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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의 주주행동주의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최근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회장 내정 과정에서 사외이사들만으로 회장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사외이사들의 집단 권력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중략]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한 적은 없다.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지분 5.49%(9월2일 기준)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추천 인사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사외이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파견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국민연금 “KB금융 사외이사 추천하겠다”]

속 보이는 해프닝으로 끝난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건과 연계하여 흥미로운 일이 하나 진행되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국민연금이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민연금은 지분 5% 이상을 가진 국내 상장사가 140여개에 달하지만 내가 아는 한은 사외이사 추천 등의 적극적인 의사결정 개입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다른 보도를 보면 이러한 국민연금의 행동이 일회성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국민연금공단은 18일 제12차 이사회에서 내놓은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에서 내년 국민연금이 주요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날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이 주요주주인 기업에 대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전했다.[국민연금 “내년 투자기업 의결권 행사 강화”]

즉, 국민연금이 이전의 소극적으로 행사해오던 주주권을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인데, 이는 사회책임투자나 주주행동주의를 주장하는 서구의 행동주의자들의 의견과 비슷하다. 기업윤리운동 등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들의 의견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사회책임투자 주창자들은 결국 적극적인 투자행태, 그 중에서도 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행위가 투자수익의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연기금 중 주주행동주의로 유명한 곳은 세계최대의 연금펀드라 할 수 있는 캘퍼스다.

이러한 기업지배구조는 일반적으로 주주행동주의라는 미국 전통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1980년대 후반 이래 가장 큰 기관투자가로 군림해온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에 의해 강제적으로 미국 내에 생겨났다. 이 연금은 캘퍼스(Calp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주행동주의를 이끈 선구자 중 하나다.[사회책임투자 세계적 혁명, 러셀 스팍스 지음, 넷임팩트 코리아 옮김, 홍성사, 2007년, p252]

결국 국민연금이 국민은행에 사외이사를 추천한다는 계획과 ‘2010년도 사업운영계획보고’의 내용은 이들이 캘퍼스가 추진해오던 주주행동주의 노선을 다져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개입주의적 노선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노선으로 하여야 하는 이른바 우파 정부 하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과거 정권에서 민주당도 지적하였듯이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경기 부양용 도박자금’,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일면 모순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시작부터 대운하 건설, 금융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 노동운동에 대한 적극적 개입 등을 통해 국가개입주의적 노선을 분명히 해왔다. 이전의 두 정부가 신자유주의 노선에 연성의 개입주의를 구가하였다면 이 정부는 과거 정부가 박아놓은 못 – 이를테면 좌파적 정책? – 을 빼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금융위기 상황과 맞물려 그 개입주의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한의 우익들은 개입주의적 모델을 당연시 했던 박정희식 모델의 전력도 있거니와 ‘연기금 사회주의’를 부르짖은 것도 박근혜였지(주1) 이명박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이번 주주권 강화 계획을 이명박 정부의 어떤 흑심이 있는 음모로 간주하고 반대하여야 할까? 엄밀하게 ‘주주권 강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나는 그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주주권의 행사는 당연한 권리인데, 국가의 의사결정능력은 시장의 그것보다 열등하다는 선입견으로 말미암아 국가 혹은 국가에 준하는 기관의 투자는 당연히 의사결정을 나머지 주주에게 일임한다는 식으로 간주하였던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 혹은 노선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운용함에 있어 결국 국민연금 혹은 그 의사결정 위임자가 주주권을 어떠한 목적으로 행사하느냐가 중요한 가치편향적인 시각을 제공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번 2010년 사업운영계획 보고에서는 주주권 행사의 목적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라고 밝혔다. 문구상으로만 보자면 그것은 캘퍼스의 주주권 행사 목적과 유사하다. 특히 ‘장기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을 문구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기적 이익에 주력하는 주주자본주의의 맹점도 보완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위 인용기사의 다른 부분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기사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장의 하부조직으로 있던 준법감시인을 이사장 직속으로 확대·개편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는 이것이 내부통제기능을 강화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얼핏 이사장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사회간접자본(SOC)과 민영화 기업 등 대체투자 분야로 투자를 넓힐 방침”도 수자원공사의 4대강 투자와 맞물려 괜히 찝찝해지는 대목이다. 과연 국민연금은 정부의 4대강 투자요청을 뿌리칠 자신이 있을까?

