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민주대연합

BBK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1.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선거법을 너무 가혹하게 적용한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어째 5년 전의 대선 전야만큼 인터넷이 달아오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더욱 드라마틱한 면이 많아서 이기도 한 것 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노’의 돌풍, ‘정’과 ‘노’의 드라마틱한 단일화, ‘노’와 ‘창’의 박빙승부…. 지금의 거품 빠진 맥주 같은 선거전야와는 달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적인 면이 많았다. 그리고 역시 그 중심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흡인력을 가진 ‘노무현’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실험이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 특히 87년의 시민봉기를 경험한 이들은 – 참으로 오랜만에 그 선거를 통하여 정치를 통한 개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맛보았다. 많은 이들은 ‘어쩌면 우리 세대가 세상을 더 밝게 만들 수 있을 거야’라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러한 반역의 기운은 “바리케이트 앞에서 화염병을 든 심정으로 정치에 입문합니다.”라고 일갈했던 유시민의 출사표에서 잘 표현되어 있었다.

결국 그 선거는 ‘화염병을 든’ 절박한 심정을 공유하고 있던 이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2.

그 선거의 최대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다들 현재 삼수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사정을 아는 이라면 알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피해자는 역시 삼수를 하고 있는 – 이회창 옹과는 또 다른 의미의 삼수지만 – 권영길 후보, 보다 정확히 말해 그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 민주노동당이다. 그 선거에서 막 꽃을 피우려 나선 진성 ‘좌파’ 정당 민주노동당은 죽음의 신처럼 엄습해 온 ‘수구세력의 공포정치’라는 유령에 대항하기 위해 급조된, 그러나 강력한 파워를 지녔던 ‘민주대연합’론 앞에 스러져 갔다. 5년 뒤에 빚을 갚겠다는 엉터리 차용증만 손에 쥔 채….

그렇다면 이제 5년 만에 채무자들은 빚을 갚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음….

어느새 채무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도대체 누가 돈을 꿔가고 누가 표를 꿔갔는지 알 수도 없다. 여당인 것 같은 당이 하나 있긴 한데 여당은 아니란다. 여당의 잘못을 모두 안고 가겠다고 하다가 다음날이면 청와대를 비난해댄다. 매우 포스트모던한 정당이다.

재밌는 것이 이 당이 5년 전에 민주노동당에 해대던 소리를 창조한국당이라는 신생정당, 더 정확히는 그 당의 유일한 공격수 문국현 후보에게 해댄다. 예전 채권채무관계는 정리도 안한 체 새로운 빚을 얻을 모양이다. 옆에서 ‘거짓 민주세력을 규탄하겠다고’ 훈수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시다.

10년 이나 기회를 줬으니 표는 자신들이 알아서 미리 미리 챙겨뒀어야 할 것 아닌가.

3.

인터넷의 선거 열기가 5년 전만 못하다고 했는데 오늘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강연 동영상 덕분에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 같다. ‘이제는 골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들 쉬라고 만들어 놓은 이 일요일에 새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짜느라 날밤 새우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일 아침이면 ‘구국을 위한 결단’ 을 발표하실 분이 꽤 되실 것 같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실토하신대로 사실상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 갔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들이 그 권력을 시장으로부터 다시 찾아올 강력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면 그들이 짜고 있는 ‘대한민국 개발 5개년 계획’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타칭 ‘좌파’ 정부, 자칭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의 일꾼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국내외 자본들의 장애물을 많이 없애놓으셨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한미FTA 다.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명박 후보나 노 대통령이나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할 지경에 몰릴 수도 있을 터이고, 대운하는 파지 않겠지만 ‘민주대연합’이 상정하고 있는 만큼의 기대치는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 자명하다. 자의든 타의든…..

4.

