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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弔

그가 꿈꿨던 미래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슬로건은 ‘국민 모두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문화국가’였다. 첼로를 사랑하셨던 먼저 떠난 그에게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바친다.

총선 소회…라기보다는 이런저런 잡생각

내가 지난 번 글 ‘진보신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라는 글에 내 스스로의 정치적 지향이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라고 썼었는데 그것을 유명 블로거 민노씨께서 자기 글에 인용을 했다. 그래서 들었던 느낌은 “뭐 대단한 이야기라고 인용까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내가 RSS 에 등록해놓고 필히 찾아 읽는 블로그가 있는데 필명 ‘포카라’님의 블로그다. 주식시장에 관한 글이 주로 올라와 있으나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점장이식 주가예측 블로그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실로 엄청난 인문학적 지식과 경제학적 고민이 묻어나는 글이 넘쳐나는 곳이다. 블로거 중 개인이력이 가장 궁금한 분이 바로 이 포카라님이다.(주1)

두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는데 이야기의 요지는 요즘 내가 생각하는 화두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서이다. 나 스스로를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라고 포지셔닝한 이유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99%가 그러하겠지만(주2) 나 역시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먹이사슬에서 위로부터 착취 받고 아래를 착취하는데 일조하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아 그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착취구조에서 제법 상부에 속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가진 것은 쥐뿔 없는 놈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 스스로를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라고 한 것이다.

포카라님을 거론한 데에는 좀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포카라님이 최근 내가 또한 RSS로 애독하던 우석훈 씨에 대한 촌평을 올린 이유 때문이다. 이 시니컬로 치자면 국내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 같은 자칭 ‘명랑 공산주의자’ 우석훈 씨의 책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읽었는데 포카라님에 따르면 우석훈 씨가 최근 낸 책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언론에서 호들갑 떨만큼 대단한 것 같지 않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한가로운 토요일 저녁 쓸데없이 향후 – 그것이 언제가 될 것인지는 이번 선거를 보면 좀 더 요원한 과제로 남기는 하지만 –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혁명세력이 누군가를 시급한 경제적 기반의 재정립에 써먹어야 할 때 누구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여기에 마음은 민중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있으나 실물경제에는 개념 없는 인간이 있다.(주3) 두 번째 ‘명랑 공산주의자’이고 이론으로 빠삭하나 역시 실물경제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인간이 있다. 세 번째 ‘자기파괴적인’ 블로그질을 일삼으나 실생활에선 그런 티를 내지 않는 박쥐같은 약간은 실물경제에 익숙한 인간이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선 개념 탑재 하지 않은 실물경제만 밝은 인간이 있다. 민중을 한 없이 사랑하는 집권자는 누구를 택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포카라님 같은 분이(주4) 킹왕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남한 땅에 그런 분이 10분이나 계실까 모르겠다.

하여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진보신당이 의석을 못 얻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살짝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만 또 의석을 얻었다 한들 갈 길은 너무 멀다는 그 하나의 사실 때문에, 그리고 위에서 단편적으로 주절주절 늘어놓은 그 어려운 로드맵 때문에 나는 뭐 진보신당이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이 ‘대세에 영향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직도 사실 가야할 길은 무지하게 멀다 … 물론 생양아치 홍정욱한테 노회찬이 진 건 열 받는다.

(주1) 나 스스로는 누가 나의 개인이력을 파고들려는 것에 알러지적 반응을 보이는 주제에

(주2) 이것은 아무리 변혁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여도 마찬가지다. 현자노조의 사회주의자 노동자가 자본주의 재생산 구조에 기여하는 비율과 사회주의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비율을 생각해보면 10초면 알 수 있다

(주3) 소위 자칭 좌파라면 경제학적 소양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꽤나 이름빨 날리는 이들 중에서 이런 소양 없이 말빨로 먹고 사는 이들이 사실 꽤 된다

(주4) 물론 사실 이론 좌파들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다만 현실감각을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진보신당을 “비판적”으로 지지 한다

이 블로그에 나는 나름 진보적인(?) 관점을 지닌 경제 분석 글을 주로 올렸다. 그런 한편으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 특히 정당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정치인의 이름은 몇 번 거론했으되 정당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랬는지 생각하면 딱히 이유는 없다. 원래 블로그란 손가는 대로 끼적거리는 데니까 뭐 이유를 댈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정당을 지지하여 왔는가 생각해보면 나름 일관되게 좌파적 성향을 지닌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여 왔었다. 한 5년 정도 민주노동당의 당원이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대선 이후의 엑서더스 대열에 동참하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번 대선과 비슷한 스타일의 지역위원회에서의 갈등 때문에 상당히 오랜 동안 애정 없이 지내온, 쉽게 말하면 당과의 별거상태로 지내긴 했었다. 아무튼 대선을 계기로 탈당했다.

하지만 진보신당에는 입당하지 않았다. 왜 가입하지 않았냐고 한다면 우선은 귀차니즘인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탈당도 귀차니즘 때문에 상당히 지체되었으니 할 말 다했다. 두 번째는 태생에 대한 불만이다. 현재로서는 명백히 노회찬/심상정 당의 모양새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셋째는 정당정치에 대한 회의감이다. 민주노동당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면서 느낀 점이다.

나 스스로 정치적 지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지속적인 화두인데 최근 내린 결론은 적어도 사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서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 결국 ‘자기파괴적 자본주의자’다. 자본주의적 삶을 지향하면서 끊임없이 그 한계를 알아채며 좌절하는 그런 녀석인 것 같다.

현실에서는 ‘자기파괴적 무산계급’이 상당히, 깜짝 놀랄 정도로 많다. 분명히 경제지표로 보면 우리나라 인구 구성의 절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을 상태에 놓여 있음이 분명한데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자신들의 경제적 상태를 고착화 내지는 악화시켜줄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자기파괴적’이다. “경제를 살리자”라는 근본 없는 구호에 도취된 것인지 알량한 자산으로 인해 허위의식을 갖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모순된 투표행태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 모순은 집권당뿐 아니라 전 집권당의 의원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서도 제법 발견된다. 적어도 집권당의 지지자보다는 덜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현재의 정치현장에 유의미한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남겨놓는 데에 철저히 실패한 전임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를 ‘노간지’라 부르며 환호하는 팬덤 현상을 보면 박근혜에게 박정희의 향수를 느끼며 환호하는 이들과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더욱 희극적인 모습은 현재의 신자유주의화 현상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의 집권당(이름도 잊혀져 가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행태다. 현재의 의료보험 민영화나 은산분리 등에 대해 게거품을 무는 이들이 실상 전임 정부가 그러한 초석을 다지는 일을 해온 데에 대해서는 편의적으로 눈을 감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용감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알아야 할 점은 막말로 통합민주당이 다수당이 될지라도 기차는 달린다는 점이다.

자꾸 맥 빠지는 이야기뿐인데 결국 이번 선거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한나라당이 단독 개헌가능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냐 하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 눈이 삐었다든지 세상이 미쳐가고 있달 지 푸념해봐야 현실은 그런 상태다. 결국 이런 비참한 한국의 정당정치 상황에서 나는 정당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뒤로 한 채 투표장으로는 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계급적 이익을 완전히 대변한다고는 여겨지지 않지만 가장 근사치로 접근한 진보신당을 선택할 것 같다. 그것은 ‘부패한 보수’대신 ‘무능한 보수’를 지지하자는 그런 비판적 지지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의 비판적 지지라고 스스로 이름붙이고 싶다.

“찍어줄 테니까 좀 똑바로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