금융회사의 실패, 혹은 투자은행이라는 금융회사 모델에 대비한 상업은행(CB) 모델의 우월성을 시사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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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어려움을 겪은 투자은행들이 예금의 수취(수신)라는 상업은행 기능을 갖지 않은 독립계 투자은행들이라는 점, 그리고 살아남은 Goldman Sachs와 Morgan Stanley가 모두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위기 타개책으로 선택하였다는 점 등을 들어 일각으로부터 독립계 투자은행이라는 사업모형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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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은 예금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이라는 부채(debt) 형태의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회사이다. 따라서 상업은행은 기업의 미래성장성보다는 현재의 안정적인 상환능력의 보유여부가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되는 “debt culture”의 대표적인 금융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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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현재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equity culture”가 요구된다. 따라서 debt culture를 기반으로 하고, 또 가질 것이 요구되는 상업은행이 equity culture가 요구되는 투자은행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이 사이에서 이해상충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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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이 예금을 자금조달원으로 하여 투자은행업무 부문에서 위험을 부담하는 영업을 하는 경우, 예금자로부터 은행 주주에게로 부의 이전(wealth transfer)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개별 예금은 소규모로서 무임승차의 문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원금보장이 되기 때문에 예금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예금계좌를 갖고 있는 상업은행의 이와 같은 형태를 감시, 규율할 유인이 약하다.[금융위기가 주는 투자은행 자금조달에의 시사점, 부원장 조성훈, 자본시장 Weekly, 한국증권연구원, 2008-45호, pp1~2]

이 글의 의도는 전체적으로 순수한 투자은행 모델의 옹호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이른바 “은행(bank)”이라는 도구가 원천적으로 어떠한 의의를 갖는 것인가에 대한 원칙적인 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즉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의 행태를 따라간다는 것은 ‘자금의 원천’의 리스크와 ‘자금의 운용’ 상의 리스크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B은행에 1천만을 4% 예금금리로 저금하면 B은행은 그 예금을 C기업에 건네줄 때에 자금의 원천 성격에 부합되게 대출의 형태로 빌려줘야 합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대출금리가 6%면 2%의 예대마진을 취한다. 그런데 B은행이 C기업에 대출이 아닌 출자(principal investment)의 형태로 건네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만약 C기업이 사업이 잘 되어 대출과 비슷한 스케줄을 가정하여 10%의 배당을 주었다면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주주에게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반대로 C기업이 망하게 되면 예금자는 여전히 원리금을 보장받을 것이므로 ‘무임승차’의 문제가 발생한다. 더불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예금보장을 해줄 경우 상업은행에게 ‘모럴해저드’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좌파는 물론이고 – 오히려 더 강하게 – 시장주의자들이 싫어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들은 “망할 기업은 망하게 하라”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망할 사업을 영위한 주주들이 책임을 지라는 의미다. 이른바 ‘원인자부담원칙(polluter pay principle)’이다. 그런데 앞서의 경우 은행의 예금자는 주주들이 아니므로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어 예금보장을 해주어야 하고, 결국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혼합은 시장주의자들의 논리가 무색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소위 유럽의 유니버설뱅크가 예금보장에 더 적극적인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결론 : 투자은행은 “은행(bank)”이 아니라 투자회사다

신용위기 단상

결국은 시스템적인 모순이지만 이번 사태는 또한 윤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구제금융 법안의 부결도 상당부분 월스트리트의 그간의 비도덕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를 반영한 것이다. 막스 베버가 월스트리트에 한 2박3일 머물렀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이래서 금융자본은 유태인의 천민자본주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기뻐 소리쳤을까?

월街에서 잘나간다는 CFA라는 자격증 공부는 윤리학(ethics)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만큼 금융인들의 윤리의식이 애당초 마비되었다는 반증일까? –; 중요하다는 이야기겠지.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 아마 처음부터겠지만 – 자본주의, 특히 월스트리트의 자본주의에서는 윤리는 교과과목일 뿐 실제업무와는 별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승자독식과 한탕주의가 숭배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경영진만 되면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아 챙겼다. ‘황금낙하산’이라는 어이없는 제도는(주1) 경영진에게 회사를 말아먹어도 한 몫 챙길 기회를 주었다. 경영진이 되지 않더라도 남들이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첨단금융상품을 만들어 한 몫 크게 챙길 기회는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계속 신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언제까지? 시장이 폭발할 때까지.

그런데 자꾸 윤리의 문제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려 하면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다. 결국은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라는 환원론적인 철학논쟁밖에 안된다. 인간의 탐욕이 시너지 효과로 승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운영철학이었다면 그것이 선순환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 것은 시스템이었다. 지금 보다 비판받아야 할 것은 그 탐욕을 악순환의 고리로 내몬 시스템일 것이다.

