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 나를 우울하게 하는 장면

“정책연대, 노동자의 꿈과 희망을 열어갑니다.”

멋진 말이다. 그리고 멋진 기획이었다. 노동자 조직이 조직원들과 함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줄 대통령 후보와 함께 보조를 취하겠다는 것은 참 예쁜 발상이다. 그래서 진행된 것이 한국노총의 ‘정책연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게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어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른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핵심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권영길 후보는 한국노총과의 비정규직 법안 통과 등과 관련하여 몇몇 껄끄러운 설전과 감정싸움이 있었던 탓에 결국 이번 정책연대의 후보 대상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 측에서 반노동자적 인사가 후보에 포함되어 있는 점(주1),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찰의 BBK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등의 이유로 조합원들의 지지후보 투표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노총은 예정대로 투표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 사실 개인적으로 웬만한 것 가지고 놀라는 성격이 아니라 별로 놀랍지는 않다 – 이명박 후보가 한국노총에서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리고 이후 5년 간 두 주체간에 이루어질 정책연대에 관한 협약식도 거행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노동자 의식 부재’니 ‘계급투표의 부재’니 말하고 싶지 않다. 괜히 먹물근성이라고 욕만 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기 찍고 싶은 대로 찍으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투표 행위이고 어찌되었든 조합원들의 45% 정도가 – 물론 유효한 투표율이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지만 – 이명박 씨를 선택했다.(주2) 잘된 일이다.

여하튼 이제 남한의 노동운동의 큰 축을 담당하는 한국노총이 노동자를 대표하여 – 노조 조직률이 대략 12%되므로 한국노총의 지지는 노동자의 6%로 간주하겠다 – 대통합민주신당 측에서 반노동자 후보로 규정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으니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용득 위원장께서는 그러시지 않겠지만 이번 결과를 통해 제2의 배일도 의원이 되려는 꿈은 가지시지 않았으면 한다.

다 좋은데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사실 다음과 같은 투표방침이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지지율 10%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원문보기)

앞서 말했듯이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국노총이 대표하고 있는 인구는 “노동자 중 6%”이다. 그럼 유권자 중에서 비율은 얼마나 될까. 한국노총 조합원 숫자가 87만 명인데 2007년 대선 유권자 예상숫자는 3천7백만 명이라 한다. 비율이 2.35% 정도 된다. ‘천만노동자’라는 슬로건이 대략 무색해지는 숫자다. 그런데 그런 소수집단이 특정 후보를 10% 지지율이 안 된다는 – 즉 당선가능성이 없다는 – 이유로 배제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의사협회나 변호사협회도 숫자가 얼마 되지 않고 그들도 소수임에도 다수가 지지하는 주류 후보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양적인 소수가 아닌 질적인 소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동자 수가 천만 명이어도 그들은 아직도 이 사회와 정치권에서 약자이자 소수이고 더군다나 노조는 그 노동자들 중에서도 소수다.

그런 소수자가 꾸는 꿈은 늘 현실 속에서 초라하게 꽃피웠던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10% 미만을 맴돌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 농민은 여전히 소수이고 그들의 꿈을 펼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음을 말해주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라면, 노조라면 이념을 떠나서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공평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연유인지 한국노총은 문국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편의적으로 배제했다. 더군다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또 다른 축인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는 아예 거론도 되지 않고 있다. 권영길 후보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면 10% 지지선에 걸려 탈락할 뻔 했다.

노동자 정당의 후보가 낮은 지지율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험한 꼴 당하는 형상이다. 소수가 소수를 배제하는 희한한 선거방식이었다. 이것은 마음 깊은 곳에 그들 스스로 이 사회의 주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지 않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훌륭한 선택 하신 거다.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와 정책연대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디 그 후보 당선시키셔서 노동자가 주류가 되는 멋진 세상 만드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 대신 이번 투표처럼 엉터리 정책이나 방침 정하지 마시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반드시 정책에 포함시켜 이명박 대통령에게 관철시키시기 바란다. 왜냐면 그대 자신이 소수자이므로.

 

(주1) 아마도 이명박 후보를 가르키는 모양이다

(주2) 그렇지만 한마디 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투표는 가장 이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엔 이타적인 투표행위가 많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19 thoughts on “한국노총의 이명박 지지, 나를 우울하게 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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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hqudeh

    극단적 70년대식 맹견 투쟁주의적 사고에서 화합과성장을 택한 한국 노총께 박수를 올립니다…혁신적 사고의 유연성이 혁명스럽기 까지 합니다..까칠한 합리주의 카리스마… 이용득 하이팅.. 민총도 배워보시길 강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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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만 이명박과 그로 대표되는 수구에 머리수그린 대가로 한노총의 윗대가리들이 논공행상에 끼여들 마음을 가질 정도의 유연성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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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순정

    정말 그글을 읽는내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없었다 모 누굴 뽑는다고 하는건 개개인의 자유니까 할말은 없지만 그들은 정말 이명박후보를 믿고 있는거라면 할말은 없다 차라리 시류의 영합했다고 하는게 나으려나?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 신자유주의 미명아래..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희생당할건 불문가지인데 그걸 설마 모르는건 아니겠지? 아니라면 다행인건가?불행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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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이번 지지가 ‘2007년 대선’이라는 제목의 코미디 프로의 백미라고 하면 한노총한테 모욕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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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노씨

    한노총의 이명박 지지는 한편의 코미디이면서, 이명박의 노조관에 대해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생각했던 조합원이라면 어떻게 ‘감히'(정말 감히) 그에게 투표했는지…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입니다.

    “대학 나온” 자부심 있는 “종업원”은 “노조 만들지 않는다”는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스스로 자부심 없는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한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착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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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ingback: 민노씨.네

    1. foog

      소수자가 소수자를 대우하지 않는 세상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에~! 갑자기 삼천포지만 이승환님 글에서 ‘꿀밤펀치’라는 표현 압권이었습니다.(이런 글은 본문 댓글로 달아야 하는거 같은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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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창진창

    헐..
    이런 한국노총에게 표좀 얻어 보겠다고… 노동자들 배신하고 한국노총에 사과나 했던.. 민노당..
    불쌍하다.. 노동조합이란 이름 쓰지말 고 그랬으면 좀 나을뻔했다..
    근로자 협회 뭐 이런거..

    힘들게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각나는건 왜일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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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og

      사실 이 엉터리 희극의 출발점은 민노당 지도부의 한노총에 대한 표구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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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oONFLOWer

    아주..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인지 줄서기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럴때는 연합, 단체란 것에 환멸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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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FLOWer

      foog님의 글에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ㅋㅋㅋ
      혹 모르죠. 선거 전에 새치기가 난무할지..’내가 먼저 섰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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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oog

      서로 줄 먼저 섰다고 이*득하고 이*화하고 싸우면 볼만 하겠네요.
      “각하”가 판정을 내려주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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