예전에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씨의 한 팸플릿에도 국민연금을 활용한 기업사회화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를 사회주의적 본원적 축적이라고 여긴다면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연기금은 좌우익 모두에게 명분 있는 주요 투자재원으로 여길 건더기가 많다. 문제는 어느 진영이든지 그것을 주주(즉 연금가입자)의 투자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투자사업에 활용하고픈 유혹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연기금을 통한 주식시장 부양은 박근혜씨가 표현한바 ‘연기금 사회주의’가 아니고 그저 ‘연기금 오용(誤用)’일 뿐이다.

(주1) 그렇다면 박근혜씨는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이랜드, 국내가 아닌 홍콩에서 상장 시도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사회책임투자’라는 표현이 회자되고 있는데 사실 개념상으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주식펀드상품을 기획할 때에 그 투자기준을 사회적으로 도덕적이라고 인정받는 회사의 주식을 편입시키거나, 반대로 비도덕적이라고 인정받는 회사의 주식을 제외시키면 된다. 그 판단기준은 투자자나 운용사의 판단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oo자산운용사회책임투자펀드제1호’ 뭐 이런 제목으로 펀드가 하나 기획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펀드매니저라면 일단 투자부적격 기업 리스트에 삼성과 이랜드를 적어둘 것이다. 이들 기업은 각각 비자금 조성 등의 기업비리와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갈등 등 그들 업종에 있어서 치명적인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구설수는 이익의 감소로 이어져 주가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이랜드는 비상장사다. 이 글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가정으로 상장사라 가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랜드 그룹이 곧 상장될 것이다. 재밌게도 상장된느 곳이 국내가 아니라 국외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그들의 계열사 이랜드상하이패션의 홍콩 증시 상장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상장절차가 마무리될 전망이라고 한다.

왜 홍콩에서 상장을 시도할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이랜드가 중국에선 꽤 고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지오다노와는 반대의 케이스같다. 그러니 상장될 때 공모가격이 꽤 높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하튼 그래서 현지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관계로 국내 모그룹의 구원투수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구원투수’가 무슨 말인고 하니 이랜드의 국내 장사는 현재 죽 쑤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이랜드그룹의 핵심 4개사의 실적은 줄줄이 악화돼 총 307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래서 신용평가기관은 여차하면 이랜드 계열사들을 투기등급으로 강등시킬 참이었다. 만약 이랜드의 홍콩시장 IPO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막대한 자금유입을 통해 이런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룹의 계산이다.

이랜드의 실적악화의 이유는 역시 일차적으로 무리한 사세확장이다. 뉴코아, 까르프 등을 무리한 차입으로 인수하였고 비정규직 투쟁 등으로 영업실적까지 신통치 않다보니 실적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을 살펴보자면 위와 같은 갈등의 기저에 CEO 또는 경영진의 독단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법 강경한 종교기업(?)으로 알려진 이랜드는 처음 이러한 이미지가 오히려 플러스요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사세확장에서 드러난 여러 모습을 보면 이러한 강경노선이 초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회장의 반노동적인 인식, 그에 상응하는 반노동자적인 회사정책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드러냈고 결론적으로 회사의 무리한 M&A 역시 그러한 회사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앞서 사회책임투자펀드의 매니저의 입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기업의 주식은 펀드에 편입시키지 않을 것 같다.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황제식 경영의 전형이 종교적 근본주의와 결합하여 회사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홍콩의 펀드매니저라면? 편입시킬 것이다. 현지에서는 이런 사실관계도 잘 모를뿐더러 오로지 브랜드이미지로만 승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랜드그룹의 입장에서는 홍콩 증시의 상장에 사활을 걸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IPO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경영진이 한번 혼쭐이 났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기업의 쇠락은 나머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종업원들에게 엄청난 고통이기에 그 숨통을 틔워줄 필요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진들도 이번 기회에 회사경영에 대한 마인드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이 주주에 대한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닌 사회에 대한 책임도 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면 실적도 좋아질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내 주식시장에도 상장을 하여 높은 가격도 유지하시라… 뭐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자본주의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실험

은행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가난하고 미천한 방글라데시의 여인네들에게? NO WAY!

미시신용

바로 그러한 선입견을 깬 이가 무함마드 유누스 Muhammad Yunus 다. 그는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지만 유복한 보석세공사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잘한 덕택에 영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돌아와 고국에서 교수로 편안한 삶을 살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이른바 미시신용 microcredit 의 개념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금융제도를 착안한다.

