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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1.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법을 너무 가혹하게 적용한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어째 5년 전의 대선 전야만큼 인터넷이 달아오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더욱 드라마틱한 면이 많아서 이기도 한 것 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노’의 돌풍, ‘정’과 ‘노’의 드라마틱한 단일화, ‘노’와 ‘창’의 박빙승부…. 지금의 거품 빠진 맥주 같은 선거전야와는 달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적인 면이 많았다. 그리고 역시 그 중심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노무현’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실험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 특히 87년의 시민봉기를 경험한 이들은 – 참으로 오랜만에 그 선거를 통하여 정치를 통한 개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맛보았다. 많은 이들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세상을 더 밝게 만들 수 있을 거야’라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러한 반역의 기운은 “바리케이트 앞에서 화염병을 든 심정으로 정치에 입문합니다.”라고 일갈했던 유시민의 출사표에서 잘 표현되어 있었다.

결국 그 선거는 ‘화염병을 든’ 절박한 심정을 공유하고 있던 이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2.

그 선거의 최대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다들 현재 삼수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사정을 아는 이라면 알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피해자는 역시 삼수를 하고 있는 – 이회창 옹과는 또 다른 의미의 삼수지만 – 권영길 후보, 보다 정확히 말해 그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민주노동당이다. 그 선거에서 막 꽃을 피우려 나선 진성 ‘좌파’ 정당 민주노동당은 죽음의 신처럼 엄습해 온 ‘수구세력의 공포정치’라는 유령에 대항하기 위해 급조된, 그러나 강력한 파워를 지녔던 ‘민주대연합’론 앞에 스러져 갔다. 5년 뒤에 빚을 갚겠다는 엉터리 차용증만 손에 쥔 채….

그렇다면 이제 5년 만에 채무자들은 빚을 갚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음….

어느새 채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도대체 누가 돈을 꿔가고 누가 표를 꿔갔는지 알 수도 없다. 여당인 것 같은 당이 하나 있긴 한데 여당은 아니란다. 여당의 잘못을 모두 안고 가겠다고 하다가 다음날이면 청와대를 비난해댄다. 매우 포스트모던한 정당이다.

재밌는 것이 이 당이 5년 전에 민주노동당에 해대던 소리를 창조한국당이라는 신생정당, 더 정확히는 그 당의 유일한 공격수 문국현 후보에게 해댄다. 예전 채권채무관계는 정리도 안한 체 새로운 빚을 얻을 모양이다. 옆에서 ‘거짓 민주세력을 규탄하겠다고’ 훈수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시다.

10년 이나 기회를 줬으니 표는 자신들이 알아서 미리 미리 챙겨뒀어야 할 것 아닌가.

3.

인터넷의 선거 열기가 5년 전만 못하다고 했는데 오늘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강연 동영상 덕분에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 ‘이제는 골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들 쉬라고 만들어 놓은 이 일요일에 새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짜느라 날밤 새우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일 아침이면 ‘구국을 위한 결단’ 을 발표하실 분이 꽤 되실 것 같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실토하신대로 사실상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 갔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들이 그 권력을 시장으로부터 다시 찾아올 강력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그들이 짜고 있는 ‘대한민국 개발 5개년 계획’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타칭 ‘좌파’ 정부, 자칭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의 일꾼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국내외 자본들의 장애물을 많이 없애놓으셨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한미FTA 다.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명박 후보나 노 대통령이나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할 지경에 몰릴 수도 있을 터이고, 대운하는 파지 않겠지만 ‘민주대연합’이 상정하고 있는 만큼의 기대치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다. 자의든 타의든…..

4.

2~3년 전쯤 문국현 사장을 보면서 ‘참 신선한’ 경영자라고 생각했었다. 만에 하나 이 세상의 자본가들과 경영자들이 그와 같은 마인드로 회사를 꾸려간다면 정말 ‘추상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착취 없는 경제체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독재 없는 독재체제’라는 형용모순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 금민 후보가 20% 이상의 득표를 한다면 5년 전 선거보다는 더욱 의미 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그만한 국민들이 ‘反신자유주의’라는 슬로건에 한 표를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대항하여야 할 상대는 ‘파쇼’가 아니라 ‘부정부패’와 ‘신자유주의’다. 나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농민들을, 88만원 세대를 짓밟는 것은 ‘군홧발’이 아니라 ‘삐까뻔쩍하게 광을 낸 명품 구둣발’이다.