‘만리장성(Chinese Wall)’이 있다. 갑자기 웬 중국이야기냐고? 그게 아니고 투자은행에 관한 용어다. 원래 투자은행은 기초자산의 증권매도자와 그 증권의 매수자를 중개해주는 기능이 본연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고유계정(prop trading)으로 직접 매수자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해상충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중개도 하는 것이 매수도 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온 것이 이해상충의 여지가 있는 부서는 사내에서도 정보공유가 금지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제도다. 좀 웃기긴 하다. 그만큼 탐욕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허술하다.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하면 칼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국가기구는 처음부터 불편부당한 기구가 아닌 계급차별적인 기구였다. 다수결에 의한 대의제의 도입은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 정치와 경제가 자웅동체라는 – 희석시켰다. 극우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변화를 두려워했고, 결과적으로는 소비에트의 일당독재를 비웃는 이들이 양당독재와 시장독재는 용인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었다. 자본가와 정치가가 구별이 안 되는 워싱턴정가가 그 하이라이트다. 이런 상태에서 시스템의 근본적인 수술은 요원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구제금융은 죽어가는 시스템의 일시적인 연장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를 자본주의의 종말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라는 이름조차도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잘해야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즉 미국과 기축통화로서의 US달러 이니셔티브가 ‘다소’ 약화될 것이다. 결국에는 노동계급, 넓게 보아 유권자들의 ‘혁명적’ 각성이 없이는 도돌이표일 것 같다. 월스트리트의 더러운 자본가들을 욕하고는 선거 때 다시 그들에게 돈을 받아먹은 매케인과 공화당을 찍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메케인의 절반만(!) 받아먹었다는 오바마를 대안이랍시고 찍는 것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주1) 이 제도는 회사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M&A당하는 것이 바람직함에도 피인수 기업의 경영진이 이를 반대할 수 있기에 그에게 어느 정도 회유성의 보수를 준다는 의미로 생겨났다. 웃긴다.

리만브러더스 해프닝, 그리고 외환보유고

처음 산업은행이 리만브러더스를 인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저 1)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2) “민유성이 리만 출신이라더니 그래서 리만 애들이 거기 쫓아갔구나.” 3) “그거 인수한다고 하루아침에 세계가 인정하는 투자은행이 되겠냐?”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 애들은 적잖이 흥분했다. 처음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연합뉴스가 받아 베끼면서 시작된 소문은 조선일보가 이를 취재보도하고 블름버그나 AFP등이 또 조선일보를 받아 베끼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인들은 꽤 인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만의 주가는 폭등하는 와중에 해당 기사에는 ‘미국인들의 정신은 어디 있는가?’라는 댓글이 달렸고 ‘정신이랄 만한 게 있었나?’라는 냉소적인 댓글도 잊지 않고 달렸었다. 십년 전에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상전벽해다.

뭐 이에 대해서 딱히 나 같은 변방의 하찮은 블로거가 코멘트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던 차에 이에 대해 글을 써야할(!?) 이유가 생겼다. 내가 출근하는 두 블로그의 구루께서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여주셨기에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우선 포카라님의 견해다.

오늘은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 검토중이라고 나왔다.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부도 일보 직전인 부실 금융회사를 왜 우리가 인수해야 하나?  지금 우리 나라는 달러가 태부족이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하루에 1원만 움직여도 엄청난 변동인데 오늘만 17원 가까이 올랐다. 호기롭게 환율을 방어하던 강만수는 시장에 없었다. 방어할 달러가 없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8월말까지 100억 달러가 예상된다. 올해만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가 26.7 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달러 환산하면 280 억 달러가 넘는 규모. 무역 적자와 외국인 매도만 합해도 무려 380억 달러가 언제든지 시장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돈이다. 강만수가 환율 방어한답시고 200억달러를 허공중에 날려 버렸다. 금년 들어서만 이 세 부문에서 달러증발 요인이 무려 6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러니 환율이 급등하지 않을 수 없다. [리먼브러더스 — 부실덩어리를 산업은행에서 인수?, 포카라]

다음은 알파헌터님의 견해다.

멋진 신세계라 생각합니다. 인수가 이루어질지 이루어지고 나서 손익이 어떻게 될지는 소생으로서는 알길이 없으나… 일단 한국토종자본이 미국의 머니센터뱅크까지는 아니라 해도 일류 IB를 인수하는 국면이 오리라고는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기에… 만일 실패해서 자본금을 말아먹는다 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렇게 대단한 손실일까요? 인수해서 그들과 뒤섞이면서 제대로 배운다면 얻는게 더 많을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는 쌓아두면 좋은 줄만 아는 분들도 있으나… 외환보유고는 매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도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또한 외환보유고는 결국 그 나라의 실력을 말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자본의 흐름을 반영할 뿐입니다. 80년대에 외환보유고를 무지막지하게 쌓아온 일본의 몰락에서 배워야 합니다.[KDB의 리먼브라더스 인수가능성에 대해서, 알파헌터]

알파헌터님의 글에는 포카라님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리만브러더스에 대한 견해뿐만이 아니라 외환보유고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시간상으로 포카라님의 글 뒤에 올린 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알파헌터님의 포카라님의 글을 읽고 올린 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그러건 아니건 간에 내가 좋아하는 두 분이 꽤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포카라님은 외환보유고, 넓게 봐서는 국내 달러여유분의 증발에 대해 염려하고 있고 알파헌터님은 그게 그렇게 금과옥조는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사실 리만의 문제보다도 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인용한 것이다)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jpg
Lehman Brothers Times Square by David Shankbone” by David ShankboneDavid Shankbon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둘 중 어느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이성적으로야 요즘과 같이 하루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시대에 적정외환보유고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알파헌터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또 심리인지라 하루가 다르게 달러가 영토 밖으로 술술 빠져나가는 상황을 마냥 ‘아 괜찮아 적정외환보유고란 환상일 뿐이야’라고만 이야기하며 모른 체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알파헌터님처럼 – 고전경제학의 이상론처럼 – 지극히 합리적인 참여자들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리만브러더스 이야기하다 외환보유고로 우회전해버렸는데 애초에 그러려고 쓴 글이니 뭐… 두 문제 모두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외부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얽혀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동안 수출로 쌓아놓은 외환을 비용을 들여가며 관리했었고 금융의 세계화(또는 미국화)가 진행되면서 외부금융시장에도 돈을 묻고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투자은행도 본격화될 것이고 뭐 그런 일련의 과정이 한밤중의 은밀한 안개처럼 국내시장을 가늠하는 판단근거들이 된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관계당국, 전문가, 학자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이다. 금융은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