그의 돈 빌려주는 방식은 가난한 이들에게 – 특히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 무담보 소액대출을 통해 일종의 가족 사업을 벌일 밑천을 대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선의 성격이 짙었겠으나 의외로 회수율이 99%에 달할 정도로 상식을 깨는 수준이었기에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의 성공의 보답으로 2006년 노벨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주1)

소셜비즈니스

그는 최근 Common Dreams 웹사이트에 “어떻게 소셜비즈니스가 가난 없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가(How Social Business Can Create a World Without Poverty)”라는 글을 기고했고, 이글을 통해 그가 실천해낸 미시신용이 어떻게 제1세계, 나아가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를 설명하였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행위를 함에 있어 이윤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그만으로는 반쪽짜리이며 배려, 관심, 나눔, 동정 등의 요소들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갖추고 있는 개념이 바로 소셜비즈니스(주2) 라 할 수 있다.

Muhammad Yunus at Chittagong Collegiate School.JPG
Muhammad Yunus at Chittagong Collegiate School” by Hossain Toufique Iftekher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자본주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소셜비즈니스의 핵심은 다음 문장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자선은 아니되 사회효용적인 차원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장에서 ‘돈빌려주는 사람(owner)’은 이익을 취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A social business is not a charity. It is a nonloss, nondividend company with a social objective. It aims to maximize the positive impact on society while earning enough to cover its costs, and, if possible, generate a surplus to help the business grow. The owner never intends to take any profit for himself.

그렇다면 그가 소셜비즈니스를 통해 꿈꾸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까? 분명 가난이 추방된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극복된 사회는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였지만 번영을 가져다주었고 산업을 자극시켰다는 점에서 분명 매력적이라고 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미국의 유럽 사회에만 집중적으로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이제 그가 발전시킨 미시신용을 통해 제3세계 국가의 빈민들도 이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Capitalism has the capacity to do good in the world, provided we recognize that the motivation for the entrepreneur need not be exclusively economic and personal.

의미 있는 실험, 그러나

그의 실험은 분명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이들이 그의 은행에서 돈을 빌려 어엿한 자산가(주3)가 되기도 하는 광경을 직접 보았고 실제로 그의 프로젝트를 통해 약 600만 명이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엔 미시신용이라는 이러한 그의 아이디어를 원용한 사업도 창출되고 있다. 일례로 웹사이트에서도 이러한 사이트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Prosper.com 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비판도 있다. 그의 프로젝트 성과가 실제보다 부풀려 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Common Dreams 에 유누스가 쓴 글에 댓글을 단 alexnosal 이라는 누리꾼은 방글라데시에는 미시신용이 있겠지만 미국 주식회사에는 이미 거시신용 macrocredit 이 버티고 있는데다 모든 것은 프랜차이즈化 되어 있어 미국에 유누스의 방법을 적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있다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비판

방글라데시와 같이 금융의 인프라가 절대부족한 곳에서는 그의 프로젝트가 마치 먹물이 백지에 스며들듯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상인들도 금방 기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lexnosal 라는 이의 글처럼 제1세계 –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에서 과연 품앗이로 빌린 소액의 돈으로 할 만한 마땅한 사업이 있을까? 동네빵집? 파리바께뜨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데 그게 한두 푼으로 되는가?

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kropotkins이라는 이가 제기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임이 분명한 이 누리꾼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체제라면 왜 여전히 ‘주인(owner)’와 ‘금전의 문지기(monetary gatekeeper)’가 존재하여야 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또한 그는 결국 국가와 자본주의의 절멸만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의 전제조건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If the point is to have a socialy benificial system then why would we still need owners and monetary gatekeepers.

그럼에도 의미 있는 실험

무정부주의자는 그를 쓰레기로 폄하하였지만 분명 그의 실험은 의미 있다. 또한 제1세계에서도 이른바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개념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유(free)로운 경제’도 중요하지만 ‘공정(fair)한 경제’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즉 유누스가 말한 배려와 나눔이 없이 오직 돈벌 자유만 판치는 경제가 아닌 서로 골고루 분배하는 경제가 이 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간적인 자본주의자’ 유누스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GATT 가 출범할 적에 그 본래 목적은 사실 ‘자유무역’의 촉진이 아닌 ‘공정무역’의 촉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유무역’이 대체하고 있다. 경제학자는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복잡한 수식을 써가며 설명하여 왔다. 하지만 그 무한자유가 제1세계, 제3세계 공히 피착취 계급에게는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음이 이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를 설명할만한 수식을 경제학자들이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아니면 유누스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돈이라도 빌려줘 보던가.

