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폭등의 원인제공자는 연기금 펀드?

“그리고 어느 한 나라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하였을 때에 과연 그 폭발력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하게도 그 폭발력은 연기금 등 노동자들의 자산에 의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물론 연기금은 그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미래를 위해 쌓아놓고 있는 연금, 보험과 같은 미래의 자산이 오히려 현재의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시키는 M&A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한 나라의 환율을 혼란에 빠트리는 환율조작의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행여 있을지 모를 금융공황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몇 해 전에 어느 인터넷매체에 기고하기 위해 썼던 글의 일부분이다(원문보기). 그 글에서 연기금 펀드의 사용처로 예를 든 것은 M&A, 환투기 등이었는데 Business Week 에 올라온 기사(원문보기)를 보니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원자재 투기’

“그것은 5월 20일 국가안보와 국가문제를 위한 상원위원회의 청문회에서의 증언에 따르면 유가의 폭등의 원인의 상당한 부분이 상품시장에 돈을 들이부은 기관투자가들의 투기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연기금 펀드가 높은 유가를 가속화시키는가?, Business Week, 2008/5/21)
“That’s because speculation by institutional investors pouring money into the commodities market may be largely to blame for spiking oil prices, according to testimony on May 20 before the Senate Committee on Homeland Security & Governmental Affairs.”(Are Pension Funds Fueling High Oil?, Business Week, 2008/5/21)

“Financial Speculation in Commodity Markets: Are Institutional Investors and Hedge Funds Contributing to Food and Energy Price Inflation?”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청문회에서 헤지펀드 스폰서인 Masters Capital Mgmt, LLC의 경영자 Michael Masters는 기업과 국가의 연기금 펀드, 국부펀드(주1) 등이 새로운 투기자로 득세하면서 이들이 각종 인덱스에 투기수요를 불러일으키는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였다. 정황적으로 최근 2~3년 사이 이들 펀드들은 상품시장에서 주요한 투기자로 나섰고 바로 이 시기에 유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였다.

그나저나 왜 이 문제와 관련해 연기금 펀드가 특히 가격폭등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Masters 의 발언을 좀 더 살펴보자.

“그러나 청문회에서 Masters는 그가 전통적인 투기자와 인덱스 투기자 또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장기 헤지의 수단으로 상품시장에 진입한 수동적인 투자자를 구분하였다. 상품거래소는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취할 수 있는 포지션(주2)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Masters 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일종의 허점을 통해 이 시장들에서의 한도 없는 투기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스왑 허점(swaps loophole)’ 덕분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보고의무나 다른 투자자들에게는 적용되는 거래 포지션의 제한 의무로부터 면제된다. 그 허점은 연기금 펀드가 투자은행들과 함께 스왑 계약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물시장에서 제한 없는 수만큼의 계약을 거래할 수 있다.”(연기금 펀드가 높은 유가를 가속화시키는가?, Business Week, 2008/5/21)
“But in the hearing, Masters distinguished between traditional speculators and what he calls index speculators, or passive investors who enter the commodities markets as a long-term hedge against inflation. Commodities exchanges limit the number of positions an investor can take in the market, but Masters says the 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has allowed unlimited speculation in these markets through a loophole. This so-called swaps loophole exempts investment banks like Goldman Sachs (GS) and Merrill Lynch (MER) from reporting requirements and limits on trading positions that are required of other investors. The loophole allows pension funds to enter into a swap agreement with an investment bank, which can then trade unlimited numbers of the contracts in futures markets.”(Are Pension Funds Fueling High Oil?, Business Week, 2008/5/21)

정리해보자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투기수요 급증과 이에 따른 가격폭등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규정상의 허점과 감독소홀
– 달러 약세와 이로 인한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수요 증가
– 위의 요인들로 인한 상품시장의 확대(최근 5년간 20배의 규모로 성장)
– 이에 따른 수요급증, 그리고 가격폭등(지난 5년간 인덱스 펀드의 석유수요는 중국의 그것과 유사한 규모로 증가)

정치가들의 이러한 행보는 물론 소비자들의 후생과도 긴밀히 연결되지만 또한 제조업자, 운송업자와 같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바로 전미정유업자조합(the Petroleum Marketers Association of America)과 같은 이해당사자가 의회에 에너지 시장에서의 투기행위에 대한 감독을 요구한 것이다.(주3)

물론 이러한 투기적 요인도 가격상승의 원인이지만 석유자원의 궁극적인 고갈이 멀지 않았다는 소위 Peak Oil 주장도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주장이 점점 현실성을 더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수요-공급 요인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가격상승의 요인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여태 말한 연기금 펀드,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 주요투자자들의 시장참여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라고 본다. 가격상승을 예상하여 투자했는데 가격이 오른 것인지 가격상승을 예상하고 몰려든 것이 가격을 올린 것인지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여러 정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다고 여겨진다.

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며 서민들의 주머니를 갉아먹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석유는 고갈되고 있고 대체자원의 개발은 만만치 않고(주4) 달러약세는 반전되기 어렵다. 그 상황에서 투자자 혹은 투기자들은 이른바 ‘대체투자(alternative investment)’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관건은 그나마 정책당국이 그러한 투기수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여 거품을 줄여나가느냐 하는 정도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말이다.

참고글

(주1) 고유가에 따라 산유국의 국부펀드가 가장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점은 매우 특이한 모양새다

(주2) 매도와 매수행위를 좀 폼나게 부르는 방법으로 시장에서 매수계약을 보유한 것을 롱포지션(Long Position)이라 하고 매도계약을 보유한 것을 숏포지션(Short Position)이라 한다

(주3) 물론 모든 석유자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엑슨모빌과 같은 거대석유기업은 고유가로 말미암아 천문학적인 수입을 만끽하고 있다.

(주4) 사실 원유는 단순한 에너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 현대 자본주의의 감초라 할 수 있다

3 thoughts on “유가폭등의 원인제공자는 연기금 펀드?

  1. foog

    “IEA는 지난해에도 오는 2012년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여유 생산 능력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2015년이면 하루 1250만배럴의 원유 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제시했었다. 이에 반해 전세계 원유 수요는 계속 늘어나 현재 하루 8700만배럴의 수요량이 2030년이면 1억1600만배럴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http://stock.moneytoday.co.kr/view/mtview.php?no=2008052212520040019&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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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문제는..
    올해 초만 해도 “유가 급등은 투기세력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번달부터는 “유가 급등은 수요 공급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 “석유는 고갈된다” 이런 소리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있다면 ‘상승이 대세’인 곳에 투자하지 않는 게 바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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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만큼이나 무의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대세는 상승세니 석유에 몰빵하고 대체에너지 주식에 몰빵하고… 21세기판 멜더스주의자들이 시장을 광기로 몰아넣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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