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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경제팀의 정책방향에 대한 단상

자본주의의 3대 경제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다. 기업과 가계는 노동력을 사고팔아 각각 돈을 벌어 정부에 세금을 낸다. 정부는 이 세금을 걷어 주로 시장이 채워주지 못하는 영역에 돈을 지출한다. 기업이나 가계 역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벌어들인 돈을 소비한다. 가장 일반적인 경제지표중 하나인 국내총생산(GDP)은 이렇게 소비, 투자, 정부지출의 합에 수출을 더하고 수입을 빼는 형태로 추산된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이란 자료에서는 우리의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의 패턴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의 패턴과 유사하다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성장률은 바로 GDP의 변화추이로 산정되는데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001~2011년 기간 동안 연평균 4.4%성장하였으나 2012~2013년 기간 동안은 2.6% 성장에 그쳐 일본과 유사하다는 것이 경제팀의 판단이다.

경제팀은 특히 경제성장의 3대 추진과제를 ‘내수활성화’, ‘민생안정’, ‘경제혁신’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내수침체형 불황’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판단이다. 경제팀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소위 “41조원 + α”의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41조원의 패키지는 실제로 정부지출은 아니고 각종 기금의 추가집행이나 민간투자의 활성화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41조원 + α” 정책 패키지보다 더 혁신적인 경제팀의 아이디어는 기업에 너무 많은 돈이 쌓여있고 이를 가계로 순환되도록 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경제팀은 “내수부진이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가계↔기업↔정부의 경제 선순환 고리가 약화된 구조적·복합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임금 상승세가 둔화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성과가 가계로 환류 되지 못 하고”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팀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문제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간 거의 찾아보지 못했던 상황이다. 게다가 야당에서나 주장하던 “사내유보금 과세”라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재계는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설에서 “기업이익의 처분은 기업가의 고유한 경영상 판단에 속하는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팀은 대상을 신규 유보금으로만 물러설 뿐 과세 자체를 폐지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경제팀이 강행하려는 배경으로 기업과 가계간의 분배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졌다”는 인식은 국회예산정책처도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는 상황이 깔려 있다. 가계의 실질소득 및 가처분소득은 악화되고 있고 이 부분이 소비부진으로 이어져 경제성장률 저하와 경상수지 증가의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팀이 법인세 증세가 아닌 “근로소득 증대세제”와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당장의 정책효과를 논하기에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일단 경제팀의 문제인식과 이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다만 정부 전체적으로 보다 전향적인 노동정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자가 단순한 정부정책의 수혜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임금결정력과 고용안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활성화, 부당노동행위 엄단 등을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않는” 反노동 행위가 엄존하고 있다.

본질을 외면한 채, 감자나 쩌 먹은 청와대 끝장토론

  • ‘휴가 반드시 가기’ 문화 정착 및 휴가비 보상 억제
  • 골프장 개별소비세 인하
  • 민간기업 회식 적극 권장
  • 미분양아파트, 호텔로 전용 허용
  • 보금자리주택 지역에 호텔 신축 유도
  • 대학병원내 숙박시설 확충
  • DTI 불합리한 부분 보완
  • 중소기업 대상 금융수수료 시정 유도
  • 해외 R&D보다 국내 R&D 우대

청와대에서 국무총리와 관련부처 장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4단체장과 민간 경제전문가 등을 불러 연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 집중토론회’에서 나온 대책이라고 한다. 이 대책들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보수/진보 양측에서 시큰둥하며, 무려 9시간 동안 “끝장 토론”을 했다는 사실과 찐 감자와 옥수수가 간식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

대책 중에서 그나마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청와대가 애써 “DTI 완화”라는 표현을 피하고 있는 “DTI 불합리한 부분 보완”이다. 그 외에는 반응이 없다. 경제를 위해 권력층들이 모여 가진 토론회의 내용이 경제적으로 논평할 거리가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논평할 거리가 없는 이유는 토론회가 내수부진의 근본원인을 애써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한 점은 어제 모인 이들이 내수활성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수가 부진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나 했나 하는 점이다. 올 초 심각한 내수부진의 원인을 진단한 삼성경제연구소나 산업연구원 등 주류 연구소조차 “근로자 가계의 소득 개선 부진”과 “가계와 기업간 양극화”를 원인으로 진단한 바 있다. 토론회는 이런 사실관계를 확인이나 했을까?