그런데 한 실험에 의하면 경제학과 학생들이 가장 이타적인 행위에 인색하다고 한다. 수업을 너무 충실하게 들은 탓(덕택)인지….(주4)

(주1) 그런데 노벨 경제학상이 아니라 노벨 평화상이다. 세계는 아직도 가난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어도 떼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경제학 이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2) 우리 말로 하면 ‘사회사업’이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회사업과 너무 혼동되어서 그냥 원어 식으로 표현한다

(주3) 그들 동네에서 자산가였는데 사실 여전히 궁핍하긴 했다

(주4) 혹시 경제학도시라면 화내지 마시길… 실험은 실험일뿐…

좌파 후보는 ‘성장’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왕따 당하고 있는 좌파 후보

실질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소위 ‘좌파’ 후보로 자임하는 후보는 두 명이다. 하나는 비교적 잘 알려진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다른 하나는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따돌림 당하고 있는 한국사회당의 금민 후보다. 두 후보 간의 지지율의 차이는 있으나 둘 다 대선의 메인스트림에서 소외받기는 매한가지다. 권 후보의 지지율은 대략 2~3%대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보다도 떨어져 당의 역대 최저 지지율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민 후보의 지지율은 1%대 미만으로 1%대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지독한 우편향의 정치지형은 이념적 포지셔닝에 대한 일천한 역사적 경험도 한 몫 하겠지만 내부적인 역량의 한계도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두 후보는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현재의 경제, 정치,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는 있지만 국민들에게 그 비판이 전달되지도 않고 있고,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이 유권자의 마음을 효율적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명박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는 어처구니없는 희극적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정치지형이다.

선거판이 X판이어서 그런가 후보의 잘못인가

이 두 좌파 후보가 선거판에서 돌풍을 일으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판이 BBK 등으로 진흙탕이 되고 있는 탓이겠지만, 또 하나 지적해야 할 점은 선거판의 천박함을 뛰어 넘을 ‘경제적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이명박 후보의 ‘경부대운하’ 공약은 터무니없는 공약이긴 하지만 적어도 유권자들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경제적’ 약속으로 느껴진다. 박정희 식 개발독재의 냄새도 진하게 배어 있다. 유권자들은 박정희의 독재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때의 경제적 활력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파 후보들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일자리가 없으면 건설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약속에서 ‘토건국가’ 비판은 파고들 자리가 없다. 정확히 말해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집약적 산업구조화, 주주자본주의 강화, 제조업 공동화 등으로 말미암은 노동유연성 강화와 고용불안에 기인하고 있음에도 유권자 대다수는 삽질이라도 해야 일거리가 생긴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편 문국현 후보는 이 틈새시장을 ‘일자리 나누기’라는 상품으로 교묘히 파고들고 있다.

좌파가 오히려 성장을 부르짖어야 한다

경제적 대안에 있어 ‘대운하’ 공약과 같은 단순무식하고 개발주의적인 공약을 좌파 후보들이 낼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탓에(?) 좌파 후보들은 늘 ‘성장 없는 분배’만 외치는 이들이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하고 이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좌파 후보들은 ‘성장’은 제켜두고 ‘보전’과 ‘분배’에만 몰두하는 것이 사실인가. 어찌 보면 좌파 후보들마저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의 도그마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후보는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사회총체적으로 볼 때 성장은 필요불가결하다. 국민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삶의 질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사회공공성이나 환경보전(주1),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 성장에 대한 적정한 통제와 정당한 분배를 주장하는 좌파적인 대안이 ‘분배 -> 소비 -> 생산 -> 성장’ 으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적인 진정한 성장 대안임을 주장하여야 한다.

어떻게 성장의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즉 좌파 후보들은 현재의 우파들의 성장론은 명백하게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주주와 투기적 금융자본의 약탈적인 자원독점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이의 확대재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비판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은 자원분배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은 모기지론이나 신용카드 빚으로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를 온존시켰고 이것이 현재 직면한 전 세계적인 신용경색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한마디로 시장맹신의 무정부성이 우파 성장론의 핵심이다.