5.

BBK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 나를 우울하게 하는 장면

“정책연대, 노동자의 꿈과 희망을 열어갑니다.”

멋진 말이다. 그리고 멋진 기획이었다. 노동자 조직이 조직원들과 함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줄 대통령 후보와 함께 보조를 취하겠다는 것은 참 예쁜 발상이다. 그래서 진행된 것이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게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어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른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핵심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권영길 후보는 한국노총과의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과 관련하여 몇몇 껄끄러운 설전과 감정싸움이 있었던 탓에 결국 이번 정책연대의 후보 대상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 측에서 반노동자적 인사가 후보에 포함되어 있는 점(주1),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찰의 BBK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조합원들의 지지후보 투표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노총은 예정대로 투표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 사실 개인적으로 웬만한 것 가지고 놀라는 성격이 아니라 별로 놀랍지는 않다 – 이명박 후보가 한국노총에서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이후 5년 간 두 주체간에 이루어질 정책연대에 관한 협약식도 거행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노동자 의식 부재’니 ‘계급투표의 부재’니 말하고 싶지 않다. 괜히 먹물근성이라고 욕만 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찍고 싶은 대로 찍으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투표 행위이고 어찌되었든 조합원들의 45% 정도가 – 물론 유효한 투표율이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 이명박 씨를 선택했다.(주2) 잘된 일이다.

여하튼 이제 남한의 노동운동의 큰 축을 담당하는 한국노총이 노동자를 대표하여 – 노조 조직률이 대략 12%되므로 한국노총의 지지는 노동자의 6%로 간주하겠다 – 대통합민주신당 측에서 반노동자 후보로 규정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으니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용득 위원장께서는 그러시지 않겠지만 이번 결과를 통해 제2의 배일도 의원이 되려는 꿈은 가지시지 않았으면 한다.

다 좋은데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사실 다음과 같은 투표방침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지지율 10%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원문보기)

앞서 말했듯이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국노총이 대표하고 있는 인구는 “노동자 중 6%”이다. 그럼 유권자 중에서 비율은 얼마나 될까. 한국노총 조합원 숫자가 87만 명인데 2007년 대선 유권자 예상숫자는 3천7백만 명이라 한다. 비율이 2.35% 정도 된다. ‘천만노동자’라는 슬로건이 대략 무색해지는 숫자다. 그런데 그런 소수집단이 특정 후보를 10% 지지율이 안 된다는 – 즉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 이유로 배제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도 숫자가 얼마 되지 않고 그들도 소수임에도 다수가 지지하는 주류 후보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양적인 소수가 아닌 질적인 소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동자 수가 천만 명이어도 그들은 아직도 이 사회와 정치권에서 약자이자 소수이고 더군다나 노조는 그 노동자들 중에서도 소수다.

그런 소수자가 꾸는 꿈은 늘 현실 속에서 초라하게 꽃피웠던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10% 미만을 맴돌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 농민은 여전히 소수이고 그들의 꿈을 펼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음을 말해주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라면, 노조라면 이념을 떠나서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공평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연유인지 한국노총은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편의적으로 배제했다. 더군다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또 다른 축인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는 아예 거론도 되지 않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면 10% 지지선에 걸려 탈락할 뻔 했다.

노동자 정당의 후보가 낮은 지지율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험한 꼴 당하는 형상이다. 소수가 소수를 배제하는 희한한 선거방식이었다. 이것은 마음 깊은 곳에 그들 스스로 이 사회의 주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훌륭한 선택 하신 거다.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와 정책연대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디 그 후보 당선시키셔서 노동자가 주류가 되는 멋진 세상 만드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 대신 이번 투표처럼 엉터리 정책이나 방침 정하지 마시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반드시 정책에 포함시켜 이명박 대통령에게 관철시키시기 바란다. 왜냐면 그대 자신이 소수자이므로.

