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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파악 못하는 부동산 대책

인구 200명의 국가가 있다. 이중 100명이 1억원이라는 동일한 가격의 주택을 2채씩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국가의 주택의 자산가치는 200억원이 된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또는 투기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주택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어느 날엔가 주택 한 채가 1억1천만 원에 거래되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주택의 자산가치는 220억원이 된다. 주택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심리적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에 상응하여 소비도 늘어나고, 은행의 담보인정도 늘어난다. 누군가 이 매수세에 부응하여 대출을 받아 새로이 집을 사면서 신용도 추가 창출된다.

소위 말하는 ‘거품’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지극히 단순하게 살펴보았다.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제약조건이 있을지 몰라도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 형태가 집값의 핵심적인 가늠자로 행세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거품 형성의 과정이 다른 나라보다 더 이러한 모형에 잘 부합할 것이다. 이에 다른 이의 부동산 가치 상승/하락이 곧 자신의 부동산 가치 상승/하락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반상회를 집값 담합의 장으로 활용하시고, 각종 게시판에서 아파트 선전에 열을 올리고, 혹시 집값을 떨어트릴지 모르는 베란다에 이불 너는 행위를 금지한다. 심지어는 주택에 하자가 있어도 집값 떨어질까 봐 쉬쉬한다. 그만큼 우리 부동산 시장은 집값 하락에 대한 저항선이 만만치 않고 집단행동도 수월하다.

또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집값 하락, 특히 아파트값 하락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라는 대규모 집단주거 형태가 가지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특정 주택의 가격하락은 곧 그와 유사한 브랜드, 유사한 평수, 유사한 지역의 동반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산가치 하락은 최근 몇 년간의 서구 부동산/금융 구조가 그러했듯이 사회전반에 상호침투하는 연쇄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즉 [ 부동산 가치 하락 > 소비위축/대출상환능력 저하 > 건설을 포함한 실물경제 위축/은행 재무건전성 악화 > 실물/금융시장 여건 악화 > 추가적인 부동산 가치 하락 ]의 전형적인 패턴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연쇄반응의 악순환을 막고자 하는 응급조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조치는 예로 든 인구 200명의 국가에서 220억원의 자산 가치를 온존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실질가치가 얼마인가 하는 규범적 가치판단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실수요자의 수요와 상관없이 지어진 미분양 주택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있는데 서울, 인천, 경기에서 실수요가 아닌 투기적 가수요가 붙었던 곳의 거래를 허용하여 어쩌면 180억원(즉 한 채당 9천만원)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자산 가치를 220억원으로 보이도록 하는 착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소리다. 미분양 주택도 팔리지도 않는 주제에 계속 1억1천만 원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이다.

반면 지난번에 내놓은 – 비록 표절이긴 하지만 – 미분양 아파트 펀드는 거래가격을 규범적 가치로 조율하여 연착륙을 유도하는 효과를 거둘 여지가 있는 제안이었다. 즉 현재 대규모로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규범적 가치가 1억1천만 원 아래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예측에 실패한 건설사에게 징벌적인 할인율을 부과하여 9천만 원에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인다면 전체 자산가치는 180억원으로 하향 조정될 여지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건설사, 금융업체, 기존 자산가의 일부 자산가치 하락을 감수하여 경제를 연착륙시킬 개연성이 더 높다. 반면 투기지역 해제는 거품 폭발의 이연효과만이 있을 뿐이다.

아파트 땡처리 펀드 생겼다

“미분양 아파트에 투자하는 펀드가 다음달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다. [중략] 이 펀드는 분양률이 70%를 넘는 300가구 이상 단지 가운데 미분양 아파트를 20~30% 할인해 구입한 뒤 되팔아 수익을 내는 구조다. 되팔 때 매도가격은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시세의 95%이상 수준에서 결정하고, 팔리지 않은 아파트는 임대를 통해 수익을 낸다.[원문보기]”

몇 달 전에 은행에서 투자금융 담당하는 직원이 농담 삼아 ‘땡처리 펀드’라고 이름 지어 미분양 아파트나 사들어야겠다고 하기에 제법 괜찮은 상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올 부동산신탁이 상품으로 내놓았다. 펀드의 운용방식도 그때 둘이 이야기한 것처럼 할인하여 산 뒤 임대를 하다 시장이 호전되면 되파는 방식이다. 역시 시장경제는 내가 생각하면 남들도 생각하고 있다. 🙂

여하튼 이 뉴스는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 부동산 시장이 드디어 이 펀드가 상품성이 있을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다올 부동산신탁 관계자에 따르면 “시공능력 평가 50위 이내 유명 건설업체가 지은 아파트의 미분양 물량에 선별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 다음 달 사모를 거쳐 5월에 일반인에게 팔 계획이”라고 한다. 시공능력 평가 50위 이내 업체가 분양률 70% 넘는 300가구 이상 단지를 20~30%에 할인해 팔아야 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둘째, 바로 이 상품의 존재가 이명박 정부의 “지분형 아파트”가 뻘짓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투자자는 최고 30% 할인해서 산(물론 할인율은 더 내려갈 수도 있고) 아파트에 대해 임대수입도 얻고 시장이 호전되면 언제든지 팔아버릴 수 있을 수 있고 더군다나 신탁형 상품이라 세금문제도 가볍다. 지분형 아파트는 51%로 펀드 상품보다는 싸게 사도 임대도 놓을 수 없고 되팔 때 재산권 행사도 불안정하고 세금관계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이게 비즈니스 후렌들리 정부의 작품이라는 것이 좀 짱이다.

여하튼 미분양 아파트 펀드는 IMF 이후 국내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는 ‘부동산의 증권화’ 현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첨단상품이다. 물론 첨단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최첨단 금융상품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그와 관련한 파생상품이 증명해주었다. 부디 그럴 일 없어야 하겠지만 예상한 만큼 시장이 받쳐주지 않아 부동산PF와 함께 또 하나의 ‘부동산發 금융 위기’를 불러올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하는 괜한 노파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