한편 성장을 이야기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제기되는 물음은 역시 투자재원이다. 자본은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 건설재원을 민영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민영화가 철밥통을 깨는 개혁으로 치장되고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참 하기 편한 발언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일진데 그들은 유권자들도 아니다. 그러니 좌파들은 이런 무책임한 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성장’을 위해 좌파는 어떤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가.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표적인 재원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적립금 규모가 200조원을 돌파하여 8월말 현재 213조원으로 세계 5위의 거대 기금으로 성장했다.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다. ‘투자의 사회화’를 이야기할 때에 이보다 더 명분 있고 현실성 있는 재원은 사실상 없다. 따라서 향후 선거에서 ‘성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좌파 후보라면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여야 하는 일종의 당위성이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주2)

두 후보의 공약 비교

사실 이 부분이 권영길 후보의 공약과 금민 후보의 공약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다.

먼저 권 후보의 공약을 들여다보자. 결론적으로 말해 국민연금의 활용방안에 대한 언급, 더 나아가 경제체제 정비의 재원조달 방안이 없다. 그의 경제 관련 공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 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중소기업과 노동대중 중심의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할 것이다. 주요 기간산업과 은행을 재국유화할 것이다. 한미FTA를 무효화하고 외국투기자본을 강력하게 규제할 것이다.”(원문 보기)

이 문장으로만 본다면 권 후보의 공약은 사회주의적인 대안 – 또는 反자본주의적 대안 – 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 내지는 폐쇄형의 자본주의 경제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출주도형 경제를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하고 외국투기자본을 규제한다는 발상은 사실 비판할 부분이 많지만 논지에 벗어나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주요 기간산업과 은행을 재국유화”하는 부분에 대한 ‘어떻게‘라는 부분을 이 공약이 나와 있는 장이나 다른 공약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주3)

금민 후보는 이에 반해 ‘연기금으로 거대기업 국민통제’를 타이틀로 하여 국민연금을 통한 투자의 사회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이 기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거나 회사채 시장이 형성될 경우 회사채에 투자하면, 국민이 대주주 역할을 할 수”(원문 보기)있다는 로드맵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투자우선순위, 금융공공성, 사회책임성(주4)을 담보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2000년 7월 발효된 영국의 수정연금법의 사례를 들고 있다.

연기금을 통한 기업통제, 과연 가능한가

물론 ‘연기금을 통한 기업통제’라는 공약은 좌파 입장에서는 여전히 우편향적인 공약일터이고 우파 입장에서는 지극히 혁명적인 불온한 발상이라는 애매한 지점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그 논의도 이제 막 시작된 시점이다.(관련 기사 보기) 미국의 진보진영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점하고 있는 마르크스 이론가 더그 헨우드 Doug Henwood 는 그의 저서에서 공공연금이 기업의 대주주로 나섰음에도 실제로 다른 주주들보다 보다 급진적인 주장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이는 공공재원의 의사결정구조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기업을 군대를 동원하여 통째로 접수할 생각이 아니라면 대안 경제 체제를 고민하는 데에 있어 연금 활용론은 앞으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지금 진보 진영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벌과의 사회적 타협이라는 이슈가 실현가능할 것이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데 재벌이 뭐하러 진보진영과 타협을 하겠는가.

소비의 사회화에서 투자의 사회화로

지난 대선에 민주노동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소비의 사회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공약 역시 아직 실현이 요원한 현실에서 폐기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파 후보들마저 서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종 환심성 복지공약을 남발하는 상황에서는, 그리고 좌파의 근본적 존재의의를 놓고 보자면 이제는 ‘투자의 사회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워야 한다.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비재원도 마련될 턱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는 ‘투자 -> 생산 -> 유통 -> 소비 -> 재투자’의 흐름이 연속되는 유기체적인 시스템이다. 그 생산력의 중추는 역시 ‘노동’이지만 노동은 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쥐고 있는 자가 노동을 쥐고 있는 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의 대안 체제는 돈을 생산주체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현재 벌어진 삼성의 부정부패일 터이고, 더 나아가서는 시장파괴와 환경파괴인 것이다. 그 악순환이 이제는 선순환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이다.

참고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1758

 

(주1) 성장은 당연히 환경을 파괴한다는 생각이 꽤 설득력 있게 맹목적인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2) 이미 박근혜 씨가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적절한 지적이었다

(주3) 사실 민주노동당에서 연기금을 통한 투자사회화를 공약으로 내걸은 후보는 심상정 후보 하나다

(주4) 현재 삼성 사태를 근본적 해결로써 바로 삼성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기업으로 바꾸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