 

(주1) 아마도 이명박 후보를 가르키는 모양이다

(주2) 그렇지만 한마디 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투표는 가장 이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엔 이타적인 투표행위가 많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때만 되면 나타나는 기만적인 ‘민주대연합’ 론

“이념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단일대오로 모여 부패 정치세력 집권 정치를 위해 민주대연합을 이룩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동참하지 않고 분열된 채로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은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기 위해 소설가 황석영 씨 등 재야인사들로 구성되었다는 ‘부패세력집권저지와민주대연합을위한비상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는 7일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를 참세상 기사가 인용한 부분이다. 이 짧은 문장 들이 형식적 오류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선 ‘부패 정치세력 집권을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념을 지닌 정파다. 부패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절대적 판단기준이 있는 것이므로 이념이나 정파 이전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다. 부패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미 알 수 있다.

이명박 씨가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고, 이회창 씨가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불법유용의 혐의가 있다면 현 정부는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헌법을 유린한 정부다.(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서로 다른 실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열외로 한다. 이 글을 더 읽으실 필요가 없으실 것이다.)게다가 이건 혐의가 아니라 사실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부패한 삼성 일가를 감싸고 있는 듯 한 혐의까지 있다.

여기서 만약 이라크 전쟁 파병을 정치역학 등을 동원한 상황논리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때부터는 ‘부패’라는 절대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과 ‘정파’의 문제이다. 자진해서 저질렀든 떠밀려서 저질렀든 범죄는 범죄이고 실정법 위반은 실정법 위반이다. 그것에 구실을 달 것 같으면 그때부터는 이념이다. 독재에 항거하여 돌팔매질을 했다는 사실이 이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시국회의는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은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오만의 극치다. 때만 되면 나타나는 케케묵은 ‘통일전선론’은 이제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포정치와 협박정치다. 민주대연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한, 또는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에 대한 공갈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노동자들을 감싸던 변호사의 모습을 지녔던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그 당시의 ‘민주대연합’으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았는가. 그 사이 허다한 노동자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구속당하고, 이전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거기다가 자신이 표를 던진 이로부터 ‘노동귀족’이라는 험한 말까지 들어야 했다.

농어민들은 어떤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하에 한칠레 FTA, WTO 등으로 생체기가 날대로 난 상태다. 이제 정권 말 특별 보너스로 한미FTA도 기다리고 있다. 이 나라의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으로 다가올 한미FTA에 대해서 상위 4명의 후보가 모두 찬성한다. 재야가 나서지 않아도 이미 親FTA 대연합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도 두세 번 들으면 지겨운데 이제 그만 하자. 초록이 동색이었던 김영삼 씨와 김대중 씨도 공원에서 사람 좀 모아놓고 스스로 감격하여 절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때만 되면 주변사람들이 나서서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패악질을 해댄다.(지난번에는 그 역할을 유시민 씨가 해댔다.) 이제 그 역할을 황석영 씨가 하고 있다니 솔직히 조금 의외다. 그리고 실망스럽다.

정치세력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의해 모이는 집단이다.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치세력 내의 대의명분이다. 그러한 것을 어떠한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인 양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거짓 민주세력’으로 규정하겠다는 행위는 ‘민주대연합’의 민주와는 하등의 상관없는 또 하나의 폭력이자 오만이다.

p.s. 이 글은 문국현 씨와 정동영 씨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나 상대적인 도덕적 우월함에 관한 글이 아니다.

문국현의 경제인식은 옳은가

요즘 범여권의 대안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순석춘 원장이 가진 대담을 엿보았다. 역시나 재계의 신사다운 깔끔한 이미지에 어울리게 경제에 대한 주관도 뚜렷하였고 그것의 표현도 세련되어 보였다. 그러한 착한 CEO라는 이미지가 현재 상승세에 있는 그의 지지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가 진정 反한나라당 전선의 후보가 아닌 反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일단 신선하게도 재계의 CEO 출신답지 않게 그는 反신자유주의를 외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그간 그가 유한킴벌리의 CEO로서 노동의 유연화 전략을 통하여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노동통제 전략이 아닌, 평생학습과 고용증대를 통해 기업의 성장을 추구해온 그의 실천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레토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또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요소로 간주하는 냉혹한 이윤논리와는 선을 긋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자유기업원 공병호 소장과의 인터뷰에서도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고 다그치는 그에게 ‘도요타에 가서 물어도 (기업의 주인은) 종업원과 지역사회의 것이라고 말한다’고 강조하였다 하니 제법 신선하다. 다만 손 원장과의 대담에서 보면 그는 소위 ‘강성노조’에 대한 거부감도 일부 있는 것 같고 노동자 경영참여에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부분은 오히려 사소한 부분이다. 그의 계급적 입장에 비추어보면 색다르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가 산업자본의 경영 대리인으로 종사해왔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경제관을 발전시켰다는 정황에 따른 상황인식의 한계에 있다. 즉 그는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핵심 기제의 하나인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 내지는 우위전략에 대해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난맥상은 손 원장이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자마자 드러난다. 