2~3년 전쯤 문국현 사장을 보면서 ‘참 신선한’ 경영자라고 생각했었다. 만에 하나 이 세상의 자본가들과 경영자들이 그와 같은 마인드로 회사를 꾸려간다면 정말 ‘추상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가 착취 없는 경제체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독재 없는 독재체제’라는 형용모순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나는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 권영길 후보, 금민 후보가 20% 이상의 득표를 한다면 5년 전 선거보다는 더욱 의미 있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적어도 그만한 국민들이 ‘反신자유주의’라는 슬로건에 한 표를 던진 셈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대항하여야 할 상대는 ‘파쇼’가 아니라 ‘부정부패’와 ‘신자유주의’다. 나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농민들을, 88만원 세대를 짓밟는 것은 ‘군홧발’이 아니라 ‘삐까뻔쩍하게 광을 낸 명품 구둣발’이다.

5.

BBK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때만 되면 나타나는 기만적인 ‘민주대연합’ 론

“이념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단일대오로 모여 부패 정치세력 집권 정치를 위해 민주대연합을 이룩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동참하지 않고 분열된 채로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은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기 위해 소설가 황석영 씨 등 재야인사들로 구성되었다는 ‘부패세력집권저지와민주대연합을위한비상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는 7일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를 참세상 기사가 인용한 부분이다. 이 짧은 문장 들이 형식적 오류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선 ‘부패 정치세력 집권을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념을 지닌 정파다. 부패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절대적 판단기준이 있는 것이므로 이념이나 정파 이전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다. 부패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미 알 수 있다.

이명박 씨가 주가조작의 혐의가 있고, 이회창 씨가 대선자금 불법모금과 불법유용의 혐의가 있다면 현 정부는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헌법을 유린한 정부다.(현 정부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서로 다른 실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열외로 한다. 이 글을 더 읽으실 필요가 없으실 것이다.)게다가 이건 혐의가 아니라 사실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부패한 삼성 일가를 감싸고 있는 듯 한 혐의까지 있다.

여기서 만약 이라크 전쟁 파병을 정치역학 등을 동원한 상황논리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때부터는 ‘부패’라는 절대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이념’과 ‘정파’의 문제이다. 자진해서 저질렀든 떠밀려서 저질렀든 범죄는 범죄이고 실정법 위반은 실정법 위반이다. 그것에 구실을 달 것 같으면 그때부터는 이념이다. 독재에 항거하여 돌팔매질을 했다는 사실이 이념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시국회의는 ‘민주대연합에 방해가 되는 정치세력은 거짓 민주평화세력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오만의 극치다. 때만 되면 나타나는 케케묵은 ‘통일전선론’은 이제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공포정치와 협박정치다. 민주대연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한, 또는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에 대한 공갈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노동자들을 감싸던 변호사의 모습을 지녔던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그 당시의 ‘민주대연합’으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았는가. 그 사이 허다한 노동자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구속당하고, 이전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거기다가 자신이 표를 던진 이로부터 ‘노동귀족’이라는 험한 말까지 들어야 했다.

농어민들은 어떤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명분하에 한칠레 FTA, WTO 등으로 생체기가 날대로 난 상태다. 이제 정권 말 특별 보너스로 한미FTA도 기다리고 있다. 이 나라의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으로 다가올 한미FTA에 대해서 상위 4명의 후보가 모두 찬성한다. 재야가 나서지 않아도 이미 親FTA 대연합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도 두세 번 들으면 지겨운데 이제 그만 하자. 초록이 동색이었던 김영삼 씨와 김대중 씨도 공원에서 사람 좀 모아놓고 스스로 감격하여 절대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때만 되면 주변사람들이 나서서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패악질을 해댄다.(지난번에는 그 역할을 유시민 씨가 해댔다.) 이제 그 역할을 황석영 씨가 하고 있다니 솔직히 조금 의외다. 그리고 실망스럽다.

정치세력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의해 모이는 집단이다. 대의명분이라는 것은 자신의 정치세력 내의 대의명분이다. 그러한 것을 어떠한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인 양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거짓 민주세력’으로 규정하겠다는 행위는 ‘민주대연합’의 민주와는 하등의 상관없는 또 하나의 폭력이자 오만이다.

p.s. 이 글은 문국현 씨와 정동영 씨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나 상대적인 도덕적 우월함에 관한 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