‘최근 소비부진 원인 진단 및 시사점’(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우리나라의 ‘기업소득/가계소득’ 비율의 장기 추이(1975~2010)
소득
한국경제의 장기 내수부진 현상의 원인과 시사점(2012.4, 산업연구원)에서 재인용
 

그런 사실관계를 공유했더라면 복지 및 고용안정 확보와 같은 근본대책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현실화 등의 미봉책이라도 언급됐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나온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노동자들이 휴가를 “반드시 가게” 하기 위해 연차 보상비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이나 하고 있다. 의료시장 확대를 위해 멀쩡한 사람 팔을 부러뜨리겠다는 발상을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 외 미분양아파트와 보금자리주택 지역에 호텔 신축을 유도하겠다는 발상 역시 한심한 탁상공론이다. 한류에 편승해 증가하고 있는 호텔공급은 이미 공급과잉 기미를 보이고 있다. DTI “보완”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소득이 적은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겠다는데 그들에게 돈을 더 빌려줘 가만있어도 떨어지고 있는 자산 부실화를 촉진시키겠다는 이야기인가?

이번 DTI 완화가 당장의 수요창출에 도움이 될 것 – 또는 비판자의 입장에서 거품을 더욱 키우는 것 – 같지는 않다. 시장불황의 원인은 부동산 트렌드의 변화와 가처분소득 부진 등 기초체력의 문제여서 호황기에나 써먹을 부양책이 먹히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규제완화가 향후 도래할지도 모를 호황기에 쓸 카드를 고갈시키는 조치란 점이 염려스럽다

이 토론회가 경제에 기여한 점은 “감자와 옥수수”의 소비를 증대시킨 정도다.

월요일 아침에 바라본 세상

정부가 수출주도형 경제시스템의 취약성이 심각하다는 인식 하에 내수활성화 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금리인하와 은행채 매입. 모두 시중금리를 떨어뜨려 기업과 가계의 대출금리도 내리겠다는 정책목표를 두고 시행되는 것이다. 원화유동성비율과 대출 건전성 감독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은행의 유동성비율과 자기자본비율의 기준을 완화하여 위의 금리인하와 함께 시중에 유동성을 보다 활발히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요컨대 더 많은 자금을 더 싼 금리에 풀어내라는 것이다.

정책효과는 시행 후에나 판가름 나겠지만 한 유명 블로거는 효과에 회의적이다. 은행의 대출요건을 완화 해줘봤자 은행들 역시 리스크관리에 비상이 걸린지라 돈을 풀고 있지 않는 것이 주요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이른바 ‘유동성 함정’ 이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는 이미 구제금융의 수혜를 받은 미국 금융기관의 예를 보아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파이프라인의 역할을 해야 할 은행에서 이렇게 돈이 막혀 있다면 미국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어음을 매입하겠다고 나설 개연성도 배제하지 못할 듯.

한편 한나라당에서 그나마 개념이 어느 정도 탑재된 것으로 여겨지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내수경기 활성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일단 세금을 내는 계층에는 감세를 통해서 민간 부분의 수요를 올리고 내수 경기를 어느 정도 뒷받침해야 한다. 그리고 세금을 내지 않는 계층에 대해서는 지출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

맘에 쏙 드는 대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안전망’이라도 거론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식품집단소송제 도입, 유류제품 판매가격 공개, 출산휴가 일수 연장, 기초노령연금 수령자 확대 등 기업 부담을 늘리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법안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내겠다는 심산이다. 이렇게 뻔뻔한 자본가들도 전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임태희씨가 립서비스로 한 말을 몽땅 뒤집어엎고 있다. 아직도 지들이 부려먹는 노동자는 노비일 뿐 소비자가 아니라는 단세포적인 경제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종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