“(상략) 중소기업을 실제로 육성하자면 정책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게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다. 문제는 현재 금융기관 대부분이 외국자본, 심지어 투기자본에 잠식당해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금융정책을 추진해도 이들 금융회사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강조가 신선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끼는 대목이 이 때문인 것 같다.”

이 질문은 손 원장이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오늘 날 남한 땅에서의 금융 자유화로 인한 신자유주의적 병폐 현상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즉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의 수중으로 넘어간 상업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회피하고 수익성 높은 부동산 담보 가계대출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자본의 순기능 저하에 대한 문 후보의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 후보는 이에 대해 사채금융의 고금리를 개탄하다가 갑자기 하도급 비리 등 부정부패 척결을 통한 국제사회에서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에 손 원장은

“질문의 핵심은 금융산업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정책과제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거의 외국인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가령 미국과 견주면 미국 은행법에는 은행 이사조차 미국의 시민권이 있어야 가능한데 우리는 지금 그런 정도도 없는 거 아닌가.”

라면서 자신의 본래 질문의 의도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사실 대답이 너무 질문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어서야 문 후보의 금융산업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금융제도도 개혁할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가 국제금융센터가 되려면 전문 인력이 수천 명이 늘어나야 하고, 5년, 10년 걸려서 해야 될 일이 많다.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그 이전에 해야 할 일은 매년 400억 달러가 투자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40조원만 해도 우리 중소기업들 다 살리고도 남는다.”

역시 딴 소리다. 은행의 국적성을 따지고 드는 손 원장의 질문에 우리나라가 국제금융센터가 되려면 아직 해결할 과제가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같은 ‘금융’자만 들어갔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의 인터뷰 전 과정을 지켜보면 손 원장이 가지고 있는 경제순환논리와 문 후보가 가지고 있는 논리를 비교해볼 수는 있다.

도식적으로 보자면 손 원장은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잠식 -> 공적인 기능으로써의 은행 기능 마비 -> 중소기업 대출 대신 가계금융 집중 -> 중소기업 자금난, 신용카드 대란, 부동산 시장 과열

의 문제점을 제시했다면 문 후보는

대기업의 하도비리 심각 -> 부정부패로 인한 국제신용등급 하락 -> 생산적인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 -> 중소기업 자금난

이라고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순진한 것이다. 문 후보가 생각하는 외국자본은 “아주 사람을 중시하는” 자본으로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만 해소하면 무디스가 신용등급도 올려주고 자본도 유입되어 중소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논리다. 무디스가 언제부터 착한 나라에게 선물 안겨주는 산타클로스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 그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뭐 하러 현재 금융권 등 국내에 쌓여 있는 막대한 잉여자본을 놔두고 외국자본 타령이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막말로 금 팔아 나라 구하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의 문제는 손 원장이나 장하준 교수 등이 제기하고 있는 은행의 국적성의 중요성 및 금융시스템을 비롯한 경제전반에 대한 국가개입주의의 필요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하자면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에서 정리하자면 인간 문국현은 산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는 각론에 있어서는 그의 기업철학에 따라 어느 정도 신자유주의적 방식과는 다른 길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국가에 적용하여 보려 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국가는 개별 기업처럼 열심히 생산만 해서 잘 내다 팔면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자본의 상투를 틀어잡고 있는 금융자본, 그 금융을 자유화시켜 무한투자를 가능케 하고 투자의 한 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미FTA에 투자보호 조항을 집어넣으려는 초거대 국가와 싸워야 하는 것이 국가의 현실이다.

문 후보가 진정 反신자유주의 후보가 되고 싶다면 금융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사이트
문국현 후보와의 대담 전문
반신자유주의 대선을 만들 문국현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