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공매도

자기기만의 世界에 대한 단상

내부 메모에서 공매도를 공격한 것이 클라이언트의 역린 逆鱗 을 건드린 것이었다면, 그들을 한층 더 분노하게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뉴욕 주 법무장관 쿠오모가 공매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예정이었고, 그에 관한 성명서의 초안을 맥이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성명서가 그의 클라이언트를 분노하게 하고 일부를 떠나보낼 것이라는 것을 맥은 잘 알았지만, 그로서는 검찰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대마불사,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노 다니엘 옮김, 한울, 2010년, p664]

2008년 9월의 맨해튼, 인용문이 묘사하는 시점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AIG는 정부의 소유가 된 상태에서 다음으로 몰락할 기업이 어디인지를 시장이 주시하고 있던 시점이다. 인용문에서의 맥은 바로 금융위기 당시 모건스탠리의 CEO였던 John J. Mack 이고 쿠오모는 뉴욕주 법무장관 Andrew Cuomo다. 맥은 리먼의 딕 펄드처럼 공매도가 회사의 몰락을 초래할 악의 세력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그는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 “우리 주가나 CDS가격이 비이성적인 근거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공매도 세력을 지목했다.

주가하락의 배경으로 공매도 세력으로 지목하는 사고의 정서에는 ‘자사(自社) vs 공매도자’의 전선(戰線)을 형성함으로써 내외부를 단속하고 기업가치 하락을 방지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때 자신의 회사를 표현하는 키워드는 펀더멘털, 이성, 피해자 등이고 공매도와 이에 부화뇌동하는 시장을 표현하는 키워드는 두려움, 비이성, 가해자 등이다. 이러한 정서가 진실이든 아니든 몰락하는 기업은 – 특히 경영진은 – 대개 이 정서를 자기최면에 가깝게 가지고 있어 실제로 몰락할만한 오류를 범했음에도 이를 부정하는 인지부조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1

어쨌든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는 맥이 악의 세력으로 지목한 공매도자, 즉 헤지펀드가 바로 그들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다른 투자은행처럼 모건스탠리도 프라임브로커리지가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데, 이 서비스는 높은 레버리지를 쓰는 헤지펀드에게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결제 수수료와 이자 등의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다. 헤지펀드의 뒷돈을 대줄 만큼 강고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모건스탠리의 경영진이 이제 자신을 공격하는 헤지펀드를 비난하며, 심지어 뉴욕주 법무장관의 힘까지 빌리는 그 자기부정이 관전 포인트다.

이 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당시의 허다한 에피소드가 그러한 자기부정과 자기기만의 역사였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행크 폴슨 재무부 장관은 순진한 시장자유주의자인 의원들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욕을 먹어가며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은행 구제에 투입했고, 영악한 시장자유주의자들인 투자은행 경영진은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바로 모건스탠리처럼 기꺼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한다. 다행히 정부와 시장 모두 서로 친한 시장자유주의자들로 채워져 있어서 도움은 신속했고,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시장자유주의자들이 구현한 사회주의인 셈이다.

당시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망했다면 자본주의는 궤멸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하였다고는 해도 그 둘은 미묘한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고, 그 상황에서 투자은행뿐 아니라 기업과 서민들도 신용붕괴로 인해 경제활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자기기만이 전문인 세력이 지구경제의 신경망을 구성하는 현 상황에 염증을 느낀 미국 유권자들은 선악(善惡)을 자신의 입맛대로 구분하는 포퓰리스트에 표를 던졌다. 물론 그는 위의 문제점을 해결할 신경외과 의사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최초의 공매도

공매도는 금융의 역사에서 유래가 깊다. 아마도 그 첫 사례는 네델란드의 무역업자 아이작 르 매르(Isaac Le Maire)(주1)가 해운회사인 ‘네델란드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의 지분을 설정했던 1609년 일 것이다. VOC는 역사상 첫 번째 다국적 기업이고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그럼에도 르 매르는 영국 함대의 공격 위협을 걱정하여 VOC의 지분을 공매도하였다. 르 매르의 전술을 간파한 뒤에 VOC의 거래를 관할하던 주식거래소는 공매도를 금지하였다.(비록 후에 다시 허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1630년대 초반 네델란드 경제는 튤립에 대한 투기 광풍에 따른 경기침체로 빠져들자 다시 한 번 규제기관들은 공매도에 대해 분노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공매도가 네델란드의 경제적 위기를 심화시킨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노골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Short-selling runs deep in financial history. Perhaps the first case dates to 1609 when the Dutch trader, Isaac Le Maire, targeted the shares of the shipping company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was the first multinational corporation in history and had broad powers. Nonetheless, Le Maire, concerned about threats of attack by English ships, sold VOC’s shares short. After learning about Le Maire’s tactics, the stock exchange governing VOC’s trading banned short-selling (although the ban was later revoked).

In the early 1630s, the Dutch economy fell into a depression following a speculative peak in the trading of tulips. Again, short-selling raised the ire of regulators, many of whom saw it as magnifying the effect on the Dutch economic downturn. As a result, England banned short-selling outright.

This blame game is short on logic (Financial Times) 中 에서 발췌

(주1) 그는 또한 탐험가이기도 했다. ” ‘르 매르 해협’이라는 이름은 안트워프에서 큰 사업을 하면서 탐험을 조직했던 이삭 르 매르(Isaac Le Maire)를 기념해서 붙인 이름” 이라고 한다. 수많은 지리상의 발견이 전 세계 무역에 있어 보다 경제적인 해상의 운송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성과라는 점에서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유럽인들의 발